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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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수작'을 발견한다."


친정 부모님이 계시는 강원도 동해로 이사 온 지 올해로 10년 차가 됐다.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는 90년대 후반에 지어진 저층 아파트로 건물의 노화만큼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주로 거주하는데, 옆집 할머니, 5층 할머니, 201호 아줌마 등 주거민이 서로 가깝게 지내며 '두레'의 역활을 한다. 


"옥수수 살래?" 하고 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장마철이 다가오는 구나 생각하고(1층 할머니가 텃밭 정도의 땅에서 옥수수를 키우신다) "고구마 살래?" 하고 전화가 오면 늦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겠구나(5층 할머니가 텃밭에서 고구마를 키우신다) 생각한다. 202호 아저씨는 퇴직 후에도 몸을 놀리지 않고 버섯도 따서 나눠 먹고, 참두릅도 따서 나눠 먹는다. 제삿상에 올라오는 문어는 늘 202호 아저씨가 잡았을 때 미리 사서 냉동실에 얼려 놓은 것이다.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의 어르신들은 돈의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을 하지만 나는 엄마를 '현장중개인'으로 끼고 돈을 주고 옥수수와 고구마 등을 구입한다.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산책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하다."


라는 문장 때문에 읽게 된 <세계 끝의 버섯>은 폐허가 된 오리건주의 소나무숲에서 자라는 송이버섯을 통해 다양한 '패치'들로 구성된 주변 자본주의적 세계를 너무 멋지게 보여주는 '수작'이었다. 제국주의적 수탈과 전쟁으로 오리건주로 온 미옌인과 몽인, 난민으로 미국에 왔다가 오리건주로 온 이주민들, 베트남 참전 상이용사로 자본주의적 세계와 맞지 않아 오리건주로 온 미국인 등  '확장적 자본주의'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목재산업으로 폐허가 된 오리건주의 숲에서 버섯을 채집한다. 송이버섯은 1980년대 초고속 성장을 이룬 일본에서 최고급 선물로 통용되는데, 일본에서 채집된 송이버섯으로 수요가 충족되지 않자 오리건주에서 채집된 송이버섯을 수입한다. 채집인들에 의해 채집된 송이버섯은 '프리랜서 구매인'과 '현장중개인', '대규모구매업자'를 통해 상품화되고 자본화되는데, 이 과정을 저자는 구제축적이라고 한다. 


비자본주의적인 패치들이 자본화되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책을 시작한 저자는 파괴된 숲을 어떻게 부활할지,자본주의와 지구 생태계 간의 어떻게 형성해나가야 할지, 다종의 얽힘이 만들어가는 자본주의적 교환가치, 주변자본주의적 공간을 어떻게 형성해나갈지, 소나무와 버섯처럼 사람과 자연은 어떤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로 확장해서 나간다. 


부모님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어르신들의 옥수수 농사와 고구마 농사 역시 비자본의적 패치이고, 부모님의 아파트는 패치를 구성하는 공간으로서 자본주의적 노동을 하지는 않지만 자본을 생성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공간일 것이다.


전남대 문화인류고고학과 조교수로 계시는 노고운 교수님이 번역을 하셨는데, 번역가님은 <해재>에서 묻는다. "번역은 노동일까?"


번역도 너무 훌륭하고 구성도 훌륭하고, 오랜만에 읽는 내내 감탄하면서 읽은 책이다.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할지, 여러가지 질문을 함께 던져주는 책. 




이보다 더 글로벌 공급 사슬에 더 적합한 참여자가 있을까? 자본이 있든 없든 자발적이고 준비된 기업가들, 거의 모든 경제적 기회를 잡기 위해 자신들의 종적적이고 종교적인 동료를 동원할 수 있는 기업가들과의 접점이 바로 여기다. 임금과 혜택은 필요하지 않다. 공동체 전체가 동원될 수 없고, 그것은 공동체 구성원이 공유하는 공동의 이유 때문이다, 복지의 보편적인 기준은 거의 유의미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들의 활동은 자유의 프로젝트다. 구제축적을 찾는 자본가들이여, 여기에 주목하라.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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