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 - 재투성이에서 라푼첼까지 심층심리학으로 들여다본 여성 심리의 비밀 그림 동화 심리 읽기 1
오이겐 드레버만 지음, 김태희 옮김 / 교양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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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신과 화해하는 일이 직선적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선형으로 일어난다. 이른바 ‘재발’이 되풀이해서 일어날 것인데, 이는 심화, 반복, 새로운 관계맺음, 변형에 다름 아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잃어버린 유년기를 돌려줄 수는 없다. (중략)다만 과거의 느낌이 다시 돌아오는 일은 불가피하다. 이 느낌은 고통스러울 만큼 자주, 그러나 처음 진정으로 말을 건다. 그리고 해묵은 불안의 영역마다 새로운 신뢰의 영역이 자라기 시작한다. - 재투성이 177p.

 

자아를 찾는 오랜 여행 끝에 자신과의 화해에 이르러 본 사람은 오이겐 드레버만의 이야기에 공감할 것이다. 깨달음에 이르렀으나 과거의 습관이 되돌아오는 순간 절망스럽다. 독일의 신학자, 심리학자, 평화운동가인 지은이는 ‘새로운 신뢰의 영역’이 자라는 순간을 지켜보라 한다.

부제가 ‘재투성이에서 라푼첼까지 심층심리학으로 들여다 본 여성 심리의 비밀’인 이 책은 그림 형제가 채록한 그림동화《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Kinder-und Hausmarchen)》속 동화 신학, 심리학, 종교를 넘나들며 분석하고 있다. 가와이 하야오는 ‘동화’란 인간 삶의 본질을 쉽고 편안하게 들려주는 장르라고 말한다. 지은이는 이와 더불어 동화의 문장 하나, 단어 하나까지 상징과 비유로 들어 현실의 삶으로 끌어낸다.

 

<재투성이>동화를「불안의 그늘에서 자라는 아이」,「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기원」,「‘살아 있음’의 죄의식」,「‘악한 계모’는 누구인가」,「아버지는 왜 딸을 도와주지 않을까?」등의 제목으로 심층심리학적으로 분석한다. 지은이는 ‘<재투성이>‘동화’는 어떤 의미에서 겉보기에는 그런대로 무난한 환경이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잉여의 아이로 성장하는 모든 아이들의 이야기‘이며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사랑을 갈망하고 행복을 꿈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성 심리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남성의 선택을 방해할 수 있지만 <재투성이>의 아버지 역할과 부재의 이유를 분석하고 상투적으로 보이는 왕자가 사실은 상대의 외면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슬픔과 자기억압과 고독에서 나와 다른 사람의 사랑 안에서 행복과 믿음으로 가는 길을 찾은 소녀’의 내면을 볼 줄 아는 남성으로 설명하며 동화 속 왕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잉여의 아이로 태어났’지만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스스로 사랑할 줄 아는 독립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재투성이>는 마침내 사랑을 쟁취하고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다.

 

지은이는 불안과 죄책감으로 가득 찬 아버지와의 갈등을 그린 <가시장미 공주>, 삶과 죽음, 어머니와 마녀 등의 양면성으로 모녀간 갈등을 그린 <라푼첼>, ‘영리함’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도 좋음을 뜻하는 것임을 배우지 못한 <영리한 엘제> 등을 통해 우리 삶의 비밀을 풀어놓았다. 주석만 80여 쪽에 이르는 책은 한 편의 동화가 삶의 본질을 꿰뚫고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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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 - 아버지를 잃은 개인의 기록, 혹은 자살에 관한 과학적 연구보고서
토머스 조이너 지음, 김재성 옮김 / 황소자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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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에 의해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남겨진 이들을 보살펴 준 사람들, 이를 테면 내 고등학교 동창들처럼 옳은 일을 한 그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이 책의 헌사는 책의 주제와 쓰임을 잘 드러낸다. 지은이가 밝히듯 자살 관련 연구서는 1897년 에밀 뒤르캠의《자살론 Le Suicide》,1936년 칼 메닝거의《자신을 배반하는 인간 Man Against Himself》등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자살학 연구에서 인정받는 학자인 토머스 조이너의 책이 호응을 얻는 이유는 자살(이론)에 대해 특유의 통찰력을 기반으로 탄탄한 근거 제시와,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읽을 수 있도록 씌여져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아버지를 잃은 과정- 아버지의 자살 - 을 심리학 연구자의 논리성과 치밀함으로 담담하게 쓰되 뼛속 깊은 고통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작별인사도, 유서도 없이 떠나버린 아버지에게 던지는 ‘왜’라는 멈출 길 없는 질문을 자살 이론 연구로 승화하였다. 자살자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의 고통과 답할 이 없는 ‘왜’라는 의문의 고통에 빠진다. 치유서가 아님에도 그들의 ‘왜’에 진지한 답을 구하려 한다는 점에서 유가족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

