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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자기 인생을 낭비하는 방법

이번주 '씨네21'을 아침에 사들었다. '필름2.0'을 사고서도 '씨네21'마저 집어든 것은 '설합본 특대호'였기 때문이다. 이런 거 일년에 두어 번밖에 안 나온다. 추석과 설 연휴가 낄 때 말이다. 게다가 '별책부록'이란 말에 혹해서 바로 가판대 아저씨에게 돈을 지불했는데, 달랑 잡지만 내준다. 잠시 머뭇거리다, '부록 없나요?' '없어요.' 이런 응답이 세번쯤 오고갔다. 그제서야 나는 이 '별책부록'이 '정기구독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는 걸 눈치챘다. 

인지상정으로 얼마간 낭패감이 들었는데, 그래도 제일 먼저 펼쳐 읽기 시작한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겨울영화 산책'이 그 낭패감을 100% 만회해주었다. 이 '아줌마'의 영화에 대한 수다는 갈수록 주체불능인 듯하다. 여하튼 재미있다. 나는 다 읽지 않고 좀 아껴두었는데, 다 읽고 나면 나중에 '정성일 아줌마와 자크 랑시에르'란 페이퍼를 쓸 예정이다.  

그럼 이건 뭐냐? 산책 혹은 수다의 말미에서 장이모의 <황후花>에 대한 소감을 적어놓다가 그가 내리는 결론: "항상하는 이야기. 자기 인생을 낭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허접한 영화들만 보러 다니면 된다. 여기에 이제 한마디 더 하고 싶다. 그런 영화들만 보러 다니면 점점 허접하게 영화를 보기 시작한다." 그걸 오늘의 경구로 새겨두도록 하겠다.

왜 영화뿐이겠는가? 널리고 널린 게 또한 허접한 책들이다. 문득 그런 책들만을 읽어제끼다 죽음을 맞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란 생각이 들었다. 낭패다. 한데, 문제는 그런 책들만 읽다 보면 또 그게 그다지 허접한 책으로 읽히지 않는다는 것. 이보다 더 큰 낭패가 있을까? 그런 낭비에서 벗어나는 길은 물론 경이로운 영화들을 보고 경이로운 책들을 읽는 것이다. 정말로 허접하지 않은. 그럼 세상이 좀 달라보인다. 좀 멋있어 보이고 좀 진지해보인다. 눈물난다. 삶은 길지 않다...

07. 02. 12-13.

P.S. 몇 줄 쓰는 동안에 날짜가 바뀌어 이틀걸이가 돼 버렸다. 시간은 화살과 같다. 인생도 삼세번이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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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역사 강의
백승욱 지음 / 그린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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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러스틴에 따르면, 세계체계분석은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분석'일 따름이며, 그 분석마저도 주류 학문에 포섭되어 버릴 '위험'에 처해 있을 만큼 불안정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세계체계분석은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재해석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배이며, 지금 바로 그 모험의 한 가운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모험들처럼 , 세계체계분석의 모험도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디로 나아갈지도 정해지지도 않았다. 

  [자본주의 역사강의]에서 저자는 세계체계분석이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는 브로델과 폴라니의 이론을 우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브로델과 세계체계분석의 관계에 대해서야 월러스틴의 개인적인 경력을 통해서라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지만(월러스틴은 자신이 브로델의 적통이라고 생각한단다.), 폴라니의 이론이 세계체계분석에서 (브로델의 그것보다 더)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처음 알게 되었다.  폴라니의 주저인 [대변혁]을 건성건성 읽어본 기억은 있는데, 그의 주요 개념인 '자기조정적 시장'과 '사회의 자기보호' 는 당시 나에겐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폴라니를 마르크스, 그리고 세계체계분석과 연관지어 이해하는 저자의 논지는 신선했다.(이전까지의 나의 독서방식도 한번 반성해 볼 계기이기도 했고;)  본격적인 세계체계분석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월러스틴과 아리기의 분석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두 이론가의 이론을 병렬적으로 서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둘 간의 쟁점 사항들을 보여줌으로써 세계체계분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결론부분에서는, (주로 아리기 이론을 바탕으로?)  금융세계화와 신자유주의, 현재 동아사아의 정세 등을 분석한다. 금융세계화나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윤소영 교수의 분석과 큰 차이가 없으나, (저자가 전공인 듯 보이는) 동아시아 관계에 대한 백승욱 교수의 서술은 읽어봄직하다. 

