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
앨런 레비 지음, 노지양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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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니 자연스레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내 곁에 닿을 수많은 인연을 스스로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읽고,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는 일은 모르는 타인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좋은 인연이 찾아오기만을 바란다면, 그것은 공상에 가까운 기대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세상을 그리 믿지 못했다. 선의로 한 행동도 누군가에게는 악의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애초에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 시작하기도 전에 허무주의에 빠지곤 했다. 결국 쉽게 포기하는 것이 내 핑계였던 셈이다.
테오가 초상화를 주인에게 돌려주는 프로젝트를 이어 가는 모습을 보며 깊은 존경을 느꼈다. 악의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기대했던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었고, 때로는 화가 나고 욕설이 튀어나올 만큼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끝내 사람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았다. 그 용기와 신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단순한 말이 아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이고,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미래가 되고 의지가 되며 다짐이 된다. 그래서 잘 들어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그저 침묵으로 듣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안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믿어 주는 눈빛과 진심 어린 태도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테오의 삶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여다보았다. 그 곁에는 짐작하기 어려운 외로움과 슬픔도 함께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을 지나면서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진심으로 건네는 사랑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지도 알게 되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 곁을 지켜 줄 사람이 많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많은 사랑을 세상에 나누어 주었다는 뜻일 것이다.
나 역시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졌다. 세상이 각박하다고 느꼈던 것은 어쩌면 내가 먼저 베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남'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언젠가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 보려 한다. 선행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그런 작은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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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놀이공원의 살인
샤센도 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더블샷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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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면 분위기, 사건이면 사건,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작가님 책.
폐허 마니아.
폐허는 처음부터 폐허가 아니었으니, 이렇게 폐허가 되는 과정을 시간이 담고 있다는 정서와 함께 폐놀이공원의 살인이 시작된다.

한 갑부가 폐 놀이공원을 모두 사들였고, 사람의 접근을 철저하게 막던 중, 드디어 몇몇 사람들에게 그 문을 열어준다.

꿈과 희망이 가득했던 그 장소가 폐허가 되어 보여주는 으스스한 묘사와 기묘한 살인사건. 이를 추적해나가는 과정, 모두 다 빠짐없이 좋다.
시리즈를 예고했으니 매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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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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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 책임편집, 미국 현대문학 대표 작가 36인이 참여한 초대형 문학 프로젝트 《14일》.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누가 어느 부분을 집필했는지 처음에는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여 작가 명단은 책의 마지막에서야 공개되기 때문에, 작가에 대한 선입견 없이 오직 이야기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다. 여러 작가가 함께 썼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하나의 장편소설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성 또한 인상적이다.

이야기는 뉴욕의 오래된 빌라 '펀스비 암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도시 봉쇄로 고립된 세입자들이 옥상에 하나둘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서로 모르고 지내던 사람들이 조금씩 연결된다. 각자의 사연을 들려주던 이야기 모임은 시간이 흐를수록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인물들의 관계 역시 조금씩 변화한다.

36명의 작가가 참여한 작품답게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무척 선명하다. 나이와 직업, 인종, 말투, 살아온 환경까지 모두 달라 같은 공간 안에서도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만나는 재미가 있다.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다양한 삶의 결을 읽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후반부가 특히 좋았다. 13일부터 긴장감이 서서히 쌓이기 시작해 마지막 14일에서 감정과 이야기가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나는 서평단 미션으로 마지막 '14일'을 중심으로 읽었는데, 화자의 결이 달라지는 느낌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570쪽이 넘는 분량이라 결코 가볍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는 액자식 구성 덕분에 지루하지 않다. 또한 코로나19라는 모두가 함께 겪었던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더욱 깊이 공감하게 된다. 서로 거리를 두어야 했던 시간, 끝이 보이지 않던 불안 속에서도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버텨낸다.

결국 이 소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이야기의 힘이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이야기를 통해 연결되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며 위로받는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14일》은 소설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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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밤
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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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해파리가 되고 싶어질까.

<지싱의 밤>을 읽는 내내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이었다. 변종 해파리의 촉수에 닿으면 인간은 해파리가 된다. 삶이 버거운 사람들은 강과 희조를 찾아가 불법으로 해파리가 되기를 선택한다. 설정만 보면 기괴한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읽고 있으면 그 선택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해파리는 형태가 없다. 흐르는 대로 움직이고, 어디에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젤리처럼 투명한 몸은 가볍고, 세상의 무게를 조금도 짊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인간이 해파리를 동경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책임도 후회도 없이 흘러가고 싶은 마음.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상상을 해 봤을 테니까.

그런데 작품은 흥미롭게도 해파리가 되는 과정보다 사람이 남는 과정을 보여 준다.

삶을 포기한 수는 해파리가 되기 위해 펜션을 찾지만, 해파리를 기다리는 동안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평범한 하루다. 하지만 그 하루가 수를 바꾼다. 마지막 밤, 수는 아무 말 없이 펜션을 빠져나간다. 강과 희조는 그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 잠든 채로 있다.

