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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 추는 남자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평점 :
남훈이 굴착기 팔 생각을 접고 돌아오는 길에 튼 음악이 베토벤의 합창이라는 대목을 읽자마자 고향집에서 나무 농사를 짓고 사는 셋째 형이 떠올랐다. 형은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스마트폰에 FM 라디오 앱을 깔아 놓고 클래식 음악 방송을 듣는다. 꺾꽂이 하려고 화살나무, 황매, 목수국, 수수꽃다리 줄기를 자르고 뿌리를 정리하면서도 듣고, 단풍나무 씨 뿌린 데에 물을 줄 때에도, 삽으로 스트로브 잣나무와 조팝나무 분을 뜰 때에도 서양의 현악기와 관악기 소리에 마음을 맡긴다. 간혹 바이올린이 경쾌하다 못해 정신 사납게 깨갱대면 국악으로 바꾼다. 거문고를 듣다가 창을 듣기도 한다. 할부로 산 벤츠 승용차에 오래 전 사두고 가끔 뜯었던 거문고를 싣고 가까운 광역시에 있는 국악원을 작년 여름과 가을에 다녔다. 자기 나이의 딱 2분의 1을 먹은 선생님에게 1대1로 거문고 음악‘출강(出鋼)’을 배웠다. 한 달에 네 번 2시간씩 배우면서 낸 강습료가 5만 원이었다. 시에서 반절 이상을 지원했단다. 굴착기 기사인 남훈이 플라멩코를 배우는 모습이 멋지게 비범해 보이는 것처럼 형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다.
그런데 남훈이 자기의 분신과 같은 굴착기를 언제나 새것처럼 닦고 정비하는 모습과는 달리 형은 트럭과 트랙터를 깨끗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새 트럭을 몇 개월 만에 10년도 넘은 낡은 트럭으로 보이게 만드는 재주를 부릴 정도이니 남훈과 달라도 한참 다르다. 얼마 전에 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밭 한가운데에 관리기가 그대로 있다. 밭을 갈아 반듯하게 만든 이랑 위에 비닐을 씌우고 관리기로 흙을 쳐올리다 비가 오니 그대로 둔 지 3~4일이 지났다고 한다. 남훈이라면 깨끗한 비닐로 단단히 덮어 두었을 테지만, 형은 그런 데 신경을 덜 쓴다. 네팔이나 인도를 한 번 더 여행할 생각에 모아 둔 돈으로 작년에 중고 트랙터를 샀다. 코로나-19 감염병으로 해외여행을 갈 수 없게 되자‘잘 됐다’며 저질렀다. 묘목을 캔 밭에 거름을 내고 쟁기질에 로터리를 치자면 트랙터를 가진 동네 형님에게 그동안 여러 번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품삯도 만만찮게 줘야 했다. 더욱이 그 형님이 자기 밭은 쟁기질을 여러 번 해서 곱게 흙을 가는데, 형 밭은 대충 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비록 중고지만, 마음껏 묘목 밭을 갈 수 있어서 속편하단다. 그 트랙터 운전석 주변은 트럭과 마찬가지로 형다운 모습으로 있다.
