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 국내 최고 필적 전문가 구본진 박사가 들려주는 글씨와 운명
구본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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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쓰는 것이 앞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금 이 순간 나 역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데...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소위 "악필"의 소유자들이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천재가 아니다. 
난 궁금하다 "천재는 악필이다"라는 속설이 참인지 거짓인지. 

학생들의 글씨체를 확인해 보기 위해 플래너를 최대한 자세하게 작성하도록 한다. 통계의 범위에 제한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정갈한 글씨=우등생"이란 공식이 어느 정도 통했다. 이 책에 글씨에 대한 위인들이 남긴 말로도 내가 세운 명제가 증명이 된다. 

이황, "마음이 바르면 글씨도 바른다."
송시열, "심획이자 덕성의 표출"
빌헬름 프레이어는 1895년 그의 저서 <<필적심리>>에서 글씨를 쓰는 신체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는 것은 대뇌이므로 글씨를 '뇌의 흔적'이라고 말했다. 


과연 필체를 바꿀 수있을까? 필체가 그 사람의 특징을 규정짓는 한 요소라면 좋게 바꾸는 것도 남은 삶에 도전해 볼 만한 가치있는 것 아닐까? 저자는 스스로 변화시키고 싶다면 글씨 연습은 가장 확실하면서도 빠른 방법이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의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러분도 같이 도전해 보면 어떨까? 그의 체크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하루에 20분 이상 매일 연습하라"
"줄 없는 종이에 연습하라"
"평소에 쓰는 필기루를 이용하라"
"자신의 이름부터 시작하라"
"좋아하는 문장이나 글을 써라"
"하루도 빠짐없이 40일 이상 연습해라"
"미리 써둔 것을 보고 베끼지 마라"
"천천히 써라".
"한꺼번에 너무 많이 바꾸려고 하지 마라"

손글씨를 잘 쓰면 인생이 달라질까? 궁금하면 이 책 3부를 펼쳐 읽으면 된다.
3부 중에 아이들 가르치는 입장에서 "공부를 잘 하고 싶으면"에 주목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글씨는 공통점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즉 그들의 글씨에서 긍정적 사고, 열정, 끈기, 자신감, 기세 강인함 등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책 124p) 그렇기 때문에 성공하기 위해서 이런 위인들의 필체를 따라써 보는 필사가 좋은 훈련이 된다. 그래서 준비해 보았다. 

안중근 의사의 글에는 강인한 기백이

보인다.

오세창 의사의 글에는 창의성이 넘쳐난다.

우리 선조들의 글씨를 우리는 배워야 한다.



정갈한 반듯한 글씨체까지는 과욕이라면 적어도 책 158p에 적혀 있는 피해야 할 글씨체는 안 되도록 노력하면 좋겠다. 글자 크기나 자간 행간이 들쭉날쭉하면 정서가 불안하고 변덕스럽고 충동적이라는 것이다. 범죄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란다!!! 남이 알아보기 힘든  글씨는 의사소통이 원활치 못하고 생각이 정리되어 있지 않음을 드러낸다고 한다. 행간이 지나치게 좁으면 그 역시 판단력이 미흡하고 자신감이 부족한 것으로 강력 범죄자들에게 나타난다. 글씨가 오른쪽으로 기울이지는 사람들의 말로는 비참했는데 대표적으로 히틀러가 그렇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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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탕스
이우 지음 / 몽상가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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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디자인부터 읽고 싶어졌다.

나도 싱클레어였던 적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확신했다. 민재가 데미안이라고. 그리고 내심 그에게 모종의 구원을 요구하고 있었다."


민재는 늘 책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나도 늘 책을 들고 다녔다. 책을 들고 다니며 그 책의 권위가 나의 권위라도 되는냥.


그렇게 늘상 들고 다니며 폼 잡던 책을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읽고 있다.


"여기에 오기까지 소중한 것들과 이별해야만 했다. 버리고 또 비워야만 했다. 

