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이슬람 - 9.11 테러와 이슬람 이해하기
이희수.이원삼 외 12인 지음 / 청아출판사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9.11 테러 이후로 그 동안 '제 3 세계'로만 여겨졌던 이슬람에 대해 수많은 이들이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 시류를 타고 출판된 이슬람 관련 서적중 다른 것에 비해, "꽤나 잘 됐다"는 평을 받은 책이 한 권있었으니, 바로 <이슬람>이다. <세계문화기행>, <지중해 문화기행>으로 유명한 이희수 교수를 비롯한 12명의 '아랍 정보통'들의 공저로, 서울시 교육청, 전교조 추천도서로 꼽히기도 했다.

<9.11 테러와 이슬람 세계 이해하기>라는 부제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이, 애초에 지나치게 서구의 시각로 기울어진 우리의 편견을 바로 잡고자는 의도로부터 펴냈다고 한다.총론을 다루는 제 1 장부터 이슬람 세계를 대하는 서구의 삐뚤어지고 이중적인 작태에 맹렬하고 날카로운 비판의 포화를 쏟아낸다. 비교적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비판을 듣자면, "왜 오늘날의 이슬람이 그렇게도 서구에 적대적 감정을 갖을 수 밖에 없는가"는 상당 부분 수긍이 간다.그 외에 이슬람 역사 및 문화를 설명하고,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꾸란"(그 동안 서구를 비롯한 삐뚤어진 자들은 이것을 보고 이슬람의 호전성으로 설명했지만, 사실은 "칼을 들고 있을 때도 살생을 되도록 금하라는 꾸란의 가르침을 잊지말라"는 뜻이며, 사실 이슬람 정복의 역사에서는 타종교를 강제로 굴복시킨 적이 없다)으로 대표되는 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는 장(章)들 상당히 흥미롭고, 우리의 편견을 상당 부분 불식시켜 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특히, 읽는 데 지루함을 덜어주고 흥미를 한층 더 돋궈주는 풍부한 량의 사진만 보더라도 독자를 여러 부분에서 배려했다는 게 드러난다.고작 한 시간 정도만 몰입하여 읽더라도 그 동안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 얼마나 몰랐으며, 너무나도 서구의 시각에서만 이슬람을 바라봤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 <이슬람>의 가치는 대단하다.

그러나 이토록 여러 면에서 탁월한 면모를 보여줬지만, <이슬람>을 읽는 도중 이슬람 세계에 대한 찬양 일변도와 지나친 상대주의는 그 객관성을 의심케 한다.개신교의 근본주의와 유대교의 시오니즘으로 인하여 수많은 이슬람인들이 팝박받았다는 사실에는 분개하고 강렬히 비판하나,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해서는 "단지 서구의 시각이며, 그런 자들은 이슬람교의 5%도 안된다"라며 못박는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작년에 걸쳐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황우석 논란 때 수많은 황빠들이 "서구의 윤리로 평가하지 말라"던 이야기와 비슷하며, '한국식 민주주의'를 부르짓던 군부 독재 시절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한마디로, 문화 상대주의가 최고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다.

이슬람에 대한 찬양 일변도와 지나친 상대주의의 정점은 '꾸란'을 근거로 지금까지도 여성을 학대하는 이슬람 문화를 빙빙돌려 옹호하는 부분이다. 세상에나! 이슬람 세계에서 여성의 클리토리스를 자르고, 일부다처제를 오늘날까지 시행하고, 차도르나 히잡으로 온몸을 가리지 않으면 맞아죽을 수도 있는 비인간적인 제도(여기까지 말하고 조금은 양심에 찔렸는지,'일부' 국가, '일부' 민족에서만 이런 전통이 남아있다는 '친절한 수식'을 첨가한다)를 '전통적 페미니즘'으로 이해하자고 필자들은 말한다. 전세계 페미니스트들은 물론, 수많은 이들 기절할 노릇이다. 이희수 교수를 비롯한 12명의 필자들은 여성학 개론부터 다시 한 번 익히시고 페미니즘을 논하시는 게 좋을 듯하다. '선택'(선택은 꼭 두 가지 요소가 전제되어야 하는 데, '두 가지 이상의 선지', '강제가 없는 자유의지'가 바로 이것이다)이 아닌 '문화적 강제'에서 이뤄지는 비인간적인 제도를 전통적 페미니즘으로 봐야 한다니, 그야말로 견강부회가 아닐 수 없다.

자고로 텍스트의 가치란, 읽혀지는 시대의 흐름에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느냐에 달린 것이다. 더구나 고전이라면 그 텍스트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 쓰여진 시대의 역사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내용을 얼마든지 곡해하여 시대착오적인 텍스트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전의 텍스트를 받아들이기 이전에 "왜 이 책이 쓰여진 시대에서, 어떤 상황에서, 이런 말이 나온 것일까? "에 대한 의문은 필수적이며, 이에 따라 역사 공부도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종교에서는 이런 작업을 거지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텍스트를 읽고 체득하여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을 '광신도' 혹은, '근본주의자'라 일컫는다. 어느 한쪽의 근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다른 한쪽의 근본주의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이해하자니, 정말이지 가당치 않을 뿐더러, 공감하기도 힘든 이야기다.

비록 이슬람을 삐뚤어진 시각만으로 바라보는 자세를 교정잡아주겠다는 의도는 아름답지만, 상대방을 비판하는 데 적용했던 잣대와 자신을 재는 잣대가 모순된다면 그 아름다움은 추하게 퇴색된다. 물론, <이슬람>이 출판된 시기(2001년 초판, 2002년 12월 개정판 - 미국의 이라크 침공 준비. 그리고, 이슬람을 서구의 시각에서 왜곡하여 보도했던 시기의 정점)를 고려하자면, '이슬람을 위한' 저자들의 일방적이고 감정적인 글쓰기 역시 '심적인 측면'에서는 상당 부분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9.11테러와 이슬람 세계를 이해하기>는 부제에 걸맞게 부디 조금 더 객관적이고, 냉정한 논조로 책을 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