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주문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문처럼 기도를 사용한다.
분명 기도가 바뀌면 삶이 달라지는것을 배우고 알면서도 우리의 기도는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마치 주문의 한자라도 틀리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믿는 그들처럼 10년전이나 지금이나 기도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 같은 경우를 흔하게 본다. 물론 전적으로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도의 지경이 넓어진다면 기도의 폭이
확장된다면 기도의 깊이가 달라진다면 분명 우리의 기도도 바뀌어야
할텐데 말이다. 저자는 이러한 모습을 ;습관적 기도'라고 말한다. 그냥
습관처럼 외우던 주문을 그대로 반복하는 그런 기도 말이다. 저자의 그때
마다 임하시는 주님의 이름을 달리 부르는 방법은 좋은 예가 된다.
여호와라파, 여호와로이, 여호와닛시, 여호와샬롬, 임마누엘 등과 같이
그때 가장 마음으로 부르고 싶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면 분명
내용도 달라질 것이다. 엔드류 머레이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문장은 하늘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다고 말했다. 사도 바울은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존재였던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흫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은혜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