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거울 - 파국의 14세기, 흑사병, 백년전쟁, 그리고 움트는 혁명
바바라 터크먼 지음, 박중서 옮김 / 원더박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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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14세기 유럽은 단순한 과거가 아닌 현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방대한 14세기 중세 유럽은 앙게랑 드 쿠시 7세라는 프랑스 귀족을 통해 보여준다. 터크먼은 기사도,궁정 의식,귀족의 문화와 같은 화려한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 뒤에는 기근과 흑사병, 지배층의 약탈과 농민의 반란 그리고 중세의 핵심인 교회의 부패가 있었다.


 쿠시의 가문과 성은 압도적 존재감을 뽐내는 귀족 권력의 상징이다. 그러나 귀족의 강한 힘과 자부심은 귀족-교회-왕 사이의 충돌을 야기한다. ‘명예’라는 이념으로 뭉쳐진 기사도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명예로운 행위인 전쟁은 약탈과 세금징수, 죽음 바탕으로 한다.


 중세의 기반인 교회 역시 내부는 전부 부패했다. 14세기를 뒤흔든 흑사병은 이미 취약하고 분열된 사회를 더욱 크게 흔드는 계기가 되었다. 터크먼은 쿠시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주는 귀족 외에 왕과 성직자, 부르주아, 농민까지 다양하게 비춘다.


1부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히 중세사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흑사병과 전쟁,기근의 재난에서 기존 질서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보여준다. 왕은 무능하거나 타국의 포로가 되고, 귀족은 약탈을 일삼는다.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할 교회는 돈과 권력에 집착한다. 용병들의 폭력은 습관이 되어 여전히 사회에 남아있다.


 그렇지만 지배층의 무능함에 반란을 일으키는 모습에서 변화의 가능성도 볼 수 있다. 농민은 모든 지배 질서를 전복하려 했지만 부르주아는 지배층에 불만이 있지만 질서 자체가 무너지는 것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입장 차이로 반란을 성공하지 못한다. 그러나 군주 부재 하의 프랑스에서 피지배층의 분노를 보여주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14세기라는 아주 먼 과거의 일들은 거울이 되어 현대의 전쟁과 재난 앞에서 무능한 사회구조, 정부에 대한 불신 등을 떠올리게 한다. 

 재난 앞에서 사회적 약자가 가장 큰 고통을 겪는 것, 많은 국가들에서 피지배층의 반란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도 비슷하다. 이렇게 <먼 거울>은 과거를 비추며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먼 거울>은 21세기 버전 혼란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판적 성찰을 돕는 안내서이자 중세 유럽을 알 수 있는 백과사전이다.


수많은 등장인물과 지명, 원문표기 그리고 ‘60프랑짜리 랭스산 직물 4필과 다람쥐 가죽 1200개로 테두리를 장식한 웃옷’과 같은 놀라운 디테일로 중세 유럽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훌륭한 스토리텔링과 고증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중세 유럽 최고의 역사서라 감히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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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책
후안 비요로 지음, 보탬 옮김 / 열림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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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제목대로 '야생'의 책이다. 이 책은 자신을 읽으려 하면 도망 다니고, 발견되더라도 잉크를 감춰서 내용을 보여주지 않는다. 자신을 읽어줄 독자를 직접 고른다.


 이 동화에는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야생의 책' 외에도 다른 책들이 움직인다. 다른 책의 내용을 지워버리거나 바꾸는 나쁜 책, 읽고 싶어하는 사람을 따라다니는 책 등이 있다. 


 나는 적지 않은 나이의 성인으로 동화에서 동심이나 힐링 정도의 감정만 기대했다. 그러나 동화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삶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띠또 삼촌은 타인과의 교류를 끊고 미로 같은 도서관이 되어버린 집에서 책만 읽으며 살아간다. 그는 움직이는 '야생의 책'을 찾아 읽고 싶어하지만 책은 띠또 삼촌에게 나타나주지 않는다. 

 주인공 후안은 삼촌의 집에 머무는 동안 '야생의 책' 찾기를 돕기로 한다. 책들이 따르는 인물은 집주인 삼촌이 아닌 후안이다.


 삼촌은 외부와의 단절을 택한 인물로 책 속에서 과거를 찾고 미래를 생각한다. 후안은 삼촌의 집이라는 현재의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린다.

