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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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란트 러셀 서양철학사에서 소크라테스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Socrates is a very difficult subject for the historian. There are many men concerning whom it is certain that very little is known, and other men concerning whom it is certain that a great deal is known; but in the case of Socrates the uncertainty is as to whether we know very little or a great deal." 


내가 처음 들은 소크라테스는 브라질의 축구선수이다. 축구선수였고 군부독재를 비판했으며 본인은 의사이기도 했다. 193 장신이었지만 미드필더로 브라질 축구 황금시대를 이끌었으나 아쉽게 월드컵 우승은 이루지 못했다. 
여하튼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에 걸맞는 한 시대를 풍미한 축구영웅이었다. 다만 70세까지 살지는 못했다. 골초에 과음까지 했으니...

책 이름이 왜 "변명"인지 이제는 바꿔야 할 때도 된 듯 싶다. apology의 번역과정에서 변명으로 굳어진 듯한데 "변론"이 적합해 보인다. 이 책을 굳이 읽어 봐야 할 이유가 있다면 역사적 소크라테스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단편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예수를 느껴야 우리같은 사람도 예수처럼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소크라테스도 그런 것 아닐까? 

소크라테스는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았고 벌금형 제안했으나 결국 사형언도를 받고 처형되었다.

위의 단편 하나를 갖고 플라톤은 변명, 크리톤, 파이돈까지 풍부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 공생애를 이용하여 마가마태누가의 공관복음과 전혀 다른 형태의 요한복음까지 그려낸 헤브라이즘에 대항한 헬레니즘적 전범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읽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 유명한 '악법도 법이다'란 구절을 확인하기 위해서일까? 충격적인 사실을 말하겠다. 사실 그런 그 구절은 없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_@
78p 중 "당신은 우리법 중에서 결혼에 관해 규정하는 법을 악법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불만이 있습니까?"에서 처음으로 악법이란 단어가 등장하기는 한다.  

The Apology gives a clear picture of a man of a certain type: a man very sure of himself, high-minded, indifferent to worldly success, believing that he is guided by a divine voice, and persuaded that clear thinking is  the most important requisite for right living. 

위의 버트란트 러셀이 서양철학사 설명이 바로 플라톤이 그 책을 저술한 이유가 아니겠나 생각해보게 된다.  스승에 대한 찬가로 죽음에서조차 의연했고 신이 자신에게 내린 철학이라는 소명에 헌신하는 헬레니즘적 예수 신화를 만들고 싶었던 플라톤이 창작이 아닐까?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고전수사학에서 유행했던 수사법 기술이 동원되고 있는 측면에서 수사학의 모범교과서로써 읽어 볼 가치가 있음을 생각해 보게 된다. 앞으로 로스쿨을 목표로 하고 장차 미래의 법조인이 될 사람이라면 입문서로 이 책 만한 것이 없다.

#1. 법률이나 법정에서의 재판 내지 변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경험이 없다고 말하는 것
#2. 내 나이가 일흔이 되었지만, 법정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하는 것
#3. 배심원들에게 편견없이 들어줄 것에 대한 간청

위의 언급한 것들이 청중의 관심과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본격적인 주장의 서두에서 동원하는 화두라고 볼 수 있다. (아래의 표는 서울대 법학 저널 53권 에 실린 하재홍 경기대 법과대학 교수이자 변호사의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형사변론술'에 가져온 표임을 밝힌다)


원고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을 타락시킨 죄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소크라스테스는 25p~27p에 걸쳐 멜레토스와 대화를 통한 논증을 펼친다. 논증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누구든지 청년들을 훌륭하게 만들려고 애쓴다. 무엇을 그들을 훌륭하게 만드는가? 법과 제도다. 법률을 아는 자가 누구인가? 배심원 시민 모두다. 그렇다면 모두가 청년들을 훌륭하게 만들려고 애쓰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회에서 어떻게 단 한 사람 내가 모든 청년들을 타락시킨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변론을 읽다보면 맹자가 생각난다. 특히 맹자가 고자와 치열한 담론을 펼치는 고자편.  


