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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 -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57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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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심한 듯 조심하는 마음

너 그거 아냐? 너 다리 밑에서 주서(주워) 왔디야!!!”삼촌이나 고모, 또는 나이 차 크게 나는 형이나 누나가 어린애를 흔하게 놀리는 말이다. 내 막내 딸아이를 곧잘 그런 말로 놀린 적이 몇 번 있다. 두세 번은 얼굴을 실룩거리며 굳히더니, 언젠가 아빠! 새아빠래. , 친아빠 찾으러 갈래.”라고 대꾸한 뒤에는 그런 말을 더는 하지 않았다. 재미가 없어졌으니까. 그런데 문경민의 소설 󰡔훌훌󰡕을 읽고, 그런 놀림은 입양에 대해 부당하고 부적절한 차별 의식을 담고 있는 나쁜 언행임을 알았다.

어린 시절,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혹시 내가 주워 온 아이는 아닌지 하는 생각과 함께 들어오는 아득함, 아찔함 그리고 설움은 본능으로서 자연적인 감정일까? 소설 󰡔훌훌󰡕의 화자인 유리는 자신이 입양된 아이라는 사실이 들켜버린나머지, 당혹감과 수치심에 휩싸인다. 어린 시절부터 입양 사실을 설명해야 하는 순간에 유리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원망과 함께 분노, 배신감도 느꼈다. 분명해 보이는 것은 가슴으로 낳은 자식으로 여기려는 마음이 동물적 본능에 반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이란 점이다.

인간다움에는 비정한 자연에서 비켜선, 동물이면서 동물이 아닌 인간만의 모습이 있다. 󰡔훌훌󰡕의 병규와 진성 같은 현실 속 사람들이 품는 입양에 대한 고정관념(친자식만큼 잘 대하지 않을 것 같다, 입양아는 길러준 부모에 대해 친자식보다 더 말을 잘 들어야 하고 효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못된 친자식보다 더 못된 자식이다 등), 혐오(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는 둥, 외모 품평 등), 그리고 부당한 차별(선 긋기, 따돌림 등) 등은 지극히 동물적(야수적)인 것들이다.

고향숙 선생님 수업 시간에 보여준 일부 학생들의 수업 방해 사례(틀딱, ‘음탕이 무슨 뜻인지 묻고, ‘불륜이란 단어를 언급하는 등)는 단순 무례를 넘어 여성, 노인 등에 대한 혐오를 보여준다. 나이 많은 여자 교사를 젊은 남자 교사와 다르게 대하는 차별적 태도는 여성·노인 혐오를 동반한다.

일상에서 거리낌 없는 조롱과 놀림으로 표현되는 언행은 부당한 혐오와 차별을 불러오는 데 그치지 않고, 죄의식을 갖지 않게 만든다. 이번 주말에 있을 고교 친구 모임에 이혼하고 혼자 사는 친구,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는 친구가 참석한다. 친한 사이라 해도 화제로 올릴 주제에 대해 나는 신중해야 한다. 무심한 듯 조심하는 마음이 내게 필요하다.

 

2.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음

󰡔훌훌󰡕을 이틀 만에 읽은 날 다음, 주말 아침 늦잠을 즐기며 잠자리에 누워 있다가 문득 유리의 엄마 서정희가 떠올랐다. 유리 할아버지의 표현대로 유리가 갓난아이였을 때 그냥 벌어진 일이었던 교통사고로 유리의 부모가 죽고, 서정희의 남편과 딸 수빈이 죽었다. 살아남은 서정희는 수빈 자리에 유리를 입양한다. 그러나 유리를 키우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떠맡기고 집을 나가 재혼했다. 연우를 낳기 전에 다시 이혼했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채 혼자 연우를 키우며 학대했다. 어느날 서정희는 나쁜 짓을 한 초등학교 4학년인 연우를 술에 취한 채로 혼내다 다리 난간에 서서 연우를 향해 밀어 버려라고 소리를 지른다. 엄마 말을 듣고 정말로 밀기 위해 다가오는 연우를 정희가 걷어차려다 균형을 잃고 다리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서정희의 아버지, 곧 유리 할아버지는 현재 복막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이었다. 사위와 친손주인 수빈을 잃고, 이에 상심한 채로 방황하는 딸마저 먼저 저세상으로 떠났다.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다.

유리의 엄마 서정희의 삶이 꼬이게 된, 그를 망가지게 한 날, 사건 또는 일은 무엇일까. 교통사고로 남편과 딸은 죽고 자신만 살아남게 된 날? 사고 유발 운전자와 아내가 죽고 살아남은 그들의 딸을 입양해서 키우게 된 일? 재혼과 이혼? 그 어떤 일, 사건, 사람 중 일부거나 전부일 수 있다. 그런데 왜 정희는 그 꼬인 매듭을 풀지 못했을까? 망가진 삶을 복구하려고 애를 썼겠지만, 허망하게 죽고 말았다.

나는 내 삶의 어떤 지점에서 꼬인 적이 있었을까? 망가져 본 적은 있었는지. 그랬던 몇 가지 사건과 장면이 떠올랐다. 시인 안도현은담배를 끊고 술을 끊고 애욕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눈 감으면 선명해지는 것들이 많아지는 나이를 오십 대라고 적었다. 내게 그 사건, 장면 들은 그래서 더 선명한가.

