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
채도운 지음 / 삶의직조 / 202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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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지기 작가가 쓴 단편소설 두개를 묶어 책으로 냈다. '강낭콩',과

'식물뿌리'. 제목만으론 언뜻 어떤 내용일지 알수 없다. 낙태와 식물인간.

채 4개월이 안되어 태어나 의료폐기물이 될 사산아 강낭콩과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진석의 '연명치료 거부서'를 작성해야 하는 모녀. 둘 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우리가 맞닥드릴 상황들이기에 의미 심장하게

읽게 됐다.


연명과 안락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치열한 공방을 하던 이슈이며 주변의

의견도 반반이다. 심지어 부모의 연명 의사를 자녀들이 반대하는 경우도

자녀들이 부모의 연명 포기를 강요하는 경우도 보았다. 어느쪽을

두둔하거나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연명 포기에 한 표를 던지는

입장이다. 물론 기적 같은 상황에 대한 미련은 늘 언제나 남는다.


한 사람과의 추억은 돌봄의 대가가 된다. 추억이 소진되고 고갈되면

돌봄도 끝난다. 돌봄의 의무만 남아 버린 식물인간을 바라 보는 가족.

숨이 붙어 있기에 안락사는 안된다는 생각의 늪. 어쩌면 우리도 언젠가

충분히 겪게 될 일이기에 더 많이 신경이 쓰인다. 잔존과 휘발 이 둘은

어쩌면 영원한 평행선일지도 모른다. 어느 한쪽의 무게 추가 늘어지는

순간 선택은 되어지고 우리는 그 길을 간다. 진석의 딸 지영이 자신이

기르던 몬스테라 화분을 생각하며 회생 가능성이 없지만 억척스레

뿌리를 내리는 식물과 연명치료 포기서를 작성하려는 때에 잠간 자가

호흡을 하게 되는 진석이 묘하게 대비되며 죄책감과 가능성이라는

현실을 본다.


얼마전 읽은 호스피스에 관련한 책에서 남겨진 가족이 가지는 트라우마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남겨졌다는 이유로 혹은 연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들이 가지는 트라우마는 정신적 폐혜를 가져 오며 이들에게도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요즘 '죽음'을 준비하는 책이 많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만큼 어떤 죽음을 맞이하느냐도 중요한 문제이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 잘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을 사는 것이다.

문듯 1962년 칸느 영화제 금상을 받은 에드몽드 세샹)Edmond Séchan)의

강낭콩(The stringbean)이 생각났다. 노부부 역시 강낭콩을 소중한 하나의

생명으로 생각했지만 공원지기로 대변되는 세상은 그저 잡초로 보았고

제거 대상이 된다. 그리고 노부부는 뽑혀진 강낭콩의 꼬투리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 다시 강낭콩을 심는다. 희망은 그런것 같다. 끝끝내

놓을 수 없는 가느다란 끈과 같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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