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항상 옳고 너는 그른가 - 갈등, 변절, 내로남불의 시대를 이해하는 도덕심리학
오둔 달 지음, 배동근 옮김 / 북트리거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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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서로를 ‘비이성적’이라고 단정하는가
오둔 달 『왜 나는 항상 옳고 너는 그른가』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이 문장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정서를 압축한다. 정치, 젠더, 기후, 역사 인식 등 거의 모든 쟁점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도덕적 확신을 자명한 진실처럼 내세우고, 상대의 입장을 ‘감정에 휘둘린 변덕’이나 ‘이기심의 산물’로 치부한다. 코넬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오둔 달의 『왜 나는 항상 옳고 너는 그른가』(북트리거, 배동근 옮김)는 바로 이 익숙한 사고방식을 정면으로 문제 삼는다.

원제 Between Fixed and Fickle이 말해주듯, 책은 두 극단을 동시에 거부한다. 하나는 “도덕적 진리는 자명하고 변하지 않는다”는 고정된 진실의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은 감정과 이해관계에 쉽게 휘둘려 도덕을 바꾼다”는 변덕스러운 도덕의 신화다. 저자는 발달심리학의 실증 연구를 바탕으로 제3의 길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납득할 수 있고, 타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믿는 이유가 생길 때 도덕적 관점을 바꾼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 세 차원에서 일어난다.
첫째, 새로운 도덕적 관심사가 생기는 경우(관심사의 변화).
둘째, 이미 가진 관심사를 새로운 사실에 연결하는 경우(연결의 변화).
셋째, 서로 충돌하는 관심사들 사이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경우(조율의 변화).

어린아이가 “남을 때리면 안 된다”는 판단을 형성할 때부터, 성인이 기후위기나 역사적 불의를 새롭게 인식할 때까지, 도덕적 변화의 메커니즘은 동일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노예제가 한때 ‘자연스러운 질서’로 여겨졌던 사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그것을 명백한 악으로 보게 된 과정 역시 이 틀 안에서 설명된다.

책의 미덕은 도덕심리학을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 재판관’이 아니라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도구’로 위치시킨다는 점이다. 저자는 상대를 악마화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는가”를 먼저 탐색하자고 제안한다. 이는 단순한 상대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도덕적 대화의 가능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물론 한계도 있다. ‘이유’의 기준이 다소 느슨하게 느껴질 수 있고, 실제 정치적 갈등에서 제시되는 이유가 진정한 동기인지 사후 정당화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시의적절하다. ‘내로남불’이 일상어가 되고, 도덕적 확신이 곧 정치적 무기가 되는 시대에, 저자는 묻는다. 우리는 정말 상대의 이유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있는가.

도덕적 확신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자신의 확신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타인에게는 자명하지 않은지를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갈등과 단절이 일상화된 시대에, 이 책은 서로를 ‘비이성적 존재’로 낙인찍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지적 제동장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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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를 넘어서 - 판단하는 개발자
팍스 지음 / 비제이퍼블릭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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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코딩 도구가 개발자의 일상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요구사항을 자연어로 입력하면 코드 초안이 나오고, 테스트 케이스와 문서화, 리팩터링 아이디어까지 순식간에 제안된다. 이제 개발자가 마주한 질문은 단순히 “AI가 내 일을 대체할까?”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AI가 구현을 대신하는 환경에서 나는 무엇으로 가치를 증명할 것인가?”에 가깝다.

『코드를 넘어서 판단하는 개발자』는 바로 그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 책은 AI 시대에 개발자의 경쟁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구현 능력 중심의 평가에서 판단 능력 중심의 평가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코드를 빠르게 작성하는 역량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을 우선할지, 무엇을 과감히 제외할지, 어떤 위험을 감수할지, 그리고 그 결정을 조직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어떻게 제안할지가 앞으로의 개발자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1][2]

