사회적 농부 - 모두의 농업, 모두의 농부
정기석 지음 / 작은것이아름답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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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농부 - 모두의 농업 - 모두의 농부

 

우연일까. 최근 만난 글과 사람들이 '독일'과 이어진다. 녹색평론읽기모임 [맑은하늘]에서 읽은 '독일의 민주시민교육'(심지어 블로그 인기글) 글이 그렇고, 도서관에서 북토크를 진행하는 강사님이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오셨다고. 오래전 읽은 김누리교수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다시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던 중. 서평단으로 참여하게 된 책 사회적 농부를 읽게 된 거다.

 

독일에는 무엇보다 농업을 가업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다. 반드시 자식에게 농사를 물려준다. 맏아들이 못하면 둘째 아들이, 아들이 없으면 딸이 물려받는다. 자식들도 중학교부터 농업학교를 다니며 당연하다는 듯 농부가 될 준비를 한다. "농부가 농사를 게을리 하면 농촌 경관이 어떻게 망가지나 보라"며 당당히 대정부 시위를 벌인다. 죽어서는 '자랑스러운 농부'였다고 묘비에 새긴다.”

 

책은 시작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호기심이라 점잖게 썼다만, 믿을 수 없다며 꽤나 호들갑을 떨었다. 한국 농부들은 자식들이 도시 월급쟁이가 되더라도 도시로 자식들을 내몰고 어떻게든 농사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학벌·부동산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아닌가. 해서 '반드시 자식에게 농사를 물려준다.'는 문장에 상당한 의구심이 일었던 듯하다. 나또한 궁금하더라. 그들은 왜 그토록 당당한지. 그 자존감과 자부심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얼마 못가 알게 된다. 실체와 마주하니 탄식에 이어 감탄을 넘어 찬탄이 절로 나오더라.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농민들 스스로 남보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벌려는 욕심을 통제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는 사실. 자칫 나와 내 가족, 생활과 생계 앞에 먼저 자신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농민들이 출혈 경쟁이나 과잉 독과점의 유혹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아예 법조항처럼 명시해 놓았다. 1954년에 제정한 독일 농정의 4대 기본 목표인 '녹색계획(Green Plan)'이 바로 그것. '경전처럼 경건하고 거룩하다'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첫째, 농민도 일반 국민과 동등한 소득과 풍요로운 삶의 질을 향유하며 국가 발전에 동참한다. 경쟁력 향상, 소득 증대만 추구하면 대다수 소농들의 토대는 무너지고 이농을 할 수밖에 없다. 둘째, 국민에게 질 좋고 건강한 농산물을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농산물을 과대 포장해 비싸게 파는 것은 세금을 내는 국민을 배반하는 일이다. 셋째, 국제 농업과 식량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 자국의 먹을거리 문제 해결은 물론, 먹는 것으로 다른 나라의 목을 조이지 않는다. 넷째, 자연과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존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한다. 농촌의 자연, 문화경관은 모든 국민이 즐길 권리다. 국도변,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상점도, 간판도 들어설 수 없다."

 

독일은 자국의 식량 문제 해결에만 매달리지 않는구나. 패전국이 되면서 먹거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일까. '먹는 것으로 다른 나라의 목을 조이지 않는다.'는 원칙도 눈에 띈다. 마지막 문장은 그야말로 압권. '국도변,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상점도, 간판도 들어설 수 없다'. 저자 또한 백미로 꼽는다. 독일 국민들은 농부들을 '국민의 별장지기' , '국토의 정원사'로 부르며 고맙게 여긴다.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농사를 짓는 공익 행위를 통해 녹색 계획에 명시된 대로 독일의 모든 국민들이 즐길 수 있는 자연과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존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독일 농업의 열 가지 기능들도 옮겨본다. 독일 농정 당국이 누누이 강조하고 농부들은 금과옥조의 경전처럼 되된다는. 독일 농부들의 높은 자존감과 자부심의 이유가 그대로 설명돼 있다.

 

"하나, 농업은 우리의 식량을 보장한다. , 농업은 우리 국민산업의 기반이 된다. , 농업은 국민의 가계비 부담을 줄여준다. , 농업은 우리의 문화경관을 보존한다. 여섯, 농업은 환경을 책임감 있게 다룬다. 일곱, 농업은 국민의 휴양공간을 만들어준다. 여덟, 농업은 값비싼 공업원료 작물을 생산한다. 아홉, 농업은 에너지 문제 해결에 이바지한다. , 농업은 흥미로운 직종을 제공한다."

 

책을 사실상 이것들을 풀어 설명하고 예를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농업공동체 탐방기 형식을 빌러 현재 '농부의 나라'라 불리는 그들의 농정 정책 방향과 철학을 보여주는 '생생 정보통'이라 할 수 있겠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경제 재건과 나치 과거 극복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었던 독일.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로서 뼈아픈 자기반성을 통해 지금의 독일을 만들어낸 그들의 이야기를 '나일강의 기적' 여섯 글자로 납작하게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될 터. 무엇보다 이 책은 농업 강국 독일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농업 강국 독일이라, 낯설고 어색한 조합이지 않나. 아직까지 독일하면 강철이 떠오르는 건 주입식 교육이 폐해려나. 어찌됐든 짧은 지식일지언정 그간 듣고 읽어왔던 독일 교육 철학 등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독일 전체를 아우르며 관통하는 그 어떤 흐름이 농업을 비껴갈 일은 없었을 터.