훌훌털어 버리다라는 동사 앞에 붙은 부사로 익숙하다. 인터넷 사전을 보니, 날짐승이나 눈·종이·털 따위가 가볍게 움직이는 모양이라고 한다. 󰡔훌훌󰡕에서 훌훌은 딱 한 번 나온다. “(서유리)는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이 집을 훌훌 떠나면 됐다.”(172) 유리는 너무 힘들었다. 유리가 연우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망가지고 형편없는 청소년기를 보낼 수도 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밥상을 차리고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고교 2학년 유리에게 훌훌은 참으로 간절한 부사어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일을 겪은 고향숙 선생님은 너무 힘들 때는 웃으려고 애써 봐.”라고 유리에게 권한다. 그것이 웃음으로 고통으로 포장하는 것일 수도 있고, 훌훌 떨치고 움직이고 나아가게 하는 힘을 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앞이 서정희와 유리의 웃음이라면, 뒤는 고향숙 선생님의 웃음일까.

 

3. 새살이 돋는 마음

문경민의 소설 󰡔훌훌󰡕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짜임새 있는 이야기가 독자를 적당히 궁금하게 만들면서 답을 부드럽게 내놓는다. 자동차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 이란 의성어와 함께 끊어지는듯한 소리라고 적었다. 툭툭 떨어지는 비와 툭툭 끊어지는 비는 느낌이 다르다. 세윤이 유리의 어깨를 두드려 주니 유리는 마음에 새살이 돋는 느낌이 들었단다. 읽기 속도를 빠르게 하고 손에 쥐게 하는 시간을 길게 만든 󰡔훌훌󰡕은 내 삶에 있는 여러 상처에 연하고 부드러운 새살을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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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이주혜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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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학교 학생회관 반지하 동아리 방 안에 몇몇 학생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앉아 있는 의자 뒤로 눈에 잘 띄지 않은 작은 문을 여니 방이 하나 비밀스럽게 나온다. 따뜻한 색이어도 불길한 기분이 드는 주황색 불빛을 가득 담고 있다. 맞은편 벽 천장 가까이에 녹이 슨 배관이 두어 개 가로지른다. 그 아래 바닥 가까이에 직사각형 틈이 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너비와 높이다. 교도소 감방 벽에 뚫린 식구통보다 좀 크다. 30여 년 전 그 식구통에 머리를 넣고 빠져나가는 상상을 하다 절망하고 답답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다가선다. 바닥에 배를 대고 다리부터 밀어 넣는다. 발가락이 바닥에 닿는 느낌이 들자 몸을 아래로 내렸다. 안으로 젖혀져 있던 문을 닫았다. 까만 어둠을 더듬다가 공중에 매달린 전구 소켓에 달린 스위치를 달칵 돌렸다. 백열등이 희미하게 켜졌다. 숨을 쉬어 본다. 몸이 무거워졌다. 무언가에 눌리는 느낌이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그 건물, 그 방, 그 불빛을 떠올리느라, 그리고 잊느라 내내 눈을 감고 있다가 떴다. 왼쪽 어금니가 찬물 더운물 가리지 않고 시렸다. 치과에 갔더니 자면서 이를 악물고 이갈이를 한다고 나이트 가드를 이에 물고 자라고 한다. 졸업한 지 20년 넘은 대학교에 가봐야겠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은 끊긴 지 오래고, 전세 일천만 원으로 자취를 한 지 3년 된 옥탑방도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으로 전환된 지 두 달이 지났다. 조교나 중고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을 계획이었다. 학부 시절 3년간 교수 연구실에서 공부한 특혜는 대학에 강한 애착을 갖게 했다. 나의 고교 친구 결혼식 주례를 하시느라 뵈었던 은사님이 친구를 통해 연락하셨다. 교사 정년 단축으로 많은 선생님들이 한꺼번에 퇴직하는 바람에 모교에 자리가 났으니, 당장에 지원하라고. 요즘 같아서는 안 되었겠지만, 운 좋게 합격했다. 교직 2년 차부터 하루 수업을 빼고 대학원 수업을 받았다. 수료 후부터 대학에 발길이 뜸해지자 향수병 비슷한 증상을 앓더니 그리움이 차곡차곡 쌓였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 망신을 당하고 수치심으로 움츠러들었던 사십 대 말부터, 학생회관 반지하 동아리방에 있는 식구통 같은 입구를 통해 지하에 있는 은밀한 방에 내 몸이 구겨 넣어지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 대학교에 다녀왔다. 가까이에서 그 방을 보았다. 꿈속의 그런 데는 없었다. 학생회관, 문과대학, 운동장 등을 걸었다. 고열에 진땀을 흘렀다. 무더위 탓인 줄 알았는데, 다음 날 코로나19 검사를 하니 양성 반응이 나왔다. 이주혜의 소설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에서 50대 시옷이 겪고 있는 불안·공황 증상을 접하고, “내가 그랬구나.”라고 중얼거리면서 시옷의 탁한 흑색과 투명한 흑색의 삶에 빨려 들어갔다.

내 삶을 자꾸 들여다보게 만드는 소설은 좋은 소설인가. 어떤 소설이든 성찰과 반성의 도구가 되면 불편해진다.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의 화자는 현재의 나와 한 살 차이다. 교동, 경운전, 한옥마을, 군경묘지, 방송국, 중앙동, 철둑 너머 등의 장소와 지명, 80년 광주와 87년 시위, 91년 분신 정국, 대통령 선거에서 비판적 지지 대신에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진보 진영 후보에게 매번 투표했던 ’, 그리고 남편 현석구의 성폭력 사건 등은 내 삶의 이전 것들을 툭툭 건드리면서 시옷과 내가 같은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했다. 책가방 속에, 책상 한쪽에 체크무늬 북 커버로 감싸여 있는 소설책은 나인 양 나를 내내 바라보고 있었다.