## 구현이 빨라질수록 판단은 더 중요해진다

이 책의 출발점은 AI가 개발 업무 전체를 없앤 것이 아니라, 그중에서도 ‘구현’의 일부를 급격히 빠르게 만들었다는 구분이다. 코드를 쓰는 시간이 줄었다고 해서 요구사항을 정의하는 일, 사용자 문제를 검증하는 일, 시스템 간 충돌을 점검하는 일, 비용과 성능을 관리하는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현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에 개발자는 더 많은 선택지 앞에 놓인다. 이전에는 인력과 시간의 제약 때문에 애초에 시도하지 못했던 기능도 이제는 “일단 만들어 보자”는 방식으로 빠르게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 시스템에는 더 많은 코드, 더 많은 의존성, 더 많은 데이터 흐름, 더 많은 검증 대상이 쌓인다. AI가 생산성을 높인 만큼, 잘못된 방향으로 빠르게 질주할 위험도 커진 셈이다.

책은 이 지점에서 개발자의 역할이 바뀐다고 진단한다. 과거에는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면, 앞으로는 “지금 이 기능을 만들 이유가 있는가”, “이 기능이 사업과 사용자에게 실제로 어떤 가치를 주는가”, “운영 비용과 장애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된다.

이 변화는 개발자를 구현자에서 판단자로 이동시킨다. 물론 판단자는 코드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을 이해하기 때문에 기술적 가능성과 사업적 필요, 속도와 안정성, 단기 목표와 장기 비용 사이의 충돌을 더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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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 뇌에서 시작하는 이명 치료
김영호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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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밤, 불이 꺼진 방 안에서 문득 귓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삐—”, “웅—”, 혹은 매미가 울 듯한 그 작은 소음.
처음에는 스치듯 지나가는 감각이라 여긴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면, 그 소리는 더 이상 단순한 소음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침묵을 깨뜨리는 이방인이 되고, 잠들기 직전의 평온을 훔쳐 가는 침입자로 변한다. 책은 닫히고, 생각은 흐트러지며, 무엇보다 “혹시 내 몸이 나를 배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이 스며든다.

김영호의 《이명은 어떻게 사라지는가》는 바로 그 불안의 한가운데에서 시작한다. 제목만 보면 이명을 단번에 지워 주는 치료 비법을 약속하는 책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건네는 진짜 이야기는 훨씬 더 깊고, 더 인간적이다. 이명은 단순히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귀와 뇌, 감정과 기억, 주의와 공포가 서로 얽혀 만들어 내는 복합적인 ‘경험’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이명은 소리 자체보다,
그 소리를 얼마나 위험하고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더 크게, 더 아프게 울린다.

——이명은 ‘소리’이면서, 동시에 ‘해석’이다——

책은 이명을 외부에 실재하는 소리가 없는데도 귀나 머릿속에서 소리, 혹은 소리와 유사한 감각을 느끼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사람마다 그 소리는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날카로운 비명이고, 어떤 이에게는 낮은 웅웅거림이며, 어떤 이에게는 바람 소리나 매미의 울음처럼 느껴진다. 스트레스와 심리적 충격이 그 소리를 불러내거나, 이미 존재하는 소리를 더 선명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덧붙인다.

여기서 저자의 시선은 흥미롭다. 우리는 이명이 들리면 거의 본능적으로 귀를 의심한다. 물론 난청, 중이염, 혈관의 이상처럼 실제 검사가 필요한 원인이 분명히 존재한다. 갑자기 시작된 이명, 한쪽 귀의 청력 저하, 맥박에 맞춰 두근거리는 소리라면 이비인후과 진료를 미뤄서는 안 된다.
그러나 검사 결과 특별한 위험이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소리는 계속될 수 있다. 그때 책은 우리의 뇌를 응시한다. 뇌는 본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동등하게 듣지 않는다. 냉장고의 낮은 진동, 시계의 초침,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처럼 늘 존재하는 자극은 시간이 지나면 의식의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을 걸러 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명을 들은 뒤 “왜 들리지?”, “절대 사라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며 반복해서 확인하기 시작하면, 뇌는 그 소리를 중요한 경고 신호로 재분류한다. 그러면 소리는 더 선명해지고, 더 거슬리고, 더 자주 의식의 중심으로 뛰어든다. 이 책이 말하는 이명의 고통은 바로 이 과정—소리가 아니라, 소리에 대한 해석과 주의가 만들어 내는 악순환—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왜 밤은 더 크게 들리는가——

