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의 이혼 믿음의 글들 202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윌리엄 블레이크의 천국과 지옥의 결혼이라는 책이 있다.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머리말에서 밝힌 cs 루이스의 글을 보자면 어떤 내용일지 살짝 짐작은 간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천국과 지옥의 결혼을 성사시키려 노력해 왔는데 이런 생각은 세상에 흑 아니면 백인것은 없다는 전제하에 나오는 시도다.
숙련된 기술이나 시간만 충분하다면 양자를 다 포용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악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악을 약간만 발전시키고 조정하면 선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오는 것이다.
천국을 받아들이려면 지옥이 남긴 소중한 기념품까지 모조리 버려야한다는 것이 루이스의 생각이고 이 책을 쓴 이유다.

어스름하고 초라한 곳에서 주인공과 사람들이 황금빛 버스에 오르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어느 초원에 도착해 발을 내디딜 때마다 그들은 고통을 느끼는데 이유는 그곳의 꽃과 같은 식물, 과일이나 흐르는 물 처럼 자연적인 모든것이 단단하고 무겁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그들은 유령이고 초원은 천국 또는 천국과 가까운 어느곳 정도 될거 같다. (연옥은 아니다.)
각 유령들에게는 영(천사일듯)들이 하나씩 붙고 그들을 이곳에 머무르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
영들은 옷을 입기도 하고 벗기도 했지만 모두 크고 빛나며 사람을 압도하는 어떤 거룩함이 깃들여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유령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살아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덩치 좋은 한 남자는 살아생전 좋은 사람이 아니었고 자신의 종업원들에게는 비인간적으로 대했지만 초원에서 만난 전 종업원이었던 영(세상에서는 살인자였지만 구원 받은 영)에게는 다른 말을 한다.
자신은 종교도 없었고 잘못 하나 저지르지 않고 산건 아니였지만 반듯한 사람이였고 사람들에게는 최선을 다 했으며 자기것이 아닌걸 탐낸적이 없고 술이 먹고 싶으면 제 돈 주고 사 먹었다고.
물론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웃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종종 봤기 때문이다.
영화에도 나오고 현실에도 있는 그런 사람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몇몇 상황만 조금 다르고 입으로 똑같이 내뱉지만 않았을 뿐이지 우리의 모습 아닌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걸 보여주고 변명하기위해 스스로에게도 속이지 않았나.

기억에 남는건 아이를 잃은 엄마 유령이다.
그녀는 10년전 죽은 아이에게만 몰두한 나머지 남편과 딸, 어머니같은 가족에게는 모두 멀어졌다.
그녀에게는 친오빠의 영이 나타나는데 조금의 반가운 기색도 없다. 머릿속엔 오직 아들 생각 뿐이며 아이를 데려간 원망만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오빠가 하는 말에 진리가 담겨져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이클을 데려가셔야만 했어. 우선 마이클을 위해…….”

“전 마이클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평생을 다 바쳐서…….”

“인간들끼리는 서로를 오랫동안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줄 수가 없어. 마이클을 데려가신 건 널 위한 일이기도 했단다. 자식에 대한 본능적 사랑에 불과한 네 애정을(그런 건 어미 호랑이들한테도 있잖니!) 더 나은 감정으로 변화시키려 하셨던 거지. 하나님이 알고 계시는 사랑으로 너도 마이클을 사랑하길 원하셨던 거야.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는 동료 피조물들을 사랑할 수 없단다.]

[“팸, 팸! 타고난 감정은 그 자체로서 고귀하거나 저급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거룩하거나 속되다고 말할 수도 없단다. 하나님이 고삐를 잡고 계실 때 모든 감정은 거룩하지. 그러나 감정에 고삐가 풀려서 그 자체가 우상이 되어 버리면 예외 없이 부패해 버린단다.”]
여기서 타고난 감정은 이 여자에겐 모성애를 뜻한다.
이미 이 대사에 진리가 있기 때문에 덧붙일 게 없다.
이 유령에 대한 부분은 전체를 읽어보면 더 이해가 잘된다.