불안, 공황 장애 증상을 보이는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는 일기 쓰기 모임에서 시옷이란 별명으로 일기를 쓴다. ‘쓰면 만나고 만나면 비로소 헤어질 수 있, ‘어떤 수치심도 글로 옮기면 견딜 만해진다는 강사 림자의 지도에 따라, ‘기억 자아의 폭압에 이끌린다. 3분의 2가량이 1980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있던 시기에 초등학교 4학년 10살짜리 시옷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십 대 초반인 현재의 는 남편과 학원을 운영했다. 정당 활동을 했던 남편이 성폭력 비위 행위로 같은 당 동료에게 고발당하고 학원을 에게 넘기고 고향으로 떠났지만, 학부모들의 항의로 학원을 닫는다. ‘는 불안장애로 공황 증상을 보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남편은를 사랑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을 고발한 상대를 진심으로 좋아했기에 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죽어버린 광주 시민 학살자에 분노한다.

술을 마시고 싶었다. 끊은 지 600여 일이 지났다. 저녁 식사 반주로 몇 잔 마셨던 술은 횟수와 양이 늘면서 몸과 정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단 한 번도 끊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술을 입에 대지 않기 시작했다.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의 에필로그에서 일기 쓰기 수업 종강 파티 겸 송년회 자리에 마웨가 와인 다섯 병을 가져왔다는 문장을 읽고 참기가 어려워졌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옷의 자서전 ‘2의 중심인물인, 맑은 눈을 지닌 윤수의 소식을 시옷이 알게 된 순간 음주 욕구는 강렬하게 일기 시작했다.

두 장면이 오래 남는다. 시옷은 고향의 봄2절을 합창단에서 솔로로 부르게 되어 있는 방송 녹화 리허설 자리에 애니가 빌려준 치마 단복을 입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간다. 남자인 줄 알았던 지휘자 선생님은 시옷이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다른 학생으로 교체한다. 자신이 솔로를 부르겠다고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는 선생님 손을 시옷이 잡자, 선생님은이거 놔라. 더럽구나.”라고 말한다. 시옷의 아빠가 진 빚을 받으려고 시옷의 집 응접실에 눌러 앉아버린 제비다방 마담의 아들이 어느 날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시옷의 엄마가 더러워.”라고 말하면서 집에서 나가라고 말한다. 이 둘은 시옷에게 탁한 흑색을 안겨준 하나의 장면이다. 섹슈얼리티와 젠더를 둘러싼 혐오와 경멸은 기분 나쁘고 무겁게 어둡다. 또 다른 장면에는 시옷에게 투명한 흑색을 보여준 윤수가 있다. ‘송아지 눈망울같은 눈을 지닌 윤수가 용접공으로 잘살고 있지 않고 사십 대 어느 언저리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살한 사실을 시옷이 오십 대가 된 지금에야 알게 되는 장면이다. ‘는 엄마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지만, 나는 글자를 읽지 않으려고 눈을 질끈 감았다. 가슴 먹먹한 순간이란 그런 것이었다.

투명한 흑색은 시옷이 응달집에서 윤수와 함께 산 시기를 상징하는 색이다. 온양집에서 살면서 이웃에 사는 애니와 교류하며 방송국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던 시기는 탁한 흑색이다. 망신과 모욕을 최초로 인식하고 경악이 혐오로, 다시 경멸로 이어지는 감정의 고리를 알아버리게 되는 10살 시옷이 겪은 은 맑지 않았다.

소설의 1~4부의 제목을 한 문장으로 적어 보았다. “봄이 봄을 만나고 봄을 탐하고 다쳐서 오래 울었지만, 봄을 옮겨 붙여 놓으니 봄은 (단수가 아니고) 복수가 되었다.” 언젠가 어떤 시선집에서 읽었던 봄에 관한 시를 찾아보았다. 이성부 님이 쓴 시 이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이 독후감의 제목은 이 시의 끝 구절에서 가져왔다. ‘나이트 가드를 착용하고 잔 덕분인지, 대학교에 다녀온 덕분인지 더 이상 어금니가 시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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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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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 속 이야기, 장면과 나

소설 읽기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할수록 독서의 재미는 더욱 커지고 몰입도 깊어진다. 최은영의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 실린 일곱 편의 소설이 일으킨 잔잔한 파동이 가시지 않은 이유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희원은 스물일곱 살의 대학교 3학년 편입생이다. 나도 스물일곱 살에 대학교 2학년 복학생이었다. ‘그녀가 공부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순간을 공유하며 잠깐 설렜다. 언제인가부터 나는 공권력의 폭력에 무참하게 당하는 여러 모습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접하면서 분노만 했지, 내 일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을 느꼈다. 어쩌면 나 같은 이가 아주 희미한 빛마저도 가리는 존재일지 모른다는 부끄러움이 일었다.

, 연극부 건물 앞에서, 마주 보고 걸어와서 서로 피할 새도 없이 만나 나눈 몇 마디가 정윤과 희영의 마지막 만남이자 대화였다. 내가 그렇게 만나고 헤어질 수도 있을 몇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5월의 정오 이맘때, 흔들리는 정윤의 어깨를 한 손으로 잡고 다가앉는 희영의 친구 당신해진은 무엇이 지나가고 무엇이 그대로인지 아직은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걸쳐 있는 나의 사회변혁운동 자취 중에서 지나간 것과 그대로인 것이 무언지 생각하다 마음이 답답해졌다.

일 년, 지수가 3년 차 정직원이었던 때 카풀 동료였던 동갑내기 인턴 다희는 지수에게는 우연히라도 다시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한 사람이었는데 병원에서 둘은 우연히만난다. 나를 선배라 불렀던 대학 1년 남자 후배는 재수했고, 나보다 한 살 많았다. 선배로 대접받고싶었던 나는 그와 곧잘 감정 섞인 말다툼을 벌였고 한 번은 비록 주먹질은 없었지만, 몸싸움이 있었다. 체격이 작은 내가 그에게 헤드록을 당하면서 느꼈던 억센 팔뚝 힘과 그다음에 더는 나를 어찌하지 못해 내뱉었던 그의 어휴!’ 하는 소리가 남아있다. 삼십 년이 더 지난 일이다. 눈을 저절로 찡그리게 할 정도의 수치심과 함께 떠오르는 짙은 농도의 기억이다.