소설 속 남훈이 처, 딸아이와 함께 사는 것과 달리 셋째 형은 큰 집에서 혼자 산다. 그 집은 내가 아홉 번째 자식으로 태어난 집이다. 이 집에는 본채에 방 세 칸과 부엌이 있고 황장목이라고 불리는 큰 소나무로 짠 마룻장이 두 칸짜리 방 앞에, 배나무로 짠 마룻장이 한 칸짜리 방 앞에 놓여 있다. 소죽을 쑤었던 사랑채와 대문간도 있었는데 30년 전에 헐어서 지금은 마당을 넓게 쓰고 있다. 작년에 이 마당에다 벤츠가 들어갈 비닐하우스 주차장을 지었고 그 외의 땅에다 거름기 적은 산 흙을 퍼다 상설 묘목장을 만들었다. 서른에 청상과부가 된 시어머니와 옛날에는 스물다섯이면 늙다리 노총각이었던 남편, 그리고 도련님만 셋 있는 집으로 어머니는 열여덟 나이에 시집을 왔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2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어머니는 새벽녘에 눈뜨자마자 우물에서 물을 길어 손을 씻고 가마솥에 쌀을 안치고 아궁이에 불 때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밥상 세 개에 시어머니와 남편, 자식 아홉에 일꾼 둘까지 보통 열셋에 달하는 밥그릇과 국그릇을 올리고 찬을 차려 큰방에 들여보내면 어머니는 부엌 바닥에 쭈그려 앉아 양푼에 반찬 몇 가지와 싱건지를 넣고 비벼서 재빨리 드셨다. 밥상을 거두고 설거지를 끝내자마자 바로 또 쌀을 씻어 점심을 준비하셨다. 이 일을 하루 세 번 반복하면 어느새 깊은 밤이 되었단다. 그런 일과는 쉰 살 전후로 조금 여유로워졌다. 예순 살 전후에는 큰아들과 둘째 아들의 사업이 잘 되다 말다하고 막내아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5년 넘게 감옥살이를 하면서 마음 편한 날이 별로 없는 시절을 보냈다. 결국에는 새천년이 되던 해에 집안 재산이 모두 농협과 축협으로 넘어갔고, 얼떨결에 둘째 형 빚보증을 선 셋째 형은 신용불량자가 되어‘저짝방’(어머니와 아버지가 단 둘이 주무시던 작은방인데, 큰방을 기준으로‘저쪽(사투리로‘저짝’)에 있는 방’을 줄여서 부름.)에 둥지를 틀고 살게 되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렇게 살았다.
쫄딱 망한 집안 탓에 내가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운 좋게 얻은 직장에서 월급을 서너 번 받을 즈음에 셋째 형은 어떤 성씨의 시조묘가 있는 종중산의 산지기가 되었다. 소도시 근교에 있지만 강원도 오지에 있을 법한 깊은 산중에 지어놓은 제각 옆 가건물로 들어간 형은 마을 사람이 논밭에 묘목을 키우는 일을 보고 배웠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묘목 심기로 살림 밑천을 장만했던 일을 기억하며, 형은 고향에 있는 시제답에 나무를 심기로 하고 3년 만에 산지기 생활을 청산하고, ‘저짝방’에 눌러앉았다. 그새 20년이 지났다. 그 중 10년 정도는 저녁상을 놓고 아버지의 술친구로 살았다. 그 덕분인지 형들 중에서 셋째 형이 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아있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는 밤늦도록 저녁상을 놓고 어머니 말벗이 되었다. 더 오래 계셔야 했던 어머니가 2년도 안 되어 아버지 뒤를 따르자, 형은 큰방으로 거처를 옮기고 지금껏 혼자 산다. 서재이자 식당, 찻집, 술집이고 침실인 큰방에서 담배도 피우지만, 절은 담배 냄새도 안 나고 내게 익숙한 총각 냄새도 풍기지 않는다. 너저분하면서도 깨끗하니, 사람 사는 방 그대로다. 음악과 책을 달고 살면서 자기 마음 들여다보기를 일상으로 한 덕분일까.
