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으로 읽는 삼국지 - 중원을 차지하려는 영웅호걸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ㅣ 교양으로 읽는 시리즈
나관중 지음, 장순필 옮김 / 탐나는책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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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여년전. 약 일백여년에 걸친 중국 후한말에서부터 진나라로 통일되기까지 천하 패권을 두고 펼치는 영웅호걸들의

역사를 담은 '삼국지'를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은 후 많은 시간이 지나 김원중 평역 정사 삼국지를 탐독한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삼국지는 진수(陳壽)가 쓴 정확한 사실의 역사 기록인 '정사(正史)'와 나관중(羅貫中)이 쓴 역사를 토대로

쓴 가상의 이야기인 '연의(演義)'로 나뉘는데 삼국지 연의 이후로 제갈량은 지혜의 대명사로, 관우는 관왕 혹은 관제로

불리며 '무신'의 대접을 받으며 무속신앙의 대상이 된다. 방대한 분량과 700명이 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흡사 박경리의 토지를 연상케 한다) 하는 이 책은 수 많은 고사성어(삼고초려, 읍참마속, 고육지책, 도원결의등등)

와 교훈으로 가득차며 인생의 허무감과 권력의 덧없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실제로 위의 조조, 오의 손권, 촉의 유비 중

어느 누구도 통일 왕국을 이루지 못했다.

​

이문열의 삼국지를 처음 선택했던 이유는 대중적 인지도 뿐만 아니라 각 인물에 대한 평가와 사건을 바라보는 탁월한

시각,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 이외에도 실제 정사에 기록된 내용과 의미를 반영하여 작품의 이해도가 높였기

때문이었는데 이 책은 저자도 전술했듯이 '편하고 쉽게 읽히는 삼국지'이다. 알다시피 '유비'는 사람만 좋았지

지도자로서나 아버지로서 탁월하지 못했던 인물이며(이문열은 이 부분을 관용과 포용력으로 표현하나 솔직히

동의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조조'의 리더쉽과 결단력과 과단성은 리더로서의 탁월함을 보여준다. 우유부단의

대명사인 유비와 달리 조조는 일의 처리나 결정에 있어 단호했고 분명했다. 물론 유비의 어진 성품은 본받을만 하지만

그의 특유의 우유부단함은(고우영의 만화 삼국지에서는 이 부분을 유비의 얼굴에 그대로 표현해 보는이로 하여금 유비의

성품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한다) 때론 상황이나 결정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

의외의 인물도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인물에 꽂혀 다른 이는 눈에 잘 들어 오지 않았다. '제갈량'이다. 자는 공명, 호는

와룡인 그는 삼고초려와 천하삼분지계, 적벽대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만 이는 대부분 삼국지연의에만 기술되어 있을

뿐 역사서에는 별다른 활약상이 드러나지 않는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유비가 숨을 거두며 '내 자식들이 보좌할만 하면 그를

돕되, 부실하다면 그대가 스스로 황제가 되어 다스리라'고 말하자 '몸을 굽혀 모든 힘을 다하여 죽은 후에야 그만둔다'

(鞠躬盡瘁 `死而後已)고 말한 후출사표는 훗날 청나라의 강희제의 신조로 삼았을 정도의 충절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최대 사거리가 200m가 넘는 쇠뇌(석궁)은 활에 비해 배우기도 쉽고 명중률이 높아 전투에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천하를 능히 주무르고 호령할 만한 능력과 자질을 지녔음에도 유비를 주군으로 선택하여 끝까지 섬겼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물론 후대의 평자들은 모든것이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고 하지만 그는 주군을 향한

충성과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사리사욕이 없고 스스로를 지킴에 변함이 없었던 인물이다. 철새처럼

둥지 갈아타기가 본업인양 이리저리 권력의 줄을 찾기에 급급하고 자기 배부르고, 자기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법과 편법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는 요즘 정치인들에게 제갈공명은 '그림의 떡' 일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그런 인물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

게임과 영화, 만화등 다양한 콘텐츠가 제공되는 '삼국지'는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말도 하지 말라'는 '라떼는

말이야'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꼭 읽어 보면 좋은 책이다. 물론 방대한 분량과 조금 어려울 수 있는 단어들로 막힐때도

있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읽으면 될 많은 분량을 엑기스만 뽑아 단행본으로 엮어 놓은 이 책은

그냥 쉽고 편하게 읽히는 '삼국지'가 될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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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 읽는 삼국지 - 중원을 차지하려는 영웅호걸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ㅣ 교양으로 읽는 시리즈
나관중 지음, 장순필 옮김 / 탐나는책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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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여년전. 약 일백여년에 걸친 중국 후한말에서부터 진나라로 통일되기까지 천하 패권을 두고 펼치는 영웅호걸들의역사를 담은 '삼국지'를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은 후 많은 시간이 지나 김원중 평역 정사 삼국지를 탐독한 이후 오랜만에다시 만났다. 