답신은 내가 가해자로서 받은 처벌 과정에서 느꼈던 부끄러움 때문에 읽는 동안과 그 후 내내 불편했다. 화자가 감옥 안에서 글쓰기로 자신을 수습하려고 했던 일은 내 일이었다. 좁은 감방의 불편한 잠자리, 형편없는 음식, 거칠게 대하는 감방 동료, 범죄자로서의 낙인을 받아들이면서도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던 그는 곧 나였다. 최근 내가 사무실 바닥과 계단을 쓸고 닦고,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내 속죄 중 하나이다.

파종에서 소리의 엄마와 삼촌은 열다섯 살 차이 나는 남매다. 나의 큰누나가 그렇다. 누나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할머니의 반대로 고교 진학을 안 하기로 결정이 난 즈음, 대보름 전날 나는 태어났다. 누나와 나 사이에 일곱 명의 남매가 있었지만, 누나는 진학하지 못한 분노, 아쉬움, 절망, 체념 들을 갓난아이인 나에 대한 애정으로 삭였을까. 결혼하기 전까지 8년간을 품 안에서 길렀고, 당시 졸업반이었던 매형이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에 같은 군 다른 면에 있던 시댁에서 살았던 누나는 두어 번이나 나를 불러 잠을 재우고 아침밥을 먹여 국민학교에 보냈다. 매형이 은행원이 되어 도시에 정착하자 누나는 나와 셋째 형을 불러 같이 딱 한 달 살았다. 시댁의 반대로 누나집을 나와 우리는 베니어판으로 된 여닫이문이 달린 길가 단칸방으로 이사를 했다.

이모에게, 내게도 이모가 한 분 계신다. 엄마의 동생이다. 엄마가 여든이 되기도 전에 뇌출혈로 1년간 병상에 누워 계시다 돌아가신 데 비해, 이모는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정정하시다. 우리 엄마처럼 시골에 사셨는데 이모부가 돌아가시자 자식 여섯을 데리고 오빠가 교수로 재직하는 대학교가 있는 도시로 나왔다. 알밤을 물에 담가 까는 일로 생계를 이으셨다. 겨울방학 때, 이모 집에 놀러 가서 그 밤을 한 알 두 알 날름날름 먹었던 철부지 내가 떠오를 때마다 죄스럽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자식들에게 어떤 물질적인 도움도 줄 수 없는 내 형편에 내 자식도 우경처럼 나를 대할지 걱정이다. 우경이 미국과 홍콩에서 거주하는 데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 시어머니에게 우경은 친정엄마보다 더 친근하고 예의 바르다. 엄마의 홍콩 방문을 돌보기 위해 우경은 이틀 연차를 낸 일에 생색을 내고 엄마가 가방을 잃어버린 일에 짜증을 낸다. 가까운 사이보다 거리가 더 있는 사람을 더 조심스러워하고 존중하려는 나의 모습과 우경은 닮았다.

2. 그렇다! 사랑이다!

최은영의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차례를 보고 맨 먼저 읽은 소설은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이었다. ‘무엇이 그런지 궁금했다. 엄마 기남과 둘째 딸 우경 간 만남을 시작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안에서 기남의 성장 과정, 우경의 언니인 진경이 남편과 전처 사이에 태어난 아이지만 우경보다 더 큰 친밀감을 느낀다는 사실, 손자 마이클의 낯가림하지 않는 모습을 접해도 나는 그 무엇을 알 수 없었다. ‘살아진다를 소리 나는 대로 적으면 사라진다임을 살아진다. 그러다보면 사라진다.”(일 년108)를 읽고 깨우쳤다. 나머지 소설 여섯 편을 읽으면서 알았다. 사라지는 것은 사랑과 관련이 없는 것들이고 사라지지 않는 것은 사랑이라고. 사람 간 원근, 친밀의 정도와 관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그것은 진하거나 옅거나 부족하거나 흘러넘치거나 진실이거나 거짓으로 우리 사이를 흐른다. 김사인 시인이 쓴 삶의 이 진저리나는 격렬함이란 제목의 시 첫 구절, ‘멀리서 보면 고요한데/ 가까이 다가가 속을 들여다보면/ 흐른다.’가 눈에 들어온다.

최은영 소설의 중심은 사랑이다. 그의 장편소설 󰡔밝은 밤󰡕이란 제목은 고단하고 혹독한 삶’, 이 밤을 밝게 비추는 것은 사랑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이제야 했다. 사랑은 존중이다. 환대다. 호의와 친절함이고 돌봄과 도움, 관심(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에서 마이클이 처음 만나는 기남의 팔짱을 끼고 팔에 머리를 기대는 모습)이다. ‘서로 기대는 삶의 바탕이다. ‘상호 의존적삶은 본질적인 모습임에도,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현실에서는 자기 주도적’, ‘자기 독립적삶에 치여, 그것은 비주체적이고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삶으로 평가된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를 착취하는 이념이라는 철학자 한병철의 주장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그 빛은 사랑이다. 이모에게에서 희진이 밤 비행 중에 느꼈던 이모의 시선은 어두운 밤에만 지상에 닿는 저 너머의 눈빛으로서, 비록 아주 희미할지라도 사람을 살리는 힘, 곧 사랑이다. 희진은 이모에게 세상 사람들이 너를 우습게 보고 함부로 대하는 걸 원하느냐.”, “징징대면서 네 기분 받아달라고 하는 거 좋아할 사람 세상에 하나도 없다.”,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넌 여자애니까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널 두려워하게 하는 편이 훨씬 좋은 거야.”라는 말을 틈틈이 들으며 자랐다. 희진은 이모처럼 내가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자기 존중으로서의 사랑이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의 기남은 아홉 살 때부터 식모 일을 했다. 식모살이를 한 집만큼 부유한 집안에서 여섯 번째 딸로 태어난 기남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기남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 자신이 완전히 혼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 쉽다고 여기며 살았다. 그러다 김 여사를 만나 기만의 뿌리를 뽑는다. 권사장에게 분노를 느꼈고, 그 분노는 기남에게 약이 된다. 분노의 또 다른 원천은 사랑이다. 결국 최은영이 끝끝내 붙들고 싶었던, 사라지지 않은 것은 사랑이다.