이명 환자들이 흔히 겪는 어려움은 단순한 청각의 문제가 아니다. 소리가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그 소리를 향한 불안과 감시의 시선이 고통을 키운다.
밤이 되면 이명이 더 크게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소리가 갑자기 커진 것이 아니라, 낮 동안 우리를 둘러싸던 생활의 소음이 사라지고, 이명만이 홀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또 들린다”는 생각이 스며들고, 잠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더해지면 이명은 단순한 소음을 넘어 위협적인 존재로 변모한다.

이 과정은 거의 자동적으로 반복된다.
이명이 들린다.
혹시 심각한 문제는 아닐까 걱정한다.
소리가 들리는지 계속 확인한다.
뇌가 이명을 더 중요한 자극으로 인식한다.
이명이 더 크게, 더 자주 느껴진다.
불안과 피로가 커지고, 다시 이명에 더 민감해진다.
이 책의 미덕은 이 악순환을 환자의 ‘의지 부족’이나 ‘지나친 예민함’으로 몰아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신경 쓰지 마세요”라는 말은 이명 환자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할수록 오히려 더 집요하게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억지로 참거나 무시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이 소리를 위험 신호로 해석하지 않도록 뇌의 반응 방식을 천천히, 부드럽게 바꾸는 과정이다.

——진단의 신중함, 그리고 균형—-

이명은 눈에 보이지 않고, 기계로 완벽하게 측정하기 어려운 증상이다. 그래서 “검사 결과는 괜찮다”는 말과 “환자는 너무 괴롭다”는 사실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책은 청력검사, 병력 청취, 이명 설문, 귀와 신경계의 진찰을 종합해 상태를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이명의 양상에 따라 접근이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심장 박동과 비슷하게 두근거리는 박동성 이명, 갑자기 청력이 떨어지면서 시작된 이명, 한쪽 귀에서만 유난히 심하게 들리는 이명, 어지럼과 두통·균형 이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 큰 소음에 노출된 뒤 생긴 이명, 우울과 불안·불면으로 일상생활이 크게 무너진 경우—이런 상황에서는 단순히 “스트레스성”이라고 넘기기보다 정확한 진찰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책의 가장 신뢰할 만한 태도라고 느껴졌다. 이명을 무조건 마음의 문제로 환원하지도 않고, 반대로 모든 이명을 귀의 구조적 이상으로만 설명하지도 않는다. 필요한 검사는 제대로 받고, 위험한 원인은 놓치지 않되, 그다음에는 삶의 질을 회복하는 치료로 넘어가야 한다는 균형감이 있다.

——치료의 목표는 ‘소멸’이 아니라 ‘관계의 전환’—-

많은 사람이 이명 치료라고 하면 “삐 소리를 완전히 없애는 것”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이 책은 치료의 목표를 조금 다르게 제시한다.
그 목표는 이명을 완전히 지우는 것만이 아니라,
이명이 내 삶의 중심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명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사람을 만나기 싫고, 일을 못 하고, 계속 귀를 확인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 다시 말해, 소리는 남아 있더라도 그것이 더 이상 공포나 위협의 대상이 아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치료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방법들은 다양하다. 이명 재훈련 치료는 상담과 소리 치료를 함께 하며 뇌가 이명을 배경 소리로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소리 치료와 차폐는 백색소음이나 자연음으로 조용함을 줄여 이명을 덜 도드라지게 한다. 보청기는 난청이 있을 때 외부 소리를 다시 들려주어 이명의 존재감을 상대적으로 낮춘다. 인지행동치료는 “이명 때문에 인생이 끝났다”는 식의 파국적 사고와 공포 반응을 다룬다. 약물은 이명 자체보다 불면·불안·우울이 동반됐을 때 보조적으로 고려되고, 수술이나 시술은 혈관성 문제나 구조적 이상이 분명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논의된다.
특히 난청을 동반한 이명에서 보청기를 중요한 선택지로 보는 시각이 인상적이다. 보청기는 단순히 소리를 증폭하는 기기가 아니라, 잘 안 들리던 바깥 세계를 다시 열어 주어 이명을 상대적으로 덜 부각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면 약물에 대해서는 비교적 신중하다.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일반적인 이명을 약만으로 확실하게 없애는 치료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고 본다.
이런 태도는 오히려 믿음직하다. 너무 쉽게 “이 약을 먹으면 낫는다”거나 “이 기기를 쓰면 해결된다”고 약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나서]
《이명은 어떻게 사라지는가》는 이명을 완전히 없애는 마법 같은 해법을 약속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더 인간적이다.
이 책은 이명을 앓는 사람에게 “당장 소리를 없애지 못해도 삶을 되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건넨다. 귀에서 들리는 소리가 사라지는 것만이 회복은 아니다. 그 소리를 계속 감시하지 않아도 되고, 밤에 덜 두려워해도 되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다시 일상의 작은 즐거움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그것 역시 분명한 회복이다.

