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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1
에밀리 브론테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평점 :
<폭풍의 언덕>은 영국의 요크셔 지방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제인 에어의 작가 샬롯 브론테의 동생 에밀리 브론테가 생전에 남긴 유일한 소설이자 명실상부 영미문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이다.
<줄거리>
언쇼 가문과 린턴 가문. 캐서린을 사랑했던 히스클리프의 이 두 가문을 향한 복수극
록우드라는 한 청년은 속세와 단절된 조용한 곳을 찾아 요크셔 지방에 위치한 한 저택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로 이주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워더링 하이츠에 거주 중인 자신의 집주인 히스클리프씨를 만나게 되는데, 그의 집에 방문했다가 느낀 여러 기묘한 분위기에 의아함을 느끼게 된다. 지나치게 과묵하고 음습한 기운이 느껴지던 히스클리프씨, 인형 같은 외모의 소유자이지만 사교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며느리 캐서린, 하인인 줄 알았건만 캐서린의 사촌이었던 헤어턴. 이렇듯 알 수 없는 이상한 관계의 가족 구성원과 방에서 발견한 캐서린 언쇼(앞에서 언급한 캐서린과는 다른 사람)라는 사람의 일기장, 그리고 그녀의 유령이 나타나는 꿈, 창밖을 향해 광란에 찬 고통으로 캐서린이라는 이름을 울부짖던 히스클리프의 외침까지.
이 모든 것에 궁금증을 느끼게 된 록우드는 자신의 가정부이자 오랫동안 히스클리프를 알고 지내온 엘렌 딘에게 히스클리프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하게 되고, 이에 딘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본디 저택 워더링 하이츠에는 언쇼 집안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언쇼씨는 리버풀에 출장을 나갔다 길거리에 떠돌고 있던 검은 머리 남자아이를 불쌍히 여기고 집으로 데려와 키우게 되는데, 이 아이가 바로 '히스클리프.' 언쇼씨의 부인은 물론이거니와 자녀인 힌들리와 캐서린, 그리고 가정부로 일하고 있던 딘까지, 모두가 이 히스클리프의 존재를 탐탁치 않아 한다. 그럼에도 언쇼씨는 히스클리프를 자신의 친자식들보다도 더 아꼈으며, 캐서린 역시 서서히 마음을 열고 히스클리프와 둘도 없는 친한 존재가 되지만, 힌들리는 여전히 히스클리프를 증오하였고 이로 인해 언쇼씨의 눈밖에 나 내쫓기듯 대학에 보내지게 된다.
하지만 곧 언쇼씨는 죽게 되었고, 이로 인해 대학에 갔던 힌들리가 부인인 프랜시스와 함께 워더링 하이츠로 돌아오게 되며 모두를 망치게 한 비극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게 된다. 힌들리는 생전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던 히스클리프를 미워해 그를 고립시켰으며, 교육받지 못하게 해 그를 '무지'하게 만들어버렸고, 그를 학대하기 시작한다. 이에 캐서린은 힌들리에 반발하며 히스클리프를 끊임없이 보호하였고,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서로에게 의지한 채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날이 깊은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캐서린은 우연한 기회로 린턴 가문이 거주하고 있던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에 방문하게 되고, 그 집의 아들 에드거 린턴에게 호감을 느껴 곧 그와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에드거에게 청혼을 받던 날, 캐서린은 딘에게 자신이 청혼 받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이러한 말을 하는데...
"저기 저 사악한 인간(힌들리)이 히스클리프를 그렇게 천하게 만들지만 않았어도 나는 이 결혼은 생각지도 않았겠지.
지금으로서는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내 품위가 떨어지고 말 거야.
그러니까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애가 알아서는 안 돼.
그건 그 애가 잘생겨서 그런 게 아니야.
그 애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지.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그 애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아.
..
히스클리프는 지금까지 평생 그랬듯 앞으로도 내게 소중한 존재일 거야.
에드거도 그 아이에 대한 반감을 떨쳐야 하고, 아니면 적어도 그 아이를 참아줄 줄 알아야만 해.
