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허풍담 1 - 차가운 처녀
요른 릴 지음,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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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간에 걸친 찌는 듯한 더위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북극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북극은 어떤 곳일까? 눈과 빙하로 뒤덮인 환상과 미지의 세계, 순록과 북극곰이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내몰리고 있는 곳, 환경과 싸우며 극복해가는 이누이트들의 척박한 삶이 있는 곳, 그곳이 내가 그리는 북극이다. 어찌 보면 내 상상 속의 북극은 조금은 몽환적이고 이상적인 이미지로 그려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 표현하는 북극은 평범하다. 그저 우리와 똑같은 일반인들이 삶을 고민하고 무료해하는 곳이다. 물론 어처구니없는 사건과 일화들이 펼쳐지긴 하지만…….

 

북극은 누구나가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특히 그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욱 흔치 않다. 그래서일까? 그곳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는 허풍이 가미되어 있다. 마치 남자들이 군대에 다녀온 남자들이 아직 다녀오지 않은 후배나 여성들에게 자신의 고생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은 이 책은 제목이나 표지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익살과 유머는 가득하지는 않다. 문화가 달라서 그럴까? 얼마 전 읽은 천명관의 《나의 삼촌 부르스 리》처럼 읽는 내내 낄낄 대거나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매력은 없다. 허풍이라고는 해도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일종의 과장이나 그럴듯한 거짓말, 혹은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허풍 속에는 따뜻한 인간미가 있고, 휴머니즘이 담겨 있다. 뭐랄까? 그저 시답잖은 농담이 아니라 허풍이라는 일종의 장치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본달까? 아마도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이 여러 상을 수상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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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온 편지
김용규 지음 / 그책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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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제주도의 자연휴양림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적이 있다. 주변 관광을 하고 오후나 이른 아침에는 휴양림 내의 산책길을 걷던 그 휴가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때 마지막 날 오후 “숲 해설가가 들려주는 나무 이야기”라는 주제로 숲 해설가가 가이드해주는 산책길 투어가 있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숲 해설가’라는 직업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의 저자 김용규는 숲 해설가다. 원래는 서울에서 벤처기업 CEO를 했다고도 한다. 처음이 책을 접했을 때는 제주도의 자연휴양림에서 들었던 숲에 대한 이야기들, 나무에 관한 사소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나무나 숲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아니라 저자가 충북 괴산의 한 오두막에서 5년간 살아왔던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담고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모든 편지들에 묻어 있는 소박한 느낌이었다. 즉, 문명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자유롭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의 편안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숲속에서의 5년간의 삶 때문일까? 저자는 어찌 보면 자연인의 모습이었고, 또 선인 같은 모습이었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부러웠다. 그렇게 살 수 있는 환경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그러다가 재미있는 부분도 발견했다. 저자의 아내와 자녀는 저자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썩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의 문명생활을 하다 산속으로 들어간 남편이, 아버지가 썩 달갑지 않았으리라는 것 또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또 경제적으로도 이전만큼의 여유를 갖지 못하는 데서 오는 박탈감도 있었으리라.

각설하고, 이 책이 가진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는 윤광준 사진작가의 멋진 숲의 사진이다. 사실 윤광준이라는 이름은 내겐 생소했지만 이 책에 담겨 있는 사진들을 보면서 그의 작품들에 빠져버렸다.

단번에 읽기 아까운 책이다. 두고두고 다시 곱씹으면서 읽으면 시끄럽고 복잡한 문명사회의 중심에서 살아가는 내게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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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편지 - 인류 문명에 대한 사색
최인훈 지음 / 삼인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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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한 요소로 화려한 문장과 다양한 어휘, 탄탄한 구성, 그리고 작품의 진실성 등을 꼽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에 인간에 대한 고뇌와 애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문장이 아무리 뛰어나고 구성이 좋더라도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고민과 애정이 없는 작품은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최인훈의 소설에는 이러한 인간에 대한 애정과 고민이 담겨 있다. 대표적인 것이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의 모습이다. 남한과 북한 그 어느 체제에도 소속될 수 없는 이명준이라는 사내의 모습을 통해서 최인훈은 당시 이념으로 고뇌하던 우리 민족(인간)의 모습을 담아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 <바다의 편지>도 그러한 인간의 고뇌나 갈등 그리고 그러한 나약한 인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책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가·작가로서의 최인훈의 모습이 아니라 사상가로서의 최인훈을 보여준다. 때문에 일상생활 속에서의 인간의 모습보다는 보다 거시적이고 폭넓은 인간과 문명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책을 엮은 오인영 교수 역시 <광장>이 너무 많이 알려져 최인훈을 단순히 작가로서만 바라보는 현실이 안타까워 그의 사상과 철학이 담긴 글을 모았다고 한다.

이 책에는 인류 문명의 역사적 진화 과정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력이 담겨 있으며 또한 세계의 근현대 역사를 반추하며 굵직한 문명을 일으킨 국가의 모습과 그 명암에 대한 언급도 들어 있다. 그 외에도 책 제목과 같은 단편 <바다의 편지>라는 소설도 담겨 있다.

사실 읽기가 내용도 많은데다가 읽기가 녹록치 않아 내게는 버거웠지만, 이 책 <바다의 편지>를 통해서 소설가로서의 최인훈이 아닌 우리 사상가로서의 최인훈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만날 수 있어 나름 큰 의미가 되었던 경험이다.

