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용철 변호사의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영화 <의형제>의 강동원이 생각났다.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이 두 사람이 죽어가면서 던진 단말마는 우연하게, 또 정확하게 동일했다. 강동원이 생물학적으로 죽어가면서, 김용철이 사회학적으로 죽어가면서 던진 말. "나는 누구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특히나 김용철 변호사는 책의 전반부를 '배신'이라는 규정에 대한 자신의 해명으로 채워나가고 있을 정도다.)

우선, <의형제>의 강동원 경우 : 그는 북한에서 파견된 특수공작원으로서 자신을 가르치고 키워준 당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다. 그것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죽이는 것이든, 자신에게 인간적인 면모로 다가와 주었던 사람을 죽이는 것이든 상관없다. 당의 명령과 조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하며, 괜한 낭만에 도취되어 당을 위한 충성을 잊어버리는 것은 곧 '배신'이다. 그렇지만 강동원은 그 '배신'을 택한다. 자신의 부모가 죽어가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해 아이를 감쌌다. 당을 배신한 친구의 삶에 대한 몸부림 앞에서, 그 몸부림에 공감했다. 북한에서 남겨진 가족을 만나기 위해 남한의 '반동분자'나 '예수쟁이'와 손을 잡고 가족의 탈출을 기획한다. 자신과 어느새 의형제가 되버린 사람을 위해 살인 명령에 대해 주저하고 거부한다. 그의 행동은 영화 내내 휴머니즘적이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선택으로 그려지며, 수 백만명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남긴다. 강동원의 행동은 '배신'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그의 행동에 배신이라는 딱지를 남기고자 하지 않는다. 또는 배신이라는 말로 강동원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는다. 물론 그는 이전에 사람을 죽이고, 북한을 위해 간첩활동을 수행한 잘못이 있다. 그렇지만 그의 과거는 그의 휴머니즘적 선택에 의해 모두 사면되었으며, 강동원이 퍼스트 클래스로 대변되는 주류 사회에 편입되기에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다음, <삼성을 생각한다>의 김용철의 경우 : 그는 삼성의 구조조정본부 팀장으로서 삼성 그룹 전체의 유지와 이건희 일가의 경영권 방어에 전념해야 했다. 그것이 법조계 인사들에게 뇌물을 건네는 일이건, 언론사에 압력을 행사하는 일이건 상관없다.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이어지는 경영권 승계를 위해 노력해야 하며, 괜한 정의감에 도취되어 그룹 총수에 대한 충성을 잊어버리는 것은 곧 ‘배신’이다. 그렇지만 김용철은 그 ‘배신’을 택한다. 그는 삼성을 그만두고, 변호사를 전전하던 중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해 삼성 비자금과 불법 경영권 승계, 그리고 법조계와 언론계에 대한 삼성의 뇌물 공여 사실을 폭로했다. 자신도 검찰의 수사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언론을 통해 삼성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부패시켰는가에 대해 알리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배신과 매국적 선택으로 그려졌으며, 주류 언론과 사법부, 검찰에 의해 먹칠되었다. 김용철의 행동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은 계속해서 배신이라는 딱지가 붙여졌다. 그리고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한 내부고발자로서의 그의 역할은 긍정되지도 못했다. 물론 그는 과거에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핵심인사로서 법조계와 언론계에 뇌물을 제공한 잘못이 있다. 그런데 그의 과거는 양심선언 과정에서 사면되기는커녕, 사건 흐름의 전면에 부각되었으며, 그의 고발 내용을 주류 언론이 왜곡하기 위해 사용한 주된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대중들이 그의 선택을 냉담하게 받아들이는 이유이기도 했다.

강동원과 김용철의 경우 : 이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생각하는 더 숭고하고 의미 있는 가치를 선택하기 위해 자신이 소속되어 있었던 조직을 배신했다. 그런데 우리는 강동원의 배신에 대해서는 감동하고 심리적으로 지지한 반면, 김용철의 배신에 대해서는 냉담했고 감정적인 비난을 쏟아내었다. 검찰은 법과 정의를 짓밟은 기업을 고발한 사람을 배은망덕하고 믿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언론은 ‘삼성공화국’의 권력을 비판한 사람을 양보와 인내를 모르는 ‘한국판 탈레반’으로 규정했다. 전라도 사람 중 일부는 그의 선택 때문에 더 이상 삼성이 전라도 사람을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일부 시민단체의 지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김용철 양심선언은, 국가기관과 언론, 대중들의 비난과 무심함 속에서 잊혀져 버렸다.