나는 그 장면이 좋았다.

누군가를 살리는 일은 거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설득도, 충고도, 눈물겨운 위로도 없었다. 그저 함께 밥을 먹고, 집안일을 하고,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있었다. 그 평범한 하루가 수에게는 다시 살아 보고 싶다는 마음을 만든 것이다.

사람을 해파리로 만들어 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결국 한 사람을 사람으로 남게 했다는 점도 오래 남는다. 임선우 작가는 가장 기묘한 설정으로 가장 평범한 삶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작품을 덮고 나면 해파리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으로 남는 일이 조금은 괜찮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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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 도시를 세운다면 - 인류가 우주에 진출하려면 꼭 해결해야 하는 숨은 난제들
잭 와이너스미스.켈리 와이너스미스 지음, 지웅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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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정착 얘기는 요즘 심심찮게 나온다. 화성 가자, 달에 기지 짓자. 각종 SF 영화들에서 자연스럽게 우주로 나가니까, 먼 미래의 일도 아닌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들도 우주를 진심으로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깐깐하게 따져본다. 스스로를 '우주 망나니'라고 부를 정도다. 다른 이들의 우주 기지 꿈을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라, 위험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안전 가드레일을 세우고 싶다는 거다.

책은 생존의 기초부터 시작한다. 우주 방사선은 나쁘다는 건 알겠는데, 얼마나 나쁜지 정밀하게 결론 내리기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현재 데이터는 대부분 원자폭탄 피해자나 방사성 물질 취급 종사자에게서 얻은 것들이라, 장기간 우주 방사선에 노출되는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우주비행사들한테서 직접 데이터를 얻으면 되지 않냐고? 일단 표본이 매우 적고, 우주비행사들이 건강 이상을 숨기는 문화가 있다는 문제가 있다. 커리어가 걸린 엘리트들에게 "몸 어때요?"라는 질문에 솔직한 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한 지휘관은 비행 전부터 염증 증세를 알고 있었지만 숨겼고, 동료 비행사의 임무까지 취소시켰다. 동료가 화를 낸 포인트는 몸을 숨긴 것이 아니라 들킨 것이었다.

아플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문제다. 무중력에서는 피가 공중에 방울방울 떠다니고, 체액 분포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국소마취가 제대로 퍼지지 않는다. 실제로 우주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외상 수술은 지금까지 0건이다. 그나마 있었던 테스트는 돼지를 대상으로 한 포물선 비행 중 심폐소생술 실험이었다.

임신과 출산은 더 복잡하다. 부분 중력 환경이 태아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가 화성 표면에 거대한 경사 원형 트랙을 지어 임신부가 계속 달리게 하는 것, 일명 '임신 롤러코스터'다. 저걸 아이디어라고 낸 건가 싶어 피식 웃었는데,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들에게 가벼운 목례를 보낸다. 아니면 궤도 위에 허니문 여행지와 보육원이 결합된 '아기 우주정거장'을 만들자는 안도 있다. 한편 초창기 여성 우주비행사를 위해 NASA 엔지니어들이 설계한 배뇨 장치는, 여성 해부학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보여주는 전설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우주에서까지 겪는 남녀 차별이란🤦‍♀️

땅 얘기로 넘어가면 또 다른 현실이 기다린다. 달 표면에는 실리콘, 알루미늄, 티타늄이 풍부하다. 그런데 원소가 있다고 바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티타늄을 다루려면 1800도짜리 용광로가 필요하고, 날카로운 달 먼지 속에서 실리콘을 뽑아내야 한다. 집 마당 흙에 알루미늄이 있다고 비행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달에서 실제로 쓸 만한 땅, 즉 햇빛이 들고 물도 있는 지역을 다 합쳐도 리히텐슈타인 면적보다 작다. 그 작은 땅을 누가 먼저 차지하느냐가 미래의 핵심 쟁탈전이 될 거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거주 공간 문제도 만만치 않다. 회전 바퀴로 인공중력을 만들면 된다고 하는데, 바퀴가 작으면 머리와 발이 느끼는 중력이 달라져 위장이 파업을 선언한다. 그래서 바퀴가 엄청나게 커야 하는데, 건설 비용이 천문학적이다. 화성에서 건축 자재를 현지 조달하자는 아이디어도 있다. 2021년 맨체스터 대학교 연구팀이 인간 혈액의 알부민 단백질을 화성 토양 샘플과 섞어 콘크리트 비슷한 재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책에는 '오븐으로 구운 레골리스', '달 콘크리트', '혈액 콘크리트'를 더 멋짐에서 덜 멋짐 순으로 나열한 도표까지 있다. 혈액 콘크리트가 덜 멋짐에서 또 한번 웃었다. 작가의 문체가 참 재밌어서 어려운 과학이야기도, 지루할 수 있는 정치와 법도 참 재밌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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