이명은 누구에게나 불안한 증상이다. 특히 갑작스러운 청력 저하, 한쪽 귀의 뚜렷한 변화, 맥박에 맞춘 소리, 심한 어지럼이나 신경학적 이상이 동반된다면 먼저 이비인후과에서 정확한 진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검사를 거친 뒤에도 이명이 남는다면, 이 책이 말하듯 소리를 없애려는 싸움만 계속하기보다 그 소리와 맺는 관계를 바꾸는 일도 치료의 중요한 일부가 될 수 있다.

이명 때문에 세상이 점점 좁아진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이명은 어떻게 사라지는가》는 조용하지만 현실적인 위로를 건넨다. “삐” 소리를 없애는 법만 알려 주기보다, 그 소리에 빼앗긴 일상을 다시 되찾는 길을 함께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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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는 음식들 - 선재 스님의 인생 발효 에세이
선재 지음 / 나무의마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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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재료를 음식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묻는다면, 나는 칼이나 불보다 먼저 요리사의 시선을 떠올린다. 같은 쑥을 보고도 누군가는 향이 강한 식재료를 보고, 누군가는 봄을 견디고 올라온 생명을 본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손질하는 방식도, 완성하려는 맛도 달라진다.

《나를 살리는 음식들》은 사찰음식을 통해 그 시선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이 책에서 음식은 취향의 표현이나 건강을 위한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자연과 타인에게 빚지고 살아가는 인간이, 매일의 식탁에서 그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 된다.

## 맛은 더하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요리사는 맛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래서 때로는 부족한 인상을 양념으로 채우고, 더 강한 자극으로 기억에 남으려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사찰음식은 반대 방향을 보여 준다. 덜어 낸 자리에서 재료의 향이 드러나고, 조용한 맛을 알아차리기 위해 먹는 사람의 감각도 달라져야 한다.

여기서 절제는 포기가 아니다. 무엇이든 더할 수 있지만 더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재료가 가진 맛을 내 솜씨보다 앞에 놓는 것이다. 그것은 요리사의 존재감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요리사의 판단을 더 섬세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좋은 요리에는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구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 한 접시가 품은 관계

책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새싹을 씻는 장면이다. 물살에 새싹이 다치지 않도록 그릇에 물을 떠 살살 씻고, 떨어진 흙과 벌레는 다시 밭으로 돌려보내라는 가르침. 음식이 되기 전의 재료뿐 아니라, 그 곁에 있던 작은 생명까지 살피는 손길이다.

요리사의 손은 재료를 자르고 익히며 다른 형태로 만든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재료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장면은 요리란 자연을 지배해 접시에 올리는 일이 아니라, 자연에서 받은 것을 어떻게 다룰지 매번 결정하는 일임을 일깨운다. 한 끼는 요리사 혼자 이룬 성취가 아니다. 흙과 물, 계절과 시간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 음식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요리사는 재료를 낭비하지 않으려 한다. 절약이 비용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관계를 잊지 않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 기다림도 조리의 일부다

발효 음식에 관한 대목을 읽으며 시간 역시 재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사는 불의 세기와 조리 시간을 조절할 수 있지만, 발효를 마음대로 앞당길 수는 없다. 기다리는 동안 음식은 변하고, 요리사는 그 변화를 살피며 적절한 순간을 판단한다.

