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훌 -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57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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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심한 듯 조심하는 마음

너 그거 아냐? 너 다리 밑에서 주서(주워) 왔디야!!!”삼촌이나 고모, 또는 나이 차 크게 나는 형이나 누나가 어린애를 흔하게 놀리는 말이다. 내 막내 딸아이를 곧잘 그런 말로 놀린 적이 몇 번 있다. 두세 번은 얼굴을 실룩거리며 굳히더니, 언젠가 아빠! 새아빠래. , 친아빠 찾으러 갈래.”라고 대꾸한 뒤에는 그런 말을 더는 하지 않았다. 재미가 없어졌으니까. 그런데 문경민의 소설 󰡔훌훌󰡕을 읽고, 그런 놀림은 입양에 대해 부당하고 부적절한 차별 의식을 담고 있는 나쁜 언행임을 알았다.

어린 시절,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혹시 내가 주워 온 아이는 아닌지 하는 생각과 함께 들어오는 아득함, 아찔함 그리고 설움은 본능으로서 자연적인 감정일까? 소설 󰡔훌훌󰡕의 화자인 유리는 자신이 입양된 아이라는 사실이 들켜버린나머지, 당혹감과 수치심에 휩싸인다. 어린 시절부터 입양 사실을 설명해야 하는 순간에 유리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원망과 함께 분노, 배신감도 느꼈다. 분명해 보이는 것은 가슴으로 낳은 자식으로 여기려는 마음이 동물적 본능에 반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이란 점이다.

인간다움에는 비정한 자연에서 비켜선, 동물이면서 동물이 아닌 인간만의 모습이 있다. 󰡔훌훌󰡕의 병규와 진성 같은 현실 속 사람들이 품는 입양에 대한 고정관념(친자식만큼 잘 대하지 않을 것 같다, 입양아는 길러준 부모에 대해 친자식보다 더 말을 잘 들어야 하고 효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못된 친자식보다 더 못된 자식이다 등), 혐오(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는 둥, 외모 품평 등), 그리고 부당한 차별(선 긋기, 따돌림 등) 등은 지극히 동물적(야수적)인 것들이다.

고향숙 선생님 수업 시간에 보여준 일부 학생들의 수업 방해 사례(틀딱, ‘음탕이 무슨 뜻인지 묻고, ‘불륜이란 단어를 언급하는 등)는 단순 무례를 넘어 여성, 노인 등에 대한 혐오를 보여준다. 나이 많은 여자 교사를 젊은 남자 교사와 다르게 대하는 차별적 태도는 여성·노인 혐오를 동반한다.

일상에서 거리낌 없는 조롱과 놀림으로 표현되는 언행은 부당한 혐오와 차별을 불러오는 데 그치지 않고, 죄의식을 갖지 않게 만든다. 이번 주말에 있을 고교 친구 모임에 이혼하고 혼자 사는 친구,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는 친구가 참석한다. 친한 사이라 해도 화제로 올릴 주제에 대해 나는 신중해야 한다. 무심한 듯 조심하는 마음이 내게 필요하다.

 

2.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음

󰡔훌훌󰡕을 이틀 만에 읽은 날 다음, 주말 아침 늦잠을 즐기며 잠자리에 누워 있다가 문득 유리의 엄마 서정희가 떠올랐다. 유리 할아버지의 표현대로 유리가 갓난아이였을 때 그냥 벌어진 일이었던 교통사고로 유리의 부모가 죽고, 서정희의 남편과 딸 수빈이 죽었다. 살아남은 서정희는 수빈 자리에 유리를 입양한다. 그러나 유리를 키우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떠맡기고 집을 나가 재혼했다. 연우를 낳기 전에 다시 이혼했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채 혼자 연우를 키우며 학대했다. 어느날 서정희는 나쁜 짓을 한 초등학교 4학년인 연우를 술에 취한 채로 혼내다 다리 난간에 서서 연우를 향해 밀어 버려라고 소리를 지른다. 엄마 말을 듣고 정말로 밀기 위해 다가오는 연우를 정희가 걷어차려다 균형을 잃고 다리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서정희의 아버지, 곧 유리 할아버지는 현재 복막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이었다. 사위와 친손주인 수빈을 잃고, 이에 상심한 채로 방황하는 딸마저 먼저 저세상으로 떠났다.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다.

유리의 엄마 서정희의 삶이 꼬이게 된, 그를 망가지게 한 날, 사건 또는 일은 무엇일까. 교통사고로 남편과 딸은 죽고 자신만 살아남게 된 날? 사고 유발 운전자와 아내가 죽고 살아남은 그들의 딸을 입양해서 키우게 된 일? 재혼과 이혼? 그 어떤 일, 사건, 사람 중 일부거나 전부일 수 있다. 그런데 왜 정희는 그 꼬인 매듭을 풀지 못했을까? 망가진 삶을 복구하려고 애를 썼겠지만, 허망하게 죽고 말았다.

나는 내 삶의 어떤 지점에서 꼬인 적이 있었을까? 망가져 본 적은 있었는지. 그랬던 몇 가지 사건과 장면이 떠올랐다. 시인 안도현은담배를 끊고 술을 끊고 애욕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눈 감으면 선명해지는 것들이 많아지는 나이를 오십 대라고 적었다. 내게 그 사건, 장면 들은 그래서 더 선명한가.

훌훌털어 버리다라는 동사 앞에 붙은 부사로 익숙하다. 인터넷 사전을 보니, 날짐승이나 눈·종이·털 따위가 가볍게 움직이는 모양이라고 한다. 󰡔훌훌󰡕에서 훌훌은 딱 한 번 나온다. “(서유리)는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이 집을 훌훌 떠나면 됐다.”(172) 유리는 너무 힘들었다. 유리가 연우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망가지고 형편없는 청소년기를 보낼 수도 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밥상을 차리고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고교 2학년 유리에게 훌훌은 참으로 간절한 부사어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일을 겪은 고향숙 선생님은 너무 힘들 때는 웃으려고 애써 봐.”라고 유리에게 권한다. 그것이 웃음으로 고통으로 포장하는 것일 수도 있고, 훌훌 떨치고 움직이고 나아가게 하는 힘을 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앞이 서정희와 유리의 웃음이라면, 뒤는 고향숙 선생님의 웃음일까.

 

3. 새살이 돋는 마음

문경민의 소설 󰡔훌훌󰡕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짜임새 있는 이야기가 독자를 적당히 궁금하게 만들면서 답을 부드럽게 내놓는다. 자동차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 이란 의성어와 함께 끊어지는듯한 소리라고 적었다. 툭툭 떨어지는 비와 툭툭 끊어지는 비는 느낌이 다르다. 세윤이 유리의 어깨를 두드려 주니 유리는 마음에 새살이 돋는 느낌이 들었단다. 읽기 속도를 빠르게 하고 손에 쥐게 하는 시간을 길게 만든 󰡔훌훌󰡕은 내 삶에 있는 여러 상처에 연하고 부드러운 새살을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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