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사회운동 세력과 민중으로부터 
고조된 건국운동은 미군정이들어서자 
난관에 부딪친다. 
첫째, 미군정의 비호 아래 
친일 관리와 친일경찰이 재임용되고 
보수세력이 육성되었다. 
둘째, 해방 후 귀환 이재민이
다수 유입되어 인구가 급증한 상태에서, 
미군정이 잘못된 경제정책을 펼쳤다. 
이에 물가고와 실업난에 식량난이 가중되어 
사회·경제적 불안정성이 증대했다. 특히 
1946년 여름 콜레라가 유행하고 수해가 일어나서 
도시빈민의 식량난은 극심해졌다. 
셋째, 토지개혁을 지연하면서 
봉건적 질서를 타파하지 않아 
지주-소작 관계로 고통받던 농민의 삶이 
여전히 힘들었다. 이는 민중에게 
일제 식민지의 사회적 트라우마를 환기하는 것이었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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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항쟁에 관한 몇 가지 오해

첫째, 이 항쟁을 보통 ‘대구 10.1 폭동‘,
 ‘대구 10.1 사건‘ 등으로 부르면서,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만 일어난 
사건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1946년 10월 항쟁은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시작하여 
1946년 12월 중순까지 남한 전역 73개
시·군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즉 10월 1일의 대구 항쟁은 
이후 일어난 항쟁의 출발점일 뿐이며, 참여 인원·범위 · 기간 면에서 도시인 대구의 항쟁보다는 그 뒤에 일어난 농민 항쟁 비중이 훨씬 크다. 그런데 학계에서도 대부분은 10월 1일에서 2일 사이에 일어난 대구의 도시 항쟁을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물론 한국전쟁의 기원』(1981)을 쓴 브루스 커밍스는 ‘추수 봉기‘라는 차원에서,
그리고 10월인민항쟁연구』(1988)를 쓴 정해구는 ‘전민 항쟁‘이라는 차원에서 경북 항쟁을 포함하여 전국의 항쟁을 다루고 있다. 이처럼 대구 항쟁후의 과정까지 다루는 연구자도 있지만, 대체로 항쟁 참가자의 다수를 차지했던 농민 항쟁에 대한 고찰은 부족한 편이다. - P15

목차

책을 펴내며. 낮은 목소리의 이야기를 따라
서장. 10월 항쟁은 무엇이었는가

1부. 10월 항쟁
1장. 건국의 푸른 꿈
1. 건국운동의 열기
해방 직후 건국운동의 조직
노동자의 조직과정
학생운동과 청년운동의 활기 
빈민조직의 부재 
정당과 통일전선조직  
경북정치학교, 건국의 푸른 꿈과 지역운동의 도전 
농촌조직의 영향력과폐쇄성

2. 되풀이되는 식민지의 악몽
점령군의 등장, 친일파의 귀환 
지방 보수세력의 형성 
식량난과사회·경제적 불안정성 
대중투쟁의 폭발 
좌우합작과 대구공동위원회 
미군정의 탄압과 9월 총파업

3. 혼돈 속의 건국운동과 항쟁 전야
- P9

2장. 대구, 10월 항쟁의 서막

1. 대구역 광장 시위와 경찰의 발포
10월 1일: 노동자·시민이 연대한 시위 그리고 경찰의 발포 
10월 2일: 시위의 전개와 경찰의 발포 시점 
10월 1일 경찰 발포 피살자는 누구인가 
10월 2일 경찰 발포 피살자의 신원 추정
2. 청년·학생 연합 시위와 시민항쟁
시신 시위의 조직과 청년학생 연합 시위의 지도부 
시위의 실질적지도부는 누구였는가 
10월 2일 오전: 청년학생 연합 시위, 시민항쟁으로의 전환 
10월 2일 오후: 지도부 없는 기층 민중의 봉기,사회적 트라우마의 폭발 
10월2일 조선공산당 중앙조직의 반응
3. 시민항쟁으로서의 대구 항쟁의 의의와 한계


3장.농촌으로 간 10월 항쟁

1.경북 전역으로 번지는 항쟁.
제2의 3·1운동 
항쟁의 지역별 양상과 전개 과정
2. 농민항쟁으로서의 영천 항쟁
항쟁의 배경과 원인 
영천읍, 항쟁의 폭발 
면 단위로 확산되는 항쟁 
항쟁의 전파경로 
항쟁을 주도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3. 항쟁의 조직 기반과 농민 항쟁의 역사적 계승
하층민조직: 계급적 동질성에 의한 결합  
친족관계: 일가주의적동질성에 의한 결합  
마을자치조직의 전통: 마을공동체의 동질성에 의한 결합 
19세기 농민 항쟁의 역사적 계승
4. 10월 항쟁, 도시에서 농촌으로 - P10

2부. 작은 전쟁과 학살

4장. 삐라를 뿌리는 소년들

1. 항쟁의 진압과 민간인 학살
2. 항쟁 이후의 사회운동
남로당의 결성과 민전의 활동  
노동운동의 탄압과 학생운동의 성장
이름도 무덤도 없는 청년°학생 운동가들  
대중화하는 농민운동과 학생운동
3. 대중운동의 탄압과 무장투쟁의 발전
당국의 탄압과 통제 
지방보수세력의 강화 
남한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반대운동 
무장투쟁의 발전, 야산대에서 유격대로
4. 대중운동의 재편과 좌우의 분열

