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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엄마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장해주 지음 / 허밍버드 / 2020년 4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날이 있다. 마음이 심난하고 우울해서 어쩐지 슬픈 것 같기도 한 날.... 예전엔 그런 감정들을 모른척하고 잠을 자거나 맵고 단 음식을 먹으면서 마음을 달랬다. 요즘엔 이상하게도 책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영화, 그도 아니면 목사님 설교말씀을 통해서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문장이나 장면, 말을 만나게 된다 .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낮에 남편과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말 사소한 문제였는데 갑자기 기분이 상하더니 화가 나고 울적해졌다. 그 와중에 카카오톡으로 이 말 저 말 주고받다가 그간의 응어리를 눈꼽만큼 풀어냈다.(글쓰기와 기도로 많이 풀어냈다고 생각했는데 풀어낼 것이 아직도 많나보다) 아이들이 있어서 전화로 이야기하진 못하고(아마 전화로 했으면 큰 소리 났을거다. 핸드폰 대화창으로 얘기했으니 다행이다.) 핸드폰 대화창으로 이야기하는데 남편은 언제나 일관되게 같은 태도와 사고 방식으로 날 갑갑하게 하는데 나는 또 같은 것으로 서운함이 터져버렸다.
아무튼 그런 와중에 아이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순 없을 것 같아 서둘러 할아버지네로 갔다. 어린이날을 맞아 마침 외할아버지가 아이들 선물을 사주시기로 약속하셔서 아이들은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서 엄마의 슬픈 얼굴 따위는 상관없는 듯 싶었다.
아이들을 맡기고 돌아서는데 지난 한 주간 힘들게 일하고 바쁘게 보내서 그런지 오랜만에 해방감이 들었다. 집으로 오면서 그냥 오기가 아쉬워서 근처 브런치 맛집에 들러 맛있는 빵과 커피를 사고, 매운 떡볶이까지 사서 집으로 왔다. 떡볶이를 먹으며 가볍게 Tv나 볼 요량으로 Tv를 켰는데 김창욱강사님이 나왔다. 이상하게 뭐에 홀리듯 다른 채널로 돌리지 않고 집중해서 봤다.
나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말간 하늘에 꽃 만개한 줄도 모르고
쉼 없이 앞으로만 내달린 그대들
한 번쯤 고개를 돌려
안부를 물어볼까요?
<tvN김창옥 쇼 중에서>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위와 같은 내용으로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누군가가 말없이 내 어깨를 감싸며 토닥이는 느낌이었다. 이어서 강사님이 어느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버터세요. 버티는 것도 잘하는 거예요. 다만, 다치지 않도록 받쳐주는 사람이 있어야해요."(김창옥쇼-당신은 사랑받아 마땅합니다) 라고 주옥같은 말을 하시는데 참았던 눈물이 흐른다. 무엇때문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삶 속에서 대부분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지지해줄 내 편이 늘 남의 편이란 생각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쩜 내 속을 그리도 모르는지 싶고.
그렇게 멍하게 앉아 텔레비전을 바라보다가 책 하나를 집어들었다. 나는 보통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읽고 싶은 책이 달라지는데, 왠지 얼마전 도착한 「엄마도 엄마를 사랑했으면 좋겠어」를 보고 싶었다.
이 책은 "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이기 이전에 나 자신이었던 당신이게" 쓴 12년차 방송작가, 장해주님이 쓴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이 시대의 많은 엄마, 여자, 그리고 딸들에게 평범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라는 문구가 내가 이 책을 집어들게 된 이유인 것 같다.
책도 참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고 예쁘다. 책 가운데를 장식하는 꽃은 카네이션인 듯 하다. 책과 함께 온 카드와 봉투. 어버이날 이 카드에 편지를 쓰고 봉투에 용돈을 담아 책과 함께 엄마께 선물해야 겠다.
책은 참 잘 읽힌다. 엄마와 딸의 평범하고 사소한 대화를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치 그 둘의 대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는 것 같이 묘사가 잘 됐다. 저자의 엄마의 이야기를 보며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다. 온갖 감정이 몰아치는데 어느 대목에선 나도 모를 감정에 휩싸여 눈물이 주륵 흘렀다.
책을 보며 마음에 와닿았던 문장들을 옮겨 보았다.