우리는 여기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강동원의 배신에 대해서는 감동받는 바로 그 사람들이, 김용철의 배신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냉담하고 백안시하는지를. 조직의 이익과 휴머니즘 또는 사회정의 사이의 선택에서, 강동원의 선택은 지지를 받고, 김용철의 선택은 비난 받아야 하는 것인지를. 대체 이 두 사람의 선택 간에는 어떤 차이가 근본적으로 존재하는지, 또는 이 두 사람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대중의 의식구조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한 가지 설명 : 삼성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주류 언론과 국가기관이 내세운 이유는 “삼성의 이익=대한민국의 이익”이라는 등식이다. 불법이건 합법이건 삼성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대한민국 전체의 사람들에게 이익이라는 인식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따라서 김용철의 양심선언을 하는 순간 대중은 순식간에 스스로를 삼성과 자신을 동일시하였으며, 따라서 삼성의 비리를 폭로한 그의 행위는 대중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졌다.(또는 주류 언론에 의해 그렇게 간주되었다.) 삼성의 부정부패에 대한 그의 고발은, 삼성을 배신하고 한국 사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삼성과 동시에 한국 사회를 배반한 것으로 간주된 것이다. 김용철은 우리를 배신한 것이며, 그렇기에 강동원이 그들(북한)을 배신하고, 우리(휴머니즘적인 남한?)에게 돌아온 것과는 명백히 다른 행위로 인식되는 것이다. 또한 강동원의 배신은 그들집단에 대한 우리집단의 우위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는 반면, 김용철의 배신은 우리집단이 가지고 있는 취약함과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의 부패함, 그로부터 이익을 얻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도 동일한 구조를 가진 두 가지 배신을 대중이 다르게 인식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이 제기하는 다양한 물음 자체를 이해하고, 또 이에 대해 답하기 위해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어야 한다. 법조계나 기업이나 정치권이나 모두 썩었다는 단순한 인식에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입히기 위해서도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어야 한다. 앞으로 나올 제 2, 3의 김용철이 더 이상 냉담함과 비난 속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삼성이 중앙일간지에 광고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 이산의 책 42
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허호 옮김 / 이산 / 200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탈아론'과 '10,000엔'으로 알려져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 새해 들어 읽은 두 권은 모두 그에 관한 것이다. 사실, 마루야마 마사오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를 먼저 접했고, 이를 통해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과 문체에 적지 않은 흥미가 생겨 그의 자서전을 챙겨보았다. 

  가난한 하급무사의 집안에서 태어나, 게이오대학의 창립자로, 그리고 일본 학사원의 초대 의장이 된 후쿠자와 유키치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삶을 담박하면서도 리듬감 있는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그는 "일신의 독립정신"을 삶의 신조로 삼아 자신이 행했던 선택과 결정의 배경을 보여준다. 그가 불효자라는 오명을 무릎쓰고 홀로남은 노모를 떠나 오사카로 유학을 간 일, 당대 최고의 서양학자임에도 정계에 진출하는 일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일, 메이지 유신 당시 도쿠가와 막부와 천황세력 누구에게도 가담하지 않은 일 등이 그것이다.  