위 발췌한 해설은 추후 맹자편의 핵심구절을 소개하는 포스팅에서 대신하기로 하고 굳이 가져다 붙여 놓은 것은 고자는 고작 한 마디했는데 맹자의 대답은 구구절절이다. 특히 이 편에서 맹자의 논의는 궁색한 듯하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소크라테스의 현란한  수사법의 구사를 담고 있다만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이여서 그 대화법의 주인공이 소크라테스인 점에서 정말 플라톤이 재판의 실황을 그대로 중계한 거라고 보긴 어렵다. 고대 그리스가 재판이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나름  참고한 독서목록을 공유하고 싶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고전학계가 논의한 내용을 담고 있는 "소크라테스, 김유석 옮김, 이학사, 2009"
최근 소크라테스에 대한 연구를 담고 있는 "대화의 철학 소크라테스, 이강석 옮김, 한길사, 2004" 
"고전수사학, 박성철 옮김, 동문선, 2003"
"수사학-말하기의 규칙과 체계, 안재원 옮김, 길,2006"
 "생각의 수사학, 양태종 옮김, 유로, 2007"
"로마법강의, 최병조, 박사, 2006"
"현대 수사학, 김종영 옮김, 진성북스,2019 "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보면서 그가 상대편 주장을 어떻게 조목조목 비판해가며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지를 음미하다가 탈옥을 권유하는 크리톤에 대해 그 불가성을 웅변하는 크리톤으로 넘어가게 된다. 개인적으로 크리톤이 더 설득력있고 플라톤의 색깔이 입혔다손 치더라고 소크라테스가 더 마음에 든다.


실정법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입장은 우리역사처럼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사법살인이 일반적이었던 국가나 사회에 논쟁거리가 되어 왔다. "사법개혁" "검찰개혁" 한때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었던 이 땅의  법조계가 유례없는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개혁의 대상으로 반성해야 할 법조인이 얼마나 될까? 국민감정과 괴리된 판결한 재판부, 특히 양승태가 조작한 수다한 재판들, 아무도 처벌받지 않은 죄지은 판사들. 
조국 법무부장관에 무리한 수사를 통해 드러난 표적수사. 제 식구 감싸기로 비리의 온상임을 드러낸 검찰.

우리나라 삼권분립으로 그 독립성을 지키라는 사법부의 구성원 각 개인들에게 이토록 목숨을 버리면서도 지키고 싶었던 소크라테스의 법철학, 법정신을 그대들은 구현하고 있는지 되묻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권면하고 싶다.  (다음 편에는 향연에 대해서 소개하겠다. 

"신이 우리를 이 길로 인도하니 이 길을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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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 밖에서 놀게 하라 - 세계 창의력 교육 노벨상 ‘토런스상’ 수상 김경희 교수의 창의영재 교육법
김경희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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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of the future will be the creative mind adapting itself to the shape of things to come." 라고 교육심리학자 폴 토런스가 말씀하셨다. 그의 업적을 기리는 노력이 '토런스상'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데 오늘 소개한 책의 저자 '김경희"가 수상자이기도 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폴 토런스의 저작이 국내 번역을 거의 찾아보기 전무하다는 점이다. 김경희 교수께 정중히 요청하는 바이다. 이 책도 충분히 훌륭하다 그러나 이 창의성의 아버지라 불리는 분의 원서를 국내에 소개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이 책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만약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고 하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으시다면 훌륭한 부모님이 되세요"이다. 모범이 되는 부모님이 되기는 참 어렵다. 이 책의 구석구석 부모님들의 뻐를 때리는 말로 가득하다. 

이 땅에서 교육개혁을 말하면서 뜯어고치는 대상이 되는 것은 늘 "학교"와 "입시제도"이다. 이제 좀 제발 그런 행정적 접근은 지양하자. 바꿔야 할 곳은 우리아이들이 지금 행복하게 공부해야 할 "학교"가 아니다. 아니 적어도 학교가 그 첫 실험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우리 즉 어른이어야 한다. 우리 뇌 속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편견과 선입관.
이 책에서 말하는 창의성을 길러주는 환경을 태어나서 학교가기 전까지 책임질 부모부터 가르치자.
직장 및 작업장 내에 엄마 아빠들이 창의성 넘치는 환경을 조성하는 프로그램을 수강하도록 하자.
그 1교시는 다음과 같은 대화법이다. 
아이를 안아주거나 쓰다듬으면서 "태어나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행복하다." "엄마는 네가 자랑스러워"

학교나 유치원을 또는 학원을 다니는 나이가 되면 "칭찬하는 법"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아이가 받은 점수에 대해 구체적으로 칭찬해야 하며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칭찬해서 안 된다.
이미 상식적으로 널리 퍼진 사실이지만 실천은 잘 안 되는 것 같다.
진정한 비교는 "어제보다 다른 나"이여야 한다. 즉 아이 자기 자신과 비교다 진짜 필요한 비교다.