 (중략) 

비워낸다는 것은 본능에 충실해진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중략)

온전한 내가 되기 위해서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태어나는 것이다"


노자의 虛와 空 같은 것 얘기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비워내고 살고 싶은데 여전히 많은 것을 소유하며 살고 있다.


진정한 레지스탕스야말로 노자가 아닐까? 

이런 21세기 돈에 쪄든 병든 우리를 한 대 세게 후려칠 수 있는

우리 자신을 개혁하는 스스로의 혁명!


":거울은 유리 뒷면에 수은을 입혀 만들어. 

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건 유리에 발라진 수은이야.

너는 언제부턴가 이 수은에 중독된게 아닐까."


데미안이 그리웠고 이제는 데미안이 되어주고 싶다.

이 조차도 너무나 거룩하기까지한 소유욕의 발로 아닐까?


"그림 속 보잘것없는 사내는, 이제 더 이상 민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집에 가서 헤세의 책을 다시 꺼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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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철학이 필요해 - 고민이 너무 많아서, 인생이 너무 팍팍해서
고바야시 쇼헤이 지음, 김복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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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은 왜 필요한가? 대학에서 철학과가 왜 있어야 하는가? 다시 대학입시를 치른다면 나는 철학과를 정녕 가고 싶은가?

이 책을 받고서 처음 떠올렸던 질문들이다. 최근 학부모와 상담을 하면서 담당 아이의 진로를 '철학과'로 추천했다. 그랬더니 반응이 냉담했다. 철학과를 나와서 밥은 먹고 다니나? 조용히 나는 이 책을 꺼내주려고 작정한다 그런 부모들에게 혹은 우리 자신에게 . 

진정한 공부를 하고 사유의 틀를 머리 속에 심고자 하는 好學者라면 정말 두고 두고 써먹을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얻고자 한다면 감히 추천하겠다. 나는 철학과를 다시 다니고 싶다. 다만 한문공부를 초중고를 다니면서 꾸준히 해서 동양고전에 대해 안목을 기르는 것이 먼저다. 왜냐면 우리는 싫건 좋건 동양적 삶의 틀에서 자라났고 지금도 거기 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 대학에 가서 서양철학을 철저히 배우면서 영어실력을 갈고 닦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불어, 독어 하나 정도는 읽고 이해하는 경지까지는 가도록해 보자. 

철학이 막연히 우리와는 거리가 먼 사유의 체계 즉 전문가들 갖고 노는 영역이라고만 생각했다면 이제 우리는 "그래서 철학이 필요해"를 읽어야 한다. 철학에 대한 이런 식의 관념이 형성된 것은 개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의 저작을 분류하면서 '형이상학'이란 말을 도입한 탓인 것 같다. META PHYSICS의 번역인데 그 번역부터가 잘못되어 일반 대중과의 삶과 유리시켜 버렸다. "세상에 대한 고민" "어떻게 고민을 해결할 것인가?" "고민해결학" 등 등. 학문이 자기들만의 언어 세계에서 해탈할 필요가 있다. 좀 쉽게 쉽게 쓰자.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면 우리나라에 그의 저작 전체는 아직도 번역이 요원해 보인다.(현재 천병희 선생이 그리스어 원전 번역 시리즈를 계속 출간하고 계신다) 그리스문명이 로마에 함락되고 크리스트교 공인되는 과정을 거치고 근동아시아가 이슬람화되면서 서구세계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에 가서야 아리스토텔레스가 재등장한다. 이슬람 문명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더 많이 연구되었고 추후 서구세계에 역수입되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그나마 우리에게 가장 알려진 저작물이어서 여러 버젼으로 소개되어 있다. 우리나라 번역물 사이에 비교 혹은 평가를 해 준다던지 언급한 철학자에 대한 연구서 중에 꼭 참고할 만한 해설서를 소개해 주는 것까지 나는 기대했다. 

