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뒤에 오는 것들』이란 신간 책의 제목을 보고 호기심이 일었다. 하지만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았기에 나중에 보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출판사서평을 보니 '며느리 사표'를 쓴 저자의 신작이였다. 사실 그 책도 관심은 있었지만 보진 못했다.
왠지 이 책도 미루다가 읽고 싶어도 아쉽게 못 읽게 될까봐 얼른 서평단 신청을 해서 받아보았다.
저자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면, 「남편의 부재와 무관심 속에서 그저 두 아이의 엄마로 사는 것이 전부인 줄만 알던 삶을 살던 결혼 23년 차, 명절을 이틀 앞둔 어느 날 시부모님께 "며느리를 그만두겠습니다" 말하고 '며느리 사표'라고 쓴 봉투를 내밀었다. 개인에게 일어난 '작은 혁명'이었다. 이 과정을 책으로 썼더니, 이후 각종 신문사의 인터뷰 면을 장식하고, 예능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여하며, 독자들이 그를 따라 줄지어 며느리 사표를 내는 등의 '큰 혁명'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결혼 뒤에 오는 것들』 을 통해 이 땅의 여성들이 슬픈 결혼을 대물림하지 않기를, 혼자여도 행복하고 함께여도 불행하지 않은 결혼을 이어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고 말한다. 현재는 '가족꿈심리작업소'를 운영하며 꿈 작업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중이다」라고 소개 한다.
전작을 읽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이번 책만 읽어도 저자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그녀의 삶, 우리의 삶에 대한 간절한 응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몇 일 전 남편과 시댁에 가는 일정 관련해서 대화하다가 목소리를 키운 적이 있다. 시어머니 생신으로 시댁에 가려 하는데 나는 회사에 휴가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 남편이 두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가고 나는 주말에 따로 가기로 했다. "너 몇 시 기차 타고 올래?"라는 남편의 물음에 "점심 때쯤? 내가 일찍 가서 뭐해. (반기지도 않을텐데)"라고 대답했고 "어머니 생신인데 며느리가 미역국 끓여야지."라고 말하는데 속에서 울컥하고 뭔가가 올라왔다. "내 살림도 아닌데 거기 가서 어떻게 미역국을 끓여."라고 대꾸하는 내게 남편은 "칠순인데 며느리가 그것도 안하냐?"라고 대답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말해버렸다. "뭐 칠순이 대순가. 백세시대에." 정말 작게 중얼거렸을 뿐인데 남편의 얼굴이 욹으락 붉으락 해지며 정말 유치한 말들을 내뱉었다. 아이들을 재우면서 왜 내가 화가 났을까 생각해보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남편의 말이 가부장적인 발언이라고 생각되어 화가난 것이다. 왜 굳이 먼저 어머니가 칠순이시니까 뭔가 우리가 신경써서 챙겨드려야하지 않냐고 언급했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얘기했어도 내가 어머니 생신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그렇게 남편의 심기를 건드렸을까.....
나는 아직 결혼 8년차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 뒤에 오는 것들』의 결혼 23년차의 결혼 선배의 이야기들이 엄청 공감이 되고 내가 결혼생활에서 불편했던 것들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책을 펴든 순간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금방 빠져들었고 단숨에 끝까지 다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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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가정은 지금 건강한가?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정신 바짝 차리는 여성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자신을 잃어버리고 인습에 순응하는 여성은 당연하게 보는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에게 일어나는 불합리하고 부당한 문제들을 살피고, 좋은 며느리이기보다는 자신에게 먼저 최선을 다하려는 여성인 우리는 이상하지 않다. 이상한 가부장 월드에 갇혀 며느리로 살아올 수밖에 없었을 뿐이었다. 이제 더는 이토록 이상한 세상에서 살지 않겠다는 여성들이 가부장 월드라는 사회적 세뇌에서 스스로 빠져나오고 있다.
나는 시댁과 물리적으로도 거리가 있고 어머니도 내 삶에 크게 관여를 하지 않는 분이라 일정거리를 늘 유지하며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따금 드리는 안부 전화를 할 때 이야기가 길어지다보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다가도 "얘야, 나 땐 더 심했다아~ "이러시면서 본인의 힘들었던 시절을 이야기하시며 내가 남편의 부재로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니라고 하셨다. 자꾸 그러다보니 별로 전화를 하고 싶지도 않고 용건이 있어서 전화를 드려도 아이를 씻겨야 하거나 재워야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서둘러 끊었다. 우리 친정 엄마도 고생이라면 어디서 명함을 내밀 수 있을 정도로 온갖 고생을 하며 사셨지만 나에게 자신의 힘듦을 토로하진 않으셨었는데 무슨 이야기든 당신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결론을 맺는 어머니를 보면서 왠지 편하고 친한(?) 관계를 맺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시부모님과 여러 모로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지내지만 가부장적 사고를 몸에 휘감고 있는 남편과 지내면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남편들의 어이없는 발언들을 마주 할 때 내가 그런 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있게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 안에 단단한 말들을 쌓는 연습을 해야겠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