 

조이너는 인간이 어떻게 자연 최고의 본능인 ‘삶’을 떠나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지 세 가지 요건으로 이론화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이론모델의 시각은 쓸모없다는 느낌이 자살욕망을 부추기고, 타인들에게 짐이 될 만큼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은 모든 자살욕망의 가장 강력한 원천 중 하나’라고 말한다. 즉 두 가지 기층 욕구의 좌절과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견디는 자해능력의 습득으로 자살에 이른다는 것이다. 조이너의 자살 이론은 살인적인 경쟁 구조에 시달리고 폭력 상황에 익숙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승자 독식 구조의 무한 경쟁 체제에서 사람들은 ‘패배자’라는 꼬리표에 시달리고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폭력에 물든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우리나라 사망 원인에서 자살이 4위이다. 특히 10대와 20대의 사망원인으로는 일순위이다. 학교폭력 피해자나 성적 비관 자살 등이 끊이지 않는 교육 상황에 조이너의 이론을 비추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흔히 나약하고 충동적인 인간의 가장 개인적인 선택으로 치부되는 자살은 사회 구조 즉 시스템으로 접근해야만 방향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책을 보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지은이는 ‘나약하고 충동적인’인간의 행위라고 일컬어지는 자살에 완전히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삶’이라는 자연 최고 본능을 뛰어넘는 행위는 ‘나약’해서는 결행할 수 없고 자신이나 타인을 폭력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는 충동성을 지닌 인간이라도 나름의 계획과 연습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300쪽에 이르는 책에서 지은이는 자살과 관련한 이론과 근거를 제시한다.

 

지은이의 이론이 주는 진정성은 아들과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할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묻는 아들에게 지은이는 거짓말을 포기한다. 아들의 연령에 맞춰 세부 사항을 조절하지만 할아버지가 자살했음을 알린다. ‘내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대화는 우리 부자가 나누는 전체 대화의 100만분의 1쯤에 불과하다.’ 자살 이론서 일뿐 아니라 자살자 유가족으로 어떻게 견디고 헤쳐오고 있는지 짐작하게 하는 책은 우리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보살펴야하는지 방향을 제시한다.

 

조이너의  말처럼 책을 읽지 않아도 고통에 잠긴 이들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와 ‘연민’을 바르게 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쉽게도 읽지 않아도 예의와 연민을 아는 그릇은 못되나보다. 우리의 삶을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넓게 이해하기 위해 이 책 한 권 펼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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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 창비시선 256
박남준 지음 / 창비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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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은 갔네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저렇게 피고 지랄이야

이 환한 봄날이 못 견디겠다고

환장하겠다고

아내에게 아이들에게도 버림받고 홀로 사는

한 사내가 햇살 속에 주저앉아 중얼거린다

십리벚길이라던가 지리산 화개골짜기 쌍계사 가는 길

벚꽃이 피어 꽃사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난 꽃들

먼저 왔으니 먼저 가는가

이승을 건넌 꽃들이 바람에 나풀 날린다

꽃길을 걸으며 웅얼거려본다

뭐야 꽃비는 오고 지랄이야

(하략) 

- 출처 : 박남준「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실천문학사, 2010)


시를 찾아, 시에 갇혀, 결국 여기까지 왔다던 시인은“2010년 악양에 뼈를 묻기로 했다. 여섯 번째 시집이다. 뭔가 좀 달라지고 싶었다. 그간 내 시의 주조를 이루던 정서는 슬픔이었다. 분노를 버리지 않았으나 밝고 즐거운 시를 쓰고 싶었는데 글쎄……."라고 고백한다. 아린 슬픔을 전하는 시집「적막」과는 다른 애잔한 발랄함이「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서 느껴진다. 백사로 날은 흐리지만 꽃비의 봄날은 올 것이다. 노랑, 분홍 봄날 꽃은 피고 연초록 나뭇잎에 깃든 햇살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이할까? 이 화사한 봄에 ‘어쩔 수 없구나 겨울을 건너는 몸이 자주 주저앉는’ 시집「적막」과 눈이 맞아버렸다. 노모를 뵈러가는 기차시간을 읽기 위해 급하게 집어든 책이다.

 

 ‘어째서 당최 기별이 없다냐/에미는 이렇게 보고 싶은데/......../전화기 속에서 징징거리는 늙은 여자가 걸어나온다/.’

 

먼저 전화드려야지 마음 먹지만 늘 엄마가 선수를 친다. 마흔 넘은 딸의 끼니를 걱정하는 엄마, 그 엄마들의 걱정과 그리움이 뭉근히 배어있다. 기차로 오가는 시간, 시를 보며 자주 먼 산을 바라본다.

