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의 배신 - 주식 투자에 관한 생각
장진영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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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를 하다 보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매출은 늘었고 이익도 잘 나왔다. 뉴스에서는 ‘사상 최대 실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주가는 힘을 쓰지 못한다. 반대로 실적이 나빠졌다는 기업의 주가가 오르기도 한다.
이럴 때면 시장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기업을 잘못 골랐나 싶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악재가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진다.

『숫자의 배신』은 바로 이 답답함을 다른 각도에서 풀어 주는 책이다. 기업이 얼마나 좋은 숫자를 내놓았는지만 보지 말고, 시장이 그 기업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부터 살펴보라고 말한다.

책을 읽고 나면 실적 발표를 볼 때 던지는 질문이 달라진다.
“얼마나 잘했을까?”에서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잘했을까? 그리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까?”로 바뀐다.

[주가를 움직이는 것은 숫자보다 기대와의 거리]
책을 관통하는 문장은 이것이다. “주가는 실적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기대와 현실의 차이에 반응하죠.”

다소 강한 표현이지만, 실적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좋은 실적도 시장의 기대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가령 어떤 기업이 영업이익 120억 원을 발표했다고 해 보자. 숫자만 보면 잘한 것 같다. 하지만 시장이 이미 150억 원을 예상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투자자에게는 ‘120억 원이나 벌었다’보다 ‘생각했던 것보다 못 벌었다’는 사실이 먼저 눈에 들어올 수 있다.
반대로 70억 원을 예상했던 기업이 90억 원을 벌었다면 어떨까. 이익 규모는 앞선 기업보다 작지만, 예상보다 잘했다는 점에서는 더 반가운 소식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주가의 방향을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좋은 실적과 좋은 투자가 왜 늘 같은 말은 아닌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중요한 것은 숫자의 크기만이 아니다. 그 숫자가 이미 기대에 들어가 있었는지, 예상을 얼마나 벗어났는지, 앞으로의 전망까지 바꾸는지가 함께 중요하다.
이 책의 핵심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기대다.

[투자자는 “잘했다”보다 “계속 잘할 수 있나”를 묻는다]
프롤로그에는 책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 주는 장면이 나온다.
저자는 좋은 실적을 자신 있게 설명한다. 매출은 성장했고 영업이익률도 높았다. 그런데 투자자가 던진 질문은 간단했다.
“이 숫자, 지속 가능한가요?”

기업은 이번에 얼마나 잘했는지를 설명했지만, 투자자는 다음에도 잘할 수 있는지를 궁금해했던 것이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기업은 기술력과 신제품, 시장점유율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투자자가 알고 싶은 것은 조금 다르다.
그 기술이 어떻게 매출로 이어지는지, 매출이 늘면 이익도 함께 늘어나는지, 경쟁사가 따라오더라도 지금의 수익을 지킬 수 있는지 알고 싶다.
“우리 기술은 뛰어납니다”라는 설명과 “이 기술 덕분에 고객이 반복해서 구매하고, 그 과정에서 이 정도의 이익이 남습니다”라는 설명은 다르다.
책은 그 차이를 ‘번역’의 문제로 바라본다. 기업이 하는 일을 투자자가 판단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꿔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숫자를 많이 보여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숫자가 왜 나왔고 앞으로 무엇으로 이어질지를 설명해야 한다.

[관심에서 가격까지, AEGP로 읽는 기업]
책은 시장의 관심이 가격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네 단계로 정리한다.

Attention → Expectation → Gap → Price
관심 → 기대 → 격차 → 가격

영어 약자로 보면 어렵게 느껴지지만, 뜻은 익숙하다.
먼저 사람들이 기업을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회사는 앞으로 이 정도는 하겠지”라는 기대가 생긴다. 이후 실제 결과가 나오면 예상과 비교한다. 그 차이를 바탕으로 기업을 다시 평가한다는 흐름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네 가지 질문으로 바꿔 볼 수 있다.
첫째, 시장이 이 기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가?
둘째, 지금 사람들은 이 기업에 어느 정도를 기대하고 있는가?
셋째, 기업은 그 기대보다 나은 결과를 보여 주고 있는가?
넷째, 그 좋은 변화가 주가에 이미 충분히 반영된 것은 아닌가?
마지막 질문을 빼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앞으로 잘할 것이라는 기대가 가격에 너무 많이 담겨 있다면, 투자 판단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틀의 장점은 기업과 주가를 따로 보지 않게 해 준다는 데 있다. 사업이 좋아지는 모습뿐 아니라, 시장이 그것을 언제 알아보기 시작했고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까지 연결해서 보게 만든다.

