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뒤바꾼 가짜뉴스 - 거짓으로 대중을 현혹시킨 36가지 이야기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장하나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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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 세계사 속에서 독재자와 반체제 포퓰리스트(populist, 일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일을

추진하는 사람) 혹은 대부분의 정치꾼들은 '거짓말=가짜뉴스(fake news, 매스미디어나 소셜미디어

등의 허위 보도)'를 이용해 다양한 정보를 조작하고 대중을 선동함으로써 세상을 움직여왔다.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소련의 스탈리니즘등은 교묘한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전)를 통해 대중을 옭아 매며 세상을 흔들었다.

가짜 뉴스는 흔히 '데마(Dema)'라고 부르는데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 사이의 아테네 대중정치에서

나온 말로, 귀족층에 맞선 '데마고고스(Demagogos, 대중 정치인)'에서 나온것으로 추정된다. 상인과

수공업자 같은 대중들의 힘이 점차 세지면서 귀족층과 대립하게 되며 이때 격한 연설과 가짜뉴스,

여론 선동을 통해 대중을 끌어들이고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던 인물, 클레온(Kleon)이 등장하는데

이가 최초의 데마고고스였다. 사실 데마는 그렇게 나쁜 의미로 사용된 단어는 아니었지만 역사는

승자의 편이어서인지 당시의 권력층이었던 귀족등이 데마고고스에게 적의를 품고 '가짜 뉴스로

대중을 선동하는 발칙한 인간'이라는 이미지로 만들어 버렸다. 사실 절대 권력이 상대편에게 있을 때

자신들의 확고한 정치 주장을 펼치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과장된 표현과 자극적인 말들이

대중을 선동할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그들의 선택은 어쩌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상당히 재미 있는 부분과 흥미로운 부분이 많이 나온다. 망명을 권유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살길을 찾아 망명하면 지금까지 자신이 한 주장이 모두 거짓이 된다면서 독배를 받아 마신 스승

소크라테스의 모습과 자신의 스승을 그렇게 무너뜨리는 시대상 앞에 실망한 플라톤이 현실을

외면한 채 이상 세계가 존재한다는 '이데아론'을 주장하며 한 거짓말이 '아틀란티스의 전설'이며

대서양을 '애틀랜틱 오션(Atlantic Ocean)'이라 부르게 된것도 플라톤의 거짓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또한 고대 중국의 왕은 자신을 열 개의 태양신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라는 열개의

태양신이 차례로 대지를 비춘다고 여김)이라 칭하며 나라를 다스렸는데 이 때 열흘마다 행해진

골점(骨占)을 통해 나라를 다스릴 방향을 결정했다. 신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던 은(股)왕은 우골이나

귀갑에 얕은 구멍을 수없이 뚫고 끓는 물에 익혀서 균열이 생기면 그것을 보고 열흘 동안 나타날

길흉을 넘쳤다고 한다. 뼈는 신성한 물건이니 점친 결과를 기록해야 했고 골점 결과는 동물의 뼈에

새겨졌는데 이때 사용된 문자가 한자의 유래가 된 '갑골문자'이다. 로마를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군인,

문필가로 알려진 카이사르는 마냥 훌륭하다고도 그렇다고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를

빼놓고는 로마를 논할 수 없는 인물이긴하나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 물으면 또 딱히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애매한 인물인데 우리는 카이사르라는 이름을 안다. 카이사르의 정식 이름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가이우스는 이름, 율리우스는 씨족명, 카이사르는 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당시 로마가 혈연으로 맺어진 부족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남긴 말 중 갈리아 전쟁을

통해 갈리아 지역의 광활한 영토를 로마의 속주로 편입하여 지배하게 되는데 이때 카이사르는

'분단해서 정복하라'라는 말을 남겨 후세에 이민족 지배의 원칙으로 삼게 한다. 원로원과 손 잡은

폼페이우스와의 대립이 심해지자 최후의 결전을 다짐하며 한 말인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지금도

많은 이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원로원에서 승리를 거둔 그에게 '임페라토르'(Imperator,

군대최고지휘관)라는 칭호를 수여하여 훗날 황제(Imperor)의 어원이 되었고 이집트에서 들여온

달력을 '율리우스력'이라 칭하고 자신이 태어난 달인 7월을 'July'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공화정의

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결국 원로원애 의해 암살당한다. 이렇게 펼쳐놓고 보면 카이사르가 직접