  후쿠자와는 <문명론의 개략>에서 서양 문명의 본지(本志)는 철도나 대포와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남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독립정신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삶에서 일신의 독립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려한 후쿠자와의 태도는, 일본에 서양문명으로 소개하여 일본을 문명화하겠다는 그의 학문상 신조와 공명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자서전을 통해 흔들림없이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간 한 지식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자서전은 메이지 시대의 일상사는 물론 문명교류과정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 후쿠자와는 도쿠가와 막부의 외교 문서를 번역하는 일을 맡고 있었으며, 정부 사절단을 따라 구미지역에 3차례 시찰을 다녀왔고, 당시 일본에서도 가장 빠르게 영미식 학문을 받아들인 인물이다. 즉, 메이지유신 전후에 일본이 서양문명과 교류하는 최일선에 위치하고 있었던 만큼, 그는 두 문명 간 교류 과정에서 발생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상당 부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후쿠자와는 이 자서전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에피소드(최초로 서양학문을 공부하던 사람들은 택한 학습법, 일본을 방문한 영국 왕자가 일본 황국에 들어가기 위해 정화의식을 치렀던 일, 미국에 도착한 최초의 일본 사절단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 등)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 당시 자신의 생각은 물론 당대 사람들의 인식을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일본인이 서양문명과 접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다양한 사건들과 일본인의 반응 등을 "인류학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을 살펴보려면 <문명론의 개략>이나 <학문의 권유>를 독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테지만, 자신의 삶을 담박하게 써 내려간 이 책도 후쿠자와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후쿠자와의 문체가 리드미컬하다는 점에 그렇겠지만, 그의 자서전을 매끄러운 문장으로 번역한 역자의 노고도 이 자서전을 좋은 자료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국지 강의 - 역사와 문학을 넘나들며 삼국지의 진실을 만난다!
이중텐 지음, 양휘웅 외 옮김 / 김영사 / 200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9년 연말을 마무리 하면서 만난 "삼국지 강의"는, 이중텐이라는 걸출한 학자를 소개해준 좋은 기회였다.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삼국지연의"가 담고 있는 각종 소설적 허구의 이면을 살펴볼 생각으로 서가에서 책을 꺼내기는  했다. 분량은 많은 편이나 강의 형식이라서 생각 만큼 시간도 걸리지 않고, 이미 여기저기에서 관련 내용을 상당히 많이 들은터라('계륵'의 에피소드를 누가 모르겠는가) 무난하게 읽히는 글이었다.   

  이중텐은 강의에서 수 많은 삼국지의 에피소드와 인물 중 몇 가지를 선택하여 다루고 있다. 그런데  삼국지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적벽대전에 대해서는 생각만큼 많은 분량이 주어지지 않고 있으며, 감동의 '장판파 아두 구출'장면도 전혀 다루기 않는다. 반면, 조조가 왜 공융이나 순욱, 예형을 죽이거나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손권은 왜 여몽과 육손을 각각 등용하고 또 내쳤는가, 유비는 제갈량과 동시에 왜 이엄을 백제성으로 불렀는가 등에 대해서는 여러 장을 통해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즉,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삼국지 연의에서 부각되는 장면이나 인물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고(장비에 대해서는 거의 별다른 언급이 없다. 여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 동안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인물이나 에피소드는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조조에게 죽음을 당했다던 예형은 대체 누구였는가. 게다가 삼국지 게임에서 그저 그런 장수였던 이엄이 제갈량의 라이벌이라니..) 이러한 서술상 불균형의 원인은 무엇인가?

 결론 부분에 오면 비로소 이중텐의 의도와 학자로서의 힘이 명확해진다. 그는 삼국시대 의 인물과 사건에 대한 논쟁을 정리하는데 만족하지 않는다. 그의 주된 의도는(물론 내가 보기에) 유비, 조조, 손권의 삼국시대가 중국 전체의 역사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즉, 귀족(세습적인 신분상 특권을 권력의 원천으로 하는)-봉건제 국가에서 사족(중앙관리에 여러세대가 임용됨으로서 형성된 '명문가')-군현제 국가로, 또 서족(시험을 통해 임용된 관리)-군현제 국가로 중국의 지배구조가 변화하는 과정(이것이 이중텐이 보는 주(周)에서 당(唐)까지의 역사다)에서 위촉오의 등장은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삼국시대를 중국 고대 국가의 지배구조 변화라는 관점에서 보아야만 각종 인물들의 행위와 그들이 만들어 낸 에피소드, 그리고 위촉오 삼국의 발전과 소멸과정(결국 삼국은 당시 사족을 대변하는 '사마'가문에 의해 통일된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이는 삼국지를 단순히 영웅들의 활약으로 축소시키는 삼국지 연의와 달리, 이 시대를 더 넓은 틀 내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위촉오 삼국의 지배블럭 간 관계(유비의 촉은 세 지배블럭이 공존하고 있었는데 이는 제갈량이 마속의 목을 벨 수 밖에 없던 이유와 깊은 관련이 있다.)를 바탕으로 조조, 유비/제갈량, 손권을 바라볼 경우, 이들은 단순히 소설과 게임의 영웅이 아니라 역사 속의 행위자로서 그려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삼국시대의 인물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가능해지는 것이다.(국가의 위상과 기존 지배블럭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조조를 계승한 것은 조비가 아닌 제갈량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삼국지 연의"의 논쟁에 대한 또 다른 의견 제시라기 보다는, 삼국시대 자체를 바라보는 방식과 역사 자체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의견 제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출판사의 책 소개는 불성실하다고 생각된다.이중텐이라는 저자는 전문적인 역사가라기보다는 '르네상스 지식인'과 비슷하다고 생각되는데, 그의 이러한 특징이 삼국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제시할 수 있는 바탕이 아닐까 싶다.)   