 

3. 남은 감상들

요즘 틈틈이 읽고 있는 책(로버트 라이트 저, 󰡔도덕적 동물󰡕)을 보니, 찰스 다윈이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인간은 자신들과 아무런 친분관계가 없는, 심지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울타리 밖의사람들에 대해서도 연민을 느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왜 착한 사마리아 인들이 있는 것일까?” 이런 연민으로서의 사랑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라면, 그런 사랑을 느끼는 유전자가 어떤 이유로 선택되었는지 다윈은 자문했다.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 있는 희영, 지수, 민혁, 기남 들의 유전자가 선택되어 이어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최은영은 독자가 궁금해할 법한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여백일까? 일곱 편의 소설 중에 여섯 편에 나오는 이름에 성씨(姓氏)가 없다. 젠더를 의식한 것일까? 딱 한 번 나온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에서 우경이 진경을 부르면서 이진경’. 에서 희영이 쓴 글의 마지막 문장이 무엇인지 적지 않았다, 다만 상황을 다음과 같이 썼다. “편집실은 고요했고 편집실을 채운 팽팽한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희영의 병명도 말하지 않았다. 희영이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죽었다는데, 그 사람이 동성인지 이성인지도 모른다. 일 년에서 화자인 그녀의 병, 답신에서 수신자인 조카의 이름·성별과 화자가 산 징역이 몇 년인지, 파종에서 민주가 이혼한 이유, 민주의 오빠 민혁을 죽게 한 병, 이 둘의 엄마가 무슨 병을 앓았는지, 민혁이 혼자 사는 이유, 민주가 한 그런 결혼그런등에 대해 말하지도 설명하지도 않는다. 이모에게의 이모가 혼자 된 이유가 사별인지 이혼인지, 이모가 자궁을 잃은 이유 등을 쓰지 않았다. 이야기와 상황에 몰입을 방해하는 것들이라 일부러 제거한 것 같다.

누가 그랬던가. 형용사, 부사는 인간만이 사용하는 언어라고, 인간 언어의 특징이 그 형용사, 부사에 있다고. 최은영은 서운함을 다음처럼 인상 깊게 적었다.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원망, 미움 등의 감정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다.(115)” 최근 꼭 읽고 싶은 책을 신문에서 보았다. 영상 편집자, 성우, 그래픽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사진작가 등 여러 이력을 지닌 존 케닉이라는 사람이 쓴 󰡔슬픔에 이름 붙이기󰡕란 책이다. 부제가 마음의 혼란을 언어의 질서로 꿰매는 감정 사전이다. 이 책을 읽으면 내 마음을 적절한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일곱 편의 소설을 합해서 느낀 나의 마음을 최은영이 쓰는 말로 적자면, ‘옅고 희미한 슬픔 또는 연민이다. 이것은 어떤 유전자의 표현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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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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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외가

아껴 읽었다. 소설 󰡔밝은 밤󰡕은 옆에 오래 놓아두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잊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읽은 이야기였다. 여자와 여자의 엄마, 이 엄마의 엄마, 그리고 그의 엄마, 4대에 걸친 가의 이야기를 눈으로 새기면서 나는 우리 엄마와 외할머니를 생각했고 외할머니의 엄마를 상상했다. 더는 자를 붙이지 말아야 하는데도 수십 년 동안 입에 붙어 있는 그 단어가 좀처럼 떼어지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지명을 앞에 붙이고 어디 할머니, 어디 할아버지라고 부르라한다.

이번 추석에 아내의 할머니를 뵙거든, 내 자식이 있는 자리에서 꼭 여쭤봐야겠다. 당신 손으로 손톱을 깎을 수 없을 정도로 나이를 드신 할머니에게 당신의 엄마는 어떤 분이셨냐고 물으시면, 할머니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시며 말씀하시겠다.

 

2. 무지

고등학교 선후배가 함께하는 모임의 술자리에서 6년 후배가 옆자리에 앉았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러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길에 참석한 자리였다. 요즘도 벌초를 집안 행사로 한다고 하니 대단한 가문의 종손쯤 될까 하는 짐작을 하면서 본관이 어디냐고 물었다. 귀에 익은 지명이었다. 가족관계증명서 뗄 때마다 들여다보는 어머니 본관과 같았다. 후배의 이름을 염두에 두고 항렬자가 뭐냐고 물었더니 외삼촌 항렬과 같다. 어머니 태어난 곳을 대니 거기에도 집성촌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고교 시절 한문 선생님은 자기보다 2대 아래라고 한다. 집안에 교육계 종사자가 많다고 한다. 나와 그 후배, 그리고 한문 선생님이 공유하고 있는 동일한 유전자는 얼마나 될까? 부계를 자연으로 알고 익숙해진 내게 어머니의 계통은 낯설다.