서양철학을 본격적으로 접할때 플라톤 아리스트텔레스를 채 넘어보기도 전에 좌절하곤 한다. 버트란트 러셀의 서양철학사 책이 그래서 고대그리스 시대편 부분만 까맣고 뒤로 가면 처음 산 그대로인 경우가 많았다(적어도 나는 그랬다). 요즘 나는 그냥 페이지를 뒤로 확 넘겨서 궁금한 철학자로 바로 넘어간다. 서양철학의 이단아들이 나온 근현대철학이  재밌다. 화이트헤드(白頭...이름 자체로 흥미롭지 않나?)가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다"라고 하셨지만 본인 부터가 각주 그 이상의 유의미한 철학 체계를 세웠고 특히 '스피노자'부터 혁명적인 변화는 있어왔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어야는데 스피노자의 삶 자체를 알아야한다. 창비에서 '철학의 이단자들'이란 만화책에 그의 삶과 철학이 쉽게 잘 소개되어 있다. 그 책을 편집한 스티븐 내들러라고 스피노자 철학의 권위자인데 내 서재에는 Spinoza's Ethics An Instruction라는 어마무시한 원고가 모셔져 있다. 스피노자 철학하러 대학원 다시 갈까 싶다. 

 

스피노자는 당대에 유대인으로 유대교에 버림받고 기독교에서도 유배되었다. 철저히 스스로 고독함을 자처했고 부모의 유산도 거부한 채 렌즈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혼자만의 연구를 했던 사람이다. 그가 혼자 써내려간 글은 한참 있다가 니체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또한 쇼펜하우어도 고독과 사색의 길에 서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사상적 동지였다. 나도 그 길에 동행하고 싶다. 

 

니체사상은 서양철학을 공부할 때 한번쯤은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고 싶은 소위 있어보이는 무언가였다.  책세상에서 전집이 나온 걸로 소위 '눈팅'만 나는 하고 있다. 니체 입문서로 얼마전 추천받은 책을 책장에 고이 모셔 놓기만 했는데 "니체극장"이란 책이 있다. 니체사상의 전모를 가장 쉽게 접근하게 해 줄 책으로 사료된다. 서양철학의 한계를 특히 교부철학과 데카르트 이후 소위 이성주의적 사유체계에 신물난 사람들에게 니체는 사이다같다고 해야할까? 다만 절대정신으로 서양의 근대적 인간의 사고틀을 제공했던 독일에서 히틀러가 나온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의 전집을 몽땅 읽어내면 답을 찾을 수 있을지.

'에크리'를 이 글을 쓰고 있는 2019년 마지막 날 충동주문했다. 번역이 가장 힘든 책으로 손꼽히는 책이고 이해하기도 당연히 어렵다. 지금 소개하고 있는 "그래서 철학이 필요해"를 읽으며 나는 우리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철학자들의 대작에 도전하고 싶은 학구열에 불지피는 불쏘시개 역할을 이 책은 하고 있다. 무의식을 프로이트보다 그 깊이 파고들었다고 평가받은 라캉에 대해 이제 정주행하고 싶어졌다. 

 

'몰입의 즐거움'의 저자 미하이칙센미하이의 자기계발이라는 것을 접할때 제일 먼저 언급되는 사람이다. 몰입할때 자기존재감마저 잃는 lose yourself의 경지! 그런 경지에 오르면 남과 비교해서 생기는 우울감, 비관, 낙담 등의 온갖 현대적 신경병증이 생길 여지도 없을 것이다. 책에서는 일본의 대가 '마루야마 마사오'가 언급되었는데 우리 학계가 일본 학계를 꼭 따라잡아야 한다고 볼 때 나 개인적으로는 '마루야마 마사오'만큼은 공부하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일본불매운동하는 시기에 일본인 찬향한다고 욕먹을 줄은 모르겠지만 마루야마 마사오의 필로로기 수준에 필적한 학자를 우리 대학이 얼마나 배출했는가? 내 서재에 그의 저작 "일본정치사상사연구"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이 꽂혀있다. 일본어로 그의 책을 읽고 그가 인용한 레퍼런스를 내가 소화해내기에도 인생은 ̧은 것 같다. 

