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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디언
천명관 지음 / 창비 / 2026년 6월
평점 :
#가제본서평단

영화로 만들어도 대박이 나겠지만 영상화를 한다면 그 시절 'TV소설' 같은 장편 드라마로 보고 싶다.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소설 속 매 순간들의 서사와 생동감을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흡입력이 강한 소설을 읽을 때 흔히 소설 속으로 들어간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나는 읽기 시작함과 동시에 1950년대 전쟁 직후의 차디찬 서울에 던져졌고, 압도적인 서사가 끝날 때까지 이 롤러코스터에서 내릴 수 없었다.
이야기는 주인공 '동이'가 처음 구걸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6.25전쟁이 끝난 후 부모를 잃었거나, 버려졌거나 혹은 팔린 고아들은 '앵벌이 소굴'에서 처참한 삶을 이어나간다.

주인공 '동이'는 부모를 잃었으나 다른 친구들처럼 장애가 없기에 그나마 나은 처지이다. 아이들은 해방촌 산자락에서 착취와 학대를 당하지만 생존을 위해 명목상의 보호자인 '양 목사' 밑에서 조직적으로 앵벌이를 한다.
전쟁 직후부터 독재정권 타도라는 현대사의 거센 물결 속에서 밑바닥 아이들은 저마다 핏빛 생존을 위한 파란만장한 삶을 이어간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삶 또는 죽음뿐이다.

소설의 제목인 '아코디언'은 소설에 등장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낡은 아코디언을 손에 쥐게 된 동이는 뛰어난 노래 실력을 가졌으나 앞을 보지 못하는 '연이'와 공연을 시작한다. 아코디언은 거리의 아이들에게 짧은 현실 도피이자 희망을 이어주는 특별한 악기가 된다.
그 소리에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수많은 감정과 사연,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 담긴다. 주인공 동이는 소리를 통해 벽을 넘어 세상으로 통하는 길을 찾는다. 낡은 아코디언은 세상과 동이와 새로운 희망을 잇는다.
2026년에 보기에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의 파란만장한 삶'이 진부하게 느껴지는가?
<아코디언>은 우리와 소설 사이 70년이란 시간의 간격을 단숨에 메우며 그저 함께 그 시절을 경험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흐름을 따라가는 동안 함께 연대하며 삶을 버텨낸다.
거리의 아이들과 양 목사, 아이들을 감시하는 중간관리자, 미군 기지촌의 하우스보이와 달러 판매상, 심지어 단역으로 등장하는 상이군인까지 각자가 저마다의 생생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진부함은커녕 각자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다채로워 소설 속에 빈 곳이 없다.
소설을 읽다 보면 중간중간 인물들과 사건들이 너무도 참혹하다. 그러나 억누를 수 없는 생명력과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는 책장을 계속 넘기게 한다.
참혹함 속에서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지는 순간은 언제인가?
<아코디언>은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눈부신 연대의 서사로 독자를 초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