예전에 민주화 운동을 하며 저항 시인으로 유명했던 김지하가 동학사상과 생명사상으로 회귀해 쓴 글 모음집을 두 권 읽은 적이 있었는데, <바다의 편지>를 읽고 난 후가 꼭 그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어찌 보면 문학과 사상은 떼어놓으려야 떼어 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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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미래보다 새롭다 - 유하 산문집, 개정증보판
유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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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서의 유하와 영화감독으로서의 유하 중 어느 편을 선호하는가? 아니, 유하 감독의 영화와 유하 시인의 시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는가? 쉽게 결정하기 힘든 난해한 질문이다. 그래도 난 영화감독으로서의 유하를 선택한다. 유하의 시들 중 몇몇 편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시(유하의 시가 아니라 일반론적 시를 말한다)는 읽으면서 충분히 이해하기가 어렵고, 그에 비해 영화는 좀 더 쉬운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물론 영화라고 모두 이해하면서 본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산문집 <추억은 미래보다 새롭다>는 이해하기 어렵고 설명이 적은 시보다는 훨씬 쉽고 설명적이면서도, 시적 함축성이나 간결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좋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책의 초판본 제목 ‘이소룡 세대에게 바친다’라는 문구가 말해주듯이 책은 저자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다루다 보니, 청룡(청룽), 주윤발, 장국영을 보고 자란 세대인 내게는 낯설지는 않지만 쉽게 공감하기 힘든 풍경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몇몇 이야기들에서 겨우 그의 추억의 끝자락을 붙들 수 있었다.

 

게다가 책의 초판본이 1995년이라 유하의 시들에 대한 이야기는 담겼어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93년에 개봉한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개봉 첫날의 풍경뿐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결혼은 미친 짓이다>, <비열한 거리>, <쌍화점>, 그리고 최근 개봉작 <하울링>까지의 영화 이야기를 기대한 내게는 큰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아주 매력적이다. 유하가 자신의 시들에 대해, 시적 상징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해주고 있는 것도 그렇고, 허수경이나, 진이정 등 그의 지인인 시인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재미있다. 또한 1990년대 영화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괴로웠던 대학시절 첫사랑(?)의 이야기도 재미있고 매력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것은 담백한 글솜씨다. 시처럼 간결하고 함축적인 문체와 깊이 있는 사고, 우리 사회를 꿰뚫어보는 눈은 단연 돋보인다. 물론 대체될 수 있는 좋은 표현이 우리말에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거슬릴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외래어·외국어의 남용은 옥에 티다.

 

어쨌든 이 책은 ‘이소룡 세대’에게는 향수를, 유하 시인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의 시 세계를, 90년대 영화 마니아에게는 옛 추억을 선물하는 재미있는 책이다.

 

사족: 이소룡 세대는 우리 사회에서 386세대로도 불린다. 익숙하지만 흔한 386세대라는 말보다 이소룡 세대라고 지칭하니 덜 정치적이면서 문화적인 느낌이 들어 좋다. 이소룡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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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처럼 생각하고 한비처럼 행동하라 - 한 권으로 읽는 도덕경과 한비자
상화 지음, 고예지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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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한비자를 함께 묶는다는 것이 왠지 부자연스러운 듯싶었다. 같은 제자백가 시대의 사상가라고는 하나 노자의 경우는 철학자에 가깝고, 한비자의 경우는 정치가에 가깝다고 느껴졌기 때문일까?

 

게다가 <한비자>가 권력자의 통치 수단으로서 강조되었다면(실제로도 촉의 유비나 진나라의 시황제나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 등의 통치자들이 즐겨 읽던 책이라고 한다) 노자는 민중을 위한 저항과 반문명의 사상으로 강조된다. 물론 하안·왕필 등을 비롯한 위나라의 현학가들에 의해 노자의 사상이 ‘은둔과 청담의 사상’으로 왜곡되어 후대에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장자와 더불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이 노자의 사상이다.(이러한 노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관해서는 기세춘 선생이 《노자 강의》(바이북스)에서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한비자와 노자는 참으로 안 어울리는 매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노자처럼 생각하고 한비처럼 행동하라>라는 제목처럼 한비자에 대한 이야기는 대외적, 즉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처세술로, 노자의 사상에 대해서는 자신의 내적 성찰로서 접근하고 있다. 대외적 관계와 내적 성찰이라는 단서가 붙는다면 한비자와 노자가 그리 안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책 속의 작은 제목들은 마치 자기계발서나 처세서를 상기시키게 만드는 제목들로 가득 차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철학서라든지, 사상서, 인문서로서의 느낌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내용 중 몇몇 부분들은 분명 자기계발서를 뛰어넘는 사상이 있고, 철학이 있다.

 

내용 자체는 집중해서 읽기에는 좀 산만하고 이야기하는 바와 예화, 인용구가 잘 맞지 않는 듯한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한비자와 노자를 한데 묶어 외적 행동의 기준과, 내적 성찰의 도구로 읽는다는 새로운 시도는 분명 재미있고 참신하다.

 

노자와 한비자의 사상을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도 비추천이지만 자기계발서로 쉽게 읽고 넘기려는 사람에게도 비추천이다. 단, 어떤 모임의 리더, 권력자, 경영자로서 올바른 판단의 지표가 필요하다거나 자신의 내적 성찰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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