...만일 히스클리프와 내가 결혼하면 우리 둘 다 거지꼴을 면치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어?
그에 반해 내가 린턴이랑 결혼하면 나는 히스클리프가 성공하도록 도와줄 수 있고, 오빠(힌들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도 있어."
-pp.139~142
캐서린이 에드거와의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에드거를 진심으로 사랑해서가 아닌, 어디까지나 '히스클리프'를 위해서였다. 에드거와 결혼해 그의 재산으로 힌들리에게 학대 당하고 있는 히스클리프를 구해주기 위해서. 자신이 히스클리프와 결혼한다면 둘 다 거지가 될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에 그녀는 히스클리프를 저버리고 자신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인 에드거와의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캐서린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이 앞에 말한 '지금으로서는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내 품위가 떨어지고 말 거야'라는 말만 듣고 그녀를 오해해 집을 나가버렸고, 그 길로 워더링 헤이츠를 떠나게 된다. 폭풍우가 치는 날 밤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캐서린은 뒤늦게 그를 찾아 떠돌지만 결국 그를 찾지 못한 채 약속대로 에드거와 결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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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년 후. 히스클리프는 다시 캐서린의 눈 앞에 나타난다. 몰라보게 변해진 모습으로. 힌들리로 인해 교육받지 못했던 이전과는 달리 매우 지적여졌으며, 용모 역시 비실비실대고 더럽던 그가 아닌 우람하고 깔끔한 외모를 갖춘 채. 그렇게 그는 다시 돌아와 자신을 학대한 힌들리에 대한 복수(언쇼 가문에 대한 복수), 그리고 자신이 사랑해 마지 않던 캐서린을 빼앗아간 연적 에드거 린턴에 대한 복수(린턴 가문에 대한 복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캐서린은 복수에 눈먼 히스클리프를 바라보며 괴로워하고 그를 멈추어보려고도 노력하지만, 그는 멈추는 법 따위 모르듯 그저 앞만 보고 돌진하는 폭풍과도 같이 자신의 복수를 이행해간다.
그렇게 모두가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게 되는데...
과연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어떠한 막을 내리게 될까.
<느낀 점>
'복수'만을 위한 삶은 얼마나 허무한가
이 소설은 말 그대로 '폭풍'과도 같은 소설이었다. 작가의 필력도 거침없었고, 폭풍과도 같은 머리 아픈 사건들이 끊임없이 휘몰아쳤으며, 등장인물 역시 모두가 폭풍과도 같은 성격을 가졌기 때문. 정말 하나같이 성격이 예사롭지가 않아 읽는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과장 안 하고 정말이지 대화의 80%가 증오와 분에 가득한 말들뿐이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인물인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을 사랑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무시했던 힌들리, 그리고 자신의 연적 에드거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의 평생을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 바쳤다.
그의 복수 솜씨는 놀라웠고, 읽는 내내 정말 '악마'같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수준이었다.
고전문학을 읽다 보면 복수심에 눈이 멀어 가스라이팅을 해대는 존재를 종종 접할 수 있는데(예를 들어 위대한 유산의 헤비셤 양), 히스클리프는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봉이었다.
그는 가스라이팅으로 정말 많은 인간을 조종해나갔다. 힌들리에 대한 복수로 힌들리를 도박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만들었으며, 그의 아들 헤어턴을 무지와 야만으로 가득찬 아이로 만들어버린다. 마치 어린 시절 힌들리에 학대 당해 무지해지고 망가져버린 자신처럼 말이다. 그 증거로 헤어턴은 작품 내내 사투리만을 구사하고 글은 전혀 읽을 줄도 모르는 상태로 나온다. 이는 히스클리프의 보살핌 아래 헤어턴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또한, 히스클리프는 에드거 린턴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그의 여동생 이저벨라에게 접근해 결혼식을 올리는데, 이로 인해 이저벨라의 삶은 아주 제대로 망가지게 된다. 이뿐인가.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던 캐서린의 딸 캐서린을 자신의 아들 린턴과 강제로 결혼하게 만들어 린턴 가의 재산을 아주 탈탈탈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복수'만이 그의 유일한 삶의 목표였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린턴가가 진심 제일 안타깝다. 에드거는 괜히 캐서린 한명 좋아했다가 도대체 얼마나 인생이 망한 거야. 물론 비이성적인 캐서린의 모습을 보고도 그녀를 사랑한 에드거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 역시도 사랑하며 동시에 증오했다. 그녀를 사랑한만큼 자신을 저버린 그녀가 용서되지 않았다고. 역시 그냥 사랑보다도 '애증'이 무서운 법이다.
