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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100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품절

중학교 때인가, 책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접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죽음에 대해 적은 에세이를 처음 접했어서인지 아직까지도 종종 생각나는 책 중 하나이다. 워낙 유명한 에세이라 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들어봤을 것이고, 이번엔 무려 100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까지 출시되었다.
책의 저자인 폴 칼라니티는 미국의 신경외과 의사로 최우수 연구상을 받을 정도로 저명하고 촉망 받는 인재였지만, 3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암으로 인한 시한부 선고를 받게 돼 현재는 고인이 되었다. 그는 투병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인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들을 되돌아보는 회고록 형식의 에세이를 <뉴욕타임스>와 <스탠퍼드메디슨>에 기고, 그것이 지금의 책 <숨결이 바람 될 때>가 되었다.
자신의 폐를 덮은 무수한 종양이 찍힌 CT 사진을 확인했던 때의 그는 정말 젊었다. 오랜 기간 노력해온 신경외과 레지던트의 마지막 수료가 코앞이었고, 일류 대학에서 교수 자리도 제안 받았으며, 사랑하는 아내도 있었다. 하지만 예고도 없이 찾아온 암은 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산산조각내었다. 누구나 좌절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그는 자신이 할일을 묵묵히 해가며 이렇게 멋진 에세이도 작성하고, 열심히 치료받는 등 자신의 운명을 수용했다. 죽음의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에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감탄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글에서는 그가 인생을 살며 느껴온 여러 생각들이 담겨있었다. 죽음의 직전에서 그에게 떠오른 가치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읽어나가는 것은 내게 큰 울림이 되었다. 원래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었던 그이기에 책에 관한 언급, 그리고 그를 통해 그가 깨달은 교훈들을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인간 관계'와 관련된 그의 생각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 폴은 T.S. 엘리엇의 <황무지>를 읽으며 인간관계와 도덕적 가치는 뗄레야 뗼 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고, 이러한 생각은 다른 문학작품을 통해 확장되었다고 한다. 내가 고통스러울 때 다른 사람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삶이 얼마나 의미없는지, 잘못된 의사소통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생각하며 그는 이후 인간관계를 중요시여겨 그를 쌓아가기 위해 노력했다고. 나는 인간이 너무 어렵고, 그래서 나도 어렵고, 또 그래서 관계를 쌓아가는 것에 지나치게 신중해지는 편이어서 그런지 이런 그의 말이 뇌리에 박혔다.
또, 고전문학을 사랑한다는 나와의 공통관심사가 있는 그의 말도 흥미로웠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과학이니, 의학이니 이런 원리이론적인 것들보다도 오히려 '문학'이 훨씬 더 의미있게 다가왔음을 말한다. 그래서 투병 중에 카프카 등 수많은 고전문학을 읽으며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이들에게 위로받았으며, 이들의 구절에서 삶을 버틸 의지를 얻었다고 한다. 문득, 내가 죽기 전에 읽고픈 문학작품은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매순간을 치열하게 살았던 한 사람의 삶의 흔적을 이렇게 접하는 것은 정말 만감이 교차하게 만들어준다. 죽음의 무서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제껏 성취해온 그 모든 것들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절망감. 이 모든 것을 나는 폴처럼 의연하게, 그리고 꿋꿋하게 견뎌낼 수 있을까? 그가 이렇게 자신의 운명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그만큼 정말 열심히 삶을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지. 후회없는 삶. 언제나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인 인간. 어떤 삶을 살아야 죽기 전 자기수용적인 상태에서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난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많은 생각이 든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