 

이 책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철학 스토리"는 이 책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책의 본문보다 책의 서문이나 옮긴 이의 후기를 좋아하는데 마치 성룡의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 보는 기분이랄까? 칸트 헤겔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변증법의 드라마같은 독일철학! 내년 2020년이면 베토벤 사후 250주년을 기념하는 해가 된다. 교향곡을 9개 썼는데 그 이후 작곡가들에게 그 9라는 숫자의 의미는 자못 크다. "베토벤 심포니", "베토벤 9개의 교향곡"이라는 저작이 소개되어 있는데 일독을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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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민주주의 - 억만장자 코크는 어떻게 미국을 움직여왔는가
낸시 매클린 지음, 김승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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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를 정의하는 혹은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를 꼽자면, 민주주의 자본주의 혹은 리버럴리즘이다.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국가가 미국이다. 그리고 그 직접적인 영향 아래 있는 국가가 우리가 딛고 있는 이 한반도의 남쪽이다. 

미국의 썩어빠진 공공서비스, 공공교통망... 너무나 미국적이라는 것으로 도배되어 전혀 불편?해 하지 않는 듯한 불편들. 미국에는 왜 고속철도가 없는 것일까? 왜 기차여행이 안 되는 것일까? 그럼에도 미국으로 넘어가려는 밀입국자로 가득한 멕시코 국경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트럼프의 등장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끝이라고 선언을 했고 실제 미군은 나토에서도 발을 빼고 시리아에서도 발을 빼고 있다.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도입하려고 했던 시도들은 곳곳에서 암초에 부딪혔다. 리비아 이집트를 필두로 벌어졌던 아랍의 봄은 철저히 실패했고 그 이전보다 민중의 삶은 더 망가졌고 나라가 존망위기에 처하는 지경까지 되었다. 브라질, 칠레 등 남미 국가도 친미군부 세력들을 딛고서 민주화 투사들이 정권 전면에 나섰다가 지금은 또다른 위기에 봉착했다. 친미독재군부 잔족세력들에 의해 길들여진 사법부들이 실정법이라는 허울을 쓰고서는 민주화 세력에 대해 사법테러를 자행했다. 브라질의 룰라 전 대통령과 볼리비아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처한 현실에서 나는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을 반추해 보게 된다.


"부유한 우파 후원자들이 노조를 없애고, 투표권을 제한하고, 기업 규제를 

완화하고, 과세를 부유층이 아닌 사람들에게로 옮기고, 심지어 기후변화를 부인하려 하는 후보와 단체에 막대한 "다크 머니"를 쏟아부었다는..."


저자는 위와 같은 움직임에 지침을 주고 있는 사상이 무엇인지 소위 신자유주의 우파 학자들 사이의 관련성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하이예크 모두 열심히 공부했던 경제학자들인데 저자가 찾은 퍼즐 조각은 "제임스 맥길 뷰캐넌"이었다.

뷰캐넌 공공선택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으로만 알고 있고 거기까지 끝이었다. 뷰캐넌 시대는 케인즈언의 지배하던 시기였기에 정부의 시장 간섭? 통제는 너무나 당연한 시대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 뷰캐넌은 남다른 길을 걷기로 작정했다. 뷰캐넌이 공공재정을 세부전공으로 택했을 때만 학문의 주된 관심은 시장실패였다. 그런데 뷰캐넌은 사악한?(저자의 용어를 빌려와) 정부실패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정부의 재정적자를 마녀사냥한 이론적 기초를 쌓은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문제는 프랑스 혁명 시기로부터 내려오는 좌파 우파의 구분과도 그 궤를 달리한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시장옹호론자들은 공공교육을 열렬히 옹호하였다. 신자유주의는 공공교육을 통해 더 많은 정치 참여, 사회 참여가 자신들의 사유재산 추구에 장애가 될 것임을 파악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이 통제받고 싶어 하지 않는 "당신"은 '미국의 다수 국민'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 은밀한 운동의 기획자들은 그들을 지지하고 돈을 공급하고 그 이익을 향유하는 소위 자본가계급에게 제약없는 자본주의를 선물하려는 것이다. 그들의 자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와 다르다.  