삼국지는 진수(陳壽)가 쓴 정확한 사실의 역사 기록인 '정사(正史)'와 나관중(羅貫中)이 쓴 역사를 토대로쓴 가상의 이야기인 '연의(演義)'로 나뉘는데 삼국지 연의 이후로 제갈량은 지혜의 대명사로, 관우는 관왕 혹은 관제로불리며 '무신'의 대접을 받으며 무속신앙의 대상이 된다. 방대한 분량과 700명이 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기를반복(흡사 박경리의 토지를 연상케 한다) 하는 이 책은 수 많은 고사성어(삼고초려, 읍참마속, 고육지책, 도원결의등등)와 교훈으로 가득차며 인생의 허무감과 권력의 덧없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실제로 위의 조조, 오의 손권, 촉의 유비 중어느 누구도 통일 왕국을 이루지 못했다.

​

이문열의 삼국지를 처음 선택했던 이유는 대중적 인지도 뿐만 아니라 각 인물에 대한 평가와 사건을 바라보는 탁월한시각,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 이외에도 실제 정사에 기록된 내용과 의미를 반영하여 작품의 이해도가 높였기때문이었는데 이 책은 저자도 전술했듯이 '편하고 쉽게 읽히는 삼국지'이다. 알다시피 '유비'는 사람만 좋았지 지도자로서나 아버지로서 탁월하지 못했던 인물이며(이문열은 이 부분을 관용과 포용력으로 표현하나 솔직히동의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조조'의 리더쉽과 결단력과 과단성은 리더로서의 탁월함을 보여준다. 우유부단의 대명사인 유비와 달리 조조는 일의 처리나 결정에 있어 단호했고 분명했다. 물론 유비의 어진 성품은 본받을만 하지만 그의 특유의우유부단함은(고우영의 만화 삼국지에서는 이 부분을 유비의 얼굴에 그대로 표현해 보는이로 하여금 유비의 성품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한다) 때론 상황이나 결정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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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인물도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인물에 꽂혀 다른 이는 눈에 잘 들어 오지 않았다. '제갈량'이다. 자는 공명, 호는 와룡인 그는 삼고초려와 천하삼분지계, 적벽대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만 이는 대부분 삼국지연의에만 기술되어 있을뿐 역사서에는 별다른 활약상이 드러나지 않는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유비가 숨을 거두며 '내 자식들이 보좌만 할만하면 그를 돕되, 부실하다면 그대가 스스로 황제가 되어 다스리라'고 말하자 '몸을 굽혀 모든 힘을 다하여 죽은 후에야 그만둔다'(鞠躬盡瘁 `死而後已)고 말한 후출사표는 훗날 청나라의 강희제의 신조로 삼았을 정도의 충절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최대 사거리가 200m가 넘는 쇠뇌(석궁)은 활에 비해 배우기도 쉽고 명중률이 높아 전투에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천하를 능히 주무르고 호령할 만한 능력과 자질을 지녔음에도 유비를 주군으로 선택하여 끝까지 섬겼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물론 후대의 평자들은 모든것이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고 하지만 그는 주군을 향한 충성과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사리사욕이 없고 스스로를 지킴에 변함이 없었던 인물이다. 철새처럼 둥지 갈아타기가 본업인양 이리저리 권력의 줄을 찾기에 급급하고 자기 배부르고, 자기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법과 편법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는 요즘 정치인들에게 제갈공명은 '그림의 떡' 일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그런 인물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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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영화, 만화등 다양한 콘텐츠가 제공되는 '삼국지'는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말도 하지 말라'는 '라떼는 말이야'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꼭 읽어 보면 좋은 책이다. 물론 방대한 분량과 조금 어려울 수 있는 단어들로 막힐때도 있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읽으면 될 많은 분량을 엑기스만 뽑아 단행본으로 엮어 놓은 이 책은 그냥 쉽고 편하게 읽히는'삼국지'가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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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답이 될 때 - 고난의 자리, 하나님이 내게 묻다
장창수 지음 / 두란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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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P55