   1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이라 조금 지루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삼국지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와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들을 곱씹어 보기 위해서는 일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삼국지에 익숙하다면 결론부터 읽어나가도 좋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Ritournelle > * 슈트어트 휴즈의 서구 지성사

 

* 경향신문(2007. 6. 8)  / [책과 삶]   20C 들추면 ‘지식인의 위기’ 답이 있다
입력: 2007년 06월 08일 16:06:25
▲서구 지성사 3부작…H 스튜어트 휴즈|개마고원

사법시험이나 행정고등고시 등에서 특정 기수에 인재가 몰리는 현상은 심심찮게 발견된다. 이런 현상은 어떤 조직에서나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이 회사든 학교든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봐도 그런 경우가 흔하다. 대표적으로 공자, 노자, 석가, 소크라테스 같은 성인이나 위대한 사상가들이 한결같이 기원전 500년 전후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활약했던 사례를 들 수 있다.

서유럽에서 1890년대 이후 40여년간은 20세기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상가와 지성인들의 역할이 두드러진 시기로 꼽힌다. 흔히 좁은 의미의 ‘세기말’로 통칭되는 19세기 말과 1차 세계대전을 거친 20세기 초를 관통하는 때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막스 베버, 베네데토 크로체, 에밀 뒤르켐, 앙리 베르그송, 카를 융, 오스왈트 슈펭글러 등 독보적인 이론을 세운 지식인들이 출현한 그 시기다. 유럽 지성사 연구의 권위자 스튜어트 휴즈가 이 시대를 각별하게 주목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저자는 전후 유럽사 분야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을 낳은 연구자로 평가된다. 스스로 국적은 미국인이지만 지적 교양은 주로 유럽적이라고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그의 역저 ‘서구 지성사’ 3부작은 이 대변혁기와 2차 세계대전을 거친 또다른 격동기의 서유럽 사상사를 인물과 형성과정 중심으로 접근한 현대 고전이다. 이런 점이 통상적인 사상사와 차별화된다. 이미 40여년전에 첫 출간되기 시작했던 이 책들은 오늘날까지 이를 능가하는 저술이 없을 정도라는 호평을 받는다.

이처럼 오래 전에 첫 선을 보였던 책의 번역본 ‘서구지성사’ 읽기가 이 시대에 요긴한 이유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의 위기’가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운위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87년 6·10항쟁 이후 지금처럼 ‘지식인의 몰락’이라고까지 표현될 만큼 지식인 담론이 우울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 3부작은 전체적으로 중요한 시기의 지성상을 통해 그 시대상을 정립하려는 목표를 설정했다. 개개인의 전기적(傳記的) 요소를 중시하는 한편 그 시대 지성인들의 동선(動線)에 역점을 두고 재구성한 점이 특기할 만하지만, 그렇다고 일련의 지적 전기는 결코 아니다. 그런 점에선 단순한 사상사가 아니라 ‘개념화된 사회사’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통상적인 사상사가 다 익어서 수확한 과일을 분류하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이 책들은 과일나무에 과일 하나하나가 열리는 과정을 자세히 소묘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개별 인물에 대한 평가는 매우 엄정한 잣대를 들이댄다. 이를테면 지적 거장들 가운데 프랑크푸르트 학파 이론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어떤 모습으로 계승되고 있는지 공정하게 기술하고 있다.

문장은 시종 품격이 있으면서도 글맛이 느껴진다. 짧은 예를 하나 들면 이렇다. “모든 종합자들 중에서 아도르노는 가장 눈부신 성과를 올렸지만, 그는 그런 멋진 고공비행을 하면서도 헤겔주의라는 귀찮은 모래주머니를 영원히 끌고 다녔다.”

1권 ‘의식과 사회’(황문수 옮김·2만5000원)는 3부작의 중심축을 이룬다. 휴즈는 1890~1930년까지 40년간의 지성적 상황을 실증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대결 구도로 삼는다. 여기에다 무의식의 등장과 주관주의에 비중을 두고 시대를 정리한다.

이에 따라 중심 인물로 프로이트, 베버, 크로체를 세우고 있다. 그 주변에 뒤르켐, 베르그송, 융, 슈펭글러, 안토니오 그람시, 앙드레 지드, 토머스 만, 마르셀 프루스트, 헤르만 헤세 등 수많은 지성들을 배치한다. 무엇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소문난 프로이트의 지적 세계를 이 책만큼 명쾌하게 해부한 것은 찾기 힘들다는 평판을 얻을 만큼 권위를 인정받는다.

