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뒤에 오는 것들 - 행복한 결혼을 위한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들
영주 지음 / 푸른숲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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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혼 뒤에 오는 것들』이란 신간 책의 제목을 보고 호기심이 일었다. 하지만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았기에 나중에 보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출판사서평을 보니 '며느리 사표'를 쓴 저자의 신작이였다. 사실 그 책도 관심은 있었지만 보진 못했다.

왠지 이 책도 미루다가 읽고 싶어도 아쉽게 못 읽게 될까봐 얼른 서평단 신청을 해서 받아보았다.

 

 

저자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면, 「남편의 부재와 무관심 속에서 그저 두 아이의 엄마로 사는 것이 전부인 줄만 알던 삶을 살던 결혼 23년 차, 명절을 이틀 앞둔 어느 날 시부모님께 "며느리를 그만두겠습니다" 말하고 '며느리 사표'라고 쓴 봉투를 내밀었다. 개인에게 일어난 '작은 혁명'이었다. 이 과정을 책으로 썼더니, 이후 각종 신문사의 인터뷰 면을 장식하고, 예능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여하며, 독자들이 그를 따라 줄지어 며느리 사표를 내는 등의 '큰 혁명'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결혼 뒤에 오는 것들』 을 통해 이 땅의 여성들이 슬픈 결혼을 대물림하지 않기를, 혼자여도 행복하고 함께여도 불행하지 않은 결혼을 이어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고 말한다. 현재는 '가족꿈심리작업소'를 운영하며 꿈 작업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중이다」라고 소개 한다.

 

전작을 읽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이번 책만 읽어도 저자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그녀의 삶, 우리의 삶에 대한 간절한 응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몇 일 전 남편과 시댁에 가는 일정 관련해서 대화하다가 목소리를 키운 적이 있다. 시어머니 생신으로 시댁에 가려 하는데 나는 회사에 휴가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 남편이 두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가고 나는 주말에 따로 가기로 했다. "너 몇 시 기차 타고 올래?"라는 남편의 물음에 "점심 때쯤? 내가 일찍 가서 뭐해. (반기지도 않을텐데)"라고 대답했고 "어머니 생신인데 며느리가 미역국 끓여야지."라고 말하는데 속에서 울컥하고 뭔가가 올라왔다. "내 살림도 아닌데 거기 가서 어떻게 미역국을 끓여."라고 대꾸하는 내게 남편은 "칠순인데 며느리가 그것도 안하냐?"라고 대답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말해버렸다. "뭐 칠순이 대순가. 백세시대에." 정말 작게 중얼거렸을 뿐인데 남편의 얼굴이 욹으락 붉으락 해지며 정말 유치한 말들을 내뱉었다. 아이들을 재우면서 왜 내가 화가 났을까 생각해보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남편의 말이 가부장적인 발언이라고 생각되어 화가난 것이다. 왜 굳이 먼저 어머니가 칠순이시니까 뭔가 우리가 신경써서 챙겨드려야하지 않냐고 언급했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얘기했어도 내가 어머니 생신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그렇게 남편의 심기를 건드렸을까.....

 

 

 

 

나는 아직 결혼 8년차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 뒤에 오는 것들』의 결혼 23년차의 결혼 선배의 이야기들이 엄청 공감이 되고 내가 결혼생활에서 불편했던 것들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책을 펴든 순간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금방 빠져들었고 단숨에 끝까지 다 읽게 되었다.

 

 

26

우리의 가정은 지금 건강한가?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정신 바짝 차리는 여성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자신을 잃어버리고 인습에 순응하는 여성은 당연하게 보는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에게 일어나는 불합리하고 부당한 문제들을 살피고, 좋은 며느리이기보다는 자신에게 먼저 최선을 다하려는 여성인 우리는 이상하지 않다. 이상한 가부장 월드에 갇혀 며느리로 살아올 수밖에 없었을 뿐이었다. 이제 더는 이토록 이상한 세상에서 살지 않겠다는 여성들이 가부장 월드라는 사회적 세뇌에서 스스로 빠져나오고 있다.

 

나는 시댁과 물리적으로도 거리가 있고 어머니도 내 삶에 크게 관여를 하지 않는 분이라 일정거리를 늘 유지하며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따금 드리는 안부 전화를 할 때 이야기가 길어지다보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다가도 "얘야, 나 땐 더 심했다아~ "이러시면서 본인의 힘들었던 시절을 이야기하시며 내가 남편의 부재로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니라고 하셨다. 자꾸 그러다보니 별로 전화를 하고 싶지도 않고 용건이 있어서 전화를 드려도 아이를 씻겨야 하거나 재워야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서둘러 끊었다. 우리 친정 엄마도 고생이라면 어디서 명함을 내밀 수 있을 정도로 온갖 고생을 하며 사셨지만 나에게 자신의 힘듦을 토로하진 않으셨었는데 무슨 이야기든 당신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결론을 맺는 어머니를 보면서 왠지 편하고 친한(?) 관계를 맺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시부모님과 여러 모로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지내지만 가부장적 사고를 몸에 휘감고 있는 남편과 지내면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남편들의 어이없는 발언들을 마주 할 때 내가 그런 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있게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 안에 단단한 말들을 쌓는 연습을 해야겠구나 싶다.