아이가 큰 꿈을 꾸게 하려면 부모가 아이의 첫 번째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하고 넌 왜 꿈이 없니? 좋은 직업을 가지려면 그냥 열심히 공부나 해 등 참 비교육적인 일방적 지시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책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부모는 아이에게 자신의 롤모델을 말해주고 그 롤모델처럼 되기 위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태도와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말해주는 것이 좋다." 꿈찾기와 멘토찾기를 자기주도학습캠프에서 많이 진행하는데 집에서 부모가 또는 학교에서 이런 것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굳이 사교육에서 찾아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지금 "부모학교"는 기존 사회제도 안에서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평생교육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이런 부모교육은 전무한 것으로 보인다 이 역할을 우리나라 개신교에서 떠맡고 있는 형국인데 지자체나 시민단체 등 깨어있는 시민들의 연대로 부모학교를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 

아이가 즉흥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면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되어야 한다.

중국집에 가서 내가 먹고 싶은 것 먹으면 그게 그렇게 잘못인가?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과 요구를 무시하지 않도록 노력하자.
의사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려고 하자.
"결정장애"라는 못 난 소리를 우리 아이들에게서 나오도록 하지 말자.

부모가 아이의 시간표를 미리 꽉 채워두거나 아이의 인생을 프로그래밍
해 놓아서는 안 된다.

아이들의 삶을 JAZZ로 만들자. 습관적이고 무의식적으로 하는 일에 새로운 경험과 변화를 부여하자. 
계획을 세우되, 가끔은 마음이 가는대로 그냥 끌려가 보게 한다. 
내가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 상당수가 '열정'이 없다. 그런 아이들은 '호기심'도 없다. 
즉 어떤 것을 좋아해야 하는데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실제 아이와 가깝게 관계 맺고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설리반 같은 선생님이 있다면 좋을까?
나 자신이 그런 선생인가 자문해 본다. 
고 황병기 선생도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에서도 자기를 변화하게 된 그런 분의 존재였다.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뭔가 배우길 바라는 것도 부모, 선생의 과욕이다.
부모와 선생 자신을 돌이켜 봐라! 책 읽기가 그렇게 좋았나 어렸을때!
솔직해지자. 요즘처럼 공부많이 한 세대가 아니지 않았나 우리 어른들?
언제 우리가 초1 혹은 초딩도 되기 전에 영어학원 댕겼나?
당신들이 고1 되기 전에 수능에 준하는 수학을 선행하기나 했나?
여기서 당당할 사람 별로 없다고 본다. 

음악은 아이가 혼자일 때 고립되어 있다는 감정을 덜 느끼게 해준다.
비판력이 필요하다면 편안한 클래식 음악을,
상상력이 필요할 땐 힙합 같은 음악을 들려주자.

창의성의 기원을 쓴 에드워드 윌슨의 글을 읽어 보면 "자연"에서 그 기원을 찾고 있다. 
특히 반려동물 기르면서 책에서 볼 수 없는 지식을 몸으로 배우게 만든다. 
동물의 먹이, 생태, 습관 등에 대해 호기심을 품게 되고 과학분야에 대한 장기적인 호기심으로 연결된다. 
부모는 이런 일련의 궁금증에 대해 답을 찾아주기 보다 답을 찾으려는 활동을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는 것이 좋다. 책을 읽게 할 때도 부모가 책의 내용을 요약해 주는 것은 좋지 않다. 부모가 그 책에서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 왜 그 책이 좋은지 등을 이야기하면서 아이에게 그 책 내용이 궁금해 하도록 해야 한다. 