페이지 33
홀로 젓가락을 열심히 놀리며 밥을 먹는 엄마의 모습이 짠한 것보다 왜 그렇게 부아가 치미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오랜만에 올라온 외할머니 집에서 피곤한 몸도 좀 누이고 그저 좀 쉬면 좋으련만. 엄마에게 그건 아무래도 힘든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참 쉬운 '쉬는 일'이 엄마에겐 왜 그토록 힘든 걸까. "내 엄마지만 진짜 별나. 올라왔으면 좀 누워서 쉬고 그러지 내내 걸레질하고 밥하고. 집안일 좀 내버려두면 어때? 엄마는 엄마가 다 해야 직성이 풀리지."(중략) 엄마는 내 말에 별다른 대꾸가 없다가 밥을 다 먹었을 때쯤, "보고도 내버려둘지 모른다고? 내가 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나도 사람이고 네 엄마도 늙어. 만사 다 귀찮아서 진짜 다 버리고 싶을 때도 있고 밥이며 설거지며 청소며 매일 누가 좀 와서 해줬으면 좋겠고. 그래서 손도 대기 싫을 때도 있어. 근데 왜 하냐고?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냐. 네가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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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에서 식사를 할 때 너무 생소하게 보인 것이 시어머니가 가족들을 위한 밥상을 차리시고 함께 식사를 바로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우리 친정엄마는 늘 가족들 밥을 먼저 차리고 가족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잠깐의 설거지를 하고 가족들이 다 먹고 나서야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셨다. 지금도 그렇다. 늘 함께 먹고 치우자고 하지만 엄마는 매번 "나 배고파서 먼저 뭣 좀 먹었어. 엄마 배 안고프니까 먼저 먹어." 이러셨다.
아빠조차도 본인의 식사는 중요치않으시다는 듯 손주들이 생기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부터 일일히 아이들 밥을 챙기시고 아이들이 밥을 다 먹으면 그제서야 식은 밥을 드신다. 하지만 시댁 부모님은 아이들이 먹든 말든 식사를 즐기신다. 게다가 술과 곁들여서 천천히, 여유있게.
페이지 36
엄마이기에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고 양보하는 것이 아닌, 때론 자신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먹을 줄도 알고 자신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취할 줄도 아는. 엄마가 빛나야 엄마의 가족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는 것을.
과거 자신의 엄마가 그렇게 살았기에, 또는 모든 엄마가 그렇기에, 세대가 바뀌어 그렇지 그 시절 엄마들은 다 그랬었기에 나도 그런 엄마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몰아넣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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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마음이 내 마음같아 가슴이 먹먹했다. 자식이 있어도 60평생을 자식 손에 물한방울 묻히지 않게 하셨던 엄마가 떠올랐다. 난 항상 '난 엄마처럼 미련한 희생은 하지 않을거야. 왜 가정에서 엄마만 희생해야돼. 함께 꾸려가야지. 난 나중에 아이들 크면 집안일 다 가르쳐서 각자 할 일을 분담할거야.'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지금은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서 시킬 힘이 부대끼므로 잠시 접어두고 있을 뿐.
페이지 42
무언가 제대로 꿈꿔보기도 전에, 그걸 위해 무언가 해보기도 전에, 엄마는 엄마의 인생 모두를 던져야만 했다. 그 처절한 삶을 감내하느라 온통 자신은 없는 그 시간들만이 엄마를 공허하게 했고 미치도록 가슴을 쥐어뜯게 했다. 그 때에 엄마는 자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무엇에 웃고 울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모든 걸 잃은 엄마에게 남은 건, 그저 자신이 엄마로서 산 시간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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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색깔로 칠한 문장을 보면 엄마가 된 사람이라면 '맞아. 엄마가 되면 저런 경험을 하지. 엄마가 되기 전엔 알 수 없는 경험.'이라 생각할 것이다. 나도 엄마가 되기 전엔 나 스스로 잘 컸다고 생각했다. 엄마속을 썩히지 않고 평탄하게 자랐다는 이유로.
페이지46
나는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가 빨아준 뽀송한 이불 냄새가 그리웠고 예쁘게 부친 계란말이에 폭신한 쌀밥이 놓인 깔끔하게 정돈된 밥상이 그리웠다. 무엇보다 이대로 엄마를 영영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어 밤마다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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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이혼으로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친할머니댁에서 살게 된 저자의 삶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딱 그 때의 저자의 나이가 우리 큰 아이 만한데, 아직까지도 엄마가 세상 최고고 제일 예쁘며 엄마랑 붙어 있는게 좋다는 우리 아이를 생각하면 얼마나 힘들고 엄마가 그리웠을까 싶다.
페이지 101
밤낮 없이, 쉼 없이 일에 치이고 어린 자식들을 키우고, 남편이 있어도 엄마의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차라리 그 남편이 없을 때가 더 나았을 만큼.
(중략)
엄마의 말이 매일 한마디씩 늘어가는 건 외로워서였다. 그동안 쌓아두기만 한 그 숱한 이야기들을 아무라도 좋으니 좀 들어줬으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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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왜 위의 문장이 내 얘기 같지? 아마도 이 책의 저 대목을 보며 얄미운 남편이 떠올라, 억울한 마음에 눈물을
쏟아 낸 것 같다.
나는 엄마와의 관계가 이상하리만큼 좀 어색하고 불편하다. 아마도 속마음을 늘 내비치지 않은 내 탓도 있으리라. 앞으로 살면서 엄마와의 시간을 일부러라도 만들어서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