빠르게 완성하는 능력만이 실력은 아니다. 아직 손대지 말아야 할 때를 아는 것, 변화를 재촉하지 않는 것 또한 요리의 기술이다. 책 속 발효는 내게 그런 겸손을 가르쳤다. 요리사는 모든 맛의 창조자가 아니라, 재료와 시간이 만나는 과정을 돕는 사람일 수 있다.

## 누구를 살리는 음식인가

제목의 ‘살리는’이라는 말은 쉽게 소비해서는 안 될 표현이다. 모든 음식이 병을 낫게 할 수는 없고, 정성껏 만들었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맞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요리사라면 그 말 앞에서 더 조심스러워져야 한다. 먹는 사람마다 몸의 상태와 필요한 맛, 식사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에서 읽은 ‘살리는 음식’은 특별한 효능을 약속하는 음식이 아니다. 재료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먹는 사람에게 내 취향을 강요하지 않으며, 한 끼를 먹은 뒤의 편안함까지 생각하는 음식이다. 그것은 완벽한 식단의 이름이 아니라 요리사가 지켜야 할 방향에 가깝다.

나는 철학이 있는 셰프가 되고 싶다. 철학을 말로 설명하는 셰프보다, 매일 반복하는 선택으로 드러내는 셰프가 되고 싶다. 새싹을 씻는 손의 힘, 양념을 멈추는 순간, 장이 익기를 기다리는 인내, 접시를 내기 전 먹을 사람을 떠올리는 짧은 시간에 그 철학이 있어야 한다.

《나를 살리는 음식들》은 내게 좋은 요리의 답을 하나로 정해 주지 않았다. 대신 요리를 시작할 때마다 되돌아갈 질문을 남겼다. **이 음식은 무엇을 살리고, 나는 무엇을 소홀히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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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 인류세 - 인간과 생태계를 잇는, 인류학의 새로운 자연사
애나 로웬하웁트 칭 외 지음, 김희정 옮김 / 해나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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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는 하나의 거대한 재앙이 아니다.
수많은 ‘패치’들이 모여 만들어진, 울퉁불퉁하고 불균질한 현실이다.
《버섯의 끝에서》로 전 세계 독자를 사로잡았던 안나 칭이 동료들과 함께 쓴 이 책은, 기후위기와 환경 파괴를 단일한 행성 규모의 이야기로만 바라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대신 우리의 발밑과 일상 가까이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변화들—야생화된 존재들, 의도치 않은 생태적 결과들—에 주목하라고 권한다.

노예무역 선박에 실려 전 세계로 퍼진 쥐와 모기, 수로를 막아버린 물 히아신스, 목재와 함께 이동해 대규모 소나무를 죽인 딱정벌레, 비료 유출로 폭발적으로 늘어난 빗해파리… 이 모든 것들이 ‘패치’의 사례다. 인간 인프라가 만들어냈지만 더 이상 인간의 통제 아래에 있지 않은 생명과 관계들. 저자들은 이를 ‘feral(야생화된)’이라고 부른다.

책은 단순한 재앙의 목록이 아니다. 손상된 지구 위에서도 다종이 함께 살아가는 가능성을 포착하려는 시도다. 《Feral Atlas》 프로젝트의 책 버전으로, 관찰하고, 이름을 붙이고, 역사와 관계를 추적하는 새로운 ‘자연사’의 방법을 제안한다.

학술적 밀도가 높지만, 사례가 생생하고 문장이 문학적이어서 읽는 재미가 있다. 기후위기 담론에 지친 독자, 다종 인류학과 환경인문학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특히 추천한다. 《버섯의 끝에서》를 인상 깊게 읽었다면 반드시 이어서 보길 권한다.

한줄요약: Anthropocene(인류세)은 단일한 행성 규모의 현상이 아니라, 수많은 ‘패치(patch)’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불균질하고 국지적인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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