부엌이 아쉽다. 내 아내는 고향집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조그만 쥐가 수저통 위를 지나는 모습에 질겁한 적이 있다. 길고양이 몇 마리가 집에 드나들면서 부엌에 들어오는 쥐는 사라졌지만, 형은 그 부엌에서 맛 좋고 보기 좋은 스페인 새우 요리 감바스를 해낸다. 시금치를 아삭아삭하고 고소하게 무치기도 하고 우족을 삶아 두고두고 먹는가 하면, 돼지 수육을 졸깃하게 삶아 혼술을 즐기기도 한다. 초가였던 집의 지붕에 기와를 얹고 부엌 옆에 있던 작은 방을 없애고 부엌을 조금 넓히는 정도의 수리를 내가 다섯 살 때쯤에 했던 것 같다. 큰형 사업이 조금 잘 되던 때에 부엌을 지금처럼 입식으로 고쳤지만, 천장이 낮고 작은 창마저 서북 방향으로 나 있어서 부엌은 늘 어둡다. 게다가 한가운데에 기둥이 있어서 불편하다. 혼자 살면 먹는 일이 중요하고, 그만큼 부엌이 좋아야 하는데 말이다. 입맛이 정갈하면서 푸짐하고 요리 잘하는 형에게 잘 어울리는 부엌이 언제나 꾸며질지 모르겠다. 남훈이‘창고로 쓰이는 뒷방이나’다름없는 서재에 만족하며 소중하게 사용하듯, 셋째 형도 부엌에 불만을 표현한 적이 없이 생명의 공간으로 여기며 산다. 탕이나 찌개, 전골 등이 먹고 싶으면 식당에 가서 사 먹고, 남은 음식은 미리 가져간 냄비에 담아와 며칠 더 먹기도 한다. 몇 년 전 그런 음식을 휴대용 가스렌즈에서 데우다 집 전체를 태워버릴 뻔했는데, 불조심 차원에서 검게 그을린 벽을 그냥 놔두고 산다.
남훈이 길거리에서 손으로 코 풀지 않고, 노약자석에 앉은 임신부에게 시비 걸지 않고, 남보다 먼저 화내지 않기 등을 마음에 새길 만큼이나 셋째 형도 자기도 잘 아는‘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나 생각’이 있다.‘욱 하는 성질머리’에서 비롯된 거친 말과 행동이다. 어쩌다 형 일 도우러 넷째 누나가 나와 같이 고향집에 간 적이 있다. 서툴게 일하는 나에게 큰소리에 짜증 묻은 말로 타박하는 형을 보고, 누나가 내게 작은 소리로 그랬다. 넌 어떻게 저런 형 성질 받아주면서 일하러 오냐고. 오랜만에 일하러 가는 날에는 꼭 마음이 상한다. 한두 가지 호기심 담은 질문에도, 다소 과장된 나의 추임새에도, 어리숙한 삽질이나 가위질에도 혼이 난다. 혼자 일 하다가 내가 온 김에 밀린 일을 마구 해대다 보면 형의 급한 성미가 나오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을 때도 웬 간섭이 많은지, 국물 한 방울까지 맛있게 싹싹 비우려고 하면, 짠 걸 왜 다 먹느냐며 말린다. 짬뽕 먹으면서 단무지를 춘장에 찍어 먹으려면 젓가락으로 툭 쳐낸다. 건강에 안 좋단다. 내가 4학년, 형은 6학년 때 도시에 있는 학교로 달랑 둘이 전학을 갔다. 할머니와 둘째 누나가 번갈아 가며 밥을 해주었고, 그 둘째 누나가 시집을 가서 둘째 매형 집에서 4년을 살았다. 거짓말 같지만,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형과 싸웠다. 주먹으로 형의 얼굴을 내가 먼저 때린 적도 있을 만큼 형은 내 만만한 싸움 상대였다. 형이 고교 2학년이던 어느 겨울, 새벽녘에 고소한 부침개 냄새가 맡아져서 깨어나 형광등을 켜니, 언제 들어왔는지 술에 취해 자는 형과 그 옆에 푸짐하게 토해 놓은 음식물을 보고 기겁을 했다. 그 당시 25도나 되던 소주를 혼자서 11병이나 마셨다고 했다. 지금도 믿지 않는다. 아무튼 형의 말수가 적어져서 말다툼할 일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그 많은 음주량에 내가 겁을 내고 놀란 탓인지 나는 그 즈음부터 형이 무서워졌고 감히 싸울 수 없게 되었다. 그만큼 내 마음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형이 고향집에서 재수를 할 때, 오랜만에 집에 갔더니 내가 보고 싶었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 나는 속으로 왜 이런대 하며 시큰둥했다. 지금 이 기억이 떠오르니 내 마음에 문득 울음이 차오른다. 형이 중학교 1학년일 때, 골목길에서 놀던 내가 누군가에게 맞으니까 형이 득달같이 달려들면서 내 편에 서서 상대를 내몰았던 기억이 있다. 내 싸움 상대였던 형은 나를 미워해서 내가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하면 고소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의 모습을 보고 놀랐던 것 같다. 내 어린 날에. 아무튼 형은 나를 두고 늘‘내 하나뿐인 동생’이라는 말을 달고 산다. 지금도 그렇다. 낯간지럽다.