[진짜 살펴볼 것은 경영진의 말솜씨가 아니라 약속의 기록]
이 책에서 투자자에게 특히 유용한 부분은 기업의 소통을 살펴보는 체크리스트다.
어려운 기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을 믿을 때와 비슷한 질문이 많다.
좋은 이야기만 하는가, 불편한 사실도 말하는가. 일이 잘못됐을 때 직접 설명하는가, 조용히 넘어가려 하는가. 예전에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지키는가.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는가.
책은 나쁜 소식 자체보다 예상하지 못한 나쁜 소식이 투자자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위기가 생겼을 때 침묵하거나 공시와 IR의 설명이 엇갈리면, 투자자는 눈앞의 문제뿐 아니라 ‘아직 모르는 문제가 더 있는 것은 아닐까’까지 걱정하게 된다. 나쁜 소식을 먼저 알리고, 위험과 대응 방안을 함께 설명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보는 이유다.[Attachment]
그래서 기업을 볼 때는 최신 IR 자료만 읽기보다 과거 자료도 함께 펼쳐 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에는 무엇을 약속했는지, 실제로 얼마나 이뤘는지, 못 지켰다면 그 이유를 설명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계획도 발표 내용에서 멈추지 말고 실행 여부까지 확인한다.
화려한 발표 한 번보다 몇 년 동안 쌓인 기록이 더 많은 것을 말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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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도 ㅣ 허밍북스 슬릿 1
조강우 지음 / 허밍북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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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도로 향하는 기자의 출발점은 순수한 사명감만이 아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문장에서 그가 먼저 발견한 것은 ‘이주 완료’와 ‘실종’이라는 단어다. “행정상 사라진 섬에서, 실제로 사라진 사람.” 누군가의 절박한 사정은 곧바로 기사 제목으로 바뀐다. 기자는 자신이 그 제목을 버릴 만큼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 인정한다. 이 짧은 고백은 화자를 정의로운 관찰자의 자리에 편안히 놓아두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작품의 질문은 실종 사건을 넘어선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 자체에 반응하는가, 아니면 그것이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때 비로소 관심을 갖는가. 동백도는 취재 대상인 동시에, 기자가 자신의 시선을 되돌려 받는 공간이다.

실종자의 동생 이수민도 그 시선에 저항한다. 기자가 언니의 실족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꺼내자, 수민은 “가능성이 아니라 편한 결론이겠죠”라고 답한다. 기자에게는 검토할 만한 가설이지만, 가족에게는 수색과 질문을 너무 일찍 끝내는 말일 수 있다. 이 대화가 드러내는 갈등은 사실과 감정의 단순한 대립이 아니다. 무엇을 충분한 설명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누구에게 그 설명을 끝낼 권한이 있는가의 문제다.

사라진 것은 섬인가, 섬을 바라보는 시선인가

『동백도』를 관통하는 핵심어를 하나 고른다면 기록이다. 기록은 존재를 증명하지만, 때로는 살아 있는 현실을 너무 쉽게 종결한다. ‘이주 완료’라는 말과 섬에 남은 사람들 사이의 모순이 그렇다.

그렇다고 작품이 기록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한세진은 기자에게 “기자님 말이 지금 이 상황에서는 제일 비싸니까. 잘 적어둬요”라고 말한다. 반면 윤태수를 두고는 “종이 쪼가리가 배를 띄워줄 수 있다고 믿나 봐요”라고 비꼰다.

누군가는 말과 문서에서 가능성을 찾고, 다른 누군가는 그것이 당장의 탈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기록의 필요와 무력함이 한 장면 안에서 충돌한다.

이 충돌은 기자의 역할에도 무게를 더한다. 취재는 사건을 기사로 만드는 작업이지만, 통신이 끊긴 섬에서는 바깥에 전해지지 못한 현실을 붙잡아 두는 일이기도 하다. 기자는 이야기를 얻으러 왔으나, 점차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질문받는다.

