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인간

연기 인간
알도 팔라체스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4월

20세기 이탈리아 미래파의 선두주자 알도 팔라체스키(AldoPalazzeschi). 사실 잘 모른다. 오히려 역자인 박상진 교수는 익숙하다. 미래파 운동가들은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시도로 그 호불호가 갈린다. 이 책 역시 괘를 같이 하는 작품으로 현실과 환상을 섬세한 작법으로 표현한다. 저자가 다섯번째 개정판을 낸 후 한 인터뷰 기사는 인상적이다. '내게 환상적 글쓰기의 극치이자 행복한 예술적 출구였다'. 이 책의 초판은 1911년에 발간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사람에게 맡겨진 가장 무거운 임무. 본인 스스로 '나는 나는 아주 가벼워요. 나는 아주 가벼운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며 덩그러니 장화만 신은 페렐라. 그의 넘치는 지식과 완전체에 가까운 삶은 사람들의 집중이 자연스러워지고 그를 신비시여기고 신봉한다. 물론 그의 신비는 이내 연기의 가벼움으로 변해 그를 가장 어리석고 무능한 인간 취급을 하게 된다. 대화체로 구성된 이 작품(그래서 연극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함)은 '가벼움' 이라는 화두를 통해 말이 주는 무게와 그 가벼움 그리고 그 무거움에 대해 고민하게 하고 우리네 삶을 반추하게 한다. 그리고 결국 그는 도시에서 추방당한다.

'가벼움'. 페렐라가 말하는 가벼움은 무엇일까. 가벼움은 자유로움 일수도 있고 탈세속화된 존재일수도 있고 세상의 무개를 벗어난 홀가분함일수도 있고 언제든 벗어 던질 무거운 외투일 수도 있다. 그 가벼움이 오히려 그들에겐 무거움과 신성함으로 비췄을 수도 있지만 이내 그것에 실증을 내기도 한다. 작품은 1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어색하거나 의미가 퇴색된 부분을 발견할 수 없고 독특한 배경과 이에 따른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마음껏 언어유희를 누린다. 페렐리는 자신의 장화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당신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것마저 벗어 준다면 어쩌면 연기인간은 그대로 연기로 사라지지 않을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자행하는 인간의 만행은 여지 없이

이 책에서도 드러난다. 진리와 자유라는 가치로 위장한 채 착취와

억압의 굴레를 씌우는 인간의 비열한 내면을 고발하는 이 책은

10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아래의 사진은 인터넷에 있는 초판 사진을 옮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