 

‘길을 따라 떠나간 것들이 그 길을 따라/꼭 한번은 돌아오리라 믿고 있기 때문’인지 '풍란으로 인해 얻는 것이 있다/한 평 땅이 없으면 어떠랴 길이 아닌들/나 이미 오래 흘러왔으므로‘.

 

그렇게 앞으로도 조근조근 걸어갈 것을 다짐하는 것인가. 쓰러진 것들, 새들, 나무들을 불러내어 시를 읊조리니 나직히 쓸쓸함이 감돈다.

 

’무너지지도 않은 다리를 본 적이 있다/오랜 가뭄 끝에 바닥을 드러낸 화순 근처의 저수지/........./죽은  잔재들 저만큼에 실개천을 가로지르는/그 다리, 저문 하루의 일손을 놓고 집으로 돌아가며/발목을 적시지 않고 건넜을 앉은뱅이 다리 하나/아직 저 눈곱만한 다리는/길을 되짚어 와야 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물에 잠긴 앉은뱅이 다리가 외롭게 느껴지더니 불현듯 오랜 세월을 견디는 힘을 깨닫는다. 쓸쓸하고 쓸쓸하더니 나무가 다리가 새들과 묵묵히 세월을 견디는 힘이 느껴진다.

이렇게 봄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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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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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남자의 삶 그리고 죽음. 체험한 것들의 기록이 훌륭한 문학이 되는 작가 아니 에르노는 ‘소녀 시절에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그 거리(距離)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고 ‘추억을 시적으로 꾸미는 일도, 내 행복에 들떠 그의 삶을 비웃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남자의 자리」를 통해 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불러낸다. 필립 로스의「에브리맨」이 일인칭 시점으로 회한어린 한 남자의 삶과 죽음을 보여준다면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는 딸이 보고 들은 아버지의 그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자리’가 아니라「남자의 자리」이다.

그 남자는 ‘20세기가 열리기 몇 달 전, 바다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에서 태어나 동네모임에서 음식바구니를 따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미련한 놈이라는 욕을 먹고 열두살 때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일하기 시작했지만 ‘그런 건 꿈도 못 꿨다. 그땐 다들 그랬어.’

농가에서, 공장으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게를 열지만 ‘지닌 걸 다 잃고서 다시 노동자 신세로 떨어지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일도 결혼도 하지 않고 나이가 차서도 공부만 하는 딸을 이해할 수 없지만 딸의 부르조아 친구들 앞에서 최선을 다하며 그는 자랑스러운 시선으로 이렇게 말한다.

 

‘난 널 한 번도 창피하게 만든 적이 없다.’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품격을 지키고 사위에게조차 ‘아무것도 내비치지 않는 걸 자존심으로 여기는 그’는 ‘감정 같은 것은 호주머니에 넣고 그 위에 손수건으로 덮어 놓는’다. 그리고, ‘젊었을 때는 미남’이었던 그는 죽음을 맞이한다. ‘어머니는 장례식 날 하루만 가게 문을 닫았다. 잘못하면 손님들이 떨어져 나갈 터인데, 그건 어머니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129쪽의 작고 짧은 책을 보며 상념에 젖은 것은 그의 삶이 내가 알고 있는, 이미 세상을 떠난 ‘한국의 한 남자’와 닮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센 강 하구지역의 남자, 다른 한 남자는 한국의 변방에서 태어나 한 번도 고향을 저버리는 일 없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두 남자의 삶과 죽음의 줄거리는 일치하는 바가 없다. 한 남자는 프랑스의 역사와 사회 변화 속에서 그만의 자리를 잃지 않으려 고군분투하였고, 다른 남자는 한국의 역사와 사회 변화 속에서 진퇴를 거듭하다 ‘영감이 할망구 먹을 것도 안 남기고 갔다’고 푸념하는 아내와 제 몫의 삶을 사는 다섯 명의 자식들만 남기고 스러져갔다.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프랑스와 한국의 두 남자는 ‘젊었을 때는 미남’이었다는 것과 펀치를 날리는 세상과 당당하게 맞서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 닮았다.

 