캐서린에 대한 그의 사랑은 요즘 말로 '집착광공'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캐서린을 보기 위해 캐서린의 무덤을 삽으로 퍼내려는 장면에서 레알로 기겁했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그는 종국엔 평생을 염원하던 자신의 복수를 이루지만, 모든 것을 끝낸 후 캐서린을 닮은 헤어턴과 캐서린(캐서린의 딸)이 함께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말을 흘린다.
"형편없는 결말이야, 안 그래?
지독히도 애를 썼거만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끝나버리고 말다니?
..
그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지?"
-p.544. 결국 결말을 선포하는 히스클리프의 대사.
소설을 읽는 내내 깊이 혐오했던 히스클리프이지만, 이 대목에서만큼은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그는 캐서린을 닮은, 자신의 복수 대상이었던 이들의 2세들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마무리짓는다.
이미 복수가 끝나기도 하였고, 결국 캐서린을 닮은 그들을 복수하는 것은 캐서린을 복수하는 것과 다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복수만을 위한 삶을 살아간 인물들 중에 그 끝이 좋았던 인물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는 과연 그 성대한 복수극을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지나친 복수는 그들을 짓누르는 데에 대한 기쁨보다도 좌절과 절망이 더 클 뿐, 점점 자신을 망쳐버리고야 만다. 부정적인 감정은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깊게 자신을 좀먹고 갉아먹기에.
이 작품 속에서 히스클리프는 누가 뭐래도 악역이 맞다.
복수해야 하는 대상뿐만이 아닌 엄한 사람들까지도 끌어들여 모두의 인생을 망쳐놓았으므로.
그러니 나는 그를 동정하고픈 마음은 없다.
"격자창 옆의 전나무를 흔들던 그 바람 소리를 듣고 싶어.
그 바람을 느끼게 해줘.
황야에서 곧장 불어오는 그 바람을.
그 바람을 한 번만 들이마시게 해줘!"
-p.214. 히스클리프, 린턴과 한바탕 한 후 정신이 미쳐가던 캐서린의 한 마디
또한 히스클리프의 영혼의 동반자나 다름 없었던 캐서린은 마지막까지 자유를 갈망하며 서서히 미쳐간다.
자신으로 인해 시작된 히스클리프의 복수로 모든 것이 망가져버린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거겠지.
이러한 상황속에서, 그녀는 그렇게 그저 아무것도 몰랐던 순수했던 어린시절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캐서린이란 캐릭터가 재밌었던 점은, 그저 얌전하고 여린 여자주인공이 아닌 히스클리프에 맞먹는 성깔을 가진 터프함의 소유자였다는 점.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곧이곧대로 다 말하는 말괄량이 같은 캐릭터였다는 점에서 매우 참신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느낀 가장 큰 고통은 히스클리프가 느낀 고통이었고...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건 바로 히스클리프야.
...린턴을 향한 나의 사랑은 숲속의 나뭇잎과도 같아. 겨울이 오면 나무가 변하듯 시간이 지나면 변할 거라는 걸 나도 잘 알아.
하지만 히스클리프에 대한 나의 사랑은 땅 아래 있는 영원한 바위와도 같아.
눈에 보이는 기쁨의 근원은 아니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거야.
넬리, 내가 곧 히스클리프야."
-p.143.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
이렇게 성격까지 똑 닮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복잡미묘한 사랑의 감정은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이다.
특히나 히스클리프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 고백하는 캐서린의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그가 착해서, 매력적이여서, 나를 사랑해주어서라는 이제껏 들어온 흔해 빠진 사랑의 이유가 아니었기 때문.