지난 여름 초입에 9남매 중에서 여섯 남매가 모였다. 부모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겨우 삶의 자리를 잡은 남매만 매년 한 차례 모이다가 감염병 탓에 3년 만에 만났다. 󰡔밝은 밤󰡕의 여운이 사그라들기 전이었다. “혹시 외할머니의 엄마가 어떤 분이셨는지 알아?”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할머니의 엄마는?” 이 질문에도 모른다고 한다. 우리는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안다. 어머니도 안다. 매년 설날과 추석이면 산소에 간다. 내게 증조부는 일제 강점기에 쌀 판매업을 하신 분이다. 고향집 창고를 허물려고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명패를 보았다. 증조모는 두 분이다. 한 분은 추석 전날 땡감을 드시다 얹혀 급사를 하셨단다. 새로 오신 증조모는 기울어가던 집안을 일으켜 세우셨단다. 소설 󰡔혼불󰡕의 청암 부인만큼 그러셨을까. 이쯤은 우리 남매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의 외할머니는 아무도 몰랐다. 들은 바가 없지만, 애초에 우리 엄마에게 우리가 묻지 않았다. 나의 엄마의 엄마를 나는 안다. 나의 외할머니. 잎담배를 연달아 피우셨던 분이셨다. 결혼 전에 횟배앓이를 낫게 하려고 피우셨던 뻐끔 담배를 아흔 살 즈음까지 달고 계셨다. 외할머니의 엄마를 나는 모른다. 우리 엄마는 알고 계셨겠지만, 한 번도 엄마에게 엄마의 외할머니가 누구셨냐고 묻지 않았다. 멀쩡한 Y자 나무에는 한쪽만 있는 줄 알았다. 󰡔밝은 밤󰡕은 우리가 또 다른 한쪽을 보게 한다. 우리가 엄마에게 물려받은 X염색체는 엄마가 외할머니 자궁 속에 있을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샤론 모알렘, 󰡔우리의 더 나은 반쪽󰡕, 229.) 그 외할머니의 X염색체는 외할머니가 외할머니 엄마 자궁 속에 있을 때 만들어진 것이다. 존재를 잊고 살아 왔다. 질문은커녕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3.

밝은 밤’, 언뜻 형용모순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어둔 밤이 있고 밝은 밤이 있다. 어둔 낮이 있고 밝은 낮이 있듯이. 대기가 깨끗하고 찬 밤, 별빛이 가득한 밤은 밝은 밤이다. 큰 보름달이 주변의 별빛을 모두 머금고 태양빛을 반사하는 밤은 어둔 낮만큼 환하다. 낮이 주기 어려운 포근함과 따뜻함을 밝은 밤은 우리에게 준다. 밤은 어두워야 한다면, 밝은 밤은 밤이 아니다. 밤은 어두워야 밤답다. 밤이 어둡지 않고 밝다면 밤이 아니다. 물론 밝은 밤이 있다. 공기가 차갑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밤이면 별빛만으로도 밝다. 보름달은 태양빛을 반사하면서 무수한 별빛을 머금고 삼킨 채 어둔 밤을 밝게 비춘다.

영옥이 그믐밤에 보았던 밝은 밤이 있다. 새비 아줌마와 희자가 있는 대구로 피란을 가던 중에 만난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를 영옥은 데려가려고 한다, 영옥의 엄마 삼천은 그 아이에게 영옥의 겉옷을 꺼내 입히고 목도리로 머리를 싸매주고 삶은 감자와 고구마 몇 개를 보자기로 싸서 건넨다. 그 아이가 삼천의 치맛자락을 잡자 삼천은 억지로 떼어낸다. 영옥이 같이 가자고 하자 그 아이가 영옥을 안았다. 삼천은 다시 떼어냈다. 그리고 영옥을 때렸다. 그 아이를 두고 길을 걷다 해가 지고, “그믐밤이었다. 별 무리가 아주 낮게까지 내려와 밝게 빛났다. 그걸 보면서 할머니는 생각했다. 우리는 이런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자격이 없는 존재들이라고. 짐승만도 못한 존재, 천한 존재,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들이라고.”

영옥은 그 별을 보고 숨을 쉬었을까. 별을 보는 일은 숨구멍으로 숨을 쉬는 것과 같다. 지연이 천문학을 선택한 이유다. 영옥이 대구로 가는 피란길에서 본 별도 영옥에게는 숨구멍이었을 것 같다. 내게 숨구멍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이 시를 적었다.

 

숨구멍

 

내 하루의 지금 숨구멍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활자다

수업, 업무, 가사가 잠시 멈춘 틈에

모니터 앞 책받침대에 펴 놓은 글자에 눈이 가면

나는 숨 쉬기 시작한다 비로소

호흡은 공기를 먹는다

숨은 고래마냥 수면 위로 뿜어 나온다

숨은 내 몸에 스며드는 생명이다

구멍을 달리하며 숨은 쉰다

 

4. 상처, 잔인함

이상한 일이야. 누군가에게는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지연의 엄마인 미선이 자신의 엄마인 영옥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모녀 사이에서 엄마가 딸에게 아픈 상처를 주었지만, 자신의 딸인 지연에게는 엄마 영옥은 좋은 사람이다.

나는 미선이가 엄마인 영옥과 왕래를 끊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 지연의 언니인 정연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 이유와 원인을 찾기 위해 책을 여러 번 뒤적였지만 찾지 못했다. 내가 건성으로 소설을 읽은 것인지, 그것들이 책에는 기술되지 않은 채, 독자인 내가 추측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지연이 음주운전 차에 들이받혀 정신을 잃고 있었을 때, 언니의 등을 꼭 껴안고 자전거를 타며 언덕을 내려가던 꿈을 꾼다. 자전거 타다가 죽었나? 정연의 죽음을 두고 딸 미선을 위로한다며 엄마 영옥이 건넨 사람 명이 하늘에 달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냐.”라는 이 말이 딸과 엄마 간의 거리를 멀게 할 정도로 잔인한 말인가. 그 후 5년 만에 지연을 10일간 맡기고 돌아와서는 지연이 결혼식에 영옥을 초대하지 않은 미선의 마음은 영옥과 얼마나 거리를 둔 것이었을까.