뷰캐넌 이전에 하이에크는 정부가 커지면 곧 모든 자유를 갉아먹고 전체주의적 사회를 낳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9년 겨울 광화문에서 기독교라는 가면을 쓴 정치집회가 떠오르는 게 왜일까... 자유한국당같은 집단에 정권을 내어줄 수 없기에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 한다. 2019/12/16 소위 이른바 태극기모독하는 일련의 무리들이 자유한국당의 사주로 국회에 난입했다. 재벌중심 왜곡된 경제 시스템이 파치는 이 땅에 재벌과 검찰과 언론이 결탁하여 자신들의 이해관계 추구를 극대화하려는 발악이다. 


대다수 미국인은 우리의 계획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승리할 수 있으려면,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바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기보다는 은밀한 전략을 통해 장막 뒤에서 활동해야 한다."


깨어있는 우리 시민들은 이런 암약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읽자 이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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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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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란트 러셀 서양철학사에서 소크라테스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Socrates is a very difficult subject for the historian. There are many men concerning whom it is certain that very little is known, and other men concerning whom it is certain that a great deal is known; but in the case of Socrates the uncertainty is as to whether we know very little or a great deal." 


내가 처음 들은 소크라테스는 브라질의 축구선수이다. 축구선수였고 군부독재를 비판했으며 본인은 의사이기도 했다. 193 장신이었지만 미드필더로 브라질 축구 황금시대를 이끌었으나 아쉽게 월드컵 우승은 이루지 못했다. 
여하튼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에 걸맞는 한 시대를 풍미한 축구영웅이었다. 다만 70세까지 살지는 못했다. 골초에 과음까지 했으니...

책 이름이 왜 "변명"인지 이제는 바꿔야 할 때도 된 듯 싶다. apology의 번역과정에서 변명으로 굳어진 듯한데 "변론"이 적합해 보인다. 이 책을 굳이 읽어 봐야 할 이유가 있다면 역사적 소크라테스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단편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예수를 느껴야 우리같은 사람도 예수처럼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소크라테스도 그런 것 아닐까? 

소크라테스는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았고 벌금형 제안했으나 결국 사형언도를 받고 처형되었다.

위의 단편 하나를 갖고 플라톤은 변명, 크리톤, 파이돈까지 풍부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 공생애를 이용하여 마가마태누가의 공관복음과 전혀 다른 형태의 요한복음까지 그려낸 헤브라이즘에 대항한 헬레니즘적 전범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읽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 유명한 '악법도 법이다'란 구절을 확인하기 위해서일까? 충격적인 사실을 말하겠다. 사실 그런 그 구절은 없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_@
78p 중 "당신은 우리법 중에서 결혼에 관해 규정하는 법을 악법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불만이 있습니까?"에서 처음으로 악법이란 단어가 등장하기는 한다.  

The Apology gives a clear picture of a man of a certain type: a man very sure of himself, high-minded, indifferent to worldly success, believing that he is guided by a divine voice, and persuaded that clear thinking is  the most important requisite for right living. 

위의 버트란트 러셀이 서양철학사 설명이 바로 플라톤이 그 책을 저술한 이유가 아니겠나 생각해보게 된다.  스승에 대한 찬가로 죽음에서조차 의연했고 신이 자신에게 내린 철학이라는 소명에 헌신하는 헬레니즘적 예수 신화를 만들고 싶었던 플라톤이 창작이 아닐까?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고전수사학에서 유행했던 수사법 기술이 동원되고 있는 측면에서 수사학의 모범교과서로써 읽어 볼 가치가 있음을 생각해 보게 된다. 앞으로 로스쿨을 목표로 하고 장차 미래의 법조인이 될 사람이라면 입문서로 이 책 만한 것이 없다.

