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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우정은 첫사랑이다 - 세상 가장 다정하고 복잡한 관계에 대하여
릴리 댄시거 지음, 송섬별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평점 :
책을 읽으며 오래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의 감정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책은 사비나라는 사촌이자 친구를 애도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스무 살의 나이에 남성에게 살해당한 사비나, 그 비극적인 죽음 이후 저자는 오랫동안 그 슬픔을 꺼내지 못한 채 살아갔다. 그리고 13년이 지나서야 이 책을 써냈다고 한다. 애도와 회고, 그리고 사랑과 미안함이 뒤엉킨 채로.
저자는 우정이 때로는 자매였고, 엄마였으며 연인이었다고 말한다. ‘엄마 노릇’이라는 표현이 참 인상 깊었다. 나도 어떤 친구에게 그렇게 굴었던 적이 있다.
책 초반에 등장하는 ‘화재 비상구’라는 공간은 너무 부러웠다. 세상에서 조금 비껴선 곳. 그 장소는 피난처였고, 우정의 상징이었으며, 불운한 일을 털어내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우정을 나눈 친구가 옆에 있었다는 것. 그 자체로 부러웠다.
가장 공감한 곳은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나랑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비슷해서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다른 대륙에도 존재한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아이는 낳아서 사랑을 가득 주고 싶은 존재다. 하지만 내 일을 멈추고 아이에게 사랑을 온전히 줄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모순된 감정에 혼란을 느끼고, 내가 '정상' 범주에 드는 '여성'이 아닌 건 아닌가 의심할 때도 있다. 엄마가 된다는 것, 아이를 낳는다는 것. 하지만 내 존재 그대로 나로 사는 것, 누군가의 친구로 옆에 있는 것, 친구 아이의 이모가 되어주는 것. 미지의 세계로 당당하게 나아가는 나를 꿈꾼다.
이 책은 한 사람의 회고록이면서 동시에 문화 비평이기도 하다. 여성 예술가들의 문장과 삶, ‘슬픈 소녀’ 이미지에 덧씌워진 사회적 시선, 여성 간 우정에 내재된 욕망과 애증, 그리고 경계 너머의 감정들. 여자들의 우정은 언제나 단정한 언어로는 담기지 않았다. 질투하고, 상처 주고, 안아 주고, 외면하고, 이내 사랑하고, 끝내 곁에 남는 감정. ‘동성애도 아니고, 연애도 아닌’ 그런 복합적인 관계.
읽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 사랑했던 사람을 잃었을 때, 그 죽음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나는 아직 가까운 사람을 잃어본 적은 없지만, 이 책은 애도의 방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했다.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을 끝까지 기억하는 일일까? 그 사람의 마지막 사건을 똑바로 바라보며 어떤 모습으로 생을 마감했는지 똑바로 마주해야 할까?
아니면 사랑하던 그 상태 그대로 놓아주는 일일까? 그 상태로 사랑하고 사랑하는 이를 기려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