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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세계대전 ㅣ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6
마이클 하워드 지음, 최파일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0월
평점 :
그 동안 제1차세계대전을 다룬 책들은 모두 독일의 패배와 연합국의 승리의 원인을 양면전쟁에서 찾았다. 종전 시까지 자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싸우고 있었고, 이탈리아와 세르비아에게는 궤멸적인 타격을 주었으며, 러시아와 루마니아는 종전 전에 이미 패퇴시켜 그들에게 가혹한 조건을 이끌어 낸 독일은 홀로 무수히 많은 적과 싸우다 전투에서는 이겼으나 결국 전쟁에서는 패하고 말았다.
고유서가 첫 단추 시리즈 006 제1차세계대전은 이 전쟁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이때까지 이미 출판된 제1차세계대전의 주제로 다룬 다른 많은 책들이 주로 양면정쟁과 참호전, 소모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면 이 책은 근대 국민교육과 전쟁 전의 각국의 배경, 여론 등 이데올리기에 주목하고 있다. 제1차세계대전 때부터 지도자의 판단뿐만 아니라 여론이 전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각국은 전쟁이 결정되고 총 동원력이 선포되자 열광적으로 환호하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어이없게도 자신이 독일에 비해서 전력의 열세를 알고 있음에도 여론을 좋게 하려고 무리하게 알자스 로렌 지방에 공세를 가하다 단숨에 격퇴되었다. 여론에 의한 프랑스의 이러한 초기의 공세는 전쟁 초기 파리를 위험하게 빠뜨렸다. 이는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전쟁 전에 이미 수립된 슐리펜 작전에 의해 작전상 러시아에게 내주고 다시 되찾았어야 할 동프로이센을 지키기 위해서 동부전선에도 대규모의 병력을 이동하다가 양 전선에서 교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는 러시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범슬라브주위자,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들은 물론 친독일파들의 목소리에 곧 사분오열되고 만다.
책일 읽으며 놀라운 점은 그동안 전쟁사 책에서는 크게 다루지 않았던 근대교육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루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삼국을 통일한 고려 시대에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 사람들에게 단군을 내세워 우리가 하나의 민족임을 깨닫게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아 무관들이 문관을 통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했으며, 개국과 동시에 모든 주부군현에 향교를 세워 유교이념을 전파하여 백성들을 교화시켰다. 그러나 아직 민족과 국가가 아닌 종교 또는 가문과 지방의 개념이 강했던 근대 유럽에서는 나라를 하나로 묶기 위해 학교와 교육이 큰 역할을 했다. 이는 이미 교육학 분야에서는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이나 전쟁사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부분이었다.
동부전선에서 독일이 러시아를 상대로 거둔 눈부신 승리의 원인을 무기나 화력 등 다른 곳이 아니라 교육 수준과 국민의 자질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독일의 애국심을 높이고 대규모의 병력동원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도 근대교육으로 평가했으며, 독일군의 높은 전투력을 가질 수 있었던 원인도 역시 다른 곳이 아닌 같은 곳에서 찾았다. 제1차세계대전이 시작되어 해를 넘긴 시점에서 부터는 세력다툼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충돌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연합국에서는 선전용으로 독일군이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학살하고 있다고 선전했으며, 각국에서는 자신들을 인류 문명을 지키기 위해서 이교도와 싸우는 십자군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전쟁의 양상도 과거와는 전혀 달라졌다. 그 동안 전선에서만 전쟁이 이루어지고, 전선의 군인들만이 고통에 시달리는 것들과 달리 전쟁 당사자는 물론 식민지의 사람들까지 그 고통에 시달렸다. 만성적인 물자 부족에 시달렸으며, 배급을 받기 위해서 긴 줄을 서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공장은 쉬지 않고 가동되었고, 모든 시민들이 하루 종일 일을 했으나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자연스럽게 물가는 폭등하고 말았으며, 적국만이 아니라 자국의 지배자들과 관리들에게까지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전쟁은 이제 국가 총력전의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전선에서의 극심한 소모전은 후방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당초의 계획과 달리 전쟁은 단기전으로 끝나지 않았으며, 모두가 우려한 장기전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양 측의 공세는 모두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으며, 이제 누가 오래 버틸 수 있느냐의 싸움이 되었다.
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극심한 인구 소모로 노동력이 귀해지자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의 권리가 높아졌다. 더 나아가 노동력이 귀해지는 차원을 넘어 아예 고갈되자 여성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제 노동자들은 권리는 물론 여성들도 목소리에 힘을 내기 시작했다. 여권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여성들은 참정권을 얻어 냈다. 전쟁 전 700만에 불과했던 영국의 유권자 숫자는 2,100만 명으로 무려 3배로 늘어났다. 전쟁이 장기화 되자 인권, 참정권 같은 변화가 아니라 나라의 근본 자제가 변하기 시작했다. 전제군구국이었던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구체제를 종식시키고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가 성립되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제1차세계대전이었다.