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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여자의 공간 - 여성 작가 35인, 그녀들을 글쓰기로 몰아붙인 창작의 무대들
타니아 슐리 지음, 남기철 옮김 / 이봄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쓸 때 그녀는 단단한 깃털 펜과 갈색 잉크를 사용했다.
푸른빛이 도는 종이를 좋아했으며, 무릎 위에 판자를 올려놓고 그 위에 종이를 두고 글을 썼다.
또한 다른 창문으로 새로운 바깥 풍경을 내다보고 싶은 마음에 가끔씩 책상의 위치를 바꾸기도 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마음놓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가 천국이라고."
_버지니아 울프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글을 쓰기 위한 적당한 분위기였다.
"의자가 바닥 위에서 불안스럽게 삐걱거리는 소리", 집밖에서 들려오는 소음, 냄새......
그녀는 글쓰기에 필요한 이 요소들을 일컬어 "내가 환각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을 목격할 감각적 증인들"이라고 표현했다.
1950년에는 글을 쓸 때 자욱한 담배 연기, 핑크색 종이, 레몬수 한 잔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_엘리자베스 보엔
그녀는 전화기도 없는 방에서 손님을 맞지도 않고 은둔자처럼 글을 썼다.
가장 좋아한 시간은 이른 아침에 블랙 커피를 마시고 난 다음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나면 영감의 원천이 고갈될 때까지 글을 썼다.
그러고는 다음날 아침을 기다렸다.
_캐서린 앤 포터
그녀는 이 인터뷰에서 새벽 4시부터 글을 쓰는 이유를 밝혔다.
처음 글을 쓰던 시절엔 두 아들이 어렸기 때문에,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쓰려면 새벽 시간밖에 없었는데,
이 습관이 후일 혼자 살게 되었을 때도 지속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녀에게는 새벽 해 뜨기 전이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커피를 끓입니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지요. 그러고는 동이 트기를 기다립니다."
글쓰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건 이 새벽 의식을 거친 다음이었다.
_ 토니 모리슨
글을 쓰기 위해 특별한 장소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자기만의 방이 없었던 여류 작가도 많았다. 그녀들은 부엌 식탁 위에서, 거실 창가의 작은 테이블에서, 혹은 침대에서 글을 썼다. 호텔 방을 전전하거나, 카페에서, 이곳 저곳 여행하는 길 위에서 글을 쓰기도 했다.
그저 자신에게 파묻히는 노력이 필요했을 뿐이다.
우울과 약물 중독과 같은 질환에서 글쓰기만이 삶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끈이었던 작가도 있지만,
스스로 규율을 만들어 글쓰기라는 굴레 속으로 들어간 여자들도 있다.
그녀들은 대부분 이른 아침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을 틈타 블랙 커피 한 잔과 함께 고독의 방 속으로 들어갔다.
모두가 잠든 시간, 서서히 동이 터오는 새벽, 온전히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한 여자들.
그녀들이 몰입했던 시간과 써내려갔던 글, 그리고 고독과 외로움, 혹은 열망과 희열이었을 무수한 감정들,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달뜬다.
손택은 자신에게 글쓰기는 차가운 호수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즉, 처음에는 호수에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뛰어들고 나면 다시는 나오고 싶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니체의 말을 인용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글쓰기는 허공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는 나탈리 사로트의 말을 바꾸어 표현한 것이었을까?
그녀는 글쓰기에 뛰어들기 전이면 두려움과 걱정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_수전 손택
나는 나 자신이어야 하며, 내 안에 무언가 있어야 한다.
나는 진정한 내 것을 소유하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을 보여줄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_카렌 블릭센
보잘 것 없는 작은 책상 위, 혹은 서류더미들이 어지럽혀진 복잡한 책상 옆이나 부엌의 낡은 식탁 곁에서 손가락에 담배를 끼고 무언가에 골몰히 빠져들어 있는 그녀들의 사진에서 아름다움을 본다.
깊은 눈에선 알 수 없는 아우라가 풍기고, 빼어나게 아름답지 않지만 지적이고 세련된 외모가 눈길을 끈다.
당당하면서도 기품있는 태도와 도도함은 '진정한 내 것을 소유'한 여자들의 자부심일 것이다.
옷과 구두, 가방과 보석이나 화장으로 부족함을 채우지 않아도 스스로 온전히 자신을 채울 수 있는 자부심말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여자는 언제나 동경심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