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머리 앤 그래픽노블
머라이어 마스든 지음, 브레나 섬러 그림, 황세림 옮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원작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빨강 머리 앤」은 어렸을 적 인상깊게 봤던 만화다. '빨강 머리'가 자신의 콤플렉스라고 여겼던 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코델리아'로 불러달라는 당찬 아이. 꼭 앤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Anne'이라고 끝에 'e'를 붙여달라는 유쾌한 아이, 앤.

발랄, 유쾌한 그녀를 보고 있자면 늘 주눅 들어있던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 만의 긍정바이러스가 나의 어두운 내면을 밝게 물들여 줬던 기억이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다.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여성이라면 아마도 앤 셜리에 대한 동경을 마음 속에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몇 해 전에 백영옥 소설가가 펴낸 <<빨강 머리 앤이 하는 말>>도 그런 이유에서 사람들이 좋아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도 여러 상황들에 치여 지칠 때 '앤'의 신선하고 독특하며 때론 깊이 있는 말들을 듣고 싶다.

이번에 이 빨강 머리 앤이 '그래픽노블'로 나왔다고 할 때 무척 반가웠다.

 

<부록으로 들어있는 엽서도 참 예쁘다! 이따금 보려고 화장대 거울에 붙여놨다.>

 

 

초록 들판과 하늘, 그리고 양팔을 자유로이 펼치고 있는 양갈래로 머리를 딴 앤의 뒷모습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런데, 책 표지의 '예쁨'과 달리 책 속의 앤은 사실 좀 못생겨서 좀 실망스러웠다. 나도 외모지상주의자였나......

힘든 일상을 뒤로하고 조용하게 어둠이 깔린 밤, 거실에 놓아 둔 '해먹'에 편안히 누워 책을 펼쳤다.

책을 펼치자 마자 금방 빠져들었다.

책 내용은 이미 알기 때문에 내용보다는 이야기의 분위기, 앤의 톡톡튀는 말솜씨,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집중하며 보았다.

책 속의 장면 장면 마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그 중에서 좋았던 장면 열 두가지만 골라봤다.

 

 

 

 

하나,

 

「빨강 머리 앤_그래픽노블」 P6-7

 

 

재주 좋은 몇몇은 묘기를 부리듯 자기 일뿐 아니라

이웃 사정을 꼬치꼬치 캐묻는 일까지 거뜬히 해낸다.

레이철 린드도 이 방면으로는 재주가 좋아서

늘 한 눈으로 이웃을 주의 깊게 살폈다.

바로 마릴라 커스버트와 매수 커스버트 남매를,

이들은 길 건너 '초록 지붕 집'에 살았다.

 

 

둘,

 

 

「빨강 머리 앤_그래픽노블」 P10-11

남일에 관심이 많은 레이첼 린드가

마릴라와 매슈의 일에 관심을 갖고

서둘러 그들이 사는 '초록지붕집'으로 가고 있는 모습에서

다급함이 느껴진다.

 

셋,

 

「빨강 머리 앤_그래픽노블」 P16-17

"다리를 건널 때 눈을 꼭 감아야겠어요.

안 그러면 온 세상이 그대로 강에

풍덩 빠질 것만 같거든요."

"주근깨도, 깡마른 몸도,

흐리멍덩한 초록 눈도,

심지어 시시하고 촌스러운 '앤'이라는 이름도

상상으로 지울 수 있는데, 빨강 머리는 안 돼요.

평생 한이죠."

앤이 자신의 컴플렉스를 처음 만난 매슈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주변 풍경을 보며 쉼없이 조잘거리다가 자신의 단점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는

앤을 보며 매슈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집으로 가는 길이 지루하진 않았을 것이다.

 

 

넷, 다섯

 

「빨강 머리 앤_그래픽노블」 P19-20
 

 

"기쁨이 만발한 하얀 길

물결이 반짝이는 호수"

앞서 있는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길을 보고 위와 같이 표현하는 앤이 표현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여섯,

 

「빨강 머리 앤_그래픽노블」 P28

 

 

농장일을 거들 남자 아이가 필요했던 매슈와 마릴라.

인연이 되려했던지

남자 아이 대신 여자 아이인 '앤'을 소개 받고,

앤을 데리고 있을지 말지 고민하는 가운데

창 밖의 꽃을 보고

"네가 그리울 거야,

사랑스런 '눈의 여왕님'이라고 표현 하는 앤.

 

일곱,

 

「빨강 머리 앤_그래픽노블」 P46-47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장소를 사랑한다는 게

이상하지만, 전 그래요!

초록 지붕은 제 집이예요."

초록 지붕집에 대한 애정을 가득 갖고 있는 앤.

 

여덟,

「빨강 머리 앤_그래픽노블」 P158-159

 

마릴라는 앤의 극단적인 기질을 뜻대로 다잡지 못했다.

기쁨의 절정에서 "고통의 심연"까지, 아이의 기분은

애번리의 정겨운 바람에 나풀대는 연처럼 쉽사리 치솟고 흔들렸다.

마릴라는 이 오갈 데 없는 아이를

단정하고 얌전한 어린 숙녀로

바꿔 놓겠다는 생각을 슬슬 포기했다.

물론, 본인은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실은 영혼과 불꽃과 이슬로 빚어진

앤의 천성을 좋아하게 됐다.

 

 

아홉,

 

「빨강 머리 앤_그래픽노블」 P175

 

앤에게 오래전부터 관심을 보였던 길버트.

앤의 졸업식 꽃다발에서 떨어진 장미 하나를 들고 있는

모습의 섬세한 묘사가 눈에 들어왔다.

 

열,

 

「빨강 머리 앤_그래픽노블」 P200-201

 

"네가 처음 온 날

입었던 볼품없는

누런 면 혼방 원피스가

생각나는구나."

"조금만 더 애번리의 철없는 꼬마로

머물러 주면

좋을 텐데."

"지금도 그대로예요.

제멋대로 뻗은 가지를 조금 쳐내고

새싹이 돋으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지만

뿌리는 언제고 언제고

초록 지붕 아래 깊이 묻어 둘 거예요."

사범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마릴라와 매슈와 이별하는 앤.

매슈와 마릴라의 슬픔이 잘 묻어나는

대목이다.

 

열 하나,

 

「빨강 머리 앤_그래픽노블」 P214

 

"내가 좀 엄하고 무뚝뚝하고

깐깐하긴 해도

널 사랑하는 마음이 매슈만 못하다고는

생각지 마라.

매슈도 나도...

말도 못 하게

널 사랑했고,

덕분에 서로 더 사랑하며

살았단다.

좀 더 곁에 있어 주렴.

이 슬픔은 너와 나,

우리 몫이니까.

 

열 둘,

 

「빨강 머리 앤_그래픽노블」 P215

 

"매슈는 네 웃음소리를 참 좋아했단다.

멀리 떠난 지금도,

네가 웃는 걸 알면 좋아할 거야.

슬픔에 얽매이지 마라."

열 번째 부터 열 두번째 장면은 마릴라와 매슈의 앤을 향한

극진한 사랑이 느껴진다.

앤은 초록 지붕 아래 창 너머로

인생을 바라보았다.

보람된 직장과 진실한 우정,

미지의 모험으로 가득한 세계를...

그리고 자신의 세계가

지금껏 상상했던 것보다 크다는 걸 깨달았다.

「빨강 머리 앤_그래픽노블」 P229 마지막페이지 중에서

 

서평을 쓰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잠시 머무르며...

가끔 일상에서 쉼과 여유가 필요할 때

꺼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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