#1. 법률이나 법정에서의 재판 내지 변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경험이 없다고 말하는 것
#2. 내 나이가 일흔이 되었지만, 법정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하는 것
#3. 배심원들에게 편견없이 들어줄 것에 대한 간청

위의 언급한 것들이 청중의 관심과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본격적인 주장의 서두에서 동원하는 화두라고 볼 수 있다. (아래의 표는 서울대 법학 저널 53권 에 실린 하재홍 경기대 법과대학 교수이자 변호사의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형사변론술'에 가져온 표임을 밝힌다)


원고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을 타락시킨 죄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소크라스테스는 25p~27p에 걸쳐 멜레토스와 대화를 통한 논증을 펼친다. 논증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누구든지 청년들을 훌륭하게 만들려고 애쓴다. 무엇을 그들을 훌륭하게 만드는가? 법과 제도다. 법률을 아는 자가 누구인가? 배심원 시민 모두다. 그렇다면 모두가 청년들을 훌륭하게 만들려고 애쓰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회에서 어떻게 단 한 사람 내가 모든 청년들을 타락시킨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변론을 읽다보면 맹자가 생각난다. 특히 맹자가 고자와 치열한 담론을 펼치는 고자편.  


위 발췌한 해설은 추후 맹자편의 핵심구절을 소개하는 포스팅에서 대신하기로 하고 굳이 가져다 붙여 놓은 것은 고자는 고작 한 마디했는데 맹자의 대답은 구구절절이다. 특히 이 편에서 맹자의 논의는 궁색한 듯하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소크라테스의 현란한  수사법의 구사를 담고 있다만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이여서 그 대화법의 주인공이 소크라테스인 점에서 정말 플라톤이 재판의 실황을 그대로 중계한 거라고 보긴 어렵다. 고대 그리스가 재판이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나름  참고한 독서목록을 공유하고 싶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고전학계가 논의한 내용을 담고 있는 "소크라테스, 김유석 옮김, 이학사, 2009"
최근 소크라테스에 대한 연구를 담고 있는 "대화의 철학 소크라테스, 이강석 옮김, 한길사, 2004" 
"고전수사학, 박성철 옮김, 동문선, 2003"
"수사학-말하기의 규칙과 체계, 안재원 옮김, 길,2006"
 "생각의 수사학, 양태종 옮김, 유로, 2007"
"로마법강의, 최병조, 박사, 2006"
"현대 수사학, 김종영 옮김, 진성북스,2019 "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보면서 그가 상대편 주장을 어떻게 조목조목 비판해가며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지를 음미하다가 탈옥을 권유하는 크리톤에 대해 그 불가성을 웅변하는 크리톤으로 넘어가게 된다. 개인적으로 크리톤이 더 설득력있고 플라톤의 색깔이 입혔다손 치더라고 소크라테스가 더 마음에 든다.


실정법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입장은 우리역사처럼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사법살인이 일반적이었던 국가나 사회에 논쟁거리가 되어 왔다. "사법개혁" "검찰개혁" 한때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었던 이 땅의  법조계가 유례없는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개혁의 대상으로 반성해야 할 법조인이 얼마나 될까? 국민감정과 괴리된 판결한 재판부, 특히 양승태가 조작한 수다한 재판들, 아무도 처벌받지 않은 죄지은 판사들. 
조국 법무부장관에 무리한 수사를 통해 드러난 표적수사. 제 식구 감싸기로 비리의 온상임을 드러낸 검찰.

우리나라 삼권분립으로 그 독립성을 지키라는 사법부의 구성원 각 개인들에게 이토록 목숨을 버리면서도 지키고 싶었던 소크라테스의 법철학, 법정신을 그대들은 구현하고 있는지 되묻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권면하고 싶다.  (다음 편에는 향연에 대해서 소개하겠다. 

"신이 우리를 이 길로 인도하니 이 길을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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