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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미스 함무라비˝의 판사 성격을 떠오르며..
왜 하필 스탠딩 코미디언이 판사인 소년시절 친구를 초대했는지 생각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내 말은, 너는 한 문장으로도 사람을 짓밟을 수 있는 능력이....(103)
판사는 말 한 마디로 사람 운명을 가르는 능력이 있지요.
개성의 광채, 나는 생각했다.
내적인 빛. 아니면 내적인 어둠. 비밀, 진동처럼 전해지는 고유성. 어떤 사람을 묘사하는 말 너머, 그 사람에게 일어난 일과 그 사람에게서 잘못되고 뒤틀린 것들 너머에 높인 모든 것. 오래전, 내가 판사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순진하게도 피고인이건 증인이건 내 앞에 선 모든 사람에게서 찾겠다고 맹세했던 것. 절대 무관심하지 않겠다고, 나의 판결의 출발점이 될 거라고 맹세했던 것.(105)
말 한마디에 사람 인생을 좌지우지 하는 사람. 판사.
그 사람을 앞에 두고 말하는 코미디언..
그만큼 그가 하는 이야기는 절박하고 절실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나는 설명을 시작했고, 나 자신도 놀랐다.
˝내 판결이 이 시스템이 감당하기에는 조금 지나치게 신랄했어.˝(106)
나는 또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증인 몇 사람에게, 피해자에게 끔찍하고 야비한 짓을 한 피고인들에게, 반대심문으로 피해자를 계속 괴롭히는 그들의 변호사들에게 몇 번 분통을 터뜨렸다는 이야기도 했다.(106)
나는 그것이 내가 법정에서 보여줄 필요가 있는 그런 얼굴이라고 설명했다. 속으로는 폭발하고 있어도 내 감정에 대한 암시를 주는 일은 할 수가 없다. 아직 내 마음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 여자애한테 보여주었던 바로 그 돌 같은 얼굴을 나중에 아이 아버지가 자기 쪽 이야기를 할 때도 똑같이 보여주었다고 설명했다.(198)
자신의 감정을 보여주면 안 되는 역할이 필요한 사람. 판사.
그렇기에 코미디언은 그 돌같은 표정을 움직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해야 합니다.
˝가족이란 게 그런 거잖아. 조금 전까지 안아주다가, 다음 순간에는 허리띠로 똥을 싸도록 두들겨 패는 거. 그게 다 사랑에서 나오는 거야. 매를 아끼면 애를 망친다. ‘정말이야. 도브후, 가끔은 따귀 한 대가 말 천 마디 가치가 있단다.‘ 우리 아빠의 개그를 모두 요약하면 바로 그 말이야.˝(238)
운전병은 죽은 형 이야기를 하자마자 진짜로 울기 시작했어. 눈물이 그의 얼굴을 따라 직선으로 흘러내렸지. ‘너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운전병이 말했는데, 사실 말 제대로 잇지도 못하고 애처럼 흐느끼고 있었어. 나는 그의 눈물 뺨을 적시고 군복 셔츠로 흘러내렸어. 그래도 닦지 않았어, 손으로도 다른 무엇으로도. 눈물은 그냥 아무런 억제 없이 흘러내렸어, 그 사람이 원하는 만큼. 하지만 나는 아니었어. 뇌 안의 뭔가가 막힌 것 같았어, 정지해버린 것 같았다고. 뇌에 고장이 난 것 같았지. 그런데 그러는 내내, 잊지 마, 나는 계속 어쩌면 운전병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운전병이 지휘관 막사에 있을 때 뭔가 주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왜 나한테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걸까, 왜 나는 그에게 그냥 물어보고 끝장을 보지 못하는 걸까, 그냥 두 마디면 되는데, 참나, 왜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질문을 던지지 않는 걸까, 결과가 무엇이든?(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