소설에서 남훈은 학창시절에 언어학자를 꿈꾼 적이 있고 영어를 좋아했다. 셋째 형은 고교 시절 제2 외국어로 배운 독일어를 좋아했다. 재수해서 소도시에 있는 사립대 야간 국문과에 진학했다. 시인으로 등단할 수 있는 문턱에서 그만두었다. 꽤 유명한 문학계간지에 실린 심사평에는 형에게 재능이 있다는 문구가 있었던 것 같다.‘아버지’라는 제목의 시를 읽은 적이 있다. 담담한 문체로 한 자 한 자 적은 시구를 접한 후에 나는 한동안 시를 끄적이지 않았다. 형을 향한 질투와 시기 탓이었다. 다섯 남매끼리 나누는 사이버 대화 공간에 가끔씩 문장으로 올리는 평범한 형의 일상에는 시 맛이 느껴진다. 소설에서 남훈이 67세에 스페인어 학원을 다니고 플라멩코 춤을 배우기 시작하듯 셋째 형도 그 나이쯤에는 아마도 시집 낼 준비를 시작하지 않을까. 작은 나무(묘목 또는 관목)를 기르기에 품이 많이 들고 그 일을 해줄 일꾼(동네 할머니)이 더는 없을 무렵, 큰 나무(교목)만을 굴착기와 크레인 같은 장비를 들여 관리하고 판매할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면 그럴까. 매년 두툼한 새 다이어리를 사서 언제 씨를 뿌리고 밭 정리를 했는지, 흰말채, 단풍나무 몇 주를 주당 얼마에 팔았는지를 기록해둔 그 사이, 그 틈 어딘가에 형이 쓴 시 아닌 시가 있을 것 같다. 책갈피에 넣어두었던 나뭇잎과 꽃잎이 나이 든 색을 띠고 있다가 빛을 보듯 형이 쓴 문장이나 문구도 한두 권의 시집 안에 담겨지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설날이 지나고 겨울 가뭄이 길어지고 있던 어느 날, 형이 플라멩코 추는 남자를 읽어보았느냐고 내게 물었다. 신작로까지 길게 누운 시제답 반절을 혼자서 트랙터로 골을 판 후에, 내가 오기를 기다려 나와 함께 골과 골 사이에 서서 이랑 위에 검정 비닐을 덮고 골을 따라 관리기 로터리로 흙을 쳐올리고 나서 말했다. 저녁밥 먹고 읽기 시작해서 밤새 단번에 읽었단다. 남훈의 삶이 자신의 삶과 조금 닮았다는 것을 알아챘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형이 떠올랐다고, 독후감 쓸 때 형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답했다. 형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 있다가 지나가는 말인 듯, 남훈이 전처와 낳은 보연이를 만나고 스페인 여행을 다니는 이야기를 읽다가 형도 보연이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딸 아닌 딸이 생각났다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형은 혼자 살지만, 늘 혼자인 건 아니다. 그 무엇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형은 요즘‘나 하나라도 잘 살자’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하나뿐인 동생’인 내가 자식 셋을 키우느라 허덕대는 모습에,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월세 살면서 학습지 교사로 딸아이 대입시 삼수를 뒷바라지하고 벌이가 시원찮은 남편과 살면서 하나님께 의지하며 버티고 있는 바로 위 다섯째 누나를 보면서, 뭐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하는 생각일 테다. 남훈이 굴착기 작업을 시작하면서‘자신이 똑바로 설 작은 공간을 만드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모든 게 시작된다.’는 문장을 읽으면서 형은 아마도 밑줄을 그었을 것 같다. 자기 생각도 그렇다고 끄덕이면서 말이다. 나처럼.
