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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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난 일본 소설과 맞지 않다.
소설을 읽고 있으면 얼큰한 된장찌개 한 숟갈만 떠먹고 싶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라는 무라카미 하루키.
심지어 SDA 어학원 일대일 대화에서 선생님은 ˝색채 없는 4가지 색..˝(이었나? 비슷한..)이 책의 영어 번역판을 들고
정말 재밌는 책이라며 줄거리를 얘기해주셨다.-물론 영어로 들었다.-
그래도 그다지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언젠가 그래도 꼭 읽어야겠단 생각은 한다.

난 사람과 사람 사이 살결을 맞대고 비비대는 느낌이 한국 소설의 느낌이라면
이상하게도 일본 소설은 두꺼운 코트를 입고 악수를 하는 것 같다.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참 답답하다는 느낌.
뭔가 충격적이라는 데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이 소설 또한 그렇다.
츠구미라는 예쁘고 앙증맞고 연약하지만 버릇이 없는 여자애.
화자인 마리아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츠구미는 정말이지, 밉살스러운 여자 애였다.`
그렇지만 나는 과연 츠구미라는 애가 마리아가 표현할 정도로 밉살스러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히려 밉살스러운 것은 마리아와 그 엄마.
엄마는 도쿄에 사는 남자와 불륜 관계를 맺고 낳은 마리아를 키우면서 20여 년을 이모 여관에서 일을 해주며 견뎌낸다.
결국 마리아 아빠는 본처와 결혼을 끝내고 세 식구는 도쿄에서 새 가정을 차린다.
분명히 옳지 않은 형태임에도 이 소설은 너무나 예쁘게 묘사하고 있다.

엄마는 정말 오랫동안, 야마모토야 여관에서 즐겁게 일하면서 기대렸다. 별로 괴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실은, 그렇게 처신했기에 괴로움이 최소한에 긜 수 있었고, 엄마가 의연하고 밝았기에 아버지도 부지런히 오갔고, 결국 엄마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절대 강한 사람이 아닌데, 무의식적이지만 강해지려고 애쓰는 구석이 있었다. 때로 엄마가 마사코 이모에게 푸념하는 소리를 듣곤 했는데, 하도 생글거리면서 얘기하니까 늘 내용에 비해 푸념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마사코 이모도 웃으며 고개는 그덕이지만, 뭐라 대꾸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주위 사람들이 잘 대해 주어도, 앞날을 알 수 없는 더부살이 첩이란 신세는 변하지 않는다. 속내는 울고 싶을 정도로 지치고 불안한 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 엄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결국 반항기도 거치지 않고 어른이 되고 말았다.(25)

˝끝이 보였으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솔직한 아버지는 말했다. 철부지 소녀가 아니라, 운명의 여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랑이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빠져 있는 거야. 나이가 몇이든. 그러나 끝이 보이는 사랑하고 끝이 안 보이는 사랑은 전혀 다르지, 그건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 수 있어.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즉 더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야. 지금 우리 마누라를 처음 알았을 때, 갑자기 내 미래가 무한해지는 듯한 느낌이었어. 그러니까, 꼭 합치지 않아도 상관없었을지도 모르지.˝(121-122)

츠구미는 외부에서는 누구보다 예쁘고 당차면서도 가녀린 청순한 소녀다.
그래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츠구미의 실체를 잘 알고 있는 마리아만이 츠구미를 진심으로 싫어한다.
다른 가족들과 츠구미의 친언니 요코는 언제라도 열이 올라 정신을 잃으면 죽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츠구미를 항상 애틋하게 대한다.
어쩌면 츠구미를 진정한 19살 철부지 평범한 소녀로 인정한 사람은 화자인 마리아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츠구미는 가끔 엽기적인 일들을 벌인다.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쿄이치의 개를 어떤 짓궂은 아이들이 죽여버리자 그들에게 잔인한 복수를 한다.
깊게 굴을 파고 함정을 만들어 빠뜨리게 하고 묻어 버린다.
이를 알게 된 요코 언니가 겨우 그 아이들을 구해내고 츠구미를 혼낸다.
결국 이 어마어마한 일을 계획한 츠구미는 몸살이 나 고열로 생사를 오간다.
그 사이 마리아에게 유언과 같은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다행히 건강을 회복하게 된다.

발제자 분은 이 소설이 황순원의 소나기와 많이 비슷하다고 얘기했다.
소나기의 아이들은 이 아이들보다 5살은 어리다.
같은 또래 이야기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라는 소설이 있다.
또 이 소설은 이 소설과 비교하기에 너무나도 무겁고 심오하다.

이 소설의 내용은 완벽히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작가의 필력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짧은 문장으로, 그리고 객관적인 묘사만으로
각 인물의 심리와 느낌이 어떨지가 정확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옛날 친구를 몇 명이나 만났다.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 모두들 어른스러워져서, 얼굴을 마주해도 뒤죽박죽된 기억의 틈새로 언뜻언뜻 보이는 꿈속의 사람 같았다. 웃으며 손을 흔들고, 짧은 대화를 나누고 스켜 지나간다. 피리 소리와 부채와 바다의 풍경이 천천히 밤에 투영되어, 마치 초롱불처럼 흘러간다.(132)

작가는 츠구미가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소설을 지었다고 한다.
겉에서는 한없이 약하고 연약하고 순수하게 보아준다.
하지만 그 내면은 한없이 악독하고 표독스럽고 마리아의 말마따나 밉살스럽다.
아마도 마리아가 아니라면 자신을 제대로 보아줄 이가 없음에 답답해한다.
어쩌면 츠구미는 감정에 대해 타인을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가 마리아가 있는 곳에서 폭발한 게 아닐까 한다.
사람이라는 매개체는 항상 예쁠 수는 없다.
밖의 사람들에게 그저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는 츠구미에서 나의 우울한 면까지 포용하고 얘기하려고 한다.
바로 자신의 죽음 앞에서 마리아에게 보내는 편지 안에 그 의지가 녹아져 있다.
어쩌면 착하기만 한 중2병 패쓰자들이 뒤늦게 열병을 앓은 대학교 신입생들의 아픈 이야기가 이 소설의 큰 의미가 아닐까 한다.

혼자 읽었으면 그냥 던져 놓았을 이 소설이..
문학당에 와서 내게 큰 의미가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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