저자는 1930~60년의 지적 세대를 두 개의 집단으로 나눈다. 첫번째는 프랑스 사람으로 한정했다. 두번째는 유럽과 이탈리아를 떠나 미국이나 영국에 정착한 반(反)파시스트 망명자들로 구성됐다.

2권 ‘막다른 길’(김병익 옮김·2만원)은 앞의 프랑스 지성인들을 다뤘고, 3권 ‘지식인들의 망명’(김창희 옮김·2만원)은 두번째로 분류되는 인물들을 엮은 것이다. 휴즈는 프랑스 사상사에서 1930~60년대의 한 세대를 ‘절망의 시대’로 상정한다. 그렇지만 ‘막다른 상황’을 타개하는 마지막 희망을 알베르 카뮈, 테야르 드 샤르댕,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에서 찾아낸다. 3권에서는 히틀러의 나치 정권과 무솔리니의 파시즘이라는 시련에 직면한 지식인들의 고뇌를 현실감 있게 엮어냈다.

3부작을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을 것같다. 각기 독립된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심층적인 지성사를 공부하고 싶은 독자들은 이 시대의 일반적인 사상사를 곁들여 읽으면 한층 정교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에 함께 나온 니콜 라피에르의 ‘다른 곳을 사유하자’(이세진 옮김·1만4000원·푸른숲)도 더불어 읽을 만하다. 이 책은 ‘서구 지성사’ 시리즈 3권 ‘지식인들의 망명’과 비교된다. 20세기 초 망명한 지식인들로부터 학제간 연구에 열중하고 있는 지금의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비판적 지식인들의 삶과 사유를 다루었다는 점이 흡사하다. 이 책은 통행, 이주, 이동, 이산, 혼합, 전환, 소통을 이야기한다. 들머리에 인용한 “세계가 그토록 광대한 것은 우리 모두가 그 안에서 흩어지기 위함이니”라는 괴테의 말이 이 책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상징하는 듯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로쟈 > 한국전 망탈리테

학술저널 담비에서 고대 대학원신문에 게재된 기사 하나는 옮겨온다. 어제가 현충일이었지만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57년전 발발한 한국전쟁의 의미를 한번쯤 되새겨보게 하는 기사이다. '전쟁과 함께 만들어진 '한국인이 사는 법''이란 기획기사의 한 꼭지인 듯하다. 실상 여전히 '분단체제'하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한국전은 57년째 계속되고 있다'란 문제의식 자체가 파격적이거나 새로운 건 아니다. 다만 '한국전 망탈리테'에서 한국인 코드라 할 '사바사바'의 기원을 찾고 있다는 점이 흥미를 끈다(기사는 '가설' 수준에서 머문 듯한 감이 있지만).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한 가지 방향을 제시하는 듯해서 스크랩해놓는다.

▲ 부산 인근에서 벌거벗은 채 줄맞춰 이동 중인 인민군 포로들의 모습

고대 대학원신문 6월호(07. 06. 06) 한국전은 57년째 계속되고 있다

“한국전은 계속되고 있다.” 예비군 훈련 정신교육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다. 그렇다. 한국전은 분명 57년째 계속되고 있다. 한국전이 종전으로 매듭 지워지지 못하고 휴전이라는 상태로 진행되어 오지 않았던가. 본 기자가 예비군 훈련장이 아닌 이곳에서 귀중한 지면을 빌려 ‘한국전은 계속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안보 장사’를 하는 이들처럼 휴전상태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안보의식을 고취하자’는 따위의 이야기를 섣불리 하고자 함은 아니다. 한국전이 만들어낸 우리의 망탈리테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많은 이들이 IMF 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변동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만들어 놓은 이른바 ‘한국전 망탈리테’는 여전히 한국사회에 온존하고 있다. 단기간에 극심한 경제, 사회적 공황을 불러일으킨 IMF위기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특정 정책이나 제도는 내, 외부의 변화압력에, 시간차를 가질지언정 비교적 쉽게 변하기 마련인 반면, 우리의 일상생활을 주조하는 망탈리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학살에 학살을 거듭한 인류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의 참혹한 전쟁인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일반인들의 삶에 완전히 체화된 ‘한국전 망탈리테’는 여전히 우리에게 삶의 방식내지 지혜로 뿌리깊이 체화되어 있다.      