 

 

 

35

정신을 차리고 보니 20여 년이 흘러버렸고 나는 벌판에 홀로 서서 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늦었지만 고장 난 차를 점검하고 다른 길로 전환이 필요했다. 첫 번째로 남편을 잃을 준비를 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책임지는 것이었고 동시에 잃어버린 나를 찾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라졌던 남편이 돌아왔다. 사실상 우리의 진짜 결혼은 '남편을 잃을 준비'과정에 하나였던 이혼 선언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내 옆의 소중한 존재가 누구인지를 늘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게 위해 나는 준비한다. '그를 잃을 준비'를. 그럴 때 진정으로 그 사람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옆에 있는 소중한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해 '잃을 준비'를 한 다는 말, 너무 슬픈 말이다. 소중한 존재와 서로 아끼고 존중하며 사는 게 당연할 수 없단 말인가. 나도 결혼 생활하며 남편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기대감도 잃고 긍정적인 변화에 대한 소망의 끈마져 끊어졌을 때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하고싶지 않았던 그 말을 뱉어낼 수 밖에 없었다.

 


 

56

1892년에 발표된 샬롯 퍼킨스 길먼의 단편 소설 <누런 벽지>에서

의사인 남편과 사는 주인공 여자는 아기를 낳은 후 우울증과 신경쇠약을 앓는다. 남편을 아내를 위한다며 모든 활동을 금한다. 심지어 글(일기) 쓰는 일까지 중단시킨다. 의사 남편, 의사 오빠, 권위자인 위어 미첼 박사까지 모두 여자에게 '휴식 요법'을 권한다. 여자는 오히려 "자극과 변화와 더불어 마음에 맞는 일이야말로 내 건강에 좋다고" 믿지만, 남편이 들으면 "의사인 내 말을 못 믿겠소?"라고 말할 게 빤하기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여자는 남편이 의사라는 사실이 자신의 병을 악화시키는 한 가지 이유인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중략) 남편과 집안 환경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아내를 보이지 않는 창살에 가두었다. 모든 일이 남편을 중심으로 판단되고, 제한되고, 결정되었다.

 

저자가 책에서 소개하는 <누런 벽지>라는 책 내용이 들어왔다. 나도 둘째를 낳고 육아를 할 땐 '보이지 않는 창살'안에 갇혀 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사랑스럽고 좋다가도 내 삶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의 외로움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에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84

어머니는 우리를 키우며 욕 한번 하지 않은 것을 자랑처럼 이야기했다. 사실 이는 진짜 착해서가 아니라, 모든 게 겁이 나서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나도 욕 한번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내 안에 욕이 없어서가 아니라 뱉어본 적이 없으니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태도는 누군가 욕하는 소리도 받아들이기 어렵게 했다. (중략) 남편과 사우면서 욕이나 막말을 해본 적이 없고, 남들과 싸워본 적도 없다. 싸우려고 하면 심장이 벌렁거려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좋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그저 나도 어머니처럼 모든 게 두려워서 피해왔던 겁쟁이였다.

지금은 소리도 지르고 장난스러운 욕도 뱉는다. 남편에게 '조폭마누라'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변했다. 이제는 무엇이 진짜 착한 것인지 안다. 외부에 착하게 굴려다가 정작 자신에게 가장 잔인해진다는 사실을, 그 끝은 스스로를 죽이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3

 

불쾌한 느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러므로 아리아드네의 실타레처럼 알 수 없는 복잡한 미궁 같은 마음속 감정의 실마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필요나 원하는 바를 찾게 된다. 반대로 감정을 억압하면 마치 미궁 속의 미노타우로스에게 잡아먹히듯, 자신이 진짜 원하는 바를 영영 잃어버린다. 이처럼 감정은 자신의 상태를 알려주는, 마음속 계기판과 같다. (중략) 불편한 감정은 자신에게 켜지는 빨간불이다. 그럴 때 잠시 나를 멈추어 세워야 한다. (중략) 멈추고 점검하는 순간이 바로 나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연료를 채우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살면서 사람이 어찌 늘 좋은 기분과 감정만 유지하겠는가, 불편한 감정은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그 감정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일은 스스로 해야하는 일이다. 전에 나는 그런 감정이 생기면 회피하거나 인식하지 않으려 했다면 요즘의 나는 곰곰히 그 이유를 생각해본다. 내 불편한 감정에서 따로 떨어져서 생각하다보면 어느 새 바람빠진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감정들이 빠져나오고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방법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것도 나와 그다지 긴밀한 관계가 아닌 사람한테 받은 감정은 그렇게 해결이 가능하지만 가까운 가족들간의 관계는 그렇게 쉽지 않은 듯 하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부모도 남편도 아닌 내 두 손에 달렸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상황을 변화시킬 힘도 내게 있었다. 상대만 보면 그가 변하지 않는 한 불행을 바꿀 수 없다. 외부 탓은 자신의 책임에 대한 직무유기이자 여전히 아이로 살겠다는 태도다.

