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 이산의 책 42
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허호 옮김 / 이산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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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아론'과 '10,000엔'으로 알려져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 새해 들어 읽은 두 권은 모두 그에 관한 것이다. 사실, 마루야마 마사오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를 먼저 접했고, 이를 통해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과 문체에 적지 않은 흥미가 생겨 그의 자서전을 챙겨보았다. 

  가난한 하급무사의 집안에서 태어나, 게이오대학의 창립자로, 그리고 일본 학사원의 초대 의장이 된 후쿠자와 유키치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삶을 담박하면서도 리듬감 있는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그는 "일신의 독립정신"을 삶의 신조로 삼아 자신이 행했던 선택과 결정의 배경을 보여준다. 그가 불효자라는 오명을 무릎쓰고 홀로남은 노모를 떠나 오사카로 유학을 간 일, 당대 최고의 서양학자임에도 정계에 진출하는 일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일, 메이지 유신 당시 도쿠가와 막부와 천황세력 누구에게도 가담하지 않은 일 등이 그것이다.  

  후쿠자와는 <문명론의 개략>에서 서양 문명의 본지(本志)는 철도나 대포와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남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독립정신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삶에서 일신의 독립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려한 후쿠자와의 태도는, 일본에 서양문명으로 소개하여 일본을 문명화하겠다는 그의 학문상 신조와 공명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자서전을 통해 흔들림없이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간 한 지식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자서전은 메이지 시대의 일상사는 물론 문명교류과정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 후쿠자와는 도쿠가와 막부의 외교 문서를 번역하는 일을 맡고 있었으며, 정부 사절단을 따라 구미지역에 3차례 시찰을 다녀왔고, 당시 일본에서도 가장 빠르게 영미식 학문을 받아들인 인물이다. 즉, 메이지유신 전후에 일본이 서양문명과 교류하는 최일선에 위치하고 있었던 만큼, 그는 두 문명 간 교류 과정에서 발생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상당 부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후쿠자와는 이 자서전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에피소드(최초로 서양학문을 공부하던 사람들은 택한 학습법, 일본을 방문한 영국 왕자가 일본 황국에 들어가기 위해 정화의식을 치렀던 일, 미국에 도착한 최초의 일본 사절단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 등)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 당시 자신의 생각은 물론 당대 사람들의 인식을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일본인이 서양문명과 접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다양한 사건들과 일본인의 반응 등을 "인류학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을 살펴보려면 <문명론의 개략>이나 <학문의 권유>를 독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테지만, 자신의 삶을 담박하게 써 내려간 이 책도 후쿠자와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후쿠자와의 문체가 리드미컬하다는 점에 그렇겠지만, 그의 자서전을 매끄러운 문장으로 번역한 역자의 노고도 이 자서전을 좋은 자료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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