이 책을 갖고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각 장의 대한 요약이 있어서 참 독자 친화적으로 구성된 책이다.
이 책의 진도대로 부모대학 커리큘럼을 구성하자.
부모대학을 만들면서 동시에 창의영재 교육이 가능하게 되려면 이 땅의 "교대"커리큘럼도 그에 맞게 수정되어야한다. 그런 커리큘럼의 수혜자가 교사가 되어야지 이 땅의 교육이 진정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제도적 보완이다. 교사가 교사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교육"공무원"으로써 해야할 비교육적 업무를 줄여야 한다. 제안한다. 전국의 공립학교에 행정업무직원을 따로 선발하자.
제발 선생은 선생의 일에만 집중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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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업 - 하 - 반룡, 용이 될 남자
메이위저 지음, 정주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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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결론은 결국 "소기"가 혁명에 성공한 것으로 끝난다. 
1권을 펼 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모든 헐리우드 영화가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이 다 해결하는 공식을 전제하고서 끝나는 것처럼 그럼에도 우리는 관람석을 끝까지 지킨다. 

命(명)을 바꾸는 것은 긴 중국사에서도 우리역사에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번 없지 않은가? 신라를 무너뜨리고 고려를 개국한 왕건만 봐도 드라마에서 봤듯이 어렵지 않았던가? 관심법의 달인을 추종한 세력에 의해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지 않았는가? 

고려에서 조선을 넘어가는 과정도 이방원이 정몽주를 때려 죽이고서야 가능했다. 중국사에서 처음 통일왕조를 개창한 시황의 나라 '진'이 무너지고 항우와 유방의 오랜 내란 끝에 漢(한)나라를 개창할 수 있었다. 

한나라는 한 무제에 의해 중국문명의 초석을 다진 동양판 '로마제국'이었다. 동북아 문명의 essence 중의 하나인 "유교"를 자리 잡게 만든 한나라를 한때 촉망 받던 권신 "왕망"이 무너뜨렸다.역사에서는 왕망을 역모의 아이콘으로 철저히 악랄하게 평가한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만 보아야 할까? 만약 그간 세운 新나라가 적어도 30년 정도만 갔어도 수나라 정도의 정통 왕조로 인정해 주지 않았을까? 다시 정정해서 말해 보면 왕망이 한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아니라 前漢은 환관정치와 귀족주의 관료주의로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왕망의 혈통은 좋았으나 일찍 부모님을 여읜 탓에 불우하게 자랐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검소, 청렴한 유학자의 전범을 보여줬고 그로 인해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재능도 출중했던지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 조정의 요직을 차지하게 된다. 지금의 국무총리 격인 대사마에 올라 권력의 중심에 오르게 되었다. 이때까지가 좋았다. 높아진 지위에도 불구하고 부정축재하지 않고 스스로 겸양했다. 그 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아는 폭군으로 살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고 자기가 스스로 황제가 된 나라도 망하고 말았다. 

책과 상관없어 보이는 왕망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은 왕망이 꿈꾼 정치와 왕현과 소기의 비젼을 비교해 보고 싶어서다. 또한 正史(정사)에 대한 과한 집착인데 중국이라는 지리적 배경을 놓고 볼 때 소기에 가장 근접한 것이 왕망이라고 사료된다. 상편에서는 측천무후 중심으로 썼는데 왕망에 대한 재평가 측면에서 하편을 쓰고 싶었다. 

제왕업에서는 왕현과 소기가 건설하고 싶었던 나라는 무엇인지를 많이 알수는 없다. 다만 소기는 문무를 겸비한 가장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 (어쩌면 논어에서 말하는 군자가  바로 소기가 아닌가 싶다) 소기도 왕망도 겉으로는 "선양"의 형식을 띄었다. 선양은 요순 시대 이래로 행해진 적 없는 그냥 신화라고 생각하련다. 왕망도 소기도 결국 무늬 뿐인 수술당한 황제를 겁박한 것 일뿐. 그럼에도 모두에서 언급한 피흘리지 않고 왕조를 새롭게 열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나마 백성들의 고통을 수반하지 않으니까. 진한 교체기, 송원 교체기, 원명 교체기, 명청 교체기를 다 돌아봐도 전쟁없는 왕조 교체는 없었다. 

왕가의 기가 쇠했고 나라는 썩어 문드러져 가고 오로지 황제 자리만 탐하는 혼돈의 상태에서 질서를 누군가는 회복시켜야 했다. 왕망은 그래도 정책적인 비젼이 있었다. 토지제도를 개혁하여 귀족 호족들의 대토지 소유를 견제하고 싶어했다(한전제로 칭한다). 주나라의 제도를 다시 구현하고 싶어했다 어쩌면 논어가 가르치는 국가 공자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주공'처럼 나라를 만들고 싶어했다.