멈춘 기계와 돌아갈 수 없는 일상

동백도의 불안은 거대한 재난 장면보다 작고 익숙한 것들의 고장에서 먼저 감지된다. 휴대전화는 켜지지 않고, 보조배터리의 잔량 표시등도 들어오지 않는다. 냉장고 모터와 선착장 경적처럼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았을 소리까지 사라진다. 공기에는 금속이 탄 냄새가 남아 있다. 익숙한 생활의 배경이 하나씩 빠져나가면서 섬의 낯섦이 짙어진다.

이런 장치들을 곧바로 기후 위기의 상징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발췌문만으로는 기이한 현상의 원인도, 사건과의 관계도 확정할 수 없다. 다만 독서의 차원에서 그것들은 분명한 감각을 만든다. 어제까지 당연했던 연결과 질서가 오늘도 유지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감각이다.

그 불안은 기자의 내면에서도 반복된다. 그는 회사 메일함과 어머니가 끓인 미역국, 출근길 버스의 졸음을 떠올리지만, 그 기억들은 오두막의 냄새와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수민이 집에 가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자 대답하지 못한다. “집이 있는 쪽이 아직도 집이라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문장은, 고립이 단순히 섬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태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돌아갈 일상의 확실성마저 흔들리는 것이다.

기후 위기를 개인의 부재로 읽는 방식

이 작품을 기후 위기의 알레고리로 읽게 하는 힘은 거대한 현상과 개인의 실종을 같은 공간에 놓는 데 있다. 지도와 행정의 언어로 처리되는 변화가 한 가족에게는 끝낼 수 없는 기다림이 된다. 섬의 소멸과 사람의 실종은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둘 다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무엇이 남아 있는가’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특히 실종자의 흔적은 완결된 답으로 보존되지 않는다. 절벽에서 돌아오는 길, 화자는 차오르는 바다가 자신들이 본 것들을 곧 삼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흔적이 사라지는 속도는 진실을 알아내는 속도보다 빠를 수 있다. 미스터리의 긴박함과 재난의 불가역성이 맞물리는 지점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실종자를 찾을 수 있는가만이 아니다. 찾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가, 누군가의 부재를 성급한 결론으로 덮지 않을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기후 위기는 여기서 배경 설명을 넘어, 증거와 기억을 지키기 어렵게 만드는 조건으로 읽힌다.

절제된 감각이 만드는 긴장
인상적인 것은 불안을 설명하기보다 감각으로 축적하는 문장이다. 소리가 사라진 집, 금속이 탄 냄새, 젖은 바위와 진흙에 눌린 동백꽃이 차례로 등장한다. 동백꽃의 붉은색은 물과 진흙에 뒤섞여 거의 검게 보인다. 풍경은 아름다운 배경에 머물지 않고, 무언가가 훼손되고 있다는 인상을 남긴다.

한세진이 “사람은 둘일 때가 좋아요”라고 말하는 장면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넷이 함께 있다가 둘만 밖으로 나왔다는 대화는 가벼운 농담처럼 시작하지만, “둘이 되면 말이 통하거든”이라는 말 뒤에는 다른 긴장이 생긴다. 작품은 인물을 곧바로 해명하기보다 말의 여백을 남겨 독자가 경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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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항상 옳고 너는 그른가 - 갈등, 변절, 내로남불의 시대를 이해하는 도덕심리학
오둔 달 지음, 배동근 옮김 / 북트리거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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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서로를 ‘비이성적’이라고 단정하는가
오둔 달 『왜 나는 항상 옳고 너는 그른가』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이 문장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정서를 압축한다. 정치, 젠더, 기후, 역사 인식 등 거의 모든 쟁점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도덕적 확신을 자명한 진실처럼 내세우고, 상대의 입장을 ‘감정에 휘둘린 변덕’이나 ‘이기심의 산물’로 치부한다. 코넬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오둔 달의 『왜 나는 항상 옳고 너는 그른가』(북트리거, 배동근 옮김)는 바로 이 익숙한 사고방식을 정면으로 문제 삼는다.