(중략)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나의 필요를 위해 직접 스스로 행동한다는 의미다. 무엇을 원하고 얼마만큼 필요로 하는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야 나는 인생을 스스로 거머쥐는 어른이 되었다.

 

 

나도 부족한 어른이지만 '상황 탓, 환경 탓, 남 탓'하는 어른을 보면 성숙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상사 분이 업무 보고를 할 때 가끔 '핑계대지 말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 그 때는 그런게 아니라며 억울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일 처리를 시간 안에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한 이유를 주변 상황에 돌리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오랫동안 내가 결혼생활에 있어서 힘든 이유를 '남편 탓'으로만 치부했는데 이제는 내 생활이므로 내가 바꿔보려 노력하고 있다. 그랬더니 걷히지 않을 것 같은 내면의 안개도 조금씩 걷히고 남편도 조금씩 내 말을 들으려 하는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184

지금은 경제적 자립을 위해 예전처럼 처절하게 일을 찾지는 않는다. 나 한 사람만 책임지면 되기 때문이다. 일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은 '바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 자신으로 사는 생활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돈을 쫒느라 많은 일에 치이다 보면 주객이 전도되기 쉽다. 나는 비록 적게 벌지만, 결핍이 아닌 풍요로움을 느낀다. 남은 시간은 온전히 나에게 내어주면 더할 나위 없다.

먹고 사는 것을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면 힘과 목소리가 생긴다.

 

너무 공감가는 말이다. 내가 나홀로 육아를 하다가 직장을 구해 일을 하면서 경제적 자유를 어느 정도 맛보며 한없이 낮아졌던 자존감도 서서히 올라왔다. 그러면서 남편에게도 당당히 뭔가를 요구할 힘과 목소리가 생겼다.

 

 


 

 

 

209

서른 초반에 병이 걸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질병 자체는 애도할 일이지만, 나에게는 또 감사한 일을 가져다주었다. 스스로 돌보지 않던 건강을 챙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 병이 아니었다면 '나는 원래 약해'라고 생각하며 평생 골골거리고 살아왔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네 인생살이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세상에 좋다고 하는 일이 결과적으로 나쁜 일일 수 있고, 나쁘다고 여기는 일이 좋은 쪽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중략) 살아 보니 나에게 행복으로 안내해준 초대장은 대부분 고통에서 온 것이었다. 기적은 더욱 그러했다. 죽을 각오로 내밀었던 '며느리 사표' 한 장이 시가 전체에 변화를 가져왔으니까.

 

 

 

 

 

 

 

217

 

 

 

 

 

233

우리는 무의식에 끌려다닐 때는 모르다가 의식이 확장될수록 훨씬 자유로워진다. 내가 누구인지 이해한다는 것은 자유로움이 점점 더 확장된다는 뜻이다. 다만 마음대로 살 수 있다며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자유롭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하기 때문이다. 점점 더 함부로 살 수 없어진다.

 

 

 

238

아이들이 크면서 일을 찾았고, 경제 활동을 하면서 작은 희망을 품었다. 하고 싶은 일이었고, 그 일이 보잘것없는 나에게 조금씩 힘을 주었다. 경제적인 활동은 내가 하는 역할들이 의무만이 아니라 권리도 함께 누려야 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었다. 개인으로서 원하는 바를 찾아가는 과정은 남자뿐 아니라 여자에게도 당연히 주어져야 하고, 시공간의 자유와 권리 또한 동등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최소한의 한 집안에서 여자이기 때문에 불평등을 겪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247

차라리 뻔뻔해도 기꺼이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그 편이 더 아름답다. 그 태도가 나를 더 겸손하게 한다. 사람들이 인정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나에게도 인정하겠다고 허락하는 용기가 필요할 때다.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서평을 썼더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다시금 생각하고 위로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 이따금 결혼생활에 있어서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다시 밀려올 때쯤 다시 이 책을 펼쳐봐야 겠다. 결혼생활에 있어서 탈출구를 찾고 싶어하는 이 땅의 많은 아내, 엄마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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