개입하거나 승리하거나 만들어낸 업적은 별로 없고 누군가가 차려 놓은 밥상에서 밥을 먹은 것 뿐이

없는 것 같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국민 영웅에서 흡혈귀가 되어 버린 왈라키아의 왕 이야기와 종교개혁 시대에

마녀사냥을 부축일 수 밖에 없었던 아이러니한 진실과 현실적인 선택으로 애매모호한 노예화를

선언한 링컨의 이야기, 신문의 날조 기사탓에 발발한 미서전쟁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물론 사건 하나하나의 양이 방대해서 요약하기가 어려웠을것 같긴한데 소개하고자 하는 사건을

조금 줄이고 사건의 내용을 조금 더 깊이 다루어 주었으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을 갖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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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스토리텔러들
이샘물.박재영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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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사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시선을 어디에 두는지, 중심을 어디에 두는지,

방향을 어떻게 하는지, 조명을 어떻게 하는지 등에 의해 변형되고 왜곡되며 다르게 보인다. 기자들의

기사도 그렇다.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기사의 논조가 다르고 전개가 다르다. 같은 일인데도

말이다. 특히나 '정보 정리형'인 우리 나라의 기사들은 정보를 정리해서 알리는 조건을 충족하기에

밋밋하고 딱딱하다. 이에 비해 미국 언론계는 '정보 전달' 못지않게 '스토리텔링'을 중시하기에

기자들은 뉴스에 스토리를 입혀 매력적으로 전달하는 '스토리텔러'로 통용된다. 이 책은 그들의

'기준'을 말한다.

좋은 주제가 있더라도 스토리를 찾아야 하고, 중요한 정보가 있더라도 이야기 거리가 있어야 한다.

스토리의 힘은 강력하다. 기존에 널리 알려진 소재라도 새롭고 신선한 스토리가 있으면 흥미로운

기사가 된다. 이야기 거리는 독자를 기사 속으로 끌어 오는 핵심적인 매개체이다. 그래서 미국 신문

역사를 다룬 책 'Discovering the News(Schudson, 1978)'는 이를 '스토리의 이상'과 '정보의 이상'이라고

부른다. 스토리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맥락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이에대해 퓰리처 상을 수상한 존 프랭클린(John Franklin)은 '스토리는 내러티브의 각 부분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배치 하는 것이며, '의미'는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다'고 말한다.

가끔 인터뷰 기사나 장면을 볼 때 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질문의 요지가 뭐지?'. 본질에서 벗어나거나

관계없는 질문으로 시간을 잡아 먹는 기자들이 여럿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최대한의 '꺼리'를 뽑아

내야 하는데 자꾸 산으로 간다. 그냥 산으로만 가면 다행인데 문어발식으로 확장성도 가진다.

그러다보니 답변자의 진심과 생각은 이미 저 멀리 가있고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을 요구한다. 이에대해

저자는 '똑똑한 인터뷰'를 하라고 주문한다. '정직하고 신뢰 받을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 제대로 되고

정확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 기자에게 중요한 것은 전문가에 대한 '접근성'이 아니라 '인터뷰의

품질'이다. 똑똑한 인터뷰는 타이틀이나 학벌이 좋은 사람과 하는 인터뷰가 아니라 기사에서 다루는

사안에 대한 깊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신뢰헐 만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그들의 영역에 머물라. 그들의 세계에서 인터뷰하라'고 말한다. 단순히 취재원이 이야기하는

것을 전달하는게 아니라 그들이 살아 있는 것을 관찰하라고 말한다. 인터뷰는 취재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입을 다물고 눈과 귀와 마음을 여는 것을 배울 때, 우리는 지구에서 가장 숙련된

인터뷰어도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것을 발견한다'는 퓰리처상 수상자인 톰 프렌치(Tom French)의 설명은

간과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콘텐츠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대표작을 '킬러 콘텐츠'라고 부르듯이,

기사에서는 멘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명구를 '킬러 멘트(killer Quote)라고 부른다. 인터뷰의 목적은

취재원으로부터 '킬러 멘트'를 확보하는 것이다. 적지 않은 미국 기사가 마지막 부분을 멘트로 마무리하는

것도 말 한마디의 힘이 크기 때문이다.