그녀가 히스클리프를 사랑한 이유는 그저 '그가 곧 나'였기 때문에.
그가 내게 기쁨만을 가져다주는 존재여서가 아니라, 그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고, 그의 고통마저 곧 나의 고통이었기 때문에.
히스클리프와 자신의 영혼을 동일시하는 캐시의 모습에서 이제껏 내가 생각해온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단번에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곧 나처럼 느껴지는 사람. 그런 사람을 단 한번뿐인 짧은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극히 어려우면서도 축복과도 같은 일이 아닐까. 그렇기에 히스클리프에 대한 캐서린의 사랑이 더욱더 위대하게만 느껴졌다.
캐시는 린턴에 대한 자신의 사랑은 '숲 속의 나뭇잎'과도 같고, 히스클리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은 '땅 아래 있는 영원한 바위'와도 같다고 하였다. 나뭇잎은 지상 위에 있는 존재로서 눈에는 보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색이 바래져 변해버리고 마는, 즉 린턴에 대한 자신의 사랑은 끝이 유예된 사랑이지만, 히스클리프에 대한 사랑은 땅 아래 있어 눈에 보이는 기쁨의 근원은 아니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무기한의 사랑이라고. 히스클리프 대신 린턴을 택해야만 하는 그녀의 사랑을 이렇게 비유하다니. 사랑에 대해 이러한 비유를 사용함으로써 그 의미를 풀어나간 에밀리 브론테의 필력에 매우 감탄한 대목이었다.
"마음이 착하면 얼굴도 예뻐지는 거란다, 얘야.
마음이 나쁘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얼굴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추하게 변하는 법이지."
-p.100. 딘의 말.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정말이지 모두가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감정에 휩쓸리고, 하나같이 폭풍과도 같은 거센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이성적이고 따뜻한 면모를 보이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소설의 화자인 '엘렌 딘.'
모두를 증오했던 히스클리프도 딘에게만큼은 나름 정중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캐서린과 이저벨라 역시 어떻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공감능력을 잃지 않은 채 늘 한결같이 따뜻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느냐고 딘에게 묻는다.
딘은 이 모든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제3자이며, 진심으로 이 복수극에 휘말린 모든 이들을 불쌍히 여겼다. 그가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에게 해주는 말들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정곡을 찌르는 말들뿐이며 그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중재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또한 보이고, 주변 사람들을 알뜰살뜰하게 챙긴다. 게다가 그녀의 유쾌함, 그리고 그녀와 조지프의 케미는 이 소설에서 감초 역할을 아주 제대로 수행해낸다. 딘마저 없었더라면 이 소설은 정말 황폐함과 우울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보는 내내 딘이란 인물에 굉장히 큰 감명을 받아 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딘이야말로 귀인이 아닐까 싶다.
<마무리>
그렇게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로 시작해 그들이 남긴 2세들의 이야기로 끝이 난다. 마지막 부분에서, 그 많은 일을 겪고 드디어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 히스클리프에 의해 침몰당한 린턴가문과 언쇼가문의 캐서린과 헤어턴을 보며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결국 그들의 부모들은 히스클리프로 인하여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였지만, 그들의 자식들은 그럼에도 히스클리프에 굴복하지 않고 저들이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나갔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폭풍의 언덕>은 뛰어난 흡입력으로 이야기 구성이 마치 막장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이 흥미진진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읽어내려나간 소설이다. 사실 아직도 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감정선이 그렇게 막 잘 이해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그들의 사랑에 어이없게 말려들어 인생을 망친 다른 등장인물들이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어찌되었든 작가의 필력이 그 모든 것을 정당화시켜줄만큼 너무나도 좋았다. 내가 마치 워더링 하이츠에 와 있는 것만 같이 그 모든 사건들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폭풍같이 휘몰아치는 사건들의 연속,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끝나 드디어 폭풍이 걷힌 워더링 하이츠. 이번 겨울을 폭풍이라는 이름에 가장 걸맞는 이 소설과 함께 시작하게 되어 영광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