영옥은 손녀 지연에게 엄마가 딸을 용서하는 건 쉬운 일이라 말한다. 딸이 엄마를 용서하는 일은 어렵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를 용서하지 못하는 딸도 엄마에게 상처를 준다. 엄마 미선은 결혼 전에 우체국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인 명희 아줌마에게 명희 아줌마의 엄마 수술비로 큰돈을 선뜻 주었다. 명희 아줌마에게 엄마 미선은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미선의 엄마 영옥에게 아픈 상처를 준다. 지연은 엄마 미선에게 죽은 언니 정연을 잊으라며 날선 말로 상처를 준다.

지연의 증조모 정선은 자신의 병든 엄마를 새비 아저씨 손에 맡기고 남편 희수와 함께 개성에 간다. 고조모는 삼천(정선)의 치맛자락을 붙잡으며 자신을 데리고 가라 한다. 정선이 그 손을 떼어내자 포기한다. 다음 생에 자신의 딸로 다시 태어나 못다 해준 걸 해주겠다며 다시 만나자 한다. 자식에게 버림받은 것을 알게 된 마음, 그 상처를 감추고 자식을 떠나보내는 고조모의 마음이 남는다.

박희수, 그는 아내 정선이 백정의 신분인데도 그와 결혼한다. 천주교 신자인 자신이 아내에게 큰 사랑을 실천했다고 자부하며 살았던 것 같다. 자신의 딸 영옥이 사기 결혼을 한 데 일조한 데 대해 자책을 하기보다는 남자 마음 하나 잡지를 못해서 빼앗겼으니 아쉬울 것도 없다.”라며 모진 말을 영옥에게 한다. 그 말에 정선은 자기 손으로 희수를 죽이겠다는 폭언을 하면서 영옥의 상처를 감싼다. 영옥도 아버지에게 죽으라고 한다. 희수는 몇 달 뒤에 대로변에서 버스에 치여 죽는다. 아내와 딸의 말에 큰 상처를 받고 죽음을 선택했을까.

희자의 고모할머니 명숙의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은 영옥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자신이 사는 세상과는 다른 곳으로 나아가고 있는 희자를 생각하는 영옥이.‘질투, 시기라는 단어를 굳이 쓰지 않아도 느껴지는 영옥이의 그런 마음이 느껴진다. 공자는 을 설명하면서 잔인함을 그것의 반대로 여겼다고 한다. 잔인한 말과 삶의 모습이 상처로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5. 기억

할머니 영옥은 수제비를 먹을 때마다 아버지 박희수가 느닷없이 국군에 자원입대한다면서 주말에 훈련소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하던 날이 떠오른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낮잠이나 초저녁잠을 잤거나 커피를 많이 마신 날 밤에 쉬이 잠이 오지 않아 괴로운 이유는 불면 자체보다는 떠올리기 싫은 옛 기억에 있다. 여기에다 이루지 못한 것들, 이에 따르는 후회, 자괴감 등은 불면을 더욱 끔찍하게 한다. 더는 어쩌지 못하는 나이가 되어 느끼는 무력감에다 생생해지는 기억을 그대로 떠안으며 살기는 무척 힘든 일이다.

소설 󰡔밝은 밤󰡕밝은 밤 같은 기억의 강물이다. 백정을 천대하던 신분제, 위안부와 징용, 히로시마 원폭 피해를 겪었던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과 피난민 등의 참상이 여러 모양과 색깔로 흐르고 있다. 지연의 전남편은 시간은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얼어붙은 강물이라고 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동시에 존재한다는 뜻이란다. 기억도 그런 점에서 얼어붙은 강물과 같다. 기억은 낮 시간대에 있지 않다. 기억은 늘 밤을 배경으로 한다. 지연은 감기약을 먹고 총천연색 꿈을 꾼다지만, 꿈과 달리 기억은 밤이고 흑백이다. 할머니 영옥은 지연에게 옛 이야기를 처음 했다. 영옥에게 기억하기는 나이가 들수록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그의 삶은 잊을 수 없는 일로 가득하다. 밝은 밤이 어둔 밤이 되어야 평온해질 수 있다.

어둠은 거기에 있었다.” 지연이 희자 할머니에 관한 다큐멘터리 자료를 보러 도서관에 가는 길 지하철에서 머리를 기대고 자는 어떤 여자에게 자기의 어깨를 맡기면서 든 생각이다. ‘거기란 인정하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 않고 느끼고 싶지 않아서 지연 자신과 지연의 인생에게 거짓말을 한 지연 자신이다. 그런 가 어둠이라면 밝음은 인정하고 싶고 알고 싶고 느끼고 싶은 이겠다. 밝은 밤 같은 기억에 덜 괴로워하려면 그 어둠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다. 기억의 강물을 건너거나 벗어나는 일은 부질없어 보인다. 그냥 흘러가다 어디에서 흐른 강물인지 모르게 되는 바다로 가고 싶다. 어둔 밤의 바다에서 삼천이, 새비, 영옥이, 희자 등 소설 󰡔밝은 밤󰡕의 모두가 평안하기를 바란다. 나도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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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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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삶

고단하다의 고자는 한자로 고통스럽다 고()자일 것 같았는데, 단자는 어떤 한자일까 궁금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지쳐서 피곤하다.”는 뜻으로 고유어다. 단출하고 외롭다는 뜻의 고단은 한자로 孤單이다. 소설 󰡔밝은 밤󰡕은 여자 쪽으로 4대에 걸친 고단한(지쳐서 피곤한) 삶을 전한다.