저자도 지적했듯이 국내 신문들은 제호만 가리면 비슷비슷해서 서로 구분이 안간다. 형식도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인터넷 판은 다른 기자의 내용이 버젓이 이름을 바꿔서 올라 오기도 한다. 내용이

구별되지 않다 보니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시점'으로 승부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기자들은 차별성

없는 기사를 '빨리' 내보내며 속보 경쟁을 하고, 뜨내기 독자를 얻는다'고 표현한다. 어쩌면 '특종'에

목을 메야 하는 그들에게 '차별성 있는 앵글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기사'는 배부른 소리이거나

비현실적인 소리 일수도 있다. 기사는 '읽히기' 위해서 쓰여진다. 기자들이 탁월한 스토리텔러가

되고자 하는것도 '잘 읽히기' 위해서다. 스토리텔링의 기법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스토리탤링의

정답은 없지만 최소한의 기준은 존재한다. 활자기에서 찍어 내듯 비슷비슷한 기사가 아닌 '차별성'과

'신뢰성'을 가진 읽을만한 기사를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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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BTS 앨범의 콘셉트 소설 그리고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헤르만 헤세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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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Demian, 1919, Hermann Hesse)은 10대 때 처음 만났고 그때는 그냥 읽기만 했다. 대학 시절

만난 데미안은 생각의 방향과 의식의 균형으로 인해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에

만난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가 꿈꾸던 '지독한 사랑'과 그 '다양성'이 보인다.

'내 속에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나로부터 시작하여 나를 향하는, 치열한 성장 기록인 데미안의 첫구절이다.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규정하고 치열하게 나를 찾고, 다시 놓아주고, 다시 찾는 인생의 무한궤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 책.

참 어렵다. 인식 안에 있던 분리로 인해 저지르지도 않은 도둑질로 크로머에게 지독하게 시달리는

싱클레어 그 속에서 만난 데미안은 선구자이자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 그가 던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이미 진리이고 참이었다.

카인에 대한 이야기는 싱클레어에게 충격적이었듯 나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된다. 시대적 상황 자체가

무거운 시대였고 별것 아닌것도 심각하고 대단한 일인양 묘사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시기였기에

얼마든지 그럴수 있고 모든것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런 그에게

데미안은 너무도 특별한 존재이다. 그저 믿고 따를 수 밖에 없는 그렇기에 더욱 위험하다. 절대적

믿음이 깨어지고 난 후의 폭풍은 쉽게 감당하기 어렵기에. 가인과 아벨에 대한 설명이 그렇다.

'달리 볼 수 있다. 그점에서 비판을 가할 수도 있다.' 그가 말하는 카인은 우리의 상식 속 카인이

아니다. 스스로 성찰하고 구도하는 새로운 인간형이자 자연인을 만들어 낸다.

또 하나의 인물이 등장한다. 싱클레어가 꿈 속에 열망하던 이미지가 현실로 등장한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독일어로 Eva는 영어의 이브이다)을 만난다. 싱클레어의 눈에 비친 에바 부인은

'자신의 내면의 상징'이었고 별이었고, 열망 그 자체였다. 서로가 서로를 향했으며 서로가 자석처럼

이끌렸고 함께 머물렀고, 함께였다. 물론 이 부분이 우리의 정서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긴 하다.

그럼에도 이 둘의 관계는 추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에바 부인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돌이켜

생각해 봐. 그 길이 그렇게 어렵기만 했나? 아름답지는 않았나? 혹시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았던가?' 그 길이 어떠한지를이 아닌 그 길 자체를 묻는 질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멈춰섰었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지나온 길을 생각하면 여전히 아쉽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던졌던 말 중 이 말은 유독 오래 남는다. '사람은 누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지. 누군가를 두려워 한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자기를 지배할 힘을 내주었기 때문이야' 어쩌면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의 말을 빌어 우리에게 사람이면 누구가 갖는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 안에 거인을 데리고 사는데 이 거인에게 지고 넘어지고

복종하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처음에는 아주 작았던 이 거인이 점점 커져

결국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두려움은 데미안의 말처럼 '자기를 지배할 힘을 넘겨주었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고 주눅 들게 한다. 두려움은 극복의

대상이지 존중의 대상이 아닌데도 우리는 그 두려움에 자꾸 무릎을 꿇는다.

등장인물인 싱클레어(Saint + Clair)와 데미안(Demon)의 관계는 이름에서조차 선과 악으로 나뉘고 책의

내용 속에는 선과 악의 대립 구도가 자주 등장한다. 단 둘 사이가 모호한 채 말이다. 출간 당시 헤르만

헤세는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발표했으니 이 책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회고록이라고 해도 될것 같다.