아내가 무슨 소설을 읽느냐고 내게 물어보자, 굴착기 기사가 나이 들어 일을 그만두고 스페인어와 스페인 전통춤인 플라멩코를 배우고 스페인 여행을 가는데, 함께 가는 이가 전처와 낳은 딸이 나오는 소설이라 했다. 굴착기 기사와 플라멩코 춤이 어울리느냐고 되물었는데, 예상대로 아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나무농사꾼인 형이 클래식 음악 듣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것과 비슷하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고정관념과 편견은 부정적이지만 성찰과 수용의 과정을 거치면 많은 것들을 낯설게 보게 하여 신선한 기운을 불어 넣어준다.‘부정성’의 철학자로 불리는 한병철이 쓴 아름다움의 구원에 따르자면, 어울리지 않음과 같은 부정적인 것은 무언가를 문학 또는 예술이 되게 하고 사유를 촉진하고 유발한다. 동일하고 친숙하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플라멩코 추는 남자의 매력이 그것이다.
그런데 남훈의 그 어울리지 않음의 성취를 되새길 때마다 내가 느끼는 박탈감과 소외감, 그리고 불편함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한병철의 타자의 추방에 있는 주장을 끌어오면, 남훈이 청결하게 굴착기를 관리하고, 본격적인 굴착 작업 전에 반드시 땅을 다지는 모습은 성과사회에서 사는 사람에게 보이는 나르시시즘의 한 단면이다. 남훈의 서재는‘고립·고독’이라는 부정성의 공간이기보다는, 그래서 창조의 공간이기보다는 아내와 딸에게 배제된 채‘자기 최적화’된‘자유’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남훈은 과제를 나열하며 자기착취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자유를 한병철은 폭력의 위상학에서 성과사회, 피로사회, 자기착취사회, 긍정사회에서의 감옥이라고 규정한다. 자유는 수인인 동시에 감시인이기도 한 노동수용소이다. 성과주체는 자유와 강제를 분간할 수 없는 긍정성의 폭력에 지배당한다. 남훈은 과도한 음주로 쓰러져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에 인생의 제2막을 시작하며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으로만 세상을 대하자고 엄숙히 다짐한다. 이 다짐을 남훈이‘자유’롭게 했는지, 우리 사회가 강요한 강제로서 어쩔 수 없이 했는지 구별하기 어렵다. 스페인어를 배우면서‘새로운 언어형식이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는 무척 심오한 말 뒤에 남훈은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 거야’라고 말한다. 새로운 관계가 좋은 인연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악연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무한긍정 속에서 성과 내기에 급급하다 소진해버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셋째 형이 어느 날 자루가 쇠로 된 삽으로 붉은조팝나무를 캐다 말고 하는 말이,‘잘 될 거야~~’라는 노래가 있는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잘 될 거라 말하는지, 그렇게 말하면 저절로 잘 된다는 뜻인지 알 수 없다며 불평을 했다. 겨울가뭄으로 묘목 심기를 미루고 있는 중에 묘목 주문이 뚝 끊긴데다, 값이 떨어진 산철쭉과 회양목 묘목을 갈아엎어야 할 상황에서 내뱉은 말이었다. 그저 긍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뜻이겠다.