이제 더 이상 핑계 거리는 없습니다. P71

설교는 본문에 충실해야 한다는 대 전제가 무너져 버린 지금 우리에게 본문에 충실한 설교를

만나는 것은 성도로서도 설교자의 입장에서도 반가운 소식이다. 신대원 시절 은사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설교자는 카세트 테이프와 같아야 한다'는 말씀인데, 현장에 나와 보니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너무도 이해가 됐다. 정해진 말씀만 전하면 되는데 이것저것 자꾸

첨가하다 보니 정작 본문은 뒷전인 경우가 너무도 많았다. 저자는 본문 중심의 설교를 전하는

분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기대가 된다.

'찾아 오시는 하나님'. 이것이 타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본질이다. 인간이 만든 종교는 끝없이

갈구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하나님은 찾아 오신다. 당신이 만든 피조물들의 아픔과 고통을 방관하지

않으시고 직접 다가 오신다. 인생이 힘들고 실패하고 지치고 도저히 일어설 함 조차 없는 그때

어느새 곁에 계신 그분을 만난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에게 '질문'하신다. 성경의 많은 부분이 이렇게

기술된다. 회복과 은혜의 시작점이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 안에는 피조물을 향한 그윽한 사랑과

긍휼이 들어 있다.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는 그분의 '진심'이 거기에 담겨 있고 근본적인 해답 마저도

같이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가지셨기에 항상 최선이다. 처음 범죄한 아담에게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질문하신다. 예전에 이 본문 때문에 참 많이 고민했던 적이 있다. 자신이 직접

자신의 형상대로 빚어 생기를 불어 넣어 만든 첫 피조물의 범죄에 진노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신

'하나님'. 책망과 경고가 아닌 '회복과 돌아옴'을 바라는 마음에서의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 앞에

그분의 간절함을 느꼈다. 간절해야 할 인간은 범죄하고 도망하는데 죄를 심판해야할 그분이 오히려

간절함을 보인다. 이 간절함에 반응하는 인간의 태도는 그냥 범죄자다. '두려움'을 가진다. 하나님을

떠난 성도의 삶이 '두려움'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을 가리고 숨어 버린다. 지금의 우리다. 우리 역시

자신의 범죄함으로 인해 두려워 숨는다. 두 손으로 겨우 자기 눈을 가리고 '안보이시죠'라고 하는

뻔뻔함 마저 가진다. 하나님은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사 41:10)'라고 하시는데 말이다.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질문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그분의 간절함이고 사랑이다. 존 칼빈(John Calvin)이 말하는 'Coram Deo'가 바로 이것의

해답이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하나님 앞'이다.

인생은 '포기시키시는 하나님과 집착하는 인간의 싸움'이라고 한 어거스틴의 말은 적절하다. '내가 너의

하나님이다'라고 하시는 하나님 앞에 고집과 집착으로 만용을 부리는 인간, 결과가 뻔히 보이지만 여전히

꽉 쥔 손엔 힘이 들어 간다. 야곱의 그랬다. 야곱은 여인에게 , 재물에, 자식에 집착했다. 태어날 때 부터

뭔가를 잡아야만 성미가 풀리는 성품이기에 더더욱 집착이 강했다. 물론 자신이 집착하고, 쥐고 있는 것을

놓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서 믿음이 결정된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놓을 수 있다. 상황 그 너머에 계시는

그 분이 보이기에 결단은 쉬워진다. 야곱은 그 기회를 '아마르(창32장, 생각하다)'에서 찾는다. 그리고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아마르'는 찾아 온다. 그때 얍복 강가의 야곱처럼

붙들어야 한다. 네째인 유다를 낳고 '아마르' 한 후 자신의 집착에서 벗어 난 레아처럼 말이다.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신 후에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창32:28)라고 말씀하신다. 다시는 집착하는 삶을 살지 말라는 의미다. 꽉 쥔 손을 풀어 그 분의

손을 잡으면 된다. 우리가 내려놓으면 하나님이 움직이신다. 우리는 문제나 절망 속에서 하나님에게 집

중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 만을 붙잡아야 한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을 바라보느냐이다. 사람은 자신이 바라 보는 것을 추구하고, 무엇을 보는 지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인의 시선은 하나님께 고정되어야 한다. 세상과 타협하며 세상에

