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밤 - 당신을 자유롭게 할 은유의 책 편지
은유 지음 / 창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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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회사일이 바쁜 하루였다. 퇴근 시간은 다가오지만 집에 가도 가사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더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옆 자리 동료에게 "퇴근해서 집에 갔는데 누가 짠 하고 저녁을 차려 놓고 있으면 너무 좋겠다"며 퇴근했는데, 진짜 저녁이 차려져 있었다. 목감기가 심해서 연차를 내고 쉬고 있던 신랑이 컨디션이 좋아졌다며 차려준 밥상이었다. 정희진 작가님은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에서 자기 입에 들어가는 밥은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늘 신랑과 아이들의 입에 들어갈 밥을 차려주면서도 내 입에 들어갈 밥을 해준 신랑에게 "고마워"라고 말한다. 옛날 사람이라 그런가. 신랑의 가사노동이 늘 고맙고,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해방의 밤]은 은유 작가님이 주부로서 살아온 지난 삶이 녹아있어서 유난히 공감하며 읽은 책이다. '할 것들로 꽉 짜인' 일상에서 '밤'은 은유 작가님에게 해방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하루치 노동을 마치고 나를 대면하는 시간, 가까스로 입장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


20년을 직장일과 가사일, 육아를 병행하며 살아오면서 나 역시 아이들이 잠이 들고 난 후의 '밤'에만 오롯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아들이 성인이 되고 딸이 17살이 되면서 '나를 위한 시간'이 많아지지 않을까, 라는 기대로 시작한 여러가지 것들을 해내는 게 여전히 버겁고 힘들 만큼 시간은 늘 부족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노동, 가사노동. 


은유 작가님이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밤'에 '나를 살린 숨구멍'인 책으로 편지를 쓴 글을 모은 [해방의 밤]은 '살림서사'와 책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보물 같은 책이었다. 


'책을 통해 대비할 수 있는 일이란 없고 벌어진 일은 벌어지고 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밤에는 문학만이 나를 살려두었다" -박혜진 [이제 그것을 보았어] 중에서 / [해방의 봄] p.358


좋은 책을 너무 많이 소개해주셔서 장바구니가 폭파 직전이지만 가사일과 직장일 등 꽉 짜인 일상 속에서 '바깥을 보며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낀 책이었다.


+책은 책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나온 책은 '나'를 통과하면서 또 따른 색을 띄게 되겠지.

인터넷에서 인종차별 철폐 집회 사진을 봤는데 흑인이 든 피켓에는 이런 문구가 써 있었다. ‘평화는 백인의 단어다. 해방이 우리의 언어다.‘ 모아놓고 나니 이 책에도 해방이란 말이 꽤 여러번 등장한다. 읽는 사람이 되고부터, 즉 고정된 생각과 편견이 하나씩 깨질 때마다 해방감을 느꼈기에 쓴 것 같다. 나도 해방을 우리의 언어로 삼는다. 비록 앎이 주는 상처가 있고 혼란과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무지와 무감각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의 무신경함이 누군가의 평화를 깨뜨릴 수 있으며, 적어도 약자의 입막음이 평화가 아님은 알게 되었다. 더디 걸리더라도 배움을 통한 해방은 내적 평안에 기여하고 낯빛과 표정을 바꿔놓는다고 믿는다. 해방은 평화를 물고 오는 것이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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