지연은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고 6년 동안 살았던 집을 정리하고 희령으로 떠난다. 감기약을 먹고 총천연색으로 꿈을 꾼 후에 겨우 몸을 추스르고 출근했는데 선배에게 업무 과실로 질책을 받으며 이혼한 자신의 처지를 떠올린다. 지연의 엄마 미선은 혼외자다. 일찍 어른이 되어 엄마 영옥과 거리를 둔 미선의 삶, 딸인 지연과 갈등, 고단해 보인다.

지연의 증조모(정선, 삼천이)가 증조부(박희수)와 함께 개성으로 가려하자 병석에 누운 고조모가 치맛자락을 잡고 당신도 데려가 달라 애원한다. 정선이 그 손을 떼어내자 다음 생에는 네 딸로 태어나 현생에서 못 다한 사랑을 베풀어주겠다고 증조모에게 말한다. ‘똥지게꾼도 오물을 퍼내지 않을 정도로 천대받는 백정의 딸로 자란 삼천의 어린 시절도, 시숙에게 줄 쌀밥이 복구네 아이 장난으로 뒤엎어지고 그걸 주워 담고, 깨진 사발 조각에 발을 베고도 머리가 깨질 듯이 추운 날에 보리쌀을 씻는 삼천의 결혼 생활도 고단하기 그지없다. 삼천에게 그 밤은 무척 고단한 밝은 밤이었다.

 

혹독한 삶

혹독하다, ()자는 독하다, 심하다, 잔인하다는 뜻인데, ‘술이 독하다, 향기가 짙다는 뜻도 있다. 숙취의 고통이 떠오른다. 지난밤 과음으로 다음 날 내내 내장에서 알코올을 소화하고 독기를 거르느라 괴롭고, 뇌에서는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일어나 마음은 표류한다. 샤론 모알렘이라는 의학자는 󰡔우리의 더 나은 반쪽󰡕이란 책에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삶을 단 한 단어로 혹독하다고 적었다. 우리 유전자가 온갖 감염병에 맞서 면역 반응을 일으켜 생명을 유지하려는 일이 무척 혹독하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어낸 소설 󰡔밝은 밤󰡕의 등장인물에게 그런 숙취나 바이러스 면역 과정의 혹독함은 사치에 가깝다. 새비의 남편이 히로시마에 가 일을 하다 원폭 피해를 입고 돌아와 죽어가는 모습, 정선이 가족을 데리고 새비가 있는 대구로 피란 가던 중에 만난 여자 아이에게 옷을 입히고 먹을거리를 쥐어 준 후에 떼어내는 모습은 혹독하다는 단어 말고는 표현할 수 없다. 그 피란길에서 해가 저물자 별빛 가득한 그믐의 밝은 밤을 올려다 본 영옥은 그런 밤을 즐길 자격도 없는 천한 존재라는 자각을 한다. 영옥에게 그 밝은 밤은 혹독한 밤이었다.

 

따뜻한 삶

따뜻하다는 물리적으로 쾌적한 느낌이 들 정도로 온도가 알맞게 높다는 뜻이라고 사전에 나온다. 도타운(깊고 많은) 사랑을 느낄 정도로 인정이 있다는 의미도 있단다. 소설 󰡔밝은 밤󰡕이 고단하고 혹독한 삶만을 담고 있었다면 또다시 여러 번 마음이 아플까 더 펼칠 마음이 일지 않았을 테다.

영옥이 지연에게 사과 하나를 건네며 대화를 나누다 손녀랑 닮았다면서 서울 사는 애가 여기에 내려올 일이 없잖우.”라고 말하자, “그런데 내려왔네요, 여기.”라고 지연이 대답하는 장면에서 영옥의 지연을 향한 도타운 사랑을 느꼈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받고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끼는 지연을 보면서 내가 4학년, 5학년 다닐 무렵에 단칸 자취방에서 밥을 해주셨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새비가 정선과 영옥에게 주기 위해 장만한 온갖 선물을 풀어놓는 장면이나 영옥이 손녀인 지연에게 베푸는 손길 하나하나 따뜻하다. 희자의 고모할머니 명숙이 영옥에게 보인 선의와 유품도 그렇다. 밝은 밤은 따뜻한 밤이기도 하다.

밝은 밤의 온기

아껴가며 조금씩 읽은 지 4개월이 지나고 있다. 내내 뭉근하게(세지 않으면서 꾸준하고 끊임없이) 내 생활과 함께하고 있다.

누군가와 대화할 기회가 있으면 당신 엄마의 외할머니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어본다. 대개는 자신의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외할머니의 엄마라고 다시 말하면 돌아오는 답은 거의 몰라였다. 나도 모른다. 친할머니의 엄마를.

우리가 모르는 조상은 호칭에 자가 들어가거나 여자. 족보는 남자조상만의 계통만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의 나를 비롯한 거의 모든 생명체는 남과 여의 결합이다. 이를 정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현실 사회는 남자만 있다. ‘비정상을 이만큼이나 정상으로 인식하는 대상이 또 있을까. 여자 조상에 대해 나는 모르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궁금해 한 적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밝은 밤󰡕은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일깨웠다.

고단하고 혹독하다가도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모든 이의 삶을 보았다. 백로 절기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보드라운 이불로 막아내자 느껴지는 그 따스함을 소설 󰡔밝은 밤󰡕과 함께 오래 간직하고 싶다. 자꾸 꺼내 읽고 싶은 소설, 어떤 쪽이든 펼쳐진 대로 읽다보면 다시 덮기가 쉽지 않은 이야기다. 우리 삶의 본 모습을 모두 담고 있어서, 우리 삶을 닮고 있어서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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