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수단으로서 사무 지식과 
행정 기술을 습득한 
관료 계급의 생리 중 하나는 
체제에 대한 비판을 회피하고
 그것에 복종하는 것이다. 
독립된 국가에서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식민지 체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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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제는 연구와 교육상의 가장 
기본적인 조직 단위였다. 강좌는 
학과와 학부에 우선했다. 강좌가 
기초 단위로 존재하고 
그것의 집합체로서 학과와 학부가
 조직되었다. 문부성이 
강좌제를 도입한 중요한 이유는 
학문의 전문화에 있었다. 이 강좌제는
 교육보다는 연구를 우선하는 제도였다. 
배우는 학생이 없어도 필요한 세부 전공이라면
 강좌가 존재했다. 강좌제는 
교수들이 자기 학문분야의 이름을 내건 
독립 영역을 보장받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강좌제는 교수가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경제적 안정을 제공했다. 
강좌제 도입 이전에는 
제국대학 교수로 임용하기 위해
유학을 보냈던 인재들이 돌아와서 
다른 직장을 선택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사람은 사명감만으로 살 수 없다. 
당시 정부 직할의 여러 관청은 
더 많은 봉급으로 유학한 인재들을 끌어들였다.
 이에 문부성은 각 강좌에 
교수 봉급에 준하는 ‘직무 봉급강좌 봉급)‘
을 부과했다. 당시 
1,000엔의 연봉을 받는 교수에게 
강좌 봉급으로 1,000엔을 더 얹어주어 
교수의 유출을 막은 것이다.
문부성은 제국대학에 예산을 배분하면서도 
강좌제를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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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국대학 유학생들은 총독부 식민 통치를 
유지하는 관료의수급처였으며, 관공사립() 
교육기관과 식민지 언론·출판및 경제계의 
핵심 인사들이었다. 또 해방 이후에는 
남북한 국가건설의 중요한 인적 자원이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남북한 근대 학술의 
기원이 되었다. 달리 말하면, 
제국대학은 일본만이 아니라 
식민지 및 남북한에서도 
국가 엘리트 육성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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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식민지인, 과학기술을 통해 제국의 주체를 꿈꾸다

과학자)과 조국 식민지판
 ‘문송합니다‘차별을 극복하는 ‘과학‘ 
판타지 식민지 문학이 그린 과학기술(자) 
교토제국대학의 두 조선인 교수 이야기
과학자의 선택: 도덕과 합리 사이
리승기의 과학은 도덕적인가?

9장 제국의 지식으로 제국에 저항한 사람들
10장금녀의 영역, 제국대학으로 유학 간 여성들177
별이 된 청년, 송몽규  ‘곰‘이라 불린투사, 박영출유형식, 제국대학 출신소시민의 초상친일파 아버지와 좌익 아들 운동권 대학생에서 총독부 경찰로 마르크스주의자에서 도색영화 브로커로199제국대학에 등장한 여학생들신의경, 최초의 제국대학 여자 유학생  조현경, 규슈제국대학의 첫 여자 유학생 ‘내 이름은 김삼순‘, 최초의 여성 농학박사이화여자전문학교와 제국대학신진순, 북한의 문학예술을 움직인 제국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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