  이제 세계체계분석은 어디로 갈까? 새로운 헤게모니가 생겨나는 것으로 보이는 동아시아로? 아니면, (저자가 바라듯) 대안 세계화 운동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세계의 모색으로? 자본주의가 역사를 통해 보여준 경향성들을 분석한 세계체계분석이 미래에 대해 어떤 전망을 줄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하다.(가끔 월러스틴의 견해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지만) 

  리뷰를 쓸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여러 군데에서 보이는 오타는 안타깝다. 편집자들이 마지막 교열에서 한번 만 더 읽어보았으면 쉽게 발견될 수 있는 오타들이어서 더 그렇다.(단,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리고 새로운 판본이 나오면서 오타가 수정되었다고 하니, 다들 새 판본을 보시면 되겠음) 그래도 세계체계분석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려는 그린비 출판사의 노력은 개인적으로는 고맙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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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5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루 2007-02-15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셨군요. 오타때문에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은 전혀 없었는데, 교환까지 해주시고^^ 괜히 한마디 덧붙인 제가 죄송하네요. 리뷰를 살짝 고쳐놓도록 할께요-(아, 그리고 사실 책은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거든요^^;)

2007-02-15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성혈과 성배
마이클 베이전트 외 지음, 정미나 외 옮김 / 자음과모음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단기간에 주르륵 읽어 내려갈 수도 있는 책이기도 하고, 관심이 있다면 꼼꼼하게 읽어 볼 수 도 있는 책이다. 사실, 다빈치코드를 읽고 나서 그 여흥을 즐기기 위해서 읽는 것이라면 약간은 지루한 책 읽기가 될 것 같다.  "스릴러의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와 맞지 않게, 유럽 왕가(王家)에 대한 해설이나 다양한 자료의 출처를 밝히는 부분들은 (저자의 논지에 본질적인 부분임에는 틀림없지만) 흥미진진한 책 읽기에는 걸림돌이다. 그래도 꿋꿋하게 읽어나가다보면, 비로소 뒷 부분에서 예수의 생애와 그 후손에 대한 설명들을 만나게 되니깐 초반부터 너무 꼼꼼하게 읽으려 고생하지 않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요령이 아닐까 싶다.(누가 무슨 무슨 가문이네, 여기서 누구랑 결혼하고 저쩌고 하는 건 정서에도 잘 맞지 않거니와;)

  나로서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  기독교 및 종교에 대한 저자들의 일반적인 통찰을 접하게 된 것이 예상치 못한 수확이었다. 사실 이전에도 예수가 본질적으로는(!) 인간이었다는 점,  그를 혁명가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종교(와 그들의 교리)가 하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 등에 대해서야 대략 생각을 가지고 있기는 했고, 그래서 종교나 초월적인 것에 대한 강조를 일면 무시하는 경향도 분명 있었다. 그런데 저자들은 종교를 비롯한 초월적인 것에 대한 의식들이 현대인의 삶에서 채워져야할 부분이 아닌가하는 정당한 문제를 제기하고(저자들은 "성혈과 성배"가 종교 자체, 또는 기독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기독교 신자인 것도 아니다.)  결론에서 그 답변을 내놓는다.  현대인이 필요로 하는 예수의 가르침, 그의 신성에 대한 믿음을 위해서는 예수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역설적'인 주장이 그것이다. (이는 오늘날 종교가 '양보'해야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15장에 인용된 융의 인용문은 그런 의미에서 설득력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혈과 성배"를 메로빙거 왕조와 예수의 연관성을 다루는 스릴러(사실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재미가 약간 없다;)로 축소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번역본에서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연도와 이름에서 오식이나 번역상의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첫 장부터 시작되는 연도 상의 잘못된 표기는(P.9의 7번째 줄의 1980은 1880으로 고쳐져야 한다) 여러 군데에서 보여지고 있다. 그리고 인명이나 지명은 일관된 번역이 되지 않아서, 같은 이름을 다른 한글 표기로 쓰고 있는 경우도 꽤 있다.(처음에는 공동번역때문인 줄 알았는데, 같은 페이지에도 이런 실수들이 나오는 걸 보았다.)  번역의 노고와 세세한 역주를 보면서 느꼈던 역자들에 대한 나의 고마움을 이런 실수들이 조금 더 없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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