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기의 아침시간 - 소소하지만 차곡차곡 쌓인 일상의 힘
남은주 지음 / 로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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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이런저런 생각

평온한 아침의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특별한 일 없이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바뀐다.

가끔 그 시간과 계절 앞에 나 혼자만 멍하게 서 있는 기분이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무언가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건지

행복이라는 것을 지향하고는 있는 건지

이런저런 생각이 두서없는 내 주변을 맴돈다.

그래도 제자리걸음이라도 하다 보면

언젠가 앞을 향해 걷고 있겠지.

 

「우사기의 아침시간」 남은주, p184

 

 

 

 

 

 

 

 

 

매일, 아침을 기다리던 날들이 있었다.

아침이면 거실로 몇 시에 해가 들어와서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보았고

잊어버렸던 기억의 조각들을 주섬주섬 모으기도 했다.

천천히 내린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가만히 앉아있기도 했다.

그러다보면 어김없이 엉킨 실뭉치같은 생각이 떠올랐고

조용히 보내는 시간 동안 실타래는 정돈되곤 했다. 

그 단상들을 잊어버릴까봐 끄적이곤했던 시간들.


그 아침 시간이 너무 좋았다.

당장 어딘가에 닿는 건 아니었지만 조금씩 어딘가를 향해가고 있다고 여겨졌다.

오늘은 제자리걸음이더라도 보잘것 없는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 

언젠가 앞을 향하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우사기의 아침시간」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덥석 사버렸다.

'아침시간'의 소중함을 알기에.

 

 

 

1/16 6시 30분 겨울 풍경

아침 6시 30분쯤 겨울의 아침 풍경은 밤의 한가운데와도 같다.

언제쯤 해가 뜰까.

이불 속에 있을 때면 가끔은 이대로 겨울잠이 들어 봄이 오면 깨어나고 싶다.

겨울은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해가 길어지길 기다리는,

기다림이 반인 계절이라 정작 본연의 매력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겨울의 어두운 아침, 차갑지만 상쾌한 공기를 오롯이 만끽해야지.

그리고 내 삶도 그렇게.

 

 


 

언젠가부터 모호하게 흩어져버리는 밤보다 명료하게 맑아지는 아침이 더 좋았다.

그래서 밤을 놓치더라도 차라리 조금 더 일찍 일어나 고요한 아침을 누리고 싶었다.

그 아침에 아무도 모르게 나에게 찾아오던 것들,

그걸 모으면 반짝이는 무언가가 될 것 같았다.


일본에서 생활하며 여행과 요리 관련 책을 낸 이력을 가진 우사기님은 뜻하지 않은 시련을 만나 방황하던 차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생각과 함께 1년 동안 매일 아침의 소소한 기록을 모으기로 한다. 그렇게 매일 아침의 작은 조각들이 모여 예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내가 꿈꾸었던 일, 아침의 시간을 모아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누군가 실제로 이루었다는 사실에 마음 깊이 기뻤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작은 것을 모으는 꾸준함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축하한다고, 수고했다고,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감사하다고도.

이 작은 책은 '당신도 할 수 있어요'라는 부담스럽지 않지만 진심어린 격려와 같았기에.


 

 

 

10/11 도쿄타워를 바라보며

도쿄타워를 바라보며 두서없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오는 생각들.

인생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예상치 못한 일이 툭툭 튀어나오고

계획은 언제나 적당히 빗겨나간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문득문득 깨닫곤 한다.

오늘도 도쿄타워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도 내 자리를 묵묵히 지켜야지.

가을이다.

 

 

 

초심으로 새롭게 시작한 1월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가던 2월,

봄방학같은 휴식이었던 3월,

새로운 배움을 시작했던 4월,

그리고 5월, 6월,

내리는 비처럼 마음에도 비가 내렸던 7월,

잠시 나를 위로했던 8월,

또 9월과 10월을 지나

반성을 마감하는 11월,

한 해의 끝에서 다시 계획을 세우는 12월까지

스스로 토닥이며 일상의 면면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꾸준히 걸어온 시간이었다.

그녀의 짧은 글과 감성어린 사진들 너머로 1년이 휘리릭 흘러간다.

지나간 나의 1년을 들춰보는 것 같기도, 다가올 1년을 예감하는 일 같기도 했다.

1년이라는 시간은 손에 쥔 모래알처럼 스르륵 빠져나가지만

작은 모래 알갱이 하나 하나에 그 흔적을 남길 수도 있다. 

지난 1년이 문득 그리워졌고, 다가올 1년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9/28 강가에서

천천히 산책을 하기에도, 잠시 강가에 앉아 쉬어 가기에도 좋은 날이다.

자그마한 도시락을 싸와 쪼르륵 물소리를 들으며 하얀 구름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보내고픈 시간.

다정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작은 미소가 떠오른다.

 


매일을 어떻게 남길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있다.

누군가는 예쁘고 소중한 모습을 어김없이 주어모을테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엉뚱한 곳으로 향해갈지도 모른다.

 

 

매일 매일을 더 예쁘게 만들어야지.

그리고, 어딘가로 향하는 마음을 영원히 멈추지 말아야지.

우사기의 소소한 기록은 이런 말들을 소곤거렸다. 

 

 

 

 

11/8 미래의 단상

욕실 창가에 베이지색 짧은 커튼을 걸고 자그마한 화분과 에펠탑을 놓아두었더니 목욕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쉬어 가는 이 시간이 좋다.

......

도쿄가 아닌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콘셉트로 오픈하는 프랑스 제과점. 그곳에서 처음부터

하나씩 만들어갈 새로운 이야기와 경험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뛴다.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떤 사람들과 인연을 맺을지 전혀 알 수 없다.

요즘 들어 그 알 수 없는 미래가 한동안 멍하니 멈춰 있던 나를 다시 조금씩 설레게 한다. 어떤 계획이든

꿈이든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 결과보다 어떤 것을 향해 달려가는 그 과정이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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