집착하면 결코 하나님께 집중할 수 없다. 자신이 바라보는 것으로 정체성이 구별되기에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이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다. 시대를 따라 세상의 움직임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우리가 바라 보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오스 힐먼(Os Hillman)이 자신의 저서 에서 밝혔듯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주를 찾는 '편의'의 단계를 지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위기 상황에서 주를 찾는 '위기'의 단계를 거쳐 어떠한 상황에서도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는 '확신'의 관계에 이르러야 한다. 하나님의 타이밍은 언제나 선하시기에 믿고

기다리는 이에게 반드시 약속을 지키신다. 내 타이밍과 내 방법이 아닌 그분의 타이밍과 그분의 방법에

의해 당신의 일을 해나가신다.

이 책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 편과 저 편에서

방황하지 말고 바른 선택을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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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는 시간을 위한 말들 - 슬픔을 껴안는 태도에 관하여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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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 힘들어요. 어리기 때문에 그런가요?'라는 마틸다의 질문에 '언제나 그래'라고 대답하는 영화

'레옹'을 만났다. 사는건 언제나 힘들다. 어릴땐 어린데로, 나이가 들어선 나이든 대로 힘들다.

그래서인지 의료사회학자 아서 프랭크는 인간을 하나의 범주로 묶을 때 그 공통성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고통'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저서 '아픈 몸을 살다'에서 '나의 고통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다. 내 고통을 있는 그대로 목격 할 수 있을 뿐이고 고통이 치료될 수 있느냐와는 상관없이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 그것이 바로 '돌봄'이다'라고 말했다.

​

여행의 묘미는 우연과 여유다. 저자도 그랬던것 같다. 한때는 출발부터 도착까지 타임 테이블을 만들어

분단위로 스케줄을 짜고 먹어야 할것, 보아야 할것등의 리스트를 준비해 마치 도장 찍듯이 다녔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떠난다. 딱 하나만 확인하고. 커피를 맛있게 하는 집이 있는지 혹은 스타벅스라도

근처에 있는지. 초라하고 남루하게 느껴졌던 어느 하루도(삿뽀로 편의점에서는 다들 그런가 보다. 나도

그랬다), 무척이나 화가나서 씩씩대던 날도(나도 타임테이블로 움직일땐 매번 싸웠던것 같다), 한 숨만

터져나오던 어느 밤도, 훗날에는 어떤 아름다움과 의미를 내게 선물할 지 모른다. 그래서 여행은 날마다

새롭다. 얼마전 들른 주문진의 좁은 골목길이 그랬다. 주문진을 백번은 넘게 다닌것 같은데 처음 만난

낯설음이었다. 길을 잘못 찾아 들어간 그 골목은 아직도 1980년대를 살고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힘겨운

시간을 견디는게 버거울 때면 그렇게 지금 여기가 아닌 먼곳을 내다보라고, 아주 예전의 여행들이 자꾸

말을 건다.'

이 책에서 최고의 인생을 만난다. 이도우의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 가겠어요'에 나오는 대화인데 책방

이름이 왜 '굿나잇 책방'이냐는 은영의 물음에 '글쎄.... 잘자면 좋으니까, 잘 일어나고 잘 먹고 잘 일하고,

쉬고 그리고 잘 자면 그게 좋은 인생이니까'라고 대답하는 은섭. 다시 '그게 다냐고' 묻고 '그럼 뭐가 더

있나? 그 기본적인 것들도 안돼서 다들 괴로워하는데'라고 답을 한다.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 사는게

힘들어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쉬지도 못하고, 날 자지도 잘 일어나지도 못했다. 심지어 일도 제대로

못한다. 기본적인 생활조차 못하면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냥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러면서 '이 정도는 견뎌야지', '엄살 피우지마'하며 자신을 괴롭혔던 우리가 꿈꾸는 최고의 인생은

어쩌면 '잘 자고, 잘 일어나고, 잘 먹고, 잘 쉬고, 잘 일하고, 다시 잘 자는것'이 아닐까. 더 열심히, 더 힘을

내서가 아니라 '그저' '계속' 그렇게 묵묵히 나아가다 보면 평소처럼 똑같이 했는데 받지 못했던 위로와

보상이 온다.

​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의 배우 오정세는 우리에게 견딜 수 있는 희망이라는 것을 준다.