원제 Between Fixed and Fickle이 말해주듯, 책은 두 극단을 동시에 거부한다. 하나는 “도덕적 진리는 자명하고 변하지 않는다”는 고정된 진실의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은 감정과 이해관계에 쉽게 휘둘려 도덕을 바꾼다”는 변덕스러운 도덕의 신화다. 저자는 발달심리학의 실증 연구를 바탕으로 제3의 길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납득할 수 있고, 타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믿는 이유가 생길 때 도덕적 관점을 바꾼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 세 차원에서 일어난다.
첫째, 새로운 도덕적 관심사가 생기는 경우(관심사의 변화).
둘째, 이미 가진 관심사를 새로운 사실에 연결하는 경우(연결의 변화).
셋째, 서로 충돌하는 관심사들 사이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경우(조율의 변화).

어린아이가 “남을 때리면 안 된다”는 판단을 형성할 때부터, 성인이 기후위기나 역사적 불의를 새롭게 인식할 때까지, 도덕적 변화의 메커니즘은 동일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노예제가 한때 ‘자연스러운 질서’로 여겨졌던 사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그것을 명백한 악으로 보게 된 과정 역시 이 틀 안에서 설명된다.

책의 미덕은 도덕심리학을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 재판관’이 아니라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도구’로 위치시킨다는 점이다. 저자는 상대를 악마화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는가”를 먼저 탐색하자고 제안한다. 이는 단순한 상대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도덕적 대화의 가능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물론 한계도 있다. ‘이유’의 기준이 다소 느슨하게 느껴질 수 있고, 실제 정치적 갈등에서 제시되는 이유가 진정한 동기인지 사후 정당화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시의적절하다. ‘내로남불’이 일상어가 되고, 도덕적 확신이 곧 정치적 무기가 되는 시대에, 저자는 묻는다. 우리는 정말 상대의 이유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있는가.

도덕적 확신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자신의 확신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타인에게는 자명하지 않은지를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갈등과 단절이 일상화된 시대에, 이 책은 서로를 ‘비이성적 존재’로 낙인찍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지적 제동장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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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를 넘어서 - 판단하는 개발자
팍스 지음 / 비제이퍼블릭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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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코딩 도구가 개발자의 일상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요구사항을 자연어로 입력하면 코드 초안이 나오고, 테스트 케이스와 문서화, 리팩터링 아이디어까지 순식간에 제안된다. 이제 개발자가 마주한 질문은 단순히 “AI가 내 일을 대체할까?”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AI가 구현을 대신하는 환경에서 나는 무엇으로 가치를 증명할 것인가?”에 가깝다.

『코드를 넘어서 판단하는 개발자』는 바로 그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 책은 AI 시대에 개발자의 경쟁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구현 능력 중심의 평가에서 판단 능력 중심의 평가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코드를 빠르게 작성하는 역량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을 우선할지, 무엇을 과감히 제외할지, 어떤 위험을 감수할지, 그리고 그 결정을 조직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어떻게 제안할지가 앞으로의 개발자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1][2]

## 구현이 빨라질수록 판단은 더 중요해진다

이 책의 출발점은 AI가 개발 업무 전체를 없앤 것이 아니라, 그중에서도 ‘구현’의 일부를 급격히 빠르게 만들었다는 구분이다. 코드를 쓰는 시간이 줄었다고 해서 요구사항을 정의하는 일, 사용자 문제를 검증하는 일, 시스템 간 충돌을 점검하는 일, 비용과 성능을 관리하는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현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에 개발자는 더 많은 선택지 앞에 놓인다. 이전에는 인력과 시간의 제약 때문에 애초에 시도하지 못했던 기능도 이제는 “일단 만들어 보자”는 방식으로 빠르게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 시스템에는 더 많은 코드, 더 많은 의존성, 더 많은 데이터 흐름, 더 많은 검증 대상이 쌓인다. AI가 생산성을 높인 만큼, 잘못된 방향으로 빠르게 질주할 위험도 커진 셈이다.

책은 이 지점에서 개발자의 역할이 바뀐다고 진단한다. 과거에는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면, 앞으로는 “지금 이 기능을 만들 이유가 있는가”, “이 기능이 사업과 사용자에게 실제로 어떤 가치를 주는가”, “운영 비용과 장애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된다.