우리는 어머니, 할머니의 삶에서 ‘여자’를 느낄 때 공감을 동반한 슬픔이 일렁인다. 남자로 태어나 아버지라 불리고 사회적 성공을 향해 삶을 불태운 ‘남자’의 삶과 죽음은 진흙탕 싸움같아 비애를 느낀다. 어렸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벌어먹고 사는 20여 년에 참으로 궁금하다. 한국 변방 출신 ‘그 남자’는 삶의 무게에 휘청이면서도 어떻게 포기하지 않았을까?  ‘감정 같은 것은 호주머니에 넣고 그 위에 손수건으로 덮어 놓는’ 프랑스 남자처럼 한국의 그 남자 또한 세상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원망하거나 울분을 토할 시간도 없이 숨가쁘게 살았을 것이다. 또는 고독하게 그 시간을 견뎠을 것이다. 「남자의 자리」는 자기 몫의 삶을 견디며 살아가는「인간의 자리」다. 삶의 매 순간을 충실히 살아온 그 남자들의 삶과 죽음에 비애를 느끼며, 목숨 걸고 삶의 매 순간을 자신의 이야기로 채워가는 우리. 그 남자들이 자신의 자리에 엄숙히 충실했듯, 우리는 이 삶을  지켜나갈 것이다. 그(그들)의 삶과 죽음, 한번쯤 돌아봐주고 읽어주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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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게 산다 심플하게 산다 1
도미니크 로로 지음, 김성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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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상 생활의 정리를 돕는 책들이 눈에 띄인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현대 문명은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소비심리와 잡다한 물건을 허하였다. 천원샵부터 명품관까지 소득맞춤소비시스템으로 누구나 뭐라도 소유할 수 있다. 인류사에서 가장 풍족한 시대건만 우리 사회 또 다른 주제어는 ‘힐링’ 이다. ‘이곳’에 살면, ‘이것’을 가지면 ‘영원한 행복’을 누리리라 하였으나 전 지구적 우울과 결핍감은 좀체 가시지 않는다.

 

도미니크 로로의「심플하게 산다」에는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가 있다. 플라스틱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잠을 깨고 싱크대에서 한 끼를 해결하면 끊임없이 들려오는 텔레비전 소음과 학교로, 일터로, 가사노동으로 들어선다. 우리가 숨쉬고 일하고 사는 공간을 휴식으로 느끼긴 힘들다. 로로는 우리가 사는 공간에서 의미를 찾고 충만한 몸과 마음을 일구자 권한다. 로로는 ‘물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더 많이 소유할수록 더 안심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게 탐욕의 대상이 된다. 물질적 재산, 사업, 예술품, 지식, 아이디어, 친구, 연인, 여행, 신神, 그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의 자아까지도.”.

“우리 문화는 심플한 삶을 선택한 이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소비사회에는 그런 사람들이 해가 되기 때문이다.”,“우리는 공간을 채우느라 공간을 잃는다. 거실을 인테리어 잡지에서 본 대로 꾸미느라 에너지를 잃고 물건을 정리하고 치우고 찾느라 시간을 잃는다”, “버리는 일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일 힘든 것은 버리는 행동 자체가 아니라, 어떤 게 필요하고 어떤 게 불필요한지 판단하는 일이다.”

 

‘정리’가 왜 화두인지 알겠다. 성별, 연령에 맞춰 당연히 가져야 하는 것은 지하철 광고판만 봐도 알 수 있지만 그렇게 사들인 것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살아야하는지, 언제 비워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욕망은 물리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고 자아, 관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데 구매가 곧 존재인 사회에서 ‘비우기’는 ‘주변인 내지는 불안한 개체로 취급 받’는다.

 

로로의 책이 심플한 표지만큼 ‘단순한 일상’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구현하려면 기꺼이 ‘주변인’이 될 각오가 필요하다. ‘스스로 소박한 삶을 선택해 적게 먹고, 적게 소비하고, 적게 험담하거나 아예 험담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아마도 “격조 있는 비움. 삶의 매 순간 의미를 발견하는 삶. 한 끼를 먹어도 머리를 매만지고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음미하며 먹는 것, 좋은 물건을 볼 줄 아는 심미안, 공들여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으로 산다. 이렇게 살아가고 싶은가? 아니, 살아갈 수 있을까? 일상에서 의미를 찾자는 로로의 말은 ’순간에 깨어있으라‘한 불교 수행 방식과도 닿아있다. 우리는 밥 먹을 때 ’업무‘ 생각, 일하면서 ’또 다른 일‘, 그렇게 삶의 매 순간 또 다른 걱정거리로 전전한다. 로로처럼 살 자신은 없지만 한 가지라도 실천한다면 다른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쉬는 날, 냉장고에서 꺼낸 플라스틱 용기가 아니라 예쁜 접시에 반찬과 밥으로 놓고 싱그런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점심 한 끼 먹어보면 어떨까? 기온이 더 떨어지기 전, 자연을 느끼며 정다운 이와 따뜻한 도시락을 먹어보자. 매 순간 심플 라이프가 되지 못하더라도 그 순간만이라도 ’심플 라이프‘의 시작일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의 말에 따르면, 인류의 미래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내면의 깊이를 발견하고 그 내면에서부터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얼마나 끌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와 속도가 현대 문명의 두 가지 적’이라는 지은이는 ‘심플한 삶은 모든 것을 즐길 줄 아는 것, 가장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것에서도 즐거움을 발견하는’ 것이란다. 심플한 삶은 부단한 노력, 공부와 수행의 결과이다. 당신의 ‘삶’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이며, 또한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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