​

'여러분은 모두 곧 반드시

여러분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힘든데 세상이 못 알아준다고 생각할 때 속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곧 나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요.'

​

물론 그 동백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그때까지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기다리는 일이 늘 그렇듯 지난하고 고단할 것이지만 언젠가 동백을 만날 수

있을것이라는 믿음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숨이 턱턱 막히고 한 숨이 터져 나와도 그렇게 다시 계속해서

걸어 가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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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의 마음챙김 - 출근 불안증, 무력감, 좌절감을 씻는 사무실 명상법
리 와이스 지음, 김영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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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희망이 '일과 삶의 균형'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다. 분명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게 마련이고 결과는 매번 실패다. 저자는 이런 우리에게 일터에서 느끼는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곳을 환경을 바꾸는 자산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하며 '마음챙김'을 강조한다. 우리 대부분은

월급과 목적의식이라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은 생각 사이에서 고민하느라 일에 온전히 몰두하지 않거나

더 나쁜 상태로 고통 받고 있다.

1972년에 등장한 '마음을 살핀다(Being mindful)'는 개념은 팀워크나 협상, 커뮤니케이션 등의 사교

기술인 '소프트 스킬'의 범주에 속하는 개인적 특성들 가운데 큰 뜻을 품은 리더들에게 영감을 주는

중요한 기술이다. 특히 이 개념은 대인관계 능력, 즉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 효과적으로 일하게 하는

것의 토대가 되는 사회적인 능력을 포착하는데 사용된다. 실제로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2015) 응답자 중 92%가 소프트 스킬이 기술적 스킬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여기에는 의사소통과 적응력, 창의력, 태도등이 포함된다. 티베트어로 심장과 마음을 나타내는 단어가

같다. 그래서 마음챙김 수행이나 전통적인 마음 수행법인 로종(logong)은 보통 '마음수련'으로 번역된다.

​

'처음에 잘하라'는 말은 원하는 결과에 맞춰 일을 어떻게 할지 목표를 세우라는 말이다. 목표와 방향이

분명해야 제대로 일할 수 있다. 처음에 아주 조금 벌어진 틈은 나중에는 대처가 불가할 정도로 크게

다가온다. 그만큼 목표와 방향은 중요하다. '도중에 잘하라'는 말은 일을 하라는 것이다. 목표와 방향을

제대로 정했으면 명확한 행동을 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갤럽의 연구에서 드러난것처럼 직장인의 1/3은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고 16%는 '일부러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51%는 '열심히 일하지

않는 직원'이라는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다. '끝에 잘하라'는

말은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반성하라는 의미이다. 처음 시작부터 일을

끝나는 순간까지 일은 연속 선상에 있고 연속되는 피드백의 순환 고리다.

​

우리가 어딘가 뛰어 들기 전에 잠깐 멈출때와 마찬가지로 뛰어든 다음에 잠깐 멈추는 데에는 한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영향은 크다. 천천히 가기 위해서라기보다 어쩔 수 없이 생각과 감정,

상황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인식하기 위해 잠깐 멈춘다. 우리는 완벽해지는 연습을 한다. 하지만 연습을

하다 보면 자신이 얼마나 완벽과 거리가 먼지도 알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위험을 감수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획기적인 혁신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실패는 혁신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고 우리는 완벽하지 않기에 실수 혹은 실패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실패를

전제에 두고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반성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reflection'에는

'빛이나 열, 소리를 흡수하지 않고 반사하는 것'이라는 의미와 '깊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숙고하는 것'

이라는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두가지 의미를 가진다. 반성에서 과거를 돌아 본다는 것은 현재의 사건에

자신의 과거와 두려움과 추정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을 인식하고 그 사건을 좀 더 명확하게

바라보며 능숙하게 반응하는 것을 말한다. 반성을 할 때 우리는 자신의 경험과 일상적이고 불완전하며

편향된 관계가 아닌 더 깊고 끈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

두려움에 맞서는 것은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거나 심지어 그것을 향해 한 걸음도 떼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저 두려움을 향하는 것이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갖고 행동하는 연습을 많이 할 수록 더

능숙해진다. 용감한 성격을 가지려면 끊임없이 용기라는 근육을 강화해야 한다. '용감한 행동을 함으로써

용기를 함양한다(아리스토텔레스)'. 우리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목표를 갖고 일하며 궁극적으로 의미있는

삶을 영위하면서 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 하나의 작품이 될것이기에 우리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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