  삼촌과 후안이 찾으려는 '야생의 책'은 인간처럼 자신과 관계를 맺을 독자를 고르려 한다. 삼촌이 아닌 후안이 책을 찾을 수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야생의 책>은 움직이는 책이라는 소재로 나와 주변에 대한 삶의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야생의 책을 찾는 과정, 책의 마음을 열어 읽기를 허락받기, 그리고 결말까지 모든 것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위로 같다.


 동화라는 형식만 보고 작은 기대만 했던 나에게 즐거움과 기묘함, 사랑 그리고 삶의 방식이라는 여러 가지 선물을 안겨준 책이었다. 


 후안이 띠또 삼촌의 미로 같은 도서관에 가게 된 것은 여름방학이었다. 매년 여름이면 나도 그 미로 같은 도서관과 움직이는 책을 찾아 이 책을 펼쳐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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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의 아버지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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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인류의 기원을 의미한다. 그러나 밝혀진 기원이 우리가 “바라던" 아버지들의 아버지가 아니라면? 일단 책을 읽을 다른 독자를 위해 인류의 기원에 대한 직접적인 정답을 외치는 것은 피하고 싶다. 아제미앙 교수를 살해한 범인을 밝히는 과정은 인류의 기원을 찾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자신들이 신을 본 떠 만들어졌고, 만물의 영장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밝혀진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인간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존재였다. 살해된 교수가 속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클럽은 인간의 기원을 연구한다. 클럽의 회원들은 하찮게 여기던 존재가 인간의 기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은폐한다. 진실에는 인간의 자존심과 사회적 지위, 종교의 믿음 등이 깊게 연관되어 있기에 연구자임에도 믿고 싶은 이야기를 진실이라 믿는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는 자신들을 특별하다고 믿는 인간들에게 <진실을 알았을 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라고 질문하는 것과 같다.

주인공인 이지도르와 뤼크레스는 기자 정신으로 살인사건과 인류의 기원을 취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둘은 대상을 인터뷰하고 인류의 기원에 대한 가설을 기록한다. 외계 바이러스설, 유전자의 우연한 결합설, 원숭이의 적응설 등 다양한 가설을 듣고 생각한다. 주인공 둘의 여정은 덮으려는 진실을 의심하며 진정한 진실을 찾는 ‘과학의 태도'를 의미한다. 독자는 주인공들의 추리과정을 따라가며 범인찾기와 인류의 기원에 대해 의심하고 생각한다. 문득 소설을 읽다보면 이 책의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의문이 든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과학적 지식과 상상력이 교묘하게 섞여있다. 독자는 작품 내의 사건과 작가의 장치를 통해 진실을 의심하며 진실을 찾아가는 과학의 태도를 경험하게 된다. 나는 이 특징이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에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로 이어진다. 나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가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는가?"에서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알고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인류의 기원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오만함을 알리는 참신한 경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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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디언
천명관 지음 / 창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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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본서평단 




 영화로 만들어도 대박이 나겠지만 영상화를 한다면 그 시절 'TV소설' 같은 장편 드라마로 보고 싶다.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소설 속 매 순간들의 서사와 생동감을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흡입력이 강한 소설을 읽을 때 흔히 소설 속으로 들어간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나는 읽기 시작함과 동시에 1950년대 전쟁 직후의 차디찬 서울에 던져졌고, 압도적인 서사가 끝날 때까지 이 롤러코스터에서 내릴 수 없었다.


 이야기는 주인공 '동이'가 처음 구걸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6.25전쟁이 끝난 후 부모를 잃었거나, 버려졌거나 혹은 팔린 고아들은 '앵벌이 소굴'에서 처참한 삶을 이어나간다. 



 주인공 '동이'는 부모를 잃었으나 다른 친구들처럼 장애가 없기에 그나마 나은 처지이다. 아이들은 해방촌 산자락에서 착취와 학대를 당하지만 생존을 위해 명목상의 보호자인 '양 목사' 밑에서 조직적으로 앵벌이를 한다.


 전쟁 직후부터 독재정권 타도라는 현대사의 거센 물결 속에서 밑바닥 아이들은 저마다 핏빛 생존을 위한 파란만장한 삶을 이어간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삶 또는 죽음뿐이다.



