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군이 강요하는 개혁을 수용한 일본인들 중에는
 ‘민주주의‘를 수용하는 방식을 두고 
천박하다고 비판한 사람도 있었다. 
유명한 선불교 해설자였던 스즈키(다이세쓰는
 《아사히 신분》에서, 종전 전에는 군부를 지지하다가
23전후 손바닥 뒤집듯이 민주주의의 전령이라도 된 듯 
떠드는 불교 지도자들을 주의하라고 
독자들에게 호소했다.
 한 주부는 여성 참정권의 의미를 여성들 스스로 충분히 파악하기도 전에 서둘러 참정권을 행사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내용으로 투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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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핵심에 해당하는 의문, 세상에 이토록 많은 고뇌와 불행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고뇌하다가, 미즈시마는 인간은 그 의문을 결코 완벽하게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더욱이 최근 일본은 스스로 고통을 자초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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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가 맞이한 새 나라에서 엘리트들은 
정부나 민간 모두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존재들이었다. 
재정 경제 정책은 대자본가들이 패전이란 난관을 헤쳐 나가도록 도와주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고, 미친 듯 날뛰는 인플레이션 탓에 온 세상이 불안과 위기의 민주주의 속에서 당황해하고 있었다. 1946년 4월에는 처음으로 보통 선거권에 기반해서 총선을 치르게 되는데, 이를 가능케 한 ‘획기적‘ 선거법이야말로 가토의 눈에는 판도라의 상자(일본인의 표현을 따르면 우라시마 타로의 보물 상자)로 보였다. 이 총선을 통해서 보수적인 전직 외교관 요시다 시게루(吉)가 이끄는 반동적인 내각이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가토가 보기에 꼬장꼬장한 좌파들은 이러한 엉터리 정책과 정치인들을 대신할 만한 대안 세력이 될 수 없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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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뒤집듯이 ‘무혈혁명‘ 편으로 돌아선 자들, 
즉 ‘민주주의‘라는 새 옷을입고 
희희낙락하는 군국주의자들, 
전쟁을 고무하는 슬로건을 적던 손으로
‘자유주의‘를 써 갈기는 정치가들, 
근대 노동 운동 지도자들처럼 보이려고
팔자수염을 기르는 우익 지도자들, 
히틀러의 초상과 ‘나의 투쟁이 있던 자리에 
카를 마르크스의 초상과 《자본론 》을 두는 학생들, 
이들 모두가 가토의 조롱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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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이 저물어 가던 무렵, 
재미있는 일본어 소사전의 초고가 
검열을받기 위해 점령군 당국에 제출되었다. 
『전후 신조어 해설이란 제목의 이사전에는
 ‘교다쓰‘가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교다츠‘는 원래 
환자의 육체적, 감정적 쇠약 상태를 지칭하는 의학 용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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