이 변화는 개발자를 구현자에서 판단자로 이동시킨다. 물론 판단자는 코드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을 이해하기 때문에 기술적 가능성과 사업적 필요, 속도와 안정성, 단기 목표와 장기 비용 사이의 충돌을 더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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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 뇌에서 시작하는 이명 치료
김영호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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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밤, 불이 꺼진 방 안에서 문득 귓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삐—”, “웅—”, 혹은 매미가 울 듯한 그 작은 소음.
처음에는 스치듯 지나가는 감각이라 여긴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면, 그 소리는 더 이상 단순한 소음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침묵을 깨뜨리는 이방인이 되고, 잠들기 직전의 평온을 훔쳐 가는 침입자로 변한다. 책은 닫히고, 생각은 흐트러지며, 무엇보다 “혹시 내 몸이 나를 배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이 스며든다.

김영호의 《이명은 어떻게 사라지는가》는 바로 그 불안의 한가운데에서 시작한다. 제목만 보면 이명을 단번에 지워 주는 치료 비법을 약속하는 책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건네는 진짜 이야기는 훨씬 더 깊고, 더 인간적이다. 이명은 단순히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귀와 뇌, 감정과 기억, 주의와 공포가 서로 얽혀 만들어 내는 복합적인 ‘경험’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이명은 소리 자체보다,
그 소리를 얼마나 위험하고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더 크게, 더 아프게 울린다.

——이명은 ‘소리’이면서, 동시에 ‘해석’이다——

책은 이명을 외부에 실재하는 소리가 없는데도 귀나 머릿속에서 소리, 혹은 소리와 유사한 감각을 느끼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사람마다 그 소리는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날카로운 비명이고, 어떤 이에게는 낮은 웅웅거림이며, 어떤 이에게는 바람 소리나 매미의 울음처럼 느껴진다. 스트레스와 심리적 충격이 그 소리를 불러내거나, 이미 존재하는 소리를 더 선명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덧붙인다.

여기서 저자의 시선은 흥미롭다. 우리는 이명이 들리면 거의 본능적으로 귀를 의심한다. 물론 난청, 중이염, 혈관의 이상처럼 실제 검사가 필요한 원인이 분명히 존재한다. 갑자기 시작된 이명, 한쪽 귀의 청력 저하, 맥박에 맞춰 두근거리는 소리라면 이비인후과 진료를 미뤄서는 안 된다.
그러나 검사 결과 특별한 위험이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소리는 계속될 수 있다. 그때 책은 우리의 뇌를 응시한다. 뇌는 본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동등하게 듣지 않는다. 냉장고의 낮은 진동, 시계의 초침,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처럼 늘 존재하는 자극은 시간이 지나면 의식의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을 걸러 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명을 들은 뒤 “왜 들리지?”, “절대 사라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며 반복해서 확인하기 시작하면, 뇌는 그 소리를 중요한 경고 신호로 재분류한다. 그러면 소리는 더 선명해지고, 더 거슬리고, 더 자주 의식의 중심으로 뛰어든다. 이 책이 말하는 이명의 고통은 바로 이 과정—소리가 아니라, 소리에 대한 해석과 주의가 만들어 내는 악순환—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왜 밤은 더 크게 들리는가——

이명 환자들이 흔히 겪는 어려움은 단순한 청각의 문제가 아니다. 소리가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그 소리를 향한 불안과 감시의 시선이 고통을 키운다.
밤이 되면 이명이 더 크게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소리가 갑자기 커진 것이 아니라, 낮 동안 우리를 둘러싸던 생활의 소음이 사라지고, 이명만이 홀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또 들린다”는 생각이 스며들고, 잠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더해지면 이명은 단순한 소음을 넘어 위협적인 존재로 변모한다.

이 과정은 거의 자동적으로 반복된다.
이명이 들린다.
혹시 심각한 문제는 아닐까 걱정한다.
소리가 들리는지 계속 확인한다.
뇌가 이명을 더 중요한 자극으로 인식한다.
이명이 더 크게, 더 자주 느껴진다.
불안과 피로가 커지고, 다시 이명에 더 민감해진다.
이 책의 미덕은 이 악순환을 환자의 ‘의지 부족’이나 ‘지나친 예민함’으로 몰아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신경 쓰지 마세요”라는 말은 이명 환자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할수록 오히려 더 집요하게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억지로 참거나 무시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이 소리를 위험 신호로 해석하지 않도록 뇌의 반응 방식을 천천히, 부드럽게 바꾸는 과정이다.