 소설의 제목인 '아코디언'은 소설에 등장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낡은 아코디언을 손에 쥐게 된 동이는 뛰어난 노래 실력을 가졌으나 앞을 보지 못하는 '연이'와 공연을 시작한다. 아코디언은 거리의 아이들에게 짧은 현실 도피이자 희망을 이어주는 특별한 악기가 된다.


 그 소리에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수많은 감정과 사연,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 담긴다. 주인공 동이는 소리를 통해 벽을 넘어 세상으로 통하는 길을 찾는다. 낡은 아코디언은 세상과 동이와 새로운 희망을 잇는다.


2026년에 보기에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의 파란만장한 삶'이 진부하게 느껴지는가? 


<아코디언>은 우리와 소설 사이 70년이란 시간의 간격을 단숨에 메우며 그저 함께 그 시절을 경험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흐름을 따라가는 동안 함께 연대하며 삶을 버텨낸다.


 거리의 아이들과 양 목사, 아이들을 감시하는 중간관리자, 미군 기지촌의 하우스보이와 달러 판매상, 심지어 단역으로 등장하는 상이군인까지 각자가 저마다의 생생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진부함은커녕 각자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다채로워 소설 속에 빈 곳이 없다.


 소설을 읽다 보면 중간중간 인물들과 사건들이 너무도 참혹하다. 그러나 억누를 수 없는 생명력과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는 책장을 계속 넘기게 한다. 


참혹함 속에서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지는 순간은 언제인가?


<아코디언>은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눈부신 연대의 서사로 독자를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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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날레 - 끝까지 강하고 자유로운 나
수전 구바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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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반오십. 예쁜 나이 스물다섯에도 반오십이라는 말로 나이 들었음을 표현한다. 


 나이 듦에 관한 다양한 표현들은 노년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함을 드러낸다. 명성과 커리어를 가진 유명한 예술가들에게도 노년을 받아들이는 일은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비비언 고닉은 "예순 살이 된 것은 살날이 여섯 달밖에 안 남았다는 말을 듣는 일 같았다"고 표현했다. 


 특히 여성의 노년은 노인혐오와 성차별이 버무려져 연약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느껴진다.

수명은 늘어나고 노년의 도전들도 많아지는 지금, 우리는 어떤 태도로 맞이해야 할까?


 수전 구바의 <피날레>는 최후의 순간까지 자기만의 세계를 꽉 채워낸 여성 롤모델을 안내한다.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서 모두의 존경을 받으며 삶을 정리하는 여성 예술가들이 아닌, 노년에 관한 규범들을 무너뜨리며 창조성을 불태우는 여성들이다.


 각 장에서 다루는 여성 예술가들은 연관성 없이 각각의 파트를 구성한다. 글쓰기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조각으로 각각의 삶을 '끝까지 자유로운 나'로 마무리한다. 이 멋진 롤모델들은 매혹적이고 아이코닉한 옷차림의 이단아이고, 그로테스크한 조형물을 만들어내며 내면의 폭력성을 표현한다. 광고에서도 만날 수 있는 동물을 좋아하는 유머러스한 뉴욕의 명물 할머니이기도 하다. 


다양한 분야만큼 느껴지는 다양한 예술성에도 이 롤모델들에게는 공통적으로 기개가 느껴진다.



 노년은 더 이상 성역할에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지나온 시간들을 반추할 수 있어 창조성을 펼치기 좋은 시기이다. 


 유아기의 통제와 중년의 의무를 지나 다양한 경험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노년은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순간을 풍부하게 경험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롤모델들은 노년이 가져오는 여러 손상들을 알고도 용기 있게 나아가며, 근육처럼 창조성을 반복해서 사용하며 사라지지 않게 했다.




 어찌 보면 그들은 경제적·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은 예술가들로 현대를 사는 대다수의 여성들과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충만한 오페라의 마지막 장을 위해 공연을 계속할 것, 쇼가 끝나도 계속 살아갈 것을 가르쳐준다. 호방함과 자유롭고 강한 나로 살아내는 그들과 우리를 연결한다. 



우리는 그들을 따라 이단아이자 현자, 괴짜인 할머니가 되어 우리의 다음으로 연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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