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한국사 - 고조선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고성윤 지음 / 나는나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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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강은 멈추지 않는다.

어느 시대이건 어떤 상황이건 역사는 이어지고 존재하고 살아있다.

그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 힘이고 용기다. 왜곡되거나 잘못된 역사는 개인 뿐만 아니라

나라 마저도 망가뜨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 수치스럽더라도 우리의 역사고 부끄럽더라도

우리가 한 일이기에 역사의 흐름은 어느 누구도 막을수도 막아서도 안된다. 그 역사의 흐름 속

한자리를 차지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현재의 모습을 뒤돌아 보며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적을

생각해 본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왕세손(훗날 정조)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그의 지혜와 용기와 결단력,

그리고 추진력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후기 마지막 개혁군주였던 정조, 왕세손에 오르는 순간부터

죽음의 위기에 항상 직면해 있어야 했던 비운의 주인공, 왕이 되어서도 별반 달라짐 없이 여전히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야 했던 왕. 그가 즉위 후 처음 꺼낸 말이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였다.

당시 노론이 정권을 쥐락펴락하던 시절에 본인이 그들과 대척점에 있다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하여 노론 일당의 권력 독점을 거부하고 강력한 탕평 정책을 펴겠다는

일성을 날리는 용기있는 왕. 규장각을 강화하여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고,  상업개혁의 일환인 신해통공을 발행하여 금난전권이라는 폐해에 대항하였던 지혜로운 왕. 무엇보다도 눈에 들어온 것은 '상언'과 '격쟁'이라는 제도였다. 백성들과의 대화의 장을 열기 위한 방법으로 국왕의 행차시에 글로 적어서 아뢰는 '상언'과 꽹과리를 쳐서 임금의 발길을 잡은 후 대화를 하는 '격쟁'을 통해 수천차례나 백성과의 대화를 시도하려 했던 어진 왕 정조. 특별히 '격쟁'은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왕과의 유일한 소통 방법이었고 이를 통해 많은 부패한 관리들과 잘못된 관행들이 수정되고 고쳐지기도 하였다.

소통이 없어 망가져 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 앞에 이미 몇백년전에 백성과의 소통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실천했던 정조의 모습은 다른 어떤 것보다 귀감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냥 듣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수정하고 개혁하고 다듬는 행동이 수반되었다는 점이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한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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