5장. 산으로 간 청년들과 작은 전쟁
1. 대중운동에서 무장투쟁으로
대구 제6연대 사건과 유격대의 형성군경의 빨치산 토벌  
1949년 대구 지역의 투쟁활동 
1949년 무장투쟁기의 남로당
2. 빨치산과 군경 사이에서
산사람과 들군 
빨치산의 생활과 활동 
낮에는 군경이 밤에는 빨치산이 - P11

3. 빨치산에 대한 기억과 집단적 트라우마
‘빨갱이 고수‘와 ‘지방빨갱이‘ 
똑똑하고 말 잘하고 잘생긴 
우익이 좋은동, 좌익이 좋은동, 알아야 뭘 하지요
4. 반공의 사회심리와 냉전 통치성

6장. 학살과 통제

1. 민간인 학살과 체제 통제
정부 수립기 대구 지역의 민간인 학살  
정부 수립기 경북 지역의민간인 학살:영천의 사례 
국민보도연맹과 한국전쟁 시기의 민간인학살
2. 기록으로 본 학살 사건
경주월성  
경산·청도°영일  
칠곡·고령·성주·군위·김천·금릉  
영덕  
영양·안동·영주·예천·의성·봉화·문경 
학살의 유형
3. 피학살자들은 누구인가
얼마나 많은 민간인 학살되었나 
언제, 어떤 지역에서 학살되었나
피학살자의 사회인구학적 구성
4. 학살, 진보의 절멸과 국가권력의 토대 강화

에필로그: 10월 항쟁의 유산 그리고 남겨진 이야기

1. 10월 항쟁, 미완의 시민혁명
노동자·시민이 연대한 대중운동이자 사회운동 
항쟁 지도부와 조직역량의 부족 
전통적 농민 항쟁의 전승이자 현대 민중항쟁의원형
2. 남겨진 이야기: 전쟁 후의 또 다른 전쟁
아홉살‘이쁜이‘는 왜 
‘10-1폭동 처형자‘로 기록되었나 
학살 후 홀로 된 여성들 
70년간의 기다림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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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번역본입니다

이 책을 번역하는 내내 타국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나의 경험이 
또 한차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한국에 계신 사랑하는 부모님과 자매들과의 
소중한 추억들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한국의 시시콜콜한 풍경들도 
이렇게 마음껏 공감할 수 있는 글을 
더없이 섬세하고 아름답게 써준 미셸 자우너에게 
독자로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장담컨대 이 책덕분에 저자 자신만이 아니라 
수많은 한국 독자의 반짝이는 추억들도 
덩달아 발굴돼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될 것이다.
언어 장벽 때문에 자우너가 한
국 혈육인 나미 이모에게 자신의 진심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해 답답함을 
토로하는 장면이 각별히 기억에 남는다. 
미흡한 번역으로나마 한국에 사시는 저자의 이모께 
부디 그의 진심이 제대로 전달되어서 
내가 저자로부터 받은 깊은 위로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다면 더바랄 게 없다.
2022년 2월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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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엄마가 남긴 표식을 단서로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오롯이 내 숙제가 되었다. 
이 얼마나 돌고 도는 인생인지, 
또 얼마나 달콤쌉싸름한 일인지. 
자식이 엄마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이, 
한 주체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기록 보관인을 기록하는 일이.

나는 발효가 통제된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배추는 놔두면곰팡이가 피고 부패한다. 썩어 못 먹게 된다. 하지만 배추를소금에 절여두면 부패 과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당이 분해되면서 젖산을 만들어내 배추가 썩지 않게 되고, 그 과정에서 탄산가스가 나와 절임이 산성화된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색과 질감이 변하고, 톡 쏘는 새콤새콤한 맛이 나게 된다. 요컨대 발효는 시간 속에 존재해 변화한다. 그러니 발효가완전히 통제된 죽음인 건 아니다. 사실상 새로운 방식으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거니까.
내 기억을 곪아터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가 내기억에 스며들어 그것을 망쳐버리고 쓸모없게 만들도록 방치할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잘 붙들고 키워 내 안에서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엄마가 가르쳐준 교훈을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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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은 사람은 여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내가 무슨 다른 도시에서 온 이방인이거나, 
저녁식사에 초대한 친구가 데리고 나타난 
특이한 손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렸다. 
나를 낳아키우고 나와 18년을 한집에서 살았던, 
내 반쪽인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기엔 
너무 이상하게 들렸다. 그러니까 내가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듯이 엄마 역시 
여태 나를 이해하지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세대와 문화와 언어가 갈라놓은 
단층선 반대편에 각각 던져져 
기준점도 없이 
죽도록 헤매기만 했을 뿐 
서로가 서로의 기대를 생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겨우 요 몇 년 전에 와서야 우리는 불가사의한 문을 열어 서로를 수용할 심리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아보려고 탐색했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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