'너는 네 안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럼 내가 네 안에 있음을 알게 될거야'라는 데미안의 말은 식스센스급

반전을 가져 온다. 아무튼 이 책 여전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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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코노믹스 - 록으로 읽는 경제학
피용익 지음 / 새빛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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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은 죽었다'

수십년전 록 음악에 머리를 흔들던 이들이 이제 어느덧 중년이 되어 자신들의 나이와 위치에 맞는

(사실 이 말이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재즈나 클래식을 더 많이 듣고, 그 시절 그 나이에 해당하는

이들은 더이상 록에 미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록은 죽었다'는 말이 이젠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온다. 실제로 '록 스피릿(rock spirit)을 외치던 나의 친구들도 이제 더 이상 록을 듣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인 '록코노믹스(Rockonomics)는 록(Rock)과 경제학(economics)을 합친 단어로 프린스턴

대학 애런 크루거(Alan Krueger) 교수가 대중음악을 통해 경제 현상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창시한

분야이다. 국내에는 저자가 몸 담은 이데일리에 처음으로 소개되었고 나 역시도 그의 글을 몇번은

읽은 기억이 난다. 책의 초입에 꼭 들어봐야 할 1950년대 로큰롤 13곡이 실렸는데 솔직히 '이 곡

아는 곡이야'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곡이 다섯곡 밖에 안되는 것을 보면 난 분명 로큰롤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대부분 들어는 본 곡들이다. 이런 문외한에 가까운 나에게 이 책은

기초적인 수준부터 '쫌 아네' 정도의 록에 대해 알려주는 좋은 책이다.

록 음악은 경제의 산물이다. 1950년대 로큰롤(rock'n rool)의 태동부터 1960년대 헤비메탈(heavy

metal)의 출현, 1970년대의 펑크록(punk rock)의 인기와 1980년대 글램 메탈(glam metal)의

흥망성쇠, 1990년대의 그런지 록(grunge rock)의 부흥 등 록의 역사는 그 시대의 경제 상황과

밀접하게 맞물려 진행됐고 라디오와 주크박스가 로큰롤의 대중화에 기여를 했다면 인터넷의

발달은 로큰롤의 몰락을 가져왔다. 록 음악은 1960년대 일부 뮤지션들이 반전과 평화를 노래한

영향으로 흔히 '저항 음악(protest music)'으로 불린다. 비록 대놓고 저항을 외치지 않더라도,

보수적인 사회에서 마약과 섹스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일종의 저항이다. 가장 큰 저항은

어쩌면 유행에 상관없이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것인지도 모른다.(1970년대 우리나라엔 장발

단속이라는 것도 존재했다)

1969년 8월 15일부터 사흘간 미국 뉴욕주 베델 평원에서 열린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Festival)'을 기점으로 록은 대중화 되었고 1970년대는 록의 전성기였다. 이들은 '단순함'을 무기로

분노에 찬 대중들의 마음을 단숨에 휘어 잡았다. 여기에는 당시의 상황도 한 몫을 한다. 경제는

형편 없는 모양새였다.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고 젊은이들은 화가 나 있었고, 반항적

이었으며, 일자리를 잃은 상태였다. 이들은 강한 주장을 갖고 있었고, 자유 시간이 많았다. 이런

사회적 현상은 결국 폭발적인 반응과 흥행으로 이어졌고 전세계는 록의 열풍에 빠져들있다.

록음악에 거의 문외한인 나도 레드 제플린은 알고 'stairway to heaven'은 가사까지 안다. 지미

핸드릭스가 레드 제플린 결성 50주년을 기념하여 모든 종류의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고 있다고 해서

은근 그들의 공연을 기대하였으나 결국 불발이 되었던 기억도 있다. 1968년 영국에서 결성된 레드

제플린은 블랙 사바스, 딥 퍼플과 함께 헤비메탈 음악의 창시자로 불리는데 1980년 드러머인

존 본햄(John Bonham)의 사망 이후 짧은 역사를 뒤로하고 해체되었다. 그후 몇차례 일시적인

재결성을 했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 로버트 플랜트는 '38년 전 존 본햄이

죽었고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다. 그 누구도 존을 대신할 순 없다. 절대 못한다'는 말로 레드

제플린이 재결성 할 수 없는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레드

재플린 재결합 공연을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거절했다고 하며, 한때는 로버트 플랜트가 8억 달러

(약 8500억) 짜리 공연 계약서를 찢어 버렸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최근엔 마블 영화

'토르:라그나로크'에 'Immigrant Song'을 사용하도록 허락해주면서 월드 디즈니 컴퍼니(Walt Disney

Company)로 부터 역대급 사용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어쩌면 이번 생에 그들의 재결성 무대를

볼수 있을 것이라는 꿈은 접어야 할것 같다. 그들은 8억 달러의 공연 계약도 발로 차버린 이들이다.

