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강의 - 역사와 문학을 넘나들며 삼국지의 진실을 만난다!
이중텐 지음, 양휘웅 외 옮김 / 김영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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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연말을 마무리 하면서 만난 "삼국지 강의"는, 이중텐이라는 걸출한 학자를 소개해준 좋은 기회였다.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삼국지연의"가 담고 있는 각종 소설적 허구의 이면을 살펴볼 생각으로 서가에서 책을 꺼내기는  했다. 분량은 많은 편이나 강의 형식이라서 생각 만큼 시간도 걸리지 않고, 이미 여기저기에서 관련 내용을 상당히 많이 들은터라('계륵'의 에피소드를 누가 모르겠는가) 무난하게 읽히는 글이었다.   

  이중텐은 강의에서 수 많은 삼국지의 에피소드와 인물 중 몇 가지를 선택하여 다루고 있다. 그런데  삼국지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적벽대전에 대해서는 생각만큼 많은 분량이 주어지지 않고 있으며, 감동의 '장판파 아두 구출'장면도 전혀 다루기 않는다. 반면, 조조가 왜 공융이나 순욱, 예형을 죽이거나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손권은 왜 여몽과 육손을 각각 등용하고 또 내쳤는가, 유비는 제갈량과 동시에 왜 이엄을 백제성으로 불렀는가 등에 대해서는 여러 장을 통해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즉,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삼국지 연의에서 부각되는 장면이나 인물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고(장비에 대해서는 거의 별다른 언급이 없다. 여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 동안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인물이나 에피소드는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조조에게 죽음을 당했다던 예형은 대체 누구였는가. 게다가 삼국지 게임에서 그저 그런 장수였던 이엄이 제갈량의 라이벌이라니..) 이러한 서술상 불균형의 원인은 무엇인가?

 결론 부분에 오면 비로소 이중텐의 의도와 학자로서의 힘이 명확해진다. 그는 삼국시대 의 인물과 사건에 대한 논쟁을 정리하는데 만족하지 않는다. 그의 주된 의도는(물론 내가 보기에) 유비, 조조, 손권의 삼국시대가 중국 전체의 역사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즉, 귀족(세습적인 신분상 특권을 권력의 원천으로 하는)-봉건제 국가에서 사족(중앙관리에 여러세대가 임용됨으로서 형성된 '명문가')-군현제 국가로, 또 서족(시험을 통해 임용된 관리)-군현제 국가로 중국의 지배구조가 변화하는 과정(이것이 이중텐이 보는 주(周)에서 당(唐)까지의 역사다)에서 위촉오의 등장은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삼국시대를 중국 고대 국가의 지배구조 변화라는 관점에서 보아야만 각종 인물들의 행위와 그들이 만들어 낸 에피소드, 그리고 위촉오 삼국의 발전과 소멸과정(결국 삼국은 당시 사족을 대변하는 '사마'가문에 의해 통일된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이는 삼국지를 단순히 영웅들의 활약으로 축소시키는 삼국지 연의와 달리, 이 시대를 더 넓은 틀 내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위촉오 삼국의 지배블럭 간 관계(유비의 촉은 세 지배블럭이 공존하고 있었는데 이는 제갈량이 마속의 목을 벨 수 밖에 없던 이유와 깊은 관련이 있다.)를 바탕으로 조조, 유비/제갈량, 손권을 바라볼 경우, 이들은 단순히 소설과 게임의 영웅이 아니라 역사 속의 행위자로서 그려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삼국시대의 인물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가능해지는 것이다.(국가의 위상과 기존 지배블럭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조조를 계승한 것은 조비가 아닌 제갈량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삼국지 연의"의 논쟁에 대한 또 다른 의견 제시라기 보다는, 삼국시대 자체를 바라보는 방식과 역사 자체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의견 제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출판사의 책 소개는 불성실하다고 생각된다.이중텐이라는 저자는 전문적인 역사가라기보다는 '르네상스 지식인'과 비슷하다고 생각되는데, 그의 이러한 특징이 삼국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제시할 수 있는 바탕이 아닐까 싶다.)   

   1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이라 조금 지루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삼국지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와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들을 곱씹어 보기 위해서는 일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삼국지에 익숙하다면 결론부터 읽어나가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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