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은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결과 받아들이는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다. 저자는 잘 산다는 것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온전하게
'정신적 독립’을 이루는 것이며 각자의 생각을 들여다 보는 관찰자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며 적절한 리스크 관리를 통한 절제와 여유를 갖춘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것이며
스스로를 증명하며 기쁘게 살아 갈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위한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삶이 아닌 스스로 행복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아 내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또한 잘 죽는 것이다. ‘Well Dying'이 한참 유행이던 시절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과연 죽음을 준비한다고 그 죽음이 좋은 죽음 일까?" 장기
기증서나 유언장이나 사전 치료, 장례 절차 등은 행정적 절차인 뿐이다. 결국 죽음
앞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고 죽음의 시기도 방법도 인간이 정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것들을 해 놓고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모순이다. 오히려
죽음에 대한 준비는 죽음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죽음은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늙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며 이것이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는 길이다. 이제 늙는 것을 안타까워하거나
두려워하지도 말고 제대로 늙기 위해 아니 밝고 건강한 청춘으로 오래오래 살다
죽기위해 노력해야한다. 이 외에도 저자가 이야기하는 ‘디지털 부동산’이나 ‘슈퍼
에이저(Super Agers)’, ‘재구성의 시간’등은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