——진단의 신중함, 그리고 균형—-

이명은 눈에 보이지 않고, 기계로 완벽하게 측정하기 어려운 증상이다. 그래서 “검사 결과는 괜찮다”는 말과 “환자는 너무 괴롭다”는 사실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책은 청력검사, 병력 청취, 이명 설문, 귀와 신경계의 진찰을 종합해 상태를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이명의 양상에 따라 접근이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심장 박동과 비슷하게 두근거리는 박동성 이명, 갑자기 청력이 떨어지면서 시작된 이명, 한쪽 귀에서만 유난히 심하게 들리는 이명, 어지럼과 두통·균형 이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 큰 소음에 노출된 뒤 생긴 이명, 우울과 불안·불면으로 일상생활이 크게 무너진 경우—이런 상황에서는 단순히 “스트레스성”이라고 넘기기보다 정확한 진찰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책의 가장 신뢰할 만한 태도라고 느껴졌다. 이명을 무조건 마음의 문제로 환원하지도 않고, 반대로 모든 이명을 귀의 구조적 이상으로만 설명하지도 않는다. 필요한 검사는 제대로 받고, 위험한 원인은 놓치지 않되, 그다음에는 삶의 질을 회복하는 치료로 넘어가야 한다는 균형감이 있다.

——치료의 목표는 ‘소멸’이 아니라 ‘관계의 전환’—-

많은 사람이 이명 치료라고 하면 “삐 소리를 완전히 없애는 것”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이 책은 치료의 목표를 조금 다르게 제시한다.
그 목표는 이명을 완전히 지우는 것만이 아니라,
이명이 내 삶의 중심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명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사람을 만나기 싫고, 일을 못 하고, 계속 귀를 확인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 다시 말해, 소리는 남아 있더라도 그것이 더 이상 공포나 위협의 대상이 아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치료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방법들은 다양하다. 이명 재훈련 치료는 상담과 소리 치료를 함께 하며 뇌가 이명을 배경 소리로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소리 치료와 차폐는 백색소음이나 자연음으로 조용함을 줄여 이명을 덜 도드라지게 한다. 보청기는 난청이 있을 때 외부 소리를 다시 들려주어 이명의 존재감을 상대적으로 낮춘다. 인지행동치료는 “이명 때문에 인생이 끝났다”는 식의 파국적 사고와 공포 반응을 다룬다. 약물은 이명 자체보다 불면·불안·우울이 동반됐을 때 보조적으로 고려되고, 수술이나 시술은 혈관성 문제나 구조적 이상이 분명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논의된다.
특히 난청을 동반한 이명에서 보청기를 중요한 선택지로 보는 시각이 인상적이다. 보청기는 단순히 소리를 증폭하는 기기가 아니라, 잘 안 들리던 바깥 세계를 다시 열어 주어 이명을 상대적으로 덜 부각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면 약물에 대해서는 비교적 신중하다.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일반적인 이명을 약만으로 확실하게 없애는 치료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고 본다.
이런 태도는 오히려 믿음직하다. 너무 쉽게 “이 약을 먹으면 낫는다”거나 “이 기기를 쓰면 해결된다”고 약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나서]
《이명은 어떻게 사라지는가》는 이명을 완전히 없애는 마법 같은 해법을 약속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더 인간적이다.
이 책은 이명을 앓는 사람에게 “당장 소리를 없애지 못해도 삶을 되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건넨다. 귀에서 들리는 소리가 사라지는 것만이 회복은 아니다. 그 소리를 계속 감시하지 않아도 되고, 밤에 덜 두려워해도 되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다시 일상의 작은 즐거움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그것 역시 분명한 회복이다.

이명은 누구에게나 불안한 증상이다. 특히 갑작스러운 청력 저하, 한쪽 귀의 뚜렷한 변화, 맥박에 맞춘 소리, 심한 어지럼이나 신경학적 이상이 동반된다면 먼저 이비인후과에서 정확한 진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검사를 거친 뒤에도 이명이 남는다면, 이 책이 말하듯 소리를 없애려는 싸움만 계속하기보다 그 소리와 맺는 관계를 바꾸는 일도 치료의 중요한 일부가 될 수 있다.

이명 때문에 세상이 점점 좁아진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이명은 어떻게 사라지는가》는 조용하지만 현실적인 위로를 건넨다. “삐” 소리를 없애는 법만 알려 주기보다, 그 소리에 빼앗긴 일상을 다시 되찾는 길을 함께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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