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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평점 :
제목을 잘 모르겠다. 삶, 인간, 종교, 의미, 선과 악은 때로 인류의 절대 과업인 듯 몇 천년 넘게 정답을 주지 않는다.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라서 채점이나 검사가 불가능하고 그저 열심히 해나갈 뿐이다. 각자의 방법, 각자의 정답, 각자의 욕구로 그저 그렇게. 각자의 방식과 정답이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고 상대를 납득하지 못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 상대도 나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과 내가 추구하는 것이 절대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고 마치 정답을 아는 것 마냥 단정하고 판단한다. 작가는 마지막에서 모두 원하는 것을 찾았다고 이만하면 해피엔딩 아니냐고 말한다. 그래 그럴수도 있겠다. 내가 추구하는 바, 내가 찾는 의미에 모두 공감하길 바라는 것은 그저 욕심이라는 사실을 그저 내 기준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체가 어렵다. 내 삶이 다른 이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 지는 신경도 안쓰면서 그들의 삶에 참견하고 싶은 마음이라니 빈약하고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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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이야기과 매력적인 인물들 거기에 관찰자로 등장하는 작가는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를 관찰하지만 누구도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의견으로서 한마디 보태고, 종종 날카롭게 비출지언정 비난하지 않는다. 결국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각자의 삶과 방식과 의미와 욕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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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래리처럼 궁금했다. 인간의 삶과 의미, 종교와 선과 악, 궁극적인 목적과 근원적인 행복에 대해 궁금하고 또 궁금했다. 영혼의 문제에 대해 이상과 현실 중 양자택일해야한다는 강박에 자주 시달렸다. 아니, 괜찮다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정말 괜찮은 것 같다가도 그래 결국 인간이란 그렇다고 다를 수 밖에 없다고 그래봐야 한 줌으로 돌아갈 뿐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이 있다면 서로 사랑해야 하지 않겠냐고 사랑이 무리라면 최소 존중은 해야하지 않겠냐고 이런저런 생각끝에 모두 애처롭기만 했다. 그 애처롭다는 시선 또한 오만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어느 순간 밉기보다 애처로왔고 어느 순간 애처롭기보다 아!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받아들인다는 표현 자체가 이상하게 여겨진다. 내 삶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닌 그저 내가 속한 세상의 어느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 그것이 내게 속한 문제가 아닐텐데 어쩌자고 감히 그런 표현을 하고 있을까. 래리는 그 뒤로 어떻게 살았을까? 다시 흔들리거나 넘어지진 않았을까? 그것으로 충분했을까? 여전히 미소지으며 낭랑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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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이상을 분리하고 종교와 일상을 분리하고 머리와 마음을 분리하고 외면과 내면을 분리하며 변명한다. 비겁한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변명이다. 그래서 더더욱 나를 배반하지 않는 하루를 살고 싶다. 좀 맞아도 솔직하고 싶고 좀 울어도 더 알고 싶다. 어쩔 수 없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저 듣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놀라다가 손을 잡거나 낄낄 대면 그만이다. 그렇게 각자가 어우러질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회의적인 이상주의자는 말한다. 등줄기의 땀을 느끼며 콧물을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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