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붓꽃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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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이맘때쯤, 2000년대 여성 시인으로서는 최초로 '루이즈 글릭'이라는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거머쥐었다는 소식에 그녀의 시를 찾아 읽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 정식 발매된 루이즈 글릭의 시집이 하나도 없었던 터라 류시화 시인이 번역했다고 들은 '눈풀꽃'만을 하나 읽었었는데, 시의 내용이 인상적이고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해 가끔 생각날 때면 다시 찾아 읽곤 했다.


이 시가 너무 마음에 남아 언젠간 그녀의 시집이 국내에 발매된다면 꼭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는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시공사에서 마치 선물처럼 루이즈 글릭의 정식 시집을 무려 3가지나 출간해주었다. 이름은 「야생 붓꽃」, 「아베르노」, 「신실하고 고결한 밤」.


그중 '야생 붓꽃'은 내가 읽었던 시 '눈풀꽃'이 수록된 시집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받은 그녀의 대표작이다. 야생 붓꽃이란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시집은 자연, 즉 '가드닝(정원 가꾸기)'을 소재로 한 시들의 모음집이다. 시집에는 시적화자가 총 3명이 등장하는데, 바로 '신, 식물, 인간'이다. 그래서 특이하게도 전반적으로 식물은 인간에게, 인간은 신에게, 신은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흥미로운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야생 붓꽃에 수록된 시들을 모두 유기성 있게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그냥 읽으면 처음엔 약간 이해가 안 되는 불분명한 부분들이 있을 수 있는데, 시집과 함께 딸려오는 해설집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시집에 대한 큰 틀을 말해주는 것은 물론, 처음 시를 읽을 땐 내가 감상하고 느낀 대로 시를 해석해본 후 그 다음에 해설집을 읽으니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동시에 아,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야생 붓꽃에서 '식물'들은 인간을 때로 힐난하기도 하며 깨달음을 건네준다. 눈 앞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괜히 다른 대상에게 화풀이하는 인간의 못난 모습, 생각하지 말고 한번 활짝 열고 느껴보라는 꽃양귀비의 말,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않고 가난한 생각에 갇혀있는 모습을 지적하고, 솔직한 마음을 얘기해보라는 식물들의 말. 식물의 관점에서 관찰한 '인간'이란 존재를 읽으며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 깨달았고,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그들의 진심 어린 충고들을 읽으며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져만 갔다.


그와 동시에 화자가 '인간'인 여러 '기도' 시들을 통해선 인간의 우울증에 관해 언급하는데, 우울했을 때의 내 감정을 대변해주는 듯한 말들에 많은 공감이 되었고 또 용기도 얻을 수 있었다. '신'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의 모습 역시 흥미로웠다. 너희에게 대지란 침대와 대기의 담요, 모든 걸 다 주었지만, 엄청난 존재가 되지 못한 채 그저 조잘대는 작은 모습에 멈춘 너희 인간들이 가엽다는 신의 말은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야생 붓꽃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시집이었다. 단순히 인간인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 존재에 대해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사실을, 식물이 생각하는 인간, 인간이 생각하는 인간, 신이 생각하는 인간 총 3가지의 시점을 읽어보며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지 그에 대해 보다 입체적으로 생각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들의 말에서 때론 팩트 폭력에 반성을 하기도 하고, 때론 다정한 말에 위로를 얻고, 공감도 하며 루이즈 글릭이란 시인이 인간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시들이었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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