 

읽는 내내 모든 면에서 철저하고 완벽하게 소외된 우리나라의 농업, 농부의 삶이 겹쳐졌다. ‘농포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 녹색평론에서 읽고 경악했던, 농지전수조사가 1950년 농지개혁 이후 70년 동안 단 한 번도 실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단적인 예다. 농업생산에서 가장 근간인 땅, 농지가 아닌가. 오로지 소유와 이용, 개발의 측면에서만 땅을 바라보는 우리나라에서 과연 농업이 존중받고 농업만으로도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할까. 다른 생각하지 않고 정해진 규범과 질서대로 살아도 부족하지 않는 삶을 고르게 누릴 수 있는 농부의 삶은 가능할까.

 

저자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가 탄탄한 농업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직불금이라는 실질 농업 지원 제도와 무상 교육인 농업학교라는 든든한 사회 안전망 덕분이라 재차 강조한다. 이 두 가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운영되고 존재하는 제도와 기관이다. 하지만 직불금의 경우 10여개에 달하는 제도는 각기 목적, 예산, 법률, 지침, 운영 기준이 다르고 체계도 복잡하다. 효율이 떨어지고 비합리적인 것은 당연지사. 직불금 예산이나 지원 규모 같은 양적 성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직불금을 지원하는 이유와 철학의 정립은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겠다.

 

독일의 경우 문화경관직불금으로 불린다. 기후변화와 토양침식과 오염을 방지하고, 생태계 다양성을 유지하며, 문화경관을 보전하고, 윤리적 사육을 실천하는 농가를 지원한다.”는 취지이자 원칙이다. 생산 규모와 연계되지 않는 농업 경영주에게 예측 가능한 안정된 소득을 보장하는 데 최우선 목표를 두는가 하면, 청년 농업인가 소농을 상대적으로 우대하고 있다. 소농 지불은 경지규모에 무관하게 정액 지불한다.

 

"독일의 농가마다 지급되는 직불금은 연평균 4,000만원 수준이다. 농가 소득 가운데 60퍼센트가 넘는 수준이다. 알프스 산악 지대로 농사 조건이 불리한 스위스는 90퍼센트가 넘는다. 일단 경작하는 농지 규모에 따라 소농은 2,000여만원 정도, 대농은 3~4억원 넘게 책정된다. 여기에 관행농보다 조건이 더 불리한 친환경농업, 청년, 소농 여부에 따라 직불금이 추가로 지급된다. 특히 '청년 농업인'을 우대해 기본직불금에 25퍼센트를 추가 지급하고 공유지 임대, 농업 시설물 설비 보조금도 따로 지원한다."

 

"직불금 규모는 유럽연합 농정예산의 70퍼센트가 넘는다. 사실상 유럽연합 공동농업정책의 핵심 정책이라고 할 만하다. 농가에 직접 지급하니 예산이 중간에 낭비되거나 유용될 일이 없어 예산 집행의 효율성이 크다. 규모와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회원 국가, 모든 농민에게 지불되므로 사실상 농가의 기본 생활을 보장하는 사회안전망 구실을 한다. 농민 기본소득제의 효과도 거두는 셈이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농부가 되려면 농업학교부터 다녀야 한다. 아무나 함부로 농사를 지을 수 없다. 11살부터 농업학교에 들어가 농업전문대학까지 졸업하고 농업 마이스터 과정을 수료하고 농부 자격고시에 합격해야 한다.

 

"협동하고 연대하는 독일의 사회적 농부는 농업학교, 농부 자격고사, 농부 마이스터 같은 독일의 사람 존중을 바탕에 둔 체계 있는 교육이 빚어낸 성과물인 것이다."

 

독일 정부는 농업을 포기하지 않는다. 대농이나 기업농만 챙기지 않고 가족농과 소농도 다 포용하는 정책을 편다. 농부를 육성하는 농업교육을 유난히 강조한다. 이른바 녹색 직업으로서 농부는 단순한 직업이 아닌 미래가 보장된 평생직장으로 대접받는다. 중학교 과정부터 수만 명 독일 청소년과 청년들이 농부가 되기 위해 농업학교에서 농사 공부를 시작한다,”

 

한국에서도 농업고등학교가 있을뿐더러 농식품부에서 농업마이스터대학을 운영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전혀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에서도 간략한 설명뿐인데다 한국식 정도로는 뭔가 부족하다라고 마무리되고 있어 의문의 열패감이 들었다. 이 같은 책의 형식을 빌려서라도 그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더 널리 보이고 들려야 하겠다. 한국 실정에 대해선 모르쇠로 방관하며 막연한 부러움과 동경을 보내는 건 아니 될 일.

 

독일의 농부는 혼자가 아니다. 독일 농부 곁에는 늘 농부의 삶을 챙기고 보살피는 국가와 정부, 농부들의 생활을 걱정하고 지켜주는 국민들이 있었다. 모두가 참여하는 국민농정을 주장하는 글이 기억에 특히 남는다. 농업이야말로 국가기간산업이다. 국민의 생존권과 국가의 식량 주권을 지키는 최후 보루다. 먹거리를 생산해 국민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는 농부의 존귀함, 농업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 무엇보다 우선시 되고 한시바삐 이루어져야 할 것은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겠다. ’어떻게라는 실질적 방법에 대한 질문만이 남는다.

 

사회적 농부는 사회적 합의와 지지를 받으며 돈버는 농업이 아니라 사람 사는 농촌을 만들며 살아간다. 사회적 농민들이 모여 생태적 농촌을 일구고, 모두가 조금씩 농부인 농부의 나라를 함께 세운다. 사회적 농부는 모두의 농업을 일구는 모두의 농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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