 

야사에 따르면 왕망이 고구려인이라는 얘기도 있던데 뭐 역사적 상상력은 무한하니까...
이쯤에서 아쉬운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은 고구려 역사서가 남아 있었다면 
이런 메이위저의 장편소설이 수십편이 나오련만...

왕망의 개혁은 실패했다. 후계자 양성에도 실패했고 백성들의 지지도 잃었고 지식인들을 제대로 등용하여 자기세력화하지도 못 했고, 결국 척신들 수구기득권들의 역공에 갈기갈지 찢겨 죽고 말았다. 정사에 기록된 왕망과 실제 왕망은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왕망의 개혁에서 참여정부를 본다. 언론과 검찰의 먹잇감이 되어 버린 ...역사는 승자의 역사.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란 것이 가짜뉴스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민중은 정사를 싫어한다. 삼국지연의만해도 그렇다. 진수의 삼국지가 얼마나 민중들이 싫었으면 후한 말기의 어지러운 정세를 그런 식으로 노래했겠는가? 유비는 그렇게라도 민중의 역사 속에서 인의 넘치는 군주로 남았지만만 그 외에 많은 혁명가들은 역사의 모래 속에 묻히고 또 묻혔다. 

2019년 11월 22일 특수강간에서 뇌물까지 온갖 오물 속에 노닐던 인간이 무죄 선고를 받았다. 
역사란 것은 진화하는가? 선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맞나? 이런게 승자의 역사라면 역사책 모두를 찢어버리고 싶다.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 
다만 2차세계대전 이후로 평화가 유래없이 지속되고 있다.
그만큼 사피엔스의 욕망이 칸트가 구현하려 했던 세계평화의 질서 속에서 제어되고 있다 다행히.
여전히 포화 속에 신음하는 시리아, 쿠르드족, 팔레스타인 등에는 미안하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지금 기로에 서있다. 위정자들이라고 자처하는 자들 중에는 이 민족의 안위보다 정권 탈환에만 목매는 이들이 있다. 그런 민족의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 
그런 욕망덩어리에 우리의 미래를 내주는 시민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지소미아가 다시 연장되었다는 뉴스가 들린다. 언제 우리는 진정한 독립을 할 것인가?
언제 우리 깨어있는 민중의 열망이 실현이야말로 우리 한민족의 진정한 "제왕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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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업 - 상 - 아름답고 사나운 칼
메이위저 지음, 정주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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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중국의 한나라 이후 꽤 시간이 지난 어느 왕조를 가정하고 출발한다. 나는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은 그보다는 조금 더 판타지스럽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렇다고 역사적 개연성의 요소를 무시할 수 만은 없다. 돌궐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돌궐은 서기 600년부터 중국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중국이 가장 존경한다는 당태종(고려 침공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후유증으로 죽은)도 돌궐에 의해 위협을 겪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당나라를 염두에 두었다. 수나라는 왕권 쟁탈을 둘러싼 암투가 벌어지기는...너무 짧은 역사고. 당나라가 아니라면 부패하기가 극에 달했던 명나라가 적당한데...시대가 너무 뒤로 가는 듯하다. 송나라도 염두에 두지만 그때는 북방에 거란이 있었다. 여하튼 당나라 쯤으로 시대적 배경을 삼고 읽자. 

당나라 역사를 되짚어 보면 당은 고구려 멸망 후 22년 있다가 망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앞서 한나라도 전한과 후한으로 나뉘듯이 "전당"이라고 부른다면 690년에 망한 것이다. 당태종 사후에 망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을 망하게 한 장본인이 그 유명한 "측천무후"다. 중국 역사 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에 드문 첫 여성 리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본인이 직접 국가도 세웠을 뿐 아니라 자신의 정치 색깔이라고 할까 통치철학이 확실히 있었던 것 같다. 측천무후의 국가도 중국사에 정사로 기록되어야 한다고 본다.
제왕업의 주인공 왕현이 측천무후의 다른 버전이 아닐까 조심스레 정의해 본다. 

