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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 - 조선 화가들의 붓끝에서 되살아난 삶
이일수 지음 / 시공아트 / 2014년 4월
평점 :
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
이일수 著/시공사
옛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옛 사람들이 숨결이 오롯이 담겨 있는 그림들 , 그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산과 들을 내 안에 스며있는 그 시간들을 느낄 때면 그들과 교감할 수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을 겪을 수 있었을까? 나라면 그 순간 이런 마음이었을 텐데 하며 겪어 보지 못한 아득한 옛일이지만 나도 모르게 가슴속 깊이 닥아 오는 것은 내 안에 이미 그 시간이 스며든 까닭일 것이다. 나도 옛 사람들에게 나의 시간을 나누어 주기도 한다. 그들의 소망이 나의 삶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있다면 옛사람들은 그만큼의 시간을 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그림 이야기가 아니고 한 폭의 그림마다 사연이 있고, 철학이 있고, 역사가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향기가 있다. 봄나물 무침처럼 여러 가지 나물을 버무려 이 맛, 저맛, 이 향, 저 향의 조화속에 환상의 맛이 탄생하니 저자의 내공이 저절로 느끼어 진다.
<고사관수도>의 물도 선비의 앞에서 잠시 뱅그르르 맴돌고는 다시 물길을 따라 호수로 바다로 흘러 내려간다. 인류 문명은 멈춤이 없는 물의 역사이기도 하고 눈물의 강이기도 하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인간에게 신비한 물의 체험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물리적 물이 우리의 눈과 귀를 통해 내면에 흘러들면 가슴에 크고 깊은 호수를 하나씩 만들어 놓는 것이다. 물리적 물이 땅과 호수 주변을 깎아 내리고 흙과 바위를 멀리 운반하며 또한 기후까지 바꾸듯이 인간의 내면을 순환하는 물도 감정을 깎아 내리거나 확 뒤집어 놓고는 한다. <중략> 선비가 바라보는 강물도 위대한 역사를 만드는 물로서 변함없이 흘러 마침내 정신적 원형의 바다를 이루며, 인간의 고뇌를 정화 시키는 가하면 무한히 변신하는 창조의 예술성을 보여준다
<세한도>도는 내적인 정신이나 의지를 표현하는 문인화의 정수로, 화가 정신의 뼛속까지 치고 들어갔으면서도 절제된 화법을 유지하여 감상자의 뼛속까지 울림을 준다. 단정한 글씨로 쓴 화제는 김정희가 제자들에게 그토록 주장 했던 문자향, 서권기를 경험하기에 충분하다.
그림 한 점이 ‘바라봐 주기’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소중한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어려운 길을 가고 있으면, 어떤 방법의 동행이 좋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동행의 방법이 좋으면 소중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만 나쁘면 오히려 독이 되기 때문이다. 신사임당의 그림은 힘든 길을 가는 사람에게 경솔한 말은 줄이고 ‘올곧게 바라봐 주는 방법’을 보여 주는데 그 가운데 한 점이 <오연도>다.
<죽림탄금도>는 치유의 힘을 가진 숲에서 위로를 받고자 하는 두 중년 남자의 진솔한 마음이 낳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도 그림도 결국은 고단한 인생길에서 피우는 꽃이다.
이 책은 단순히 그림을 보는 수준을 넘어 그림을 읽어가고, 그림속의 소리를 듣고, 그림속의 향기를 맡고, 그림의 맛을 느끼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오감을 총 동원해서 그림을 대할 때 작가와 시대의 정신을 공감할 수 있다. 마치 거미의 꽁무니에서 거미줄이 끊임없이 나오듯 저자의 풍부한 감미료의 말들이 책이 더욱 쉽고 재미있게 해주어 남녀노소 누구에게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조선의 그림을 공부하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 유익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