비록, 국가의 자율성은 크지만 능력은 미약한 ‘약탈국가’였을 망정, 한국의 국가는 한국전을 거치면서 만들어졌다. ‘국가는 전쟁을 만들고, 전쟁은 국가를 만든다’는 찰스 틸리의 주장은 한국의 ‘국가 만들기’에 잘 부합된다. 또한 전상인 교수의 지적처럼 한국전은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권력의 절대적 우위문화, 달리 말해, ‘국민의 국가’가 아니라 ‘국가의 국민’을 만들어 냈다. 한국전쟁 과정에서 나타난 폭압적이고 무책임한 국가권력은 전쟁이 휴전된 이후 사라지지 않고 다소 부드러운, 완화된 형태로 계속해서 우리의 삶에 구조화된 형태로 온존하고 있는 것이다.

휴전 이후 계속해서 권위주의 정권들을 거치면서 전쟁의 방식과 논리, 더 나아가 군사주의는 한국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군대를 다녀와 봐야 사람된다’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타당한 말이다. 사회가 군대논리로 돌아가니, 싫던 좋은 이런 논리가 몸에 완전히 체화된 사람들이 약육강식 세계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산발적으로 진행되어 오던 국지전이, 북한의 남침으로 본격적인 전면전으로 커지자 이승만 정권은 국민을 속이고 도망쳤다. 그뿐 아니라 9·28수복 이후에는 남쪽으로 미처 피난가지 못한 이들의 상당수를 ‘부역자’라 명명한 후 무차별적으로 처벌했다. 전쟁을 겪으며 좌익이 뭔지, 우익이 뭔지도 모르던 숱한 양민들은 전선의 이동에 따라서 남, 북, 미군에 의해 무차별적 학살을 당했다. 또한 엄청난 수의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이 어이없이 목숨을 잃었던 국민방위군 사건이 말해주는 바는 자명했다.



사람들은 전쟁을 거치면서 국가나 제도에 관한 강한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고 도망치며 다리를 끊어버린 정부,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을 징집해가서 굶어죽이는 정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죽이는 정부나 제도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전쟁 통에 당장 나를 살려주고 먹여주는 것은 공적기구나 제도나 아니라 바로 나의 가족들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는 지배계급과 줄을 만들어 놓은 사람들만이 출세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이른바 ‘사바사바’의 위력을 모두가 실감하게 되었다.

한국전쟁은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공적 영역에 대한 만성적인 저신뢰를 낳았으며, 공적 영역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참여 내지 비판을 금기시하게 했다. 그러나 물론 공적 영역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가 삶 자체에 대한 소극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다. 강준만 교수의 주장처럼 한맺힌 세월에 대한 강한 보상심리의 작용으로 ‘공적 소극성, 사적 적극성’현상이 나타났으며, 사적 적극성은 중앙과 정상을 향한 맹렬한 돌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일 수밖에 없었던 한국전쟁 당시의 삶의 전략은 이른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를 낳으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국가의 공적인 체제나 제도를 믿으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삶의 지혜’를 한국전을 거치면서,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우리 모두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적인 연줄망이나 빽에 의존하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남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고 만성적 피로 속에서 산다. 줄을 만들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적재적소에 아첨 및 ‘사바사바’를 해야 한다. 그리고 시원하게 술도 마셔줘야 하고 남들의 경조사도 깔끔하게 챙겨줘야 한다. 한국인들 상당수가 취미하나 없고, 놀 줄도 모르고 가정에 와서는 잠과 휴식만을 갈구한다는 것은 공적신뢰가 전무한 ‘약육강식 사회’가 보여주는 하나의 자화상이다.

물론 한국전이 이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류사에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한 전쟁은 분명 우리 한국인들이 이른바 ‘삶의 양식’내지는 ‘망탈리테’라고 할 만한 것들의 상당부분 기초를 제공했다. 이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전체 인구의 상당비율을 차지하는 요즘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이른바 ‘한국전 망탈리테’는 우리가 ‘개발국가’하에서 전래 없는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게 만든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저신뢰사회와 극단적인 쏠림현상을 낳아서 우리의 삶을 극도로 피곤하게 항상 긴장하게 만들었다.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듯, 한국전 망탈리테는 우리에게 희열과 아픔을 동시에 가져다 준 것이다.(김경필 기자)

07. 06. 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