1권은 왕현의 어린시절을 얘기하면서 남평 소기를 만나면서 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운명처럼 황제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암투의 한 복판에 서게 된다. 죽을 뻔한 위기를 겪기도 하고 가족들과 척을 지게 되고 주변 사람들이 돌아서고 반목하고 또는 죽어나가는 영웅서사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공식을 따라간다. 

1권만 읽은 상태에서 사실 난 장쯔이가 나온 드라마를 보지 않은 상태인데 X세대 아재 감성으로 내가 Starring 담당자로 감정이입해서 캐릭터라인을 잡아 보고 싶었다.
우선 주인공 "왕현"은 난 왕조현으로 하겠다. 청초하고 여리여리한 이미지에 fatal beauty를 왕조현이 아니면 누가 가능할까?
위대한 장군이자 정치가로서 야심도 갖춘 '소기'는 누가 맡아야 할까? 양조위나 주윤발은 너무 곱상하구 유덕화가 제격이지 싶다 유덕화가 너무 나이 먹었다면 견자단?이 맞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간 쌓은 견자단 이미지에도 어울리는 것 같다.
왕현의 첫사랑 '자담'은 누가 맡으면 좋을까? 요절한 '장국영'이 제격이지 않을까? 고귀한 외모에 담백한 마음가짐...2권에서 웬지 황제로 옹립될 것도 같은데...그런 다음에 요절할 것으로 보여진다. 
왕현 고모는 권력의 화신인데 '공리'가 딱이다. '황후화'에서 그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줬다. 참고로 황후화에서 제왕업처럼 천자를 둘러싼 암투가 잘 묘사되었고 당시 지구 최강국 중 하나였던 당나라의 화려한 복색이 잘 드려난다. 이 책을 읽으며 황후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왜 지금 역사의 현장에서 이 책을 읽어야 할까도 생각해 보았다. 시대는 다르고 시간은 많이 지났고 권력은 국민에서 나오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권력의 맛을 보려는 사람은 여전하다. 가짜 뉴스가 버젓이 활개치는 이 땅에서 책 제목 "제왕업"은 현대어로 킹메이킹으로 번역되겠다. 지금 이순간도 이 대한민국 어느 구석에서 대통령만들기 공작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2019년 총선을 앞둔 지금, 나랏돈을 수십조 헤먹은 이명박이 나와 있고 탄핵당한 박근혜도 나와 있다. 심지어 박근혜를 간판으로 여전히 정치하려는 무리도 있다. 최순실은 킹메이커이자 본인이 킹이었다. 현대판 대한민국 측전무후로 박정희 사후를 전후로 쭉 박근혜를 통제해 왔다. 우리 민중 다수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 당여들에게 표를 줬고 개돼지처럼 속고 살았다. 

권력를 추종하는 세력은 정의란 것은 뒷간에 갖다 버린지 오래다. 그들과 정정당당한 싸움을 하려고 했다. DJ는 아닐지 모르겠는데 노무현 대통령도 그랬고, 노회찬도 그랬다. 그들과는 진창싸움이고 무조건 이겨야 한다. 역사는 정의의 편에 서고 억울한 사람을 한참 후에 제대로 평가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부정의가  득세하는 시대를 견뎌낸 민중들의 삶은 피폐했고 실패와 오욕의 역사를 오롯이 받아내야 했다. 이제 그런 역사를 반복해선 안 된다. 촛불혁명은 아직 진행중이여야 한다. 

대통령 하나만 바뀌었을 뿐이고 4대강의 부역자들은 버젓이 살아남아 파생된 이익을 누리고 있으며 세월호참사 주역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호위호식하고 살며 있다 최근 전두환은 치매라며 골프라운딩을 즐기고 있다. 이들 권력에 부역했고 이런 부당한 권력을 계속 재생산하려는 콘트롤 타워는 풀가동중이다.

나는 제왕업 책에서 벌어지는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냉혹한 싸움이 결코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정치와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지적하고 싶다. 깨어있는 시민은 소설을 읽어도 그냥 읽고 넘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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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관한 9가지 거짓말
마커스 버킹엄.애슐리 구달 지음, 이영래 그림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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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몰입 평가지표


1.나는 회사의 사명에 큰 열정이 있다.
*2.나는 회사에서 내게 거는 기대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3.팀 내에서 내 주위 사람들은 나와 가치관이 같다.
*4. 직장에서 매일 내 장점을 활용할 기회를 얻는다.
5.동료 팀원들은 내 편이다.
*6.높은 성과를 올릴 때마다 인정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7.나는 회사의 미래에 강한 자신감이 있다.
*8.일에서 늘 성장을 위한 도전에 직면한다.