주인공 유령은 루이스일 것이다. 그는 생전에 좋아했던 조지 맥노널드 영을 만나 초원을 돌고 유령과 영들의 대화를 들으며 스승과 제자처럼 질문하고 진리를 찾으려 한다.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에서 해리와 죽은 새하얀 덤불도어가 깨끗하고 환한 기차역에서 대화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루이스는 책 머리에 천국을 받아들이려면 지옥이 남긴 소중한 기념품까지 미련없이 내버려야 한다는 말을 했다.
‘지옥이 남긴 소중한 기념품‘이라니..이렇게 농축되어 있으면서도 잘 들어맞는 표현이 있을까?

초원의 유령들은 모두 이 소중한 기념품의 집착쟁이들이다. 지식의 집착, 음욕의 집착, 상대에게 품은 마음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집착등이 그것이다.
이들 중 구원을 얻은 자가 있다. 음욕의 집착쟁이인데 그의 어깨에는 귀에대고 늘 속삭이는 도마뱀(집착)이 있는 유령이었다.
크고 빛나는 영이 그에게 허락을 구한 후 그 도마뱀을 손으로 불태우자 그는 구원을 받는다.
그리고 집착을 버리지 못한 나머지는 끝내 이곳에 남기를 거부한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을 원하지만 결국 스스로 가지 않는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 부분이 슬펐다. 집착이라는걸 모르면서 때로는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소중한 기념품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구하기만 하면 얻을것이라는 진리도 알 수 있다.

또 하나. 나도 궁금했던 질문을 주인공이 대신 해주는데
밑줄긋기로 표시해야겠다.

내 생각과 달리 이 책은 판타지 소설이었다. 사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저자가 밝히듯이 모든것은 상상의 산물로써 사후에 일어날 실제의 상황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루이스의 책을 읽을 수록 그가 천재라는 생각과 함께
그의 모든 생각을 다 받아들이긴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로 인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는게 너무 좋다.

"아니, 비상구는 없다.

아무리 조금이라도 지옥과 공존하는 천국이란 없다.

우리의 가슴에든 주머니에든 악마의 것을 넣어 둘 생각을 해선 안 된다.

사탄은 털끝 하나까지 깨끗이 내몰아야 한다."

조지 맥도널드

나는 잘못된 길을 택했다고 해서 무조건 다 멸망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단지 잘못된 길을 택했을 때에는 올바른 길로 돌아와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인간들은 죄스러운 쾌락을 누릴 때 ‘이번만 즐기고 대가는 나중에 치르자’고 말하지만, 나중에 받은 저주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그 죄의 쾌락을 얼룩지게 만든다는 사실 또한 꿈에도 모른다네.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어. 하나님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는 인간들과, 하나님의 입에서 끝내 ‘그래, 네 뜻대로 되게 해 주마’라는 말을 듣고야 마는 인간들. 지옥에 있는 자들은 전부 자기가 선택해서 거기 있게 된 걸세.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게 없다면 지옥도 없을 게야. 진지하고도 끈질기게 기쁨을 갈망하는 영혼은 반드시 기쁨을 얻게 되어 있네.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9)"


9) 마태복음 7장 8절 참조.

지상의 사람들 중에는, 한 영혼이라도 멸망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구원받은 사람들이 온전히 기뻐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거든요."

"그렇지 않다는 걸 알 텐데."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그 말은 아주 자비롭게 들리네만, 그 배후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봐야 해."

"뭐가 도사리고 있지요?"

"사랑 없이 자아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요구, 자기네가 우주를 협박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는 요구, 자기네가 행복해지는 데(자기네가 제시하는 조건대로) 동의할 때까지는 세상 어느 누구도 기쁨을 맛보아서는 안 된다는 요구, 자기네가 최종권력을 휘둘러야 한다는 요구, 지옥이 천국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

"제가 뭘 바라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이보게, 둘 중 하나라네. 기쁨이 온 세상에 충만해져서 불행을 만드는 자들이 더 이상 기쁨을 더럽히지 못하는 날을 바라거나, 불행을 만드는 자들이 스스로 차낸 행복을 남들도 누릴 수 없도록 영원히 파괴하게 되기를 바라거나 둘 중 하나야. ‘한 피조물이라도 어두운 바깥에 버려진다면, 나는 차라리 구원받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는 말이 얼마나 거창하고 근사하게 들리는지 나도 아네. 하지만 그런 궤변을 조심하지 않으면, 못 먹는 밥에 재나 뿌리는 우주의 폭군을 만들어 내게 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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