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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평점 :
하늘에 계신 우리 작가님께.
어떻게 리뷰를 쓸까 생각하다 작가님에 대한 사랑이 커져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살아 계시기 전에 선생님을 보지 못한 건 제 잘못입니다. 이렇게 멋진 작가와 같이 살았는데 저는 그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알지 못하면서 모든 걸 알고 있는 듯 허세를 떨던 저를 나무라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창피하게도 한국 문학은 그다지 많이 읽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읽었다는 한국 문학은 책에 관심 없는 사람도 한 번 쯤 들어봄직한 책이었습니다. 나름 ‘책 읽는 사람’, ‘책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 정도는 읽어야겠다는 것만.
처음 이 책을 폈을 때, 불손한 마음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부군께서 이 원고를 사무실에서 발견하셨다고 해요. 과연 작가님 작품이 맞을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쓰고 있는 내용도 출판사와 얘기도 되지 않았던 작품이 과연 작가님 작품이 맞을까? 제 호기심은 정말 좋지 않았습니다.
책을 펼치자 제 그런 알량한 의심은 어디가고 없어졌습니다. 글씨가 바다가 되고 모래가 되고 짠 공기가 되었습니다. 문장을 타고 단어를 넘어 글자 사이사이 작가님이 사랑하는 그 섬이 그려집니다. 쓸데없는 오해는 저를 다른 세계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누가 그랬던가요? 일본에는 서정적이고 고요한 그런 소설도 있고 영화도 있는 데 우리 나라에는 그런 작품이 없다고. 그 분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고요함과 서정성이 여기 담겨 있다고.
작가님은 참 조용히 강한 분이십니다. 이 책 등장인물들 속을 보면 참으로 기구한 사람들입니다. 섬과 한 몸처럼 그곳을 지키는 이삐 할미, 서커스에 전전하다 입을 닫은 채 살고 있는 판도, 예술가 엄마 현수와 갈등 그리고 죽은 태이 아이를 임신한 이우, 고향에 돌아와 도서관을 지으려는 정모, 섬 유지인 아버지를 둔 태원. 이들은 모두 살아 움직입니다. 신기하게도 이들은 섬과 오묘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어느 한 명 튀지도 않고 얼굴을 찌뿌리게 하지도 않습니다. 이들은 섬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꽃이 되어 줍니다. 아마도 작가님이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암이라는 커다란 질병 앞에서도 인생 중 하나라며 분노도 조용히, 그저 조용히 섬 안에 들어가듯 품고 있을 듯 합니다.
왜 이 소설을 그저 사무실 구석 어딘가에서 끝나게 만들었을까요? 부군 말씀처럼 이 소설이 정말 작가님 마음을 태웠을까요? 조심스럽게 저는 태원의 아버지 이야기를 봅니다. 태원 아버지는 배를 사서 큰 부를 이루었죠. 그리고 배가 차라리 침몰해 보험금을 받길 원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이 글을 쓸 시기에 혹여나 세월호 사건이 터진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분명 아마도 이 글은 그 전에 쓰여 졌을 겁니다. 글을 쓰며 생각했던 그 마음이 그대로 현실이 됐을 때 차라리 이 글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면. 이렇게 생각하신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대답을 해 줄 분은 이 세상에 있지 않으니 저는 이렇게 편지로 물어볼 수밖에요.
책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모가 생각한 대로 도서관이 만들어졌을 뿐, 이우 아이는 어떻게 될지 판도는 말을 제대로 할지, 이삐 할머니는 어떤 일로 이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작가님이 만든 세상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이삐 할머니 말씀대로 아이만 놓고 껍데기인 부모는 어디론가 가 버렸네요. 그 빈 자리는 저 같은 사람이 채우겠습니다. 다른 사람과 이 책을 얘기하면서 섬에 대해 얘기하면서 다시금 작가님을 생각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보다 듣다 답답한 마음에 우리에게 잠시 들려 알려주시지 않을까요?
당신이 해 왔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작가님이 놓고 가진 작품을 읽고 작가님을 더 알아보고 싶습니다. 뒤늦게 알아 죄송합니다. 사인을 받을 수가 없겠네요. 그 곳은 너무 멀어서요.
“할미, 나 돌아가면 보고 싶을 거 같아?”
“말이라고. 들어온 자리는 없어도 나간 자리는 있는 겨.”
“겨우?”
“남의 마음에 자리 하나 만드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냐.”(193-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