모든 위기에는 기회와 희망이 있다. 우리가 두려워 하고 그림자 속에 산다면 그 두려움이 우리를

집어 삼킬 것이다. 그러나 그 시련이 우리를 더 좋게 만드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시간은

우리를 더욱 더 강하게 만들어 줄것이다. 그리고 음악은 여전히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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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기지 않는 50대를 사는 법
이목원 지음 / 델피노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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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내는 십년이 행복한 노년을 위한 가장 좋은 시간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동안 보내던 삶의

방법과 고정관념은 버려야 한다. 장수 시대가 가지는 어쩔 수 없는 혼돈이고 과정이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히 않다. 녹녹치 않은 현실은 삶에 그대로 드러난다. 점점 바닥 나는 경제력과 나날이

힘겨워 지는 신체적 한계, 생각과 사고의 빠름이 현저하게 젊은이들과 차이남을 느끼게 되는

순간 이미 훌쩍 나이가 들어버렸음을 발견한다. 저자도 그런것 같다. 그래서 이 책에 더 마음이

간다.

법정 스님의 말씀 중 '고독은 인생에서 동반해 가야할 필수 친구다'라는 글귀가 있다. 고독은 느끼는

주체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삶의 변화가 다르게 나타난다. 혼자 있으면서 고독하다고 느끼게

되면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이 강하게 내포된다. 이와 반대로 혼자 있으면서도 혼자가 아난

홀로 존재한다고 느끼는 감정은 능동적이며 긍정적인 감정을 가진다. 혼자 있으면서 고독감을

느낀다는 것은 타인 속에 고립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혼자 있으면서 고독력이 있다는 것은 고독을

즐기며 타인과 함께 나아가는 존재라는 의미다. 헬스장에 가서 근력을 키우듯 고독을 키우는 힘도

꾸준히 마음속 근력 운동을 통해 증대시켜야 한다. 언젠가는 혼자가 되어야 한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과 행동 뿐만 아니라 고독에서 조치도 독립된다는 것이다.

완벽한 인생은 없다. 아무리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해 살아도 아쉬움이 남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후회를 줄일 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 후반기를 어떻게 살것인지 방향과

목표를 정하고 나만의 속도를 찾아야 한다. 나만의 속도는 어느 누구의 눈치도 받지 않고 나 혼자

천천히 그리고 나만의 보폭과 나만의 걸음으로 걸어가는 시간이다. 그렇게 가는 것이 나의 길이며

인생이 된다. 도화지 위에 무엇을 그릴지 정하고 붓을 움직여야 하듯 인생의 방향과 목표는 반드시

중요하다. 그리고 그 도화지 위에 그려진 그림에 대해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에게는 그 길이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길은 내가 걸어 온 길이고 내가 걸어 갈 길이다. 이제 우리는

인생의 후반전을 위한 '하프 타임'을 맞이한다. 전반전의 인생이 마음에 안들고 아쉽고 후회가 넘

친다면 하프타임에 새롭게 준비하고 후반전을 맞이하면 된다. 그냥 의미없이 보내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길다. 그러려면 무의미한 시간을 줄여 생산적인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람은 세월만으로 나이 들지 않는다. 변화와 성장을 포기하는 순간 퇴화는 시작된다'는 이시형 박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삶에 대한 끝없는 도전은 '시작에 늦음'이 없다. 영 시니어로 살아갈것인지, 세월

속에 평범하게 나이들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물론 인생에 정답은 없다. 다만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은 것을 도전을 통해 성취해 나가는 그 과정과 결과가 있을 뿐이고 그것을 우리는 '행복'이라 부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가슴 속 깊이, 머릿속 한 구석에 숨겨 놓았던 철인 3종 경기에 대한 욕망이

떠오른다. 언젠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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