거칠지 않은 실제 삶이 불가능하듯, 소설 속 남훈의 삶도 굴곡이 있고 풍파가 많이 일었다. 10대에 아버지를 잃었고, 가정 경제를 책임지기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했다. 이혼과 알코올 중독, 실직, 재혼 등과 같은 삶의 길목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을 테다. 그런데 플라멩코 추는 남자는 매끄러운 소설이다. 가독성이 좋은 소설이고 흥미진진한 드라마와 같은 전개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는 평을 받았다. 단숨에 읽히는 소설은 몰입도가 높은 만큼이나 이야기의 전개가 매끄럽다. 조금 자극적이지만, 한병철은 아름다움의 구원에서 읽기 쉬운 소설을 포르노그래피적이라고 단언한다. 그에게 미란 은폐를 본질로 삼는 것으로서 불투명하다. 포르노그래피는 덮개가 없고 비밀이 없는 노출로서 미와 대립한다.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은 미와 다르게 투명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는 상처 없이는 문학도 예술도 없다고 주장한다. 사유도 상처가 지닌 부정성에 의해 시작되고 나타난다. 기억에 오래 남는 이야기에 비극이 많은 이유는 우리 삶이 대개 비극이기 때문이다. 모든 삶이 모조리 비극이라고 말하면 과장일까. 어쩌면 애써 행복했다고 자기 최면을 걸면서 삶을 마감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고 덜 후회할 수 있을 테다. 영영 치유되지 않거나 최소한 희미한 흉터는 남을 삶의 상처를 외면하기보다는 그대로 바라보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긴 여운을 남기면서 내 삶에 스며들 것 같다.
남훈의 거친 삶을 매끄럽게 다듬어 놓은 플라멩코 추는 남자는 단숨에 읽을 만한 소설이다. 작가는 수채화를 그리는 붓질처럼 무거운 소재를 가볍고 발랄하게 잘 묘사했다. 매끄러운 흐름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덮을 수 있다. 하지만 책장에 한번 꽂으면 다시 꺼낼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다. 이야기 하나 하나는 현실감 있는 상처를 품고 있어서 매끄럽지 않지만, 매끄럽게 다듬어진 이야기의 전개 탓인지 울림이 크지 않다. 아무 쪽이나 펼쳐서 어떤 장면이나 문장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은 일지 않는다. 나와 셋째 형의 삶이나 이 세상 대부분의 삶이 그렇듯, 거칠게 나아가는 현실의 삶은 예상하지 못한 잦은 제동으로 출렁이는 시내버스를 탄 모양새다. 개연성 없이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에 몸서리치기도 한다. 아쉽게도 플라멩코 추는 남자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독자에게 감흥을 안겨주기 위해 남훈의 실패와 좌절만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시간 죽이기’용도로 쓰이는 볼거리와 읽을거리도 팍팍한 삶에 여백을 주고 활력을 얻는 데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 덕분에 남훈과 셋째 형의 삶을 견주어 보면서 형의 모습을 그려볼 기회를 가졌다. 아울러 한병철의 성찰을 세밀하게 다시 살필 수 있었다.
소설에 남훈의 어머니가 겪은 삶의 일부가 서술되어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가 언제 무슨 병으로 죽었는지 남훈은 기억하고 기록을 했는데,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면 화를 냈다는 말 외에 어머니에 관한 기록은 없다. 동생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도 없다. 남훈의 삶을 중심 소재로 삼았으니 그럴 수 있다. 그래도 이야기의 밀도가 약간 떨어지는 느낌이 들게 하는 원인인 것 같다. 개인 중심의 서사에 집중하다보니 삶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다루었다. 능력주의를 부지불식간에 옹호하고 강화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남훈의 노후는 온전히 개인의 능력만을 바탕으로 설계되고 이뤄진다. 금전적 여유가 없는 다수의 현실 노인에게 스페인어와 플라멩코 배우기는 능력 밖의 영역에 있다. 적어도 남훈처럼 전문기술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남훈이 실행에 옮기고 있는 모범적이고 긍정적인 노후의 삶은 어느 정도의 개인적인 능력을 갖춰야 성공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자기계발서를 소설화한 것 같다는 비평을 할 수 있겠다. 셋째 형은 올해 2년째 마을 이장직을 수행 중이다. 옆집과 앞집 간의 경계를 지적측량으로 명확히 하고 철판으로 가로막아 사생활의 비밀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마을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만나면서 관계를 맺는다.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닌 삶, 가족을 가운데에 놓으면서도 가족의 범위를 확장하는 삶이 노후에도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플멩코를 추는 남훈의 성취는 남다르고 커다란 결과임은 분명하다. 다만 그것이 남훈이라는 개인을 넘어 더 많은 이가 거리낌 없이 누리는 세상이면 더욱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