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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평점 :
“나는 나한테 배정된 이층 서고에 짐을 갖다놓고는 양멀을 벗고 맨발이 되어보았다. 나무 바닥이 차가워서 기분이 좋다. 여름 내내 맨발로 보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책을 테마에 따라 배열하는 것은 진지하게 생각할 만한 가치가 있어. 종래의 도서관은 책 선택을 이용자에게 맡기는 수동적 시스템이었지. 책을 빌리러 오눈 이용자에게는 찾는 책이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하니까 국회도서관 쯤 되면 국가의 지적, 문화전 재산을 모두 소장하는 것이 최대의 역할이지.”
이 책은 오랜시간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지 않던 건축가 무라이 슌스케가 주인공인 사카니시 도오루를 채용하고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에 뛰어들면서 가루이자와라고 하는 마을의 여름 별장에 직원들이 함께 몇 달간 합숙하며 설계 경합을 준비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아주 상세한 건축물 설명과 함께 설계란 무엇인지, 설계 과정, 다양한 건축이야기 뿐 아니라 조류와 식물, 음식 등 광범위한 이야기가 쓰여져있다. 건축에 관한 이야기 자체가 거의 처음이라 집중한다고 눈이 빠지는 줄 알았다. 도면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읽는 것을 포기하고 나서야 소설 속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한 번쯤 갖고 싶은 ‘여름 별장’이 소설 속에선 노동의 장소가 되어 다소 아쉽지만ㅎㅎㅎ 노동 뿐 아니라 직원들이 겪은 이야기 건축가 선생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앞서 말했듯 음식, 동•식물에 관한 이야기로 지루하지 않았다.
소설에서 표현하는 풍경을 읽고 있으니 여름날의 더위가 느껴지고 겨울날 장작이 타는 난로 앞에 앉아있는 느낌도 들었다.
수동적인 주인공의 행동에 답답하기도 하고 수동적이라서 다행이기도 한 다양한 상황들도 흥미롭게 읽었다.
왜 뮤라이 슌스케는 주인공 사카니시를 채용했을까? 왜 그는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에 그토록 열정적이었고 직원들도, 그의 파트너 후지사와 씨도 놀랄, 이전과 다른 설계를 했을까?
나는 슌스케 선생이 곧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편지를 남겼던 것 같다.
건축이 건물의 외관 뿐만 아니라 공간의 쓰임새, 환기구의 위치나 가구의 배치, 가구의 모양까지 신경쓰는 엄청 섬세한 분야라는 사실을 알았다. 도서관의 책장이나 의자, 이용자의 동선 뿐아니라 직원들의 회의실 위치까지…건물 하나를 짓는 것이 혼자서는 도저히 힘든일이고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
그나저나 책에서도 나왔듯 도서관 책 배열을 테마별로 배치하면 어떨까? 말 그대로 이용자가 책을 정해놓고 빌리러 가는 것 이외엔 도서관에 잘 가질 않는다. 문학, 사회•과학, 총서, 역사 등으로 구분하고 출간일로 책이 배열되어 있어 책을 고르려면 제목과 표지를 본 다음 책을 펼쳐 내용을 읽어야 한다. 테마별로 배치되면 책 고르기가 한결 수월할 듯.
학창 시절엔 자주 도서관에 가서 마음에 드는 제목의 책을 펴서, 그 자리에 앉아서 읽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시간의 자유’가 없어서 아쉽다. 그 때 그 여유로운 시간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