이 책을 읽는 "리더"라면 상기의 8지표에 대해 어떻게 응답할지 알고 있어야 한다. 과연 나는...

매년 회사들이 송년회 또는 신년회를 한다.
한 해를 보낸 결과 보고 즉 데이타를 공유한다.
책은 말한다.

"최고의 계획이 곧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말은 거짓"
가능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정보를 최대로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팀원들이 어떤 데이터를 유용하다고 생각하는지 살펴야 한다. 즉 데이터를 정확히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 그 데이터를 잘 이해하도록 해야 하는데 데이터를 이용하는 사람이 그  데이터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목표는 성과 예측을 위한 것일 뿐 성과 창출을 이끌지는 못한다."
책에 영업사원 할당량에 대한 일화가 소개된다. 뉴욕에서 비오는 날 택시 잡기 어려운 이유도 마찬가지다. (자세한 것은 책을 읽어보시라) 영업목표는 우수한 영업사원의 실적을 떨어뜨린다. 목표치는 뉴욕의 택시기사와 마찬가지로 실적은 높이는 촉매가 아니라 실적의 천장 기능을 한다.
현실 세계에는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이론 세계에는 목표가 있다.
일은 구체적이고 상세하다. 목표는 추상적이다.
일은 빠르게 변한다. 목표는 천천히 변하거나 아예 변하지 않는다.
일은 당신에게 권한이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목표는 당신이 기계 속의 톱니바퀴처럼 느끼게 만든다.
일은 일이다. 목표는 일이 아니다.

메시, MJ, 페더러, 나달, 무키 등 스포츠 스타들의 플레이에 열광하며 살았다.
그렇지만 내가 일하던 곳에서 내가 혹은 내 동료가 그렇게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일했나?
책 속에 "인간은 다른 사람이 재능을 발휘하는 것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존재다."라고 하는데
이 책의 맥락과는 별도로 그렇게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드는 사람과 일하고 싶다. 

강점은 당신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게 만드는 활동이라고 한다. 직장에서 매일 내 장점을 활용할 기회를 얻는다라는 느낌이다라는 데이터가 있다. 자신의 강점과 일이 잘 맞아 떨어진다고 느끼는 팀이 높은 실적을 낸다.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하다면 리오넬 네시인 것이다. 메시 얘기가 나와선 말인데 우리는 약점을 보완하면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에 빠지곤 한다. 그런데 메시는 왼발에 특화되어 있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것이 맞다의 증거가 메시 아닐까? 올드 스쿨이라고 놀리겠지만 이충희가 농구대통령이 아니라 슛쟁이가 된 까닭도 그런 논리가 아니겠는가? 

지금의 관심경제 attention economy를 어떻게 볼 것인가? 페이스북과 스냅챗은 큰 차이점을 갖고 있다.
스냅챗은 어떠한 반응도 할 수 없다. 페북이 '좋아요' '사랑해' '하하' '야호' '와' '슬프다'로 반응할 수 있는 것과 대비된다. 지금 세대는 내용을 공유하되 피드백 압력을 느끼지 않는 데서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즉 소셜미디어의 본질은 "긍정적인 자기표현"을 공개하는데 있는 것 같다라도 책은 말한다. 즉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관심이다.  

이제 이 책에서 내가 찾고자 했던 답을 소개하고 글을 마치겠다.
긍정의 피드백이 발전을 가속화한다는 생물학적 데이터이다. 
부정의 피드백은 두뇌에서 교감신경계를 자극하고 활발하게 한다.
이는 마치 생존의 위협에 빠진 야생동물 같은 반응을 보이게 해서 시야와 행동범위를 축소시킨다. 
"기존 신경회로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 인지, 정서, 지각 장애를 유발한다."고 결론 맺고 있다.

미래를 초점으로 하는 하는 긍정의 피드백만이 대뇌가 두뇌의 여러 영역에 접근하게 해주고 더 많은 학습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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