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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8 - 막부의 멸망과 무진전쟁 ㅣ 본격 한중일 세계사 8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7월
평점 :
임진왜란. 학생 때는 조선군이 처음 보는 왜군의 조총 때문에 크게 고전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임진왜란 2년 전에 이미 대마도주가 조정에 조총을 바쳤고, 실록의 시연 기록을 보면 대신들은 이미 조총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총에 의존했을 것이란 이미지와 달리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강점은 조총보다는 단병접전 즉 근접전에 있었고, 조선군이 오히려 원거리에서 활과 포로 교전하길 선호했다. 이괄의 난에는 반군이 초반에 항왜를 앞세우고 남하하자 조선군은 당해내질 못했다. 과거제도와 유교 등 붓을 잡은 조선과 칼을 든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 시대가 흐르면서 그 이미지도 변하기 시작한다.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도 서구문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오자 변하기 시작한다. 무사도, 사무라이 정신을 앞세우고 일본도를 들고 수적 우위를 확보해도, 후장식 소총와 최신 포 앞에서는 이제 더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이제 무기의 질과 화력이 정신력과 수적 우위를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300의 배경처럼 소수의 정예병력으로 좁은 입구를 막는 전략은 최신식 포로 화력을 한 곳에 집중하면 이제 표적을 좁히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곳곳의 진입로를 막고 버티는 전략도 화포의 발달 앞에서는 이제 병력분산의 오류를 범하는 것일 뿐이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08 막부의 멸망과 무진전쟁은 사무라이의 몰락과 일본에서의 근대 일본군의 시작을 다루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대정봉환으로 막부의 세력이 완전히 끝난 것으로 생각했으나, 무진전쟁은 오히려 그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내전으로 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전쟁으로 인한 기아와 보복은 전쟁보다 훨씬 더 참혹했다. 일본의 대정봉환과 무진정쟁을 보면서 막부는 권력을 내놓을 지경, 결코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임오군란 때는 조정에서 청군을 불러들였고 그 이후에는 친러, 친일 등 외세에 의존하려 했으나, 막부는 열강의 제안에도 끝까지 응하지 않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막부의 이런 결정은 훌륭하다고 할 것이다.
사실 막부는 조슈번과 사쓰마번을 이전에 제압할 기회가 있었으나, 완전히 제압하지 않았기에 최종적으로는 패하고 말았다. 무진정쟁에서 승리한 신정부군은 막부와 아이즈번, 센다이번, 쇼나이번 등을 확실히 처단해서 재기의 발판을 제거하고 그들만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책의 후반부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홋카이도의 에조공화국 시대를 다루고 있다.
굽시니스트의 본격한중일 세계사는 중국의 태평천국,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등장을 지나 이제 8권에 다다랐다. 양쪽이 서로 상대측과 민간인 학살을 일삼은 중국의 태평천국 운동과 의병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의 내전에서는 민간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늘어난 세금에는 시달렸지만 학살당하지 않았고, 전쟁 후에는 세금을 바칠 대상만 달라졌을 뿐이다. 아이즈번의 백성들은 오히려 신정부군을 해방군으로 맞이할 정도였다. 상인과 같은 부자들은 돈을 대면서 미래를 저울질했고, 번주의 측근과 무사들만 결사적이었다.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는 미개한 일본이 대정봉환 이후 메이지 유신으로 우리나라보다 잘살게 되었다고 배웠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의 앞선 문물을 전해주기 위해 파견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의 기록이 아닌 우리나라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 해유록, 동사록 등을 보면 일본에 다녀온 사신들은 일본의 앞선 문물에 놀라워 했으며, 임진왜란 시기에는 양국의 격차가 확연했다. 메이지유신은 그동안 동서양과 꾸준히 교류한 결과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