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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춘기 ㅣ 사계절 동시집 19
박혜선 지음, 백두리 그림 / 사계절 / 2021년 2월
평점 :
'바람의 사춘기' 16살 소년의 마음도 이럴까. 시집을 열면, 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녀석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런데 시가 되어 담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의 딴생각,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마음, 자꾸만 생각나는 풍경과 절대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또한 나의 것이기도 했다. 녀석으로 향했던 안테나를 나에게 돌렸다.
또다시 봄. 4월의 첫날. ‘봄’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은 날이렸다. 일하러 가는 길, 발걸음을 몇 번이나 멈췄는지 모른다. 여유롭게 나와서 다행이다 다행, 몇 번이나 중얼거렸는지. 정말이지 '식물'은 '게으름을 모른다.'
식물
게으름을
모른다
수박씨랑 단박에 외운 시. '동물'이란 제목의 시를 금방 만들어보기도... 생각하는 바로 그것! 맞다.
‘동물, 게으름을 안다.’
길섶의 노란 민들레. 4월, 가방에 대롱 달린 노란 리본. 언젠가 ‘노란 리본을 보면 힘이 난다’는 유가족들의 말을 전해듣기도 했지만, 나뿐만 아니라 나방, 수박씨, 찬바람이 들고 다니는 모든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단 건 여기저기를 '함께’ 다녔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소소하고 소중한 일상을 ‘함께’ 나눴으면 하는. 그래서 이 시가 반가웠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존재의 발견. '공감'도 좋다만, '동감'이 주는 어떤 위로, 안도가 있으니까.
함께
그날부터 누나의 가방에 노란 리본이 달렸다
학교 갈 때도
편의점 갈 때도
영화 보러 갈 때도
친구 만날 때도 그 가방이었다
수능시험을 보러 갈 때도
대학생이 되어 엠티를 갈 때도
늦도록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때도
노란 리본이 달린 그 가방과 함께였다
오늘 누나는 교환학생이 되어 미국으로 떠난다
"누나, 또 그 가방이야?"
"얼마나 가고 싶겠니? 나랑 똑같은 나이였는데."
누나가 간다
팔랑팔랑 노란 리본이 함께 간다
전에도 잠깐 썼다만, 초롱초록한 표지는 물론 제목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민들레 홀씨 가득한 그곳에서 턱을 괴고 눈을 감고 입고리를 살짝 올린 채 발끝을 세워 든 이는 자신이 어디로 무엇이 되어 날아갈까 가만가만 그려보는 중일까. 그 곁에 살포시 앉아 나 또한 저 너머를 그려보고 싶다.
다시 마음이 녀석으로 기운다. 16살 소년, 바람의 사춘기. 바람이 잠잠하길 바람. 그렇다고 바람 한 점 없는 날은 밋밋해서 영 신바람이 일지 않을테니. 그저 바람 불어 좋은 날을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