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 번 주기도문으로 기도하기
안관현 지음 / 두란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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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구하기 이전에 이미 우리의 필요를

아시므로 p47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p135

온전한 기도를 드리고 싶다면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라. 이 문장 하나로

이 책은 설명된다. 예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기도가 가장 온전한 기도인 것은 아는데 뭔가 모자른것 같아 더 붙이고

싶고 뭔가 더 해야 할것 같은 우리의 강박은 자꾸 중언부언하게 만든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에게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에 대해 전하며 이렇게 기도할

것을 조언한다.


기도는 주문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문처럼 기도를 사용한다.

분명 기도가 바뀌면 삶이 달라지는것을 배우고 알면서도 우리의 기도는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마치 주문의 한자라도 틀리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믿는 그들처럼 10년전이나 지금이나 기도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 같은 경우를 흔하게 본다. 물론 전적으로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도의 지경이 넓어진다면 기도의 폭이

확장된다면 기도의 깊이가 달라진다면 분명 우리의 기도도 바뀌어야

할텐데 말이다. 저자는 이러한 모습을 ;습관적 기도'라고 말한다. 그냥

습관처럼 외우던 주문을 그대로 반복하는 그런 기도 말이다. 저자의 그때

마다 임하시는 주님의 이름을 달리 부르는 방법은 좋은 예가 된다.

여호와라파, 여호와로이, 여호와닛시, 여호와샬롬, 임마누엘 등과 같이

그때 가장 마음으로 부르고 싶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면 분명

내용도 달라질 것이다. 엔드류 머레이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문장은 하늘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다고 말했다. 사도 바울은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존재였던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흫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은혜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용할 양식'에 대해 강조한다. 저자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신 것은, '주기도문이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이기에,

우리의 먹을 것이나 필요를 구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하기 위한 말씀과 하나님의 의인 말씀을 구하라고 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라고 말한다. 맞다.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의 글처럼

'우리의 기도의 대부분은 하늘나라에서 잡동사니 우편물처럼 취급당한다'.

제대로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신앙을 하면서 본질과 비본질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말로는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안다. 하지만 삶이 없다. 때문에 믿음은 점점 퇴색하고 신앙은

힘을 잃어 갔고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이런 우리에게 저자는 처음으로

돌아가 '주기도문'으로 시작하라고 조언하며 이렇게 말한다. '암송으로

이 기도를 사용하지 말고 정말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나아가길 바랍니다'


주기도문은 우리를 위한 기도다. 하나님의 이름이 짓밟힌 곳에서는

우리의 인생도 짓밟히고 아버지가 존경받지 못하는 곳에서 그 자녀들도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평화이신 아버지의 이름이

높임받는 곳에는 평화가 임할 것이고 그 평화는 우리를 자유케 한다.

사랑이신 아버지의 이름이 높임받는 곳에는 사랑이 임할 것이며 아버지의

이름이 존중받는 그곳에서 그리스도인들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청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도무지 기도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여전히 헤매고 있는 청